가톨릭대학교

大學校

[라]Universitas Catholica · [영]University of Catholi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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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초의 예수성심신학교(1890년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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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초의 예수성심신학교(1890년대)

① 서울의~
가톨릭 성직자와 수도자 및 평신도 지도자를 육성하고 가톨릭적 의학 윤리관을 갖춘 건전한 의료인을 육성하기 위해 천주교 서울대교구 유지 재단에서 설립한 사립 고등 교육기관. 1994년 현재 서울시 종로구 혜화동 90-1번지에 신학대학, 서초구 반포동 505번지에 의과대학이 위치하고 있다.
〔신학대학〕 성직자, 수도자, 평신도 사도직이 요구하는 시대의 요청에 부응할 수 있도록 지적, 영성적, 사목적으로 교육하는 것을 근본 이념으로 하며, 가톨릭 신학 및 사상의 심오한 이론 및 실천 방법을 연구, 습득하여 교회와 국가, 인류 사회의 복지 향상에 공헌할 수 있는 학덕을 겸비한 인재의 양성을 목적으로 하고 있다. 이 대학은 한국 가톨릭 신학 교육의 중심 기관이자 효시라는 점에서 몇 가지 관점으로 그 기원을 추적해 볼 수 있다. 우선 한국에서 최초의 가톨릭 신학 교육을 시도했다는 점에서 본다면, 그 기원은 1839년 기해박해로 순교한 3명의 프랑스 성직자와 신학생으로 선발된 정하상(丁夏祥) 바오로(1795~1839)에게까지 소급될 수 있다. 실제로 한국인으로서 최초의 가톨릭 신학 교육을 받은 사람은 1836년 마카오에서 수업을 받았던 김대건(金大建), 최양업(崔良業), 최방제(崔方濟) 등이었고, 이 중에서 김대건과 최양업은 신품성사를 받고 귀국하여 사제로 활동하였다. 그러나 국내에서 정식으로 가톨릭 신학교를 설립하고 신학생들을 가르쳤다는 점에서 본다면 1855년 충청도 제천에 세워진 배론[舟論] 신학당에 그 기원을 둘 수 있으며, 개항 이후 근대적 서구 문물과 함께 도입된 서구식 신학 교육의 출발점이라는 측면에서 본다면 1885년 10월에 강원도 원주의 부엉골(현재의 京畿道 驪州郡 康川面 釜坪里)에 설립된 신학교에 그 기원을 둘 수 있다. 이 중에서도 특히 부엉골 신학교는 교명, 교수진, 학생, 설립 이념 등을 감안할 때 현재의 가톨릭대학교 신학대학의 직접적인 전신이 되고 있다. 이 신학교는 1887년 3월 서울 용산으로 이전하고 교명을 예수성 심신학교로 개칭했다. 중등과 3년, 철학과 2년, 신학과 3년 과정으로 철학, 신학뿐만 아니라 라틴어, 한문, 역사, 지리, 천문 등을 가르쳤으며, 파리 외방전교회 출신의 리우빌(Liouville, 柳達榮 ; 1855~1893) 신부가 초대 교장직을 맡았다. 1914년 10월 대구대목구의 설정과 함께 대구에도 성 유스티노신학교가 설립되었으며, 1927년 베네딕도 수도회에 의해 함경도 덕원에 대신학교가 설립되어 덕원, 서울, 대구에서 각각 한국의 북부, 중부, 남부의 대신학교 교육을 나누어 담당하게 되었다. 1929년 서울과 대구의 신학교를 대신학교로 개칭하여 양 신학교의 중고등과를 당시 남대문 상업학교(1994년 현재 동성중고등학교)에 병합하고 대신학교에는 전문부 3년과 대학부 4년을 두었다. 일제의 탄압으로 1942년 서울의 예수성심신학교는 폐교되었다가, 신인식(申仁植) 바오로 신부 등의 노력으로 1945년 2월 경성천주공교신학교(京城天主公教神學校)로 개칭하고 설립 인가를 받아 예과 4년, 고등과 2년의 중등 교육 과정과, 본과 4년, 연구과 2년의 고등 교육 과정을 설정하였다. 이러한 교육 과정을 갖추고 해방 후 혜화동에서 정식으로 개교하여 남한 출신의 신학생들과 덕원 신학교에서 피난 온 신학생들과 해외 유학에서 돌아 온 신학생들을 받아들여 신학 교육을 실시하였다. 