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관주의

樂觀主義

〔라〕optimismus · 〔영〕optimism

글자 크기
2

낙관주의라는 단어는 1737년 2월 프랑스의 예수회 잡 지 《Mémoiress de Trevoux》에서, 라이프니츠(G.W. Leibniz, 1646~1716)의 학설을 지시하는 뜻으로 처음 사용되었다. 프랑스 학술원에서는 이 용어를 1762년 사전에 수용하 였고, 영국에서 처음 이 용어가 나타난 것은 1759년이 었는데, 이것 역시 라이프니츠의 학설 체계를 언급할 때 였다. 이 용어는 1759년 볼테르(Vataire)의 소설 《낙천 주의의 지원자》에 의하여 대중화되었다. 낙관주의는 일 반적 감정이나 정신적 태도 혹은 철학적 체계로서 이해 된다. 전자는 세계와 세계 안에서 일어나는 모든 것을 밝 은 측면에서 보고 미래를 희망에 찬 눈으로 보는 습관적 경향이다. 후자는 현재의 세계가 본질적으로 선하다고 가르치며 실제로 두 개의 형식을 취하는데, 하나는 절대 적 낙관주의요 다른 하나는 상대적 낙관주의이다. 절대 적 낙관주의는 이 세계가 가능한 가장 좋은 세계라고 주 장하는데, 그것이 절대적으로 완전하든가 혹은 그것이 할 수 있는 한 완전하다고 본다. 상대적 낙관주의는 세계 가 더 좋아질 수 있다는 것을 인정하며, 세계가 포함하는 선(善)이 가치가 있기 때문에 선의 존재가 존재하지 않 는 것보다 더 좋다고 주장한다. 낙관주의라는 용어는 넓 은 의미에서 진화론적 낙관주의, 사회학적 낙관주의, 같 은 성질로서 세계 개선주의 등으로 해석된다. 진화론적 낙관주의는 우주의 진화에서 느리지만 지속적인 발전이 있다고 확신한다. 사회학적 낙관주의는 미래에 언제인가 는 사회학적 문제들이 해결되리라는 것을 기대한다. 개 선주의는 인생은 참된 가치를 지니며 그것은 각 개인의 노력에 의하여 증가된다고 확신한다. 〔형 태〕 그리스 철학에서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는 낙관주의의 입장을 갖는다. 플라톤은 세계는 신의 섭리 에 의해 산출되었기에 이 세계가 가장 아름답고 최상의 세계라고 보았다(Tim. 30A). 아리스토텔레스에 의하면, 신처럼 자연에는 무용한 것이 하나도 없으며 그것은 미 래를 미리 보며, 모든 사물에 신성한 어떤 것을 주입시킨 다고 보았다(cf. Cæl. 271a 33 : Eth. Nic. 1153b 32). 스토아 철학의 기본적 원리는 '사람은 그가 세계 안에서 어떤 처지에 있더라도 행복할 수 있다' 는 것인데, 이는 행복 은 내면에 있으며 각자의 탐욕과 격정을 극복함으로써 얻어질 수 있다고 보았음을 드러낸다. 플로티노(Plotinus) 에 의하면 예지적 지식의 대상들은 정신 안의 관념인데, 그것의 극치는 그 자체로 선인 일자(一者)와의 신비적 일치라고 보았다. 이러한 사상은 중세와 르네상스 시대 의 철학자들에게 큰 영향을 주었다. 쿠사의 니콜라오 (Nicolaus de Cusanus)와 조르다노 브루노(Giordano Bruno) 도 절대적 낙관주의적 입장을 드러낸다. 니콜라오는 세 계가 신이 전개된 것이라고 보고, 세계는 신에 의해서 신 을 바탕으로 해서 신 안에 존재하며, 세계는 신의 모상이 요 닮은꼴이라 보았다. 브루노에게 있어서는 세계 자체 가 무한한 것이고 궁극적인 현실이다. 세계는 신의 모상 이 아니라 세계 자체이다. 신은 세계에 대한 신앙심을 깊 게 하는 그런 존재였다. 