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태

落胎

〔라〕abortus · 〔영〕abor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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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주 된 태아의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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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주 된 태아의 모습.


의학적 정의에 의하면 낙태란 태아가 생존력을 지니기 이전에 자궁으로부터 제거되는 것을 말한다. 법의학에서 는 낙태와 임신 중절을 구별해서 정의하고 있다. "인공 임신 중절이란 모자 보건법에 규정된 의료 행위로서 태 아가 모체 밖에서 생명을 유지할 수 없는 시기에 인공적 으로 태아 및 부속물을 모체 밖으로 배출하는 것"을 말 하며 "낙태란 인공 임신 중절의 법률 용어로서 모자 보 건법 등의 법률에 의하지 않는 범법적인 것을 의미하는 것이다" 라고 정의하고 있다. 가톨릭 윤리신학적으로는 "낙태는 인간의 간섭 - 자궁으로부터 출산되기 전에 그 를 죽인다거나 자궁 밖에서 확실히 죽도록 그를 적출하 는- 에 의해 모체의 자궁으로부터 인간 존재가 생존하 지 못하도록 제거하는 것"을 말한다. 〔인간 생명의 시작에 관한 문제〕 인간의 생명이 언제 부터 시작되느냐 하는 질문에 의해서 낙태의 윤리적 문 제가 제기된다. 이 문제는 태아에 대한 생물학적 · 의학 적 학문의 발달과 관계가 있다고 해야 할 것이다. 이런 학문이 아직 발달하지 않았을 때에는 출생하기 전까지의 인간은 인간 존재로 보지 않았다. 스토아 학파에서는 인 간 생명을 호흡과 관련지어 생각하였기 때문에 태아가 출생하여 호흡을 하기 전까지는 어머니 신체의 일부로 보았다. 인간의 생명을 태아 시기부터 고찰하기 시작한 것은 아리스토텔레스 때부터이다. 그는 인간 생명의 시작을 수태 순간(moment conception)부터로 보았다. 그는 또한 어머니의 자궁 속에서 태아가 어느 정도 형태를 갖추는 시기에 영혼이 불어넣어진다고 믿었고 이 시기를 남자 아이의 경우는 수정 후 40일, 여자 아이의 경우는 90일 로 보았던 것이다. 아리스토텔레스의 이 같은 학설은 교 회 신학자들에게 많은 영향을 주었으며, 이때부터 거의 대부분의 학자들 특히 토마스 아퀴나스는 수정란이 일정 한 성장 단계에 이른 후에 이성적 영혼이 주입된다고 생 각하였다. 그는 그 이전의 배아(胚芽)는 식물적이고 동 물적인 성격의 생명만을 갖고 있다고 하였다. 영혼의 주 입 시기는 수태 후 대략 6주라고 믿었다. 이 학설은 오랫 동안 학자들의 공통적인 주장이었다. 그러나 최근에 와 서 학자들은 일반적으로 잉태 첫 순간부터 인간 영혼이 주입된다는 견해로 기울어지고 있다. 오늘날에는 영혼이 주입되기 전에 물질적인 성장이 있어야 한다는 사상이 많은 학자들에 의해서 재차 제시되고 있으며, 이는 인간 생명의 초기에 대한 유력한 설명으로 받아들여지고 있 다. 이 두 학설을 인준하거나 단죄하는 교회의 공식적인 발표는 없다. 그러나 양쪽 견해가 다 개연적이다. 