1947년 성신대학(聖神大學)으로 승격 인가를 받고, 초대 학장에 장금구(莊金龜) 요한 그리소스토모 신부가 취임하였다. 6 · 25 동란으로 휴교를 하였다가 1951년 제주도 서귀포, 부산의 영도 등지로 옮겨 다니며 수업을 계속하였다. 1953년 9월 서울로 복귀하였고 1955년 2월 신학부의 편제를 6년제로 개편하고 신예과 2년, 신학과 4년으로 하였다. 1959년 2월에는 교명을 가톨릭대학으로 변경하여 인가를 얻었고, 신학부와 의학부의 편제를 두게 되었다. 1960년에는 대학원석사 과정을 인가받았고, 초대 대학원장에 양기섭(梁基涉) 베드로 신부가 취임하였다. 1961년 대학원 박사 과정을 인가받았고, 1963년에는 박사 학위 수여교로 인가받았다. 1971년부터 성직 희망자가 아니더라도 가톨릭 신학을 전공할 수 있도록 수도자와 평신도에게 입학이 허가되었고, 1974년부터는 여학생에게도 허가되었다.1985년 개교 100주년 학술 대회를 개최하였고, 1986년 5월 재단 명칭을 천주교 서울대교구 유지 재단으로 변경하여 인가를 받았다. 1987년 기존의 신학과와 철학과 외에 사목학과를 신설하였고, 1991년부터 대학원 과정을 2년에서 3년으로 늘려 석사 학위 논문 작성자에게 실질적인 도움이 되도록 배려하였다. 1992년 4월, 문교부의 방침에 따라 최창무(崔昌武, 안드레아) 신부가 초대 총장으로 취임하여 7월에는 교명을 '가톨릭대학' 에서 '가톨릭대학교' 로 개칭하였다. 동시에 신학부를 신학대학으로, 의학부를 의과대학으로 재편하고, 1986년부터 제기되어 온 성심여자대학교와의 통합을 통한 종합 대학교로의 전환에 노력하여, 1993년 12월 가톨릭대학교와 성심여자대학교 측이 통합에 정식으로 합의함으로써 1995년도부터 가톨릭대학교는 명실상부한 가톨릭계 종합 대학교로 부상하게 되었다.
역대 이사장은 초대 뮈텔(Mutel, 閔德孝 ; 1924~1933) 대주교, 2대 라리보(Larribeau, 元亨根 ; 1933~1942) 주교, 3대 노기남(盧基南) 바오로(1942~1967) 대주교, 4대 윤공희(尹恭熙) 빅토리노( 1967~1968) 주교, 5대 김수환(金壽煥) 스테파노(1968~현재)추기경 등이며, 역대 학장에는 초대 장금구 요한 그리소스토모(1947. 4~1948. 2), 2대 윤을수(尹乙洙) 라우렌시오(1948. 3~1950. 1), 3대 정규만(丁奎萬) 마르코(1950. 1~1954. 10), 4대 한공렬(韓孤烈) 베드로(1954. 10~1961. 2), 5대 황민성(黃旼性) 베드로(1961. 2~1964. 8), 6대 이문근(李文根) 요한(1964. 8~1967. 4), 7대 정규만(丁奎萬) 마르코(1967. 4~1969. 5), 8대 김창렬(金昌烈) 바오로(1969. 5~1973. 9), 9대 백민관(白敏寬) 테오도로(1973. 9~1976.8), 10대 유봉준(兪鳳俊) 토마(1976. 9~1979. 8), 11대 최창무 안드레아(1979. 9~1980. 8), 12 · 13대 최윤환(崔允煥) 암브로시오(1980. 9~1985. 8), 14대 백민관(1985. 9~1988. 8), 15대 정의채(鄭義采) 바오로(1988. 9~1991. 8), 16대 최창무(1991. 9~1992. 3) 등 성직자들이 부임하였다.
부속 연구소로 라틴어 연구소, 사목 연구소, 성서 연구소, 중세 사상 연구소, 교의신학 연구소, 교회사 연구소 등과 도서관이 있다. 예수성심신학교 당시 신학과 철학에 대한 글 및 교회 소식을 라틴어로 간행한 《타벨라》(Tabella)와 해방 이후의 소식지인 〈알마 마테르>(Alma Mater)가 있었다. 현재는 대학지인 <가톨릭대학보>가 있다. 학술 논문집인 《가톨릭대학 논문집》은 1987년까지 12집을 발간하였고 1989년부터는 《가톨릭 신학과 사
상》이 일년에 두 번 간행되고 있다. 예수성심신학교 때 89명, 경성천주공교신학교 때 21명, 성신대학 및 가톨릭대학교 신학부를 거쳐 신학대학에 이르는 1994년 2월 현재까지 모두 45회에 걸쳐 1,801명의 졸업생을 배출하 였다.