이것은 나중에 스피노자의 범신 론적 낙관주의로 이어지는데 그것은 신과 세계를 동일시 하는 입장이다. 경험론과 이성론을 대비한다면, 경험론은 일반적으로 염세주의로 끝나는 데 비해 이성론은 낙관주의 경향을 지닌다. 그래서 17세기 합리적 전통을 잇는 데카르트, 스피노자, 라이프니츠는 낙관주의자로 여겨지기도 한다. 그것은 실제적인 것과 이상적인 것을 조화시키려는 노력 을 경주하기 때문이다. 이 노력은 자연의 법칙과 힘과 지 혜에서 절대적 원천과 개인적 연관에 전념한다. 데카르 트(R. Descartes)에게 있어서 인간의 정념(情念)은 관대와 정직의 이상을 뒷받침하는 것으로서 고려되며, 스피노자 (B. de Spinoza)는 수동적 정념은 불완전하지만 능동적 애 정에 의하여 교정될 수 있다고 보았다. 라이프니츠는 사 실의 진리는 그것을 분석하면 할수록 이성의 진리에 근 거한다고 보았다. 현실의 낙관주의적 교설은 이들 사상 가들의 다음과 같은 확신에 의하여 지지되었다. 즉 악은 유한하고 한계가 있고, 우리의 관념은 혼란 · 희미함 · 부 적당함에서 명석 · 뚜렷함 · 적당함으로 나아가게 하며, 세계와 우리 인생의 선은 절대적으로 확신할 수 있는 방 식으로 밝혀질 것이라고 한다. 〔라이프니츠의 낙관주의〕 라이프니츠는 일반적으로 근대의 뛰어난 철학적 낙관주의자로서 고려된다. 그의 낙관주의의 입장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1770년에 출판된 신의 은총과 인간의 자유 및 악의 기원에 관한 《변신론》 (辯神論, Theodizee) 이외에 1659년에 발표된 《자연의 신(新)체계》(Neues System der Natur), 《단자론》(Monadologie, 1712~1714), 《자연과 은총의 원리》(Prinzipien der Natur und Gnade)를 이해해야만 한다. 이와 같은 저서를 통해서 보면 라이프니츠는 본질적으로 가톨릭 정신의 소 유자임을 알 수 있다. 조화(harmonia)의 개념은 그의 철학을 지배하는 관념 이었다. 그는 젊었을 때, 데카르트적 기계론적 학설을 좋 아하였고, 나중에는 플라톤으로부터 목적인이 주관적이 아니라 객관적으로 정초되어 있다는 것을 배웠다. 결국 그의 노력은 존재의 원인론적 측면과 목적론적 측면을 통일된 체계에서 결합시키려는 것에 경주되었다. 그는 작용 원인과 목적 원인이라는 두 가지의 영역은 서로 잘 조화되어 있다고 보았다. 자연 현상에 있어서 모든 것은 역학적인 방법과 형이상학적 방법으로 동시에 생겨나며, 《변신론》에서 영혼은 궁극적 목적 및 궁극적 원인의 법 칙을 따르는 수단들에 의해 움직인다고 말하였다. 바꾸 어 말하자면, 하나하나의 개별적 단자는 정말로 근원적 인 힘이며 언제나 자발적으로 움직인다. 이 단자에는 그 무엇이 들어가거나 나오거나 할 수 있는 창문이 없으므 로 다른 것의 영향을 받지 않고 스스로 자립적으로 자유 롭게 존재한다. 그러나 하나하나의 단자들은 그 잠재적 내용 속에 우주 전체를 포괄하고 있기 때문에, 하나하나 의 단자들은 그 표상 내용이 통일되고 있으면서 우주의 살아 있는 거울이기 때문에, 모든 단자들은 표상의 정도 에 따른 개별성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애초부터 서로 일 치하고 있다. 이것이 예정 조화(harmonia praestabilita)이 다. 하나하나의 단자가 모든 것이며 모든 것이 하나의 단 자이기 때문에 조화의 법칙이 있게 된다. 