우리는 인간 생명을 고귀한 선으로 다루고 있는 만큼 실천적인 질서에 있어서, 행위의 보다 안전한 과정을 따라야 하고, 성장의 단계가 어떻든 간에 존재의 모든 권리와 더불어 수정된 살아 있는 수정란을 인간으로서의 모든 권리를 가진 인격체로 다루어야 한다고 신학자들은 일반적으로 주장한다. 토마스와 그를 추종하는 학자들의 견해는 확 실히 증명된 것이 아니기 때문에 이와 같은 현명의 원칙 을 준수해야 할 것이다. 오늘날 이 문제는 의학적 발전을 통해 분명하게 밝혀 지고 있다. "수태 후 수정란은 나팔관에서 이동하는 상 태에 있다가 7~8일 간 또는 약 12일 간 자궁에 머무르 게 된다. 그 후에 수정란은 자궁 벽에 착상하게 되며 그 것은 수태 후 약 12일까지 완성된다. ··· 수정란은 착상 이 끝날 때까지 또는 끝난 후 2~3일까지도 세포 분열을 시작하여 세포 송이가 둘로 분할되어 일란성 쌍둥이가 될 가능성이 남아 있다는 새로운 발견도 나와 있다. 이렇 게 분리된 쌍둥이 세포 송이는 초기에 다시 재결합할 수 도 있으며 또는 두 개의 수정란이 하나의 인간으로 형성 되는 수도 있다는 것이 분명히 드러나고 있다. 그렇다면 수정란의 영혼 주입 또는 인간화는 배아의 개체화가 확 정된 다음, 즉 수태 후 14일이 되어야 한다고 결론지어 야 할 것이다" (C.H. Peschke). 이상의 관점에서 가톨릭의 많은 학자들은 수태 후 약 14일이 지나기 전의 경우에는 엄격한 의미상의 낙태로 생각하지 않고 있다. 따라서 수정란의 착상을 방해하는 방법으로 사용하는 자궁 내 장치나 이와 유사한 약물은 낙태의 수단이라고 규정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그러나 수정란은 잘 보호하면 인간으로 성장할 수 있는 살아 있 는 조직체이다. 이러한 이유에서 수정란을 착상하지 못 하도록 막는 인공 피임은 다른 피임 방법들과는 달리 더 중하게 생각해야 할 것이다. 신학자 로보(G. Lobo)는 강간을 당했을 경우, 수정란 은 수태 후 2주 동안은 아직 인격체가 아니라고 볼 수 있 으므로 성교 후에 먹는 경구 피임약의 사용은 착상을 막 기 위하여 허용될 수 있다고 생각하였다. [윤리성] 낙태가 여러 가지 종류의 문제점에 대한 해 결책으로 주장되는 경우도 있다. 낙태의 이유들을 정당 화하는 것으로 주장되는 상황들을 지정(indicaion)이라고 하는데, 이는 다음 네 가지로 구분된다. 우생학적 이유 : 기대되는 소산이 보다 큰 개연성과 더불어 심각한 결함이 감안될 경우 낙태를 요구한다. 결 함은 유전학적 부조(不調)나 후천적인 병, 가령 임신 기 간 동안 산모의 풍진(風疹)에 의해서 기인될 수 있다. 그 러나 결함 있는 태아라고 확실성을 갖고 예언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 몽고병(Mongolism) 같은 염색체의 결 함은 만일 부모 중 한 사람이 결함자이면 세 어린이 중 한 명에게서 발견된다. 그래서 이런 경우에 낙태는 결함 있는 태아보다는 건강한 태아를 우생학적 이유 때문에 낙태시킬 수 있는 위험이 크다. 그 밖에 몇몇 유전학적 부조의 경우에도 이런 사태는 가능하다. 미래에는 고유 한 치료를 통해서 위험을 극소화하는 것이 가능하게 될 것이다. 풍진과 같은 후천적 병에도 같은 말을 할 수 있 을 것이다. 윤리적 이유 : 이는 임신이 강간에 기인할 때이다. 이 경우 낙태는 정당한 것으로 간주한다. 강간에 의한 임신 은 산모의 뜻을 거스르는 것이며 산모에게 강요된 불법 적인 부담이다. 따라서 산모측에서 볼 때 어린이를 사랑 하는 데 큰 어려움이 있을 것이다. 