〔의과대학〕 가톨릭 정신을 통한 인격 함양에 힘쓰며 우리 나라 의학 발전을 위한 훌륭한 의학도를 양성, 배출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여 의예과 2년, 본과 4년의 편제로 1954년 5월에 성신대학 의학부라는 명칭으로 개교하였다. 이 의학부의 모태는 1935년 3월에 박병래(朴秉來) 요셉 박사가 초대 원장으로 취임했던 서울 중구 저동에 있던 성모병원이었으며, 초대 의학부장은 윤형중(尹亨重) 마태오 신부였다. 1954년 5월에 설립된 성 요셉 간호기술고등학교는 1962년 가톨릭대학 의학부 부속 간호학과로 승격, 인가되었고 1963년 의학부 간호학과로 되었다.
한편 신학부와 같이 1960년과 1961년에 각각 정원 10명의 대학원 석사 과정과 박사 과정을 인가받았고, 1961년 12월에는 부속 성모병원을 완공하여, 임상 전과목을 진료하였다. 1962년 가톨릭 중앙의료원이 설립되어 가톨릭대학 의학부 및 8개의 부속 병원을 총괄하면서 의학부의 의학 교육과 임상 교육에도 실효를 얻게 되었다. 가톨릭대학 의학부는 1968년 종로구 경운동 교사로 이전하였고, 1974년에는 성형 외과, 흉곽 외과, 건강 관리과가 증설되었다. 1994년 5월 현재 가톨릭 의과대학은 성모병원, 강남 성모병원, 의정부 성모병원, 성 바오로병원, 성 빈센트병원, 성모자애병원, 성가병원, 대전 성모병원 등 8개의 부속 병원과 산업 의학 연구소, 만병성 연구소, 임상 의학 연구소, 기생충병 연구소, 가톨릭 암센터, 가톨릭 골수 이식 센터 등 모두 6개의 부설 연구소를 두고 있다.
개교 이래 1994년 현재까지의 가톨릭 의과대학의 주요 활동을 개관하면 다음과 같다. 1967년 중앙안은행(中央眼銀行)을 설치하여 안구 등록과 각막 이식 수술을 통하여 실명자에게 시력을 되찾아 주었으며, 1969년 국내 최초로 신장 이식 수술을 실시하였고 1975년에는 혈액은행(血液銀行)을 개설하여 헌혈 운동을 벌여 왔다. 또한 가톨릭 가족 계획 클리닉을 설치하여 가톨릭적 방법에 의한 가족 계획 지도원의 위탁 훈련과 상담을 벌여왔다. 이 밖에 성인병의 예방과 진료를 위해서도 노력하고 있다.
가톨릭 의과대학의 역대 의학부장으로는 초대 윤형중 신부(1954. 5~1955. 3), 2대 박양운 신부(1955.9~1956. 6), 3대 박병래 교수(1956. 6~1957. 1), 4대 양기섭 신부(1957. 1~1961. 11), 5대 박희봉 신부(1961. 11~1965. 7), 6대 김창렬 신부(1965. 7~1967. 9), 7대 양기섭 신부(1967. 9~1968. 3), 8대 유수철 신부(1968. 3~8), 9대 정일천 교수(1968. 8~1971. 8), 10 · 11대 김영제 교수(1971. 9~1976. 8), 12 · 13 · 14대 조규상 교수(1976. 9~1982. 8), 제15대 심봉섭 교수(1982. 9~1984. 8), 16대 최진 교수(1984. 9~1986. 8), 17 · 18대 조규철 교수(1986. 9~1990. 8), 19 · 20대 김주성 교수(1990. 9~1993. 2) 등이고, 1992년 7월의 편제 개편에 따라 1993년 3월부터 초대 의과 대학장으로 김주성 교수가 부임하여 1994년 5월 현재까지 이르고 있다. 이 대학의 졸업생은 1994년 2월 현재까지 의학과가 35회에 걸쳐 2,907명, 간호학과가 30회에 걸쳐 1,482명을 각각 배출하였다. (→ 가톨릭대학교 의과대학 부속 병원 ; 가톨릭 의료 사업 ; 가톨릭 중앙 의료원 ; 덕원 신학교 ; 동성학교 ; 배론 신학당 ; 성신대학 ; 유스티노 신학교 ; 예수성심신학교)
※ 참고문헌  가톨릭대학교 신학대학 교무처, 《가톨릭대학교 신학대학 요람 1993~1994》, 1993/ 가톨릭대학 의학부 교학과, 《가톨릭대학 의학부 요람 1981~1982》, 1981/ 《가톨릭 대학교 의과대학 1994~1995》, 1994/ 울대 교구 교구 총람》, 가톨릭출판사, 1984. 〔元載淵〕
② 세계의~
가톨릭적 이념에 기초한 대학 본연의 탐구 및 교수 활동을 통하여 인류 문화의 향상과 인격의 풍성한 발전 및 교회의 교도 임무 수행에 기여하는 학문 공동체(교회법 807조). 가톨릭 대학교는 주교 회의나 교구장에 의해 설립되며 감독을 받는다(808조, 810조).
