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남 본당
羅南本堂
글자 크기
2권
함흥교구 소속 침묵의 본당. 1936년 11월경, 청진 본 당으로부터 분리 설립되었으며 소재지는 함경북도 부령 군 나남읍(富寧郡 羅南邑). 주보는 예수 성심이며, 1949 년 공산 정권에 의해 폐쇄되었다. 〔공소 시대〕 1928년 서울 · 청진 간의 철도가 개통되 던 시기를 전후하여, 청진 부근의 항구 도시 나남에는 함 북 각지의 농촌에서 떠나온 산업 인구가 대거 몰려들게 되었는데 이 중에는 상당수의 신자들이 포함되어 있었 다. 한편 청진 본당의 신자수가 전년도에 비해 약 2배 가 량 급증하여 좁은 성당 건물 안에서 이들을 수용하기 어 려워지게 되었고, 나남에서 청진까지 3시간이나 걸어 주 일 미사에 참례하러 오는 신자들의 불편을 덜어 주기 위 해 별도의 공소를 설립할 필요성이 절실해졌다. 이에 따 라 청진 본당의 바잉거(Markus Bainger, 方, 마르코) 신부 는 1928년 성진(城津) 공소와 함께 나남 공소를 동시에 설립하고, 1936년 본당으로 승격되기 전까지는 이곳을 자주 방문하여 신자들을 권면하였다. 본당의 신자수나 기타 현황에 대해서는 단편적인 기록밖에 없는데, 바잉 거 신부의 보고에 의하면 1930년 초, 나남 공소와 인근 어대진 공소의 신자수는 약 50명 가량이었으며, 경제적 인 이유로 그때까지 아직 공소 건물을 마련하지 못하고 있었다. 〔본당 설립과 변모〕 1936년 11월, 웅기 · 나진 본당 주임 신부로 부임한 치머만(F.Zimmermann, 閔德基) 신부 가 나남 공소를 본당으로 승격시켜 약 2년 간 초대 주임 신부를 겸임하였고, 1937년 말부터 약 1년 간 엔크(D. Enk, 嚴) 신부가 본당의 사목을 도왔다. 1938년 말부터 는 모르(L. Mohr) 신부가, 그 다음에는 밀레만(H. Millemann, 南) 신부가 차례로 부임하여 사목하였다. 그러다 가 1949년 5월, 교구장 사우어(B. Sauer, 辛) 주교가 공 산 정권에 의해 체포되고 잇달아 함흥교구와 덕원 면속 구의 성직자들이 체포되면서 수도원, 성당을 비롯한 교 회의 모든 재산이 몰수될 때, 이 본당도 함께 폐쇄되어 침묵의 본당이 되었다. 폐쇄 직전까지 본당 내에 8개의 공소가 있었다. (→ 함흥교구 ; 청진 본당 ; 침묵의 교 회) ※ 참고문헌 한국교회사연구소 편, 《원산교구 연대기》, 함경도 천주교회사 간행사업회, 1991/ 한국교회사연구소 편, 《韓國語 資料 集》, 함경도 천주교회사 간행사업회, 1989/ 프루멘시우스 렌너, <원 산교구사>, <교회와 역사》 55~60호( 1980. 1~8), 한국교회사연구소. 〔元載淵〕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