더구나 어린이의 존재 는 산모를 큰 윤리적 긴장과 사회적 수치 속에 처하게 만 든다. 어떤 학자들은 친족 상간과 간음도 이 경우에 포함 시킨다. 사회적 이유 : 새로 태어나게 될 어린이가 가정이나 산모에게 사회적 부담 특히 경제적 부담을 너무 크게 줄 때가 이 경우에 속한다. 그러나 사회적 낙태를 위한 최종 적 기반은 그리 심각한 경제적 압박이 아니라도 성립되 고 있다. 비록 심각한 가난이 현실적으로 위험한 상황의 원인이 된다 하여도, 실제에 있어서 낙태는 가난한 사람 들보다는 경제적으로 보다 안정을 누리는 사람들 사이에 공통적으로 실행되고 있음이 입증되었다. 의학적 혹은 치료적 이유 : 임신 때문에 산모의 생명이 심각한 위험에 처하게 될 때 낙태의 이유가 된다. 비가톨 릭 의사들은 일반적으로 이와 같은 경우에 직접으로 주 선된 낙태도 정당하다는 데 동의한다. 정신병리학적 이 유라고 부를 수 있는 정신 건강상 이유 때문에 적용되는 지정은 전통적인 의미상 의학적 지정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 치료상 낙태의 수는 꾸준히 떨어지는 반면에 정신 병리학적 이유 때문에 낙태가 허용된 자들의 수는 증가 상태에 있다. 그러나 정신과 의사 자신들은 정신병리학 적 낙태의 필요성과 정당화에 대한 판단에 있어서 대립 된 입장을 보인다. 왜냐하면, 정신병리학적인 이유에 대 해서는 지나친 관대함을 지니면서 다른 낙태에 대해서는 배격하기 때문이다. 〔가톨릭의 윤리〕 가톨릭의 윤리는 우생학적 · 윤리적 및 사회적 이유에 의한 어떤 종류의 낙태도 절대적으로 배격하며, 이를 살인으로 간주한다. 그러나 치료적 낙태 의 문제는 보다 어려운 것이다. 가톨릭 윤리신학은 산모 의 생명이 심각한 위험에 처한 경우, 간접적인 낙태의 합 법성을 항상 인정해 왔다. 성서는 낙태와 여기에 대한 비난에 대해서 명백한 언 급을 하지 않고 있다. 그러나 살인죄를 거듭 단죄하고(출 애 20, 13 ; 마르 10, 19), 무죄한 피의 흘림(출애 23, 7 ; 신명 21, 9 ; 잠언 6, 16 ; 예레 22, 3)과 부모에 의한 자녀 의 살해와 무방비적인 존재자의 살해를 단죄한다(지혜 12, 3-7). 하느님은 생명의 창조자이고 인간은 그분의 모 상대로 창조되었다는 가르침에 의해서 생명의 신성성(神 聖性)을 강조한다. 인간은 생명의 청지기이지 주인이 아 니다. 형제적 사랑의 기본 계명은 모든 인간 존재들에게 연장되고 개개의 인간 생명에 대한 경의와 존중을 명한 다. 이와 같은 성서적 교의의 배경과 유대 사상의 영향을 받아 초기의 그리스도교는 낙태에 대한 판단을 공식화하 였다. 초세기부터 낙태는 교회에서 배격한 것 중의 하나 였다. 이와 같은 단죄는 그리스 · 로마 세계의 태도에 대 해 심각한 대립으로 발전하였다. 이들 세계에서 낙태와 영아 살해는 중대한 윤리적 반칙으로 고찰되지 않았다. 그러나 세기를 통해서 그리스도교는 낙태를 범죄로 계속 고찰하였다. 교회에서는 초세기에 이미 이 같은 범죄를 하려는 신자들에게 무거운 벌을 가하기도 하였다. 제2차 바티칸 공의회는 다시 한번 낙태에 반대하는 엄격한 태 도를 취하였다. "그러므로 생명은 그 수태되는 순간부터 성심껏 보호해야 한다. 낙태와 유아 살해는 가증할 죄악 이다" (사목 51항). 또한 현 교회법은 낙태를 주선하는 자 들에 대해서 파문을 부과한다(1398조) . 낙태의 잔학성에 대한 내적 이유는 살인죄와 무죄자의 살인 일반에 적용 되는 이유와 같은 것이다. 