그래서 라이프 니츠는 육체는 마치 영혼이 없는 것처럼 행동하고 영혼 은 마치 육체가 없는 것처럼 행동하지만, 이 두 가지는 다 같이, 마치 한쪽 편이 다른 편에 영향을 미치는 것처 럼 행동한다고 말하였다. 라이프니츠의 단자 사상에 영향을 준 사람은 니콜라오 와 브루노이다. 라이프니츠는 신이 원래부터 가능했던 무한히 많은 세계들 중에서 가장 좋은 세계를 골라내어 실현시켰는데, 그것이 이 세계라고 보았다. 그는 그렇지 않았더라면 신은 하나의 세계를 창조해 낼 어떤 이유도 가지고 있지 않았을 것이라고 말하였다. 그는 신이 여러 가지 좋은 가능성들 중에서 가장 좋은 가능성을 선택한 것은 신의 본성을 충족시키는 것이라고 생각하였다. 완 전한 지혜는 보다 더 좋은 것, 따라서 가장 좋은 것만이 알맞다는 것이다. 라이프니츠는 세계 안의 악을 형이상 학적 악(malum metaphysicum), , 자연적 악(malum physicum), 윤리적 악(malum morale)으로 구별하여 설명하고 있지만, 아우구스티노가 선을 얻어내기 위해 신이 악을 허용하였다고 한말, 토마스 아퀴나스의 우주가 가장 선 하기 위해서 악이 허용되었다고 한 말에 동의하면서 악 은 선에 포섭된다고 보았다. 신은 무한하고 악마는 한정 되어 있으며, 선은 무한히 성장할 수 있으나 악은 한계를 가지고 있고, 선은 어떤 경우에도 악을 능가한다고 보면 서 그의 낙관주의의 확고함을 나타내었다. 〔종교와 낙관주의〕 철학에도 두 측면이 있듯이 종교에 도 낙관주의적인 면과 비관주의적인 면이 있다. 종교의 본질은 궁극적으로 악으로부터의 구원이지만 현재는 눈 물의 골짜기이다. 선과 악의 투쟁에서 선은 승리하지만 모든 사람이 선의 진영에 속하여 있지 않기 때문이다. 그 러나 본질적 측면에서 모든 종교는 낙관주의 진영에 속 한다고 볼 수 있다. 그리스도교 신앙은 낙관주의 색채가 강하다. 세계 안의 악은 우연이며 선에게 종속되는 것으 로 보기 때문이다. 선하신 하느님은 온 세계를 창조하였 고 세계는 신의 지혜의 작품이기에 세계는 신의 완전성 을 반영하는 것이다. 현세에서 악마가 고통을 주기는 하 지만 그것이 절대적인 힘으로 군림하지는 못하기 때문이 다. 불교도 현재를 고통의 바다〔苦海)라고 하지만, 깨닫 고 해탈하면 슬픔과 고통에서 벗어난다고 말한다. 조로 아스터교, 마니교, 그노시스주의의 이론도 악에 대한 선 의 승리를 나름대로 주장한다. 모든 종교에는 기쁨의 세 계에 대한 긍정의 요소가 있는데, 그것은 공동 생활에서 신비적 · 예언적 열광으로 표현된다. 세계 종말론의 종교 는 일시적 세계에 대해서는 염세주의와 연결되지만, 궁 극적으로는 새로운 삶이 다음에 온다는 신념 안에서 기 쁨의 낙관주의와 연결된다. 낙관주의를 주장한 사상가들을 더 열거해 보면, 쾌락 설적 낙관주의를 주장한 말브랑슈(N. Malebranche, 1638 ~1715)와 인간의 자연성을 선으로 보는 샤프츠버리(T.E. Shaftesbury, 1671~1713)가 있다. 도덕적 낙관주의는 제임 스(W. James, 1842~1910), 존 듀이(J. Dewey, 1859~1952) , 화이트헤드(A.N. Whitehead, 1861~1947)에게서 보여진다. (↔ 비관주의) ※ 참고문헌  P. Siwek, Optimism in Philosophy, 《NSchol》 23, 1948, pp. 239~297/W. Gass, Optismus und Pessimus, Berlin, 1876. 〔洪鍾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