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선사전》

羅鮮辭典

〔라]Dictionarium Latino-Coreanum

글자 크기
2
1936년 동성상업학교(東星商業學校) 을조(乙組)에서 간행한 나한 사전(羅韓辭典). 1936년 이 학교의 교사로 재직하던 윤을수(尹乙洙, 라우렌시오) 신부가 교장으로 재직하던 장면(張勉)과 동료 교사인 임충신(任忠信, 마티아) 신부, 안응렬(安應烈), 이동구(李東九) 등의 도움을 얻어 편찬하였으며, 혁제(革製) 표지와 포제(布製)표지 2종으로 간행되었다. 사전은 4 · 6배판 780쪽 분량에 약 5만 개의 어휘를 수록하였는데, 어휘 취급 분야는 법학 · 철학 · 신학 등 26개 분야였다. 이 사전이 간행되기 전에 한국에서 라틴어를 익히기 위해 사용해 오던 것은 박해 때 다블뤼(Daveluy, 安敦伊) 주교 등이 편찬하여 1891년 홍콩의 나자렛 인쇄소에서 간행한 《나선소사전》(羅鮮小辭典, Parvum Vocabularium Latino-Coreanum)과 1905년 용산 예수성심신학교에서 교장 기낭(Guinand, 陳普安) 신부가 발간한 《라틴어 문법서》 등 몇몇 라틴어 교재였다. 이외에도 비록 전문 분야의 사전이기는 하지만 1947년 덕원(德原) 수도원의 피셔(Fischer) 신부가 <의학 라틴어》를 편찬한 적이 있었다.
이 중 약 1만 개 정도의 어휘가 수록되어 있는 《나선소사전》은 박해 시대 한국 신학생들을 위해(Ad usum stu-diosae juventutis Coreanae) 편찬된 것으로, 파리 외방전교회 선교사들 사이에서는 그 저자가 다블뤼 주교로 전해져 왔지만 그를 이 소사전의 유일한 저자로 보기는 어렵다. 실제로 박해 이전에 배론[舟論]의 성 요셉 신학교 교장을 맡고 있던 푸르티에(Pouthie, 申妖案) 신부는 학생들을 위해 《나한한사전》(羅韓漢辭典)을 편찬하였고, 이 학교의 교수로 있던 프티니콜라(Pent-nicolas, 朴) 신부도 어휘 3만 이상의 라틴어와 10만에 가까운 조선어를 담은 《나한사전》(羅韓辭典)을 편찬했었다. 그 후 이 사전들은 다른 종류의 사전들과 함께 원본을 조선 교회에서 간직하고, 사본을 프랑스로 보내 간행하려고 필사하는 작업을 하던 중 박해로 인해 유실되고 말았다. 그러므로 다블뤼 주교는 그들이 편찬한 나한사전의 원고들을 바탕으로 하여 새 사전을 편찬하려고 하였음이 분명하며, 1866년 병인박해(丙寅迫害)로 인해 그들이 순교하게 되자 살아남은 선교사들이 이전에 선교사들이 편찬한 사전 원고들을 정리하고 보완하여 이 소사전을 간행한 것으로 생각된다. 이러한 상황은 박해 후 중국으로 피신한 리델(Ridel, 李福明) 주교와 페롱(Féron, 權) · 칼래(Calais, 姜) 신부 등이 선배 선교사들의 업적을 이어받아 1880년과 1881년에 《한불자전)(韓佛字典)과 《한어문전》(韓語文典)을 간행한 것과 같다.
그러나 이 소사전은 라틴어 사전으로 충분한 역할을 하지 못하였으므로 새 라틴어 사전의 편찬은 필수적이었다. 이에 대해서는 편저자인 윤을수 신부도 새 사전의 서문에서 《나선소사전》의 어휘수 부족과 부적절한 표현 방법 때문에 새 사전의 편찬이 시대적 요청에 의한 것이었음을 밝히고 있다. 《나선사전》을 간행한 뒤 윤을수 신부는 미흡한 점이 많음을 깨닫고 개정판이 간행되기를 희망하였다. 그러나 개정판은 물론 재판도 간행되지 못하였으며, 1959년 경향잡지사에서 《나한사전》으로 명칭을 바꾸어 영인본을 간행한 뒤 현재까지 한국의 유일한 라틴어 사전으로 교회와 학계에 많은 공헌을 해왔다.
※ 참고문헌  《나선사전》 《나선소사전》 <달레 교회사》 上 · 下/ 《가톨릭 사전》1《교회와 역사》 82호(1982. 5). [車基眞]