〔직접적인 치료상의 낙태 문제〕 교회의 가르침은, 인 간 생명은 모든 성장 과정에서와 같이 그 출발에서부터 보호받고 사랑받아야 한다고 항상 가르쳐 왔다. 초대 교 회는 이교 세계의 윤리관에 맞서 그들의 윤리와 그리스 도인 윤리 사이의 차이점을 강조하였다. 그 후 일반적으 로 몇 주가 지나기까지는 영혼이 주입되지 않는다고 주 장하던 중세기에는 죄에 대한 판단과 형벌의 가볍고 무 거움에 다소 차이가 있었다. 그러나 후에 태아의 시기에 관계 없이 인공 유산을 단죄하게 되면서 그 이전에 관대 했던 시기의 인공 유산까지도 단죄하게 되었다. 교회의 이 같은 태도는 역대 모든 교황들에 의해서 재확인되어 왔고 그 대표적인 교황들이 교황 비오 9세, 11세, 12세, 요한 23세, 바오로 6세 등이다. 특히 교황 바오로 6세는 제2차 바티칸 공의회에서 "생명은 잉태되는 순간부터 철 저히 보호되어야 한다. 인공 유산과 영아 살해는 큰 죄악 이다" 고 말하였고, 교회의 이 가르침은 "변치않으며 또 변할 수도 없다" 고 하였다. 교회에서는 낙태 전반을 보편적으로 배격하며, 산모의 생명을 구하기 위한 수단으로서의 치료적 낙태는 보다 격렬한 논쟁 주제로 다룬다. 교부들 중에서 테르툴리아 노(Tertullianus)가 이 문제를 언급하였는데, 그는 치료적 낙태를 "마음 아픈 필요성"으로서 인준하는 것처럼 보인 다. 비록 그가 낙태 전반을 살인으로 배격하지만, 치료적 낙태의 특별한 경우에 관해서 다음과 같이 기록하고 있 다. "때로는 마음 아픈 필요성에 의해서 아직 태아가 자 궁 내에 있어도 태아를 죽게 할 수 있는데, 이는 자궁 내 의 출산 위치가 잘못되어 출산을 방해하게 될 때이다. 만 일 태아가 스스로 죽지 않는다면 그의 어머니를 죽이게 된다" (De anima 25, 4). 누난(John Noonan)은 여기서 테르 툴리아노가 이 같은 일을 실제적 사실로서 가끔 일어날 수 있는 것으로 단순히 기록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여기 에 대해서 어떠한 윤리적 판단도 표현하지 않았기 때문 이다. 그러나 다른 학자들은 테르툴리아노가 일반적인 규율로부터 예외를 두었다고 한다. 일반적으로 중세기의 신학자들은 직접적인 낙태를 불 법이라고 생각하였고 다만 간접적인 치료상의 낙태만을 인정하였다. 15세기부터 17세기까지의 몇몇 신학자들은 아직 영혼이 주입되지 않은 태아의 직접적인 낙태는 산 모의 생명을 구하기 위해서 허용된다는 견해를 견지하였 다. 그런데 영혼 주입은 수태 후 대략 40일에 되는 것으 로 믿었던 만큼, 어려운 해산의 경우 이와 같은 교의는 별로 도움을 줄 수 없었다. 보통으로 치명적인 조건은 훨 씬 후에 나타나는데, 이들 학자들은 영혼 주입 후에는 간 접적인 낙태만이 합법적인 것으로 생각하였기 때문이다. 19세기에 들어오면서 치료적 낙태의 문제는 새로운 심 의를 겪게 되었다. 이 문제는 아마도 새로운 의학적 보조 와 기술의 발전과 맞물려 이루어지게 되었다. 몇몇 신학 자들은 두개 절개술(頭蓋切開術)과 직접적 낙태의 다른 형태들은 산모의 생명을 구하기 위해서 치료적인 이유 때문에 허용된다고 가르친다. 이들 학자들은 발레리니 (Ballerini, 아반치니(Avanzini) 아피첼라(Apicella), 린젠 만(Linsenmann), 렘쿨(Lehmkuhl) 등이다. 교회의 교도권은 이 문제에 대해서 처음으로 공식 논 평하였다. 직접 낙태와 특히 산모의 생명을 구하기 위한 두개 절개술의 허용 문제에 관한 몇 가지 답변에서(1884 ~1902 ; DS 3258, 3298, 3337) 성청은 그와 같은 수술의 합법성을 안심하고 가르칠 수 없다고 선언하였다. 