가톨릭 대학교는 가톨릭적 이상, 원리 및 태도를 가지고 탐구하고 가르치며 봉사하는 기관이므로 가톨릭적 교리와 규율이 모든 대학 활동에 영향을 미쳐 가톨릭적 정체성을 공적으로 드러내야만 한다. 따라서 가톨릭 대학에 있어서 신학부나 신학대학은 신앙과 이성의 대화에 있어서나 인식의 종합을 추구하는 데에 특별한 역할을 담당하는 필수적인 존재가 되므로(교육 10항 ; 가톨릭 대학교에 관한 교황령 18-19항) 교회법에는 "가톨릭 대학교에는 신학대학(신학부) 또는 신학 연구소나 적어도 신학 강좌가 설치되어야 한다"(811조)고 규정하고 있다. 가톨릭 대학교는 교회와 사회에 대한 봉사, 사목적 봉사, 문화와의 대화, 복음 선교 등 크게 네 가지 분야에서 봉사적 역할을 수행하며, 신앙과 도덕의 사항에 있어서 행사되는 교회의 교도권(敎導權)을 인정하고 승복하여 교구장의 지도와 감독을 받아들임으로써 전체 교회와의 일치를 드러내야 한다.
중세기 유럽의 교수와 학생단(univeritas)에서 그 형태를 이어받은 유럽의 대학은, 수도원의 학문적 전통을 계승하여 13세기경부터 나타났다. 이 시기에 설립된 유럽의 대학들 중에서도 1258년 소르본의 로베르가 가난한 신학 연구생들을 위해 프랑스 파리에 설립한 학원은 그 후 전 파리 대학의 이름이 될 정도로 유명했으며 파리의 대학들을 철학(哲學)과 신학(神學)을 육성하는 곳으로 만들게 되었다. 당시의 대학들은 프랑스의 파리 외에도 볼로냐 · 몽플리에, 영국의 옥스포드 · 케임브리지, 스페인의 팔렌치아 · 살라만카 그리고 이보다 1세기쯤 후인 14세기 독일의 프라크 · 빈 · 하이델베르크 · 쾰른 등지에서 생겨나 철학과 신학 외에도 의학(醫學), 법학(法學) 등을 가르쳤다. 교황 그레고리오 9세는 1231년 파리의 대학을 주교로부터도 독립시켜 많은 특전을 부여하는 등 대학을 육성하였다. 중세 유럽의 대학들은 르네상스와 산업 혁명을 거치면서 근대에 이르러 각 지역 국가 권력의 영향을 받게 되자 점차 세속화되어 가톨릭적 이념이 퇴색되어 갔다. 이에 교황청을 비롯하여 유럽과 미국의 가톨릭 교회에서는 신학부를 강화하여 가톨릭적 이념을 실현할 수 있는 가톨릭 대학교들을 설립하거나 재건하는데 힘썼으며 그 결과 벨기에의 루빙 대학교(1834)를 비롯하여 프랑스의 앙제 대학교(1875), 미국 워싱턴 D.C.의 미국 가톨릭대학교(1889) 등이 설립되었다. 1993년의 《교황청 연감》(Annuario Pontificio)에는 교황청 직속의 교황 청립 대학교를 제외하고도 약 52개에 달하는 세계 각국의 가톨릭 대학교가 간략히 소개되어 있다. 20세기에 들어와서 가톨릭 대학교에 대한 교황의 사목적 관심이 표명된 문헌으로는 제2차 바티칸 공의회의 문헌들(사목 59항 : 교육 10항) 외에도 1931년 비오 11세에 의해 반포된 교황령 〈Deus Scientiarum Dominus>와 비오 12세의 사도적서한 〈Catholicas Studiorum Universitates> 및 요한 바오로 2세의 교황령 〈Sapientia Christiana>(1979) 등이 있다. (→ 교황청립 대학교)
※ 참고문헌  Apostolic Constitution of the Supreme Pontiff John Paul Ⅱ on Catholic Universities(최영철 역, <가톨릭 대학교에 관한 교황령>, 《한국천주교중앙협의회 회보》 제63호, 1990. 12, pp. 58~72)/Catholic University of America, Catholic University of the Sacred Heart(Miilan Italy), Catholic University of the West (Angers), 《NCE》 3, pp. 332~337/ 아우구스트 프란츤 저, 최석우 역 《敎會史》, 분도출판사, 1982, pp. 242~ 247/Annuario Pontificio, 1993. 〔元載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