이 같 은 반대되는 견해는 확실히 거짓이라고 선언하지는 않았 으나, 충분히 보증된 것이 아니라고 하였다. 치료적 낙태 에 대한 첫번째 발언과 교회의 절대적 불용(不容)은 교 황 비오 11세의 회칙 <정결한 혼인>(Casti connubii, 1930) 에서 볼 수 있다. 교황은 '무죄자의 직접적 살해를 면제 받기 위한 충분한 이유' 로서 '의학 및 치료적 이유' 를 온 전히 배격하였다. 이와 같은 입장을 교황 비오 12세와 바오로 6세가 그대로 채택하였다. 신앙 교리성의 최근의 선언도 이 배격을 다시 한번 재확인하였다(AAS 66[1974], 739). 교회의 교도권과 가톨릭 윤리신학자들에 의한 직 접적 치료적 낙태에 대한 논박은 어떤 종류의 직접적인 낙태도 논박한다는 것과 같은 원칙에 근거하고 있다. 즉 무죄자의 직접적인 살해는 항상 부도덕하고 어떤 상황 하에서도 금지된다. 한편 비가톨릭 신자들은 이와 같은 엄격한 태도에 대해서 일반적으로 동의하지 않으며 몇몇 경우에는 치료적 낙태를 정당한 것으로 고찰한다. 가톨 릭 신학자들 중에는 제2차 바티칸 공의회 후에 와서 이 문제를 재론하는 사람들이 등장하기도 하였다. 이전의 신학자들은 직접적인 치료적 낙태를 변호하기 위해서 네 가지 논쟁을 제시하였다. 첫째, 적어도 산모의 생명을 구하기 위해서 태아의 임박한 죽음을 어떻게든 가속시키는 것은 합법적이다. 둘째, 산모의 생명이 심각 한 위험에 있고 태아가 그의 생명을 희생할 준비가 되어 있고, 만일 이 같은 방법으로 산모가 구출될 수 있으면 정당하게 취할 수 있다. 셋째, 두 악(惡) 사이에 처하였 을 때, 덜 악한 것을 선택할 수 있고 때로는 선택해야 한 다. 이 경우에 있어서 덜 악한 것은 태아의 살해이다. 넷 째, 태아는 불법적인 침입자이다. 따라서 산모의 생명을 구하기 위해서 살해될 수 있다. 그런데 첫 세 논증에 대 해서 반대 의의가 있다. 반대 의의에 의하면, 태아의 낙 태가 무죄자의 직접적인 살해가 아니라는 것을 그들은 설명할 수 없었다. 이런 가정부터가 옳지 못한 것이다. 태아 사망의 직접적인 가속은 불법적이고 직접 살해이 다. 태아의 '희생적' 사망은 의사의 간섭에 의해서 오는 것이며, 그는 미출생아를 직접 살해하는 것이다. 누구든 '질료적 악' (質料的 惡)만이 되는 다른 악에 대항하여 즉 산모의 자연적 사망이나 산모와 태아의 동시적 자연 적 사망을 막는다는 이유로, 적은 악이라고 해서 부도덕 한 행위 즉 태아의 직접적 살해를 선택할 수는 없는 것이 다. 네번째 논증에서 치료적 낙태는 무죄자의 단순한 살 해가 아니고, 오직 질료적으로 불법 침입한 자의 살해라 고 설명하려고 노력한다. 그래서 이는 합법적이라고 하 지만 이는 이치에 맞지 않는다. 태아가 어떻게 불법 침입 자가 될 수 있는가? 질료적으로도 성립이 되지 않는다. 그는 그의 권리의 한계를 넘을 수 없고 부당한 방법에 의 해서 그의 어머니의 권리를 빼앗을 수 없다. 오히려 산모 를 질료적으로 태아의 불법적 침입자로 부를 수 있을 것 이다. 그녀의 병적인 조건이 그녀의 살아 있는 자궁으로 부터 태아가 떠나도록 하여 출산을 방해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상의 논증들은 주의를 끄는 몇 가지 진실된 점을 지적하였다. 태아 홀로의 죽음이 확실히 산모와 태 아의 동시 사망보다 우선이라는 공통적인 대한 자발적 판단이다.태아의 죽음이 인간적인 직접적 간섭에 의해 서 앞당겨진다 하여도 똑같은 결과를 낳는 것이기도 하 다. 이와 같은 이유 때문에 직접적인 치 료상 낙태의 절대적 불용(不容)에 대한 의구심과 주저가 가톨릭 윤리신학자들 사이에 나타났다. 합법적이고 간접적 치료상의 낙태와 불법적이고 직접적 치 료상의 낙태의 구별은 실재 요구에 타 당성 있게 대응하지 못하는 것처럼 보 인다. 큐란(C.E. Curan)은 "일반적으로 직접 및 간접 치료상의 낙태 이론은 태 아를 내포하는 충돌 상황의 모든 문제 들과 적절히 서로 맞물려 있게 된다" 고 한다. 만일 엄격한 주장을 적용한다면, 터무니없는 결과로 인도할 것이다. 그 리고 가톨릭 평신도들과 프로테스탄트 들이 이를 이해하지 못하는 태도라면 이는 단순히 선의(善意)의 부족만이 아 닌 것이다. 버나드 헤링(B. Häring)은 많은 출혈 하는 자궁의 종양(腫瘍)으로 인하여 고통받 경우에 대해서 보고하고 있다. 죽음에까지 출혈로부터 예방하기 위해서 의사는 자궁을 비울 그런데 직접 및 간적접으로 의욕된 악한 결과 의하면, 이 같은 과정은 부당한 것으로 생각 자궁 내로부터 태아를 제거하는 것은 직접적 된다. 이는 불법이다. 아직 어린이가 없는 여 이와 같은 방법으로 자궁이 구제되어야 한 과정을 정당화할 수 있는 이유가 되지 못 태아와 함께 병든 기관인 자궁 전체를 들가한 것이다. 이는 간접적인 낙태이기 때문 이것이 건전한 윤리인지 의심한다. 여기서 마찬가지로 어떤 이유에서 직접으로 의욕된 악 절대로 인정될 수 없느냐 하는 문제가 제기되 어야 한다. 한편 간접적으로 의욕된 악한 결과는 가끔 인정되는데,여기서 문제는 근본적으로 기초 윤리에 달 려 있다. 결정적인 점은 일정한 조건 하에서 간접적으로 의욕된 악한 결과의 정당화에 대한 논증이다. 일괄성을 고려한다면, 직접으로 의욕된 악한 결과의 몇몇 경우와 직접적인 치료적 낙태의 경우에도 마찬가지로 정당성을 견지해야 할 것이다. 그렇지 않고 간접적으로 의욕된 악 한 결과만을 인정할 때는, 성취될 수 있었던 많은 선들을 성취되지 않은 채 혹은 불가능한 것으로 남겨 놓게 된다. 만일 태아 홀로 제거되는 대신 자궁이 태아와 함께 제거 되거나 혹은 태아의 치료적 낙태를 통하여 적어도 산모 를 구할 수 있는 대신, 산모가 어린이와 함께 죽어야 한 다면 비합리적이고 윤리적으로 감당할 수 없는 것이다. 그런데 윤리적 악과 질료적 악 사이의 선택에 직면했 을 때, 물리적 악이 더 크더라도 후자를 선택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무죄자의 직접적 살해와 더불어 직접적인 낙 태에 의한 태아의 직접적 살해도 윤리적인 악이다. 그런 데 간접적으로 의욕된 낙태의 악한 결과에 대한 것은 합 법적인 것으로 생각된다. 이것이 바로 논쟁의 대상이다. 직접적인 치료적 낙태에도 어떤 합법성이 적용된다는 논 증은 이미 제시되었다. 따라서 그것이 건강과 생명에 대 한 물리적 손해의 견지에서 적은 악을 구성하는 한, 직접 적인 치료적 낙태도 간접적인 치료적 낙태와 같이 인정 되는 것으로 간주해야 한다. 이는 큰 악의 인정이지만, 하느님의 목표 실현에 반대되는 것은 아니다. 살인죄의 논쟁에서 하느님만이 인명(人命)의 주인이 고 인간은 다만 청지기라고 논거하였다. 따라서 인간은 보다 높은 선이 문제가 되어 그것의 보호가 하느님에 의 해서 보다 긴급히 의도되지 않는 이상, 다른 사람의 생명 을 처분하도록 허용되지 않는다. 그러나 인간의 통찰력 이 미치는 한도 내에서는 태아의 직접적인 낙태를 통한 자궁의 보존은 자궁과 어린이를 더불어 파괴하는 것보다 더 높은 선이고, 직접적인 낙태를 통한 어머니 생명의 보 존은 어머니와 어린이의 동시적 죽음보다 큰 선이 된다. 인간의 최고 선인 생명은 인간 지상에서의 최고의 권 리를 구성한다. 그럼에도 인간의 지상 생명은 전연 최고 의 선이 아니며, 따라서 최고의 권리도 아니다. 인간의 영원한 구원 외에, 최고의 선은 인류와 세계와 더불어 하 느님 계획의 실현이다. 이 계획은 그분의 창조의 전개도 포함한다. 이 같은 전망에서 볼 때, 태아의 앞당긴 사망 은 보다 적은 악이며 어머니와 어린이의 동시적 죽음보 다 적은 권리를 침범하는 것이다. 어머니는 세상과 더불 어 하느님 계획의 실현에 아직도 크게 공헌할 수 있기 때 문이다. 이는 특히 그녀가 몇 자녀의 어머니일 경우 명백 하다. 그러나 이를 다른 관점에서 제시할 수 있다. 한편 어머니를 살아 남을 수 있게 할 능력이 없는 태아는 동시 에 하느님의 창조 계획에도 공헌할 수 없다. 따라서 며칠 더 살 수 있는 그의 권리는 하느님 계획의 보다 높은 요 구에 양보해야 한다. 이는 필요하다면 살 수 없는 태아의 직접적인 제거에 의해서 어머니의 생명을 구할 것을 요 구한다. 데덱(J.Dedek)은 "물리적 악은 타당한 이유가 없이 되 었을 때에만 윤리적 악이 된다고 판단한다. 따라서 태아 의 목적 있는 파괴는 균형 있는 이유가 존재할 경우 윤리 적 악이 아니다. 누구든 긴급한 가치들을 깊이 생각해야 하며, 이들 가치들 중에 우선적인 것을 선택해야 한다" 고 한다. 그는 그와 같은 행위를 위한 유일하고 충분한 이유는 어머니의 신체적 생명을 구하는 것이 될 것이며, 그녀의 정신적 건강도 동등하게 구하는 것이 된다고 구 체화하였다. 이는 또한 큐란의 견해이기도 하다. 어머니 의 생명을 구하기 위해서 치료적 낙태가 허용된다고 생 각하는 최근의 다른 몇몇 가톨릭 저자들은 스프링거(R. Springer), 메이(W. May), 스팀플(J. Stimpfle) 등이다. 로 보는, 그의 판단에 있어서 그렇게 정확치는 않으나, 만일 어떤 사람들이 어머니의 생명을 구하기 위해서 의무의 주관적 갈등에서 낙태에 호소해야 한다 해도, 그렇지 않 고 어머니와 태아가 다 같이 죽게 되는 결과를 택한다 해 도, 그들은 비난받을 수 없다고 생각한다. ※ 참고문헌  문국진, 《법의 검시학》, 청림출판사, 1987, pp. 513~515/ 조성훈, <인공 유산>, 《의학 윤리》, 수문사, 1984/ C.E. Curran, A New Look at Christian Morality, Notre Dame, Ind., Fides Publishers, 1968, p. 240/ J.T. Noonan, The Morality ofAbortion, Harvard, 1977/C. Henry Peschke, Christian Ethics, vol. 2, Alcester and Dublin, 1978/ J. Gründel, Unterbrochene Schwangerschaft, Ein moraltheologisches Tabu?, in Theologie der Gegenwart 13, 1970/ Harmon L. Smith, Ethics and the New Medicine, New York, 1970/ George V. Lobo, Current Problems in Medical Ethics, Allahabad, St. Paul Publication, 1974/ 신앙 교리성, <인 공 유산 반대 선언문>, 1974/ 교황 바오로 6세, 회칙 <인간 생명>. 〔俞鳳俊〕