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경문 (1796~1846)

南景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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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인. 축일은 9월 20일. 회장. 세례명은 베드로. 서울 의 중인 천주교 집안에서 태어났으나 부친이 일찍 사망 함에 따라 신앙을 전해 받지 못하였다. 그러다가 20세 때 병이 들어 대세를 받은 뒤에 입교하여 열심히 수계 생 활을 하였으며, 이러한 열성으로 프랑스 선교사들이 입 국한 뒤 회장에 임명되어 전교 활동에 앞장서게 되었다. 1839년 기해박해(己亥迫害)가 일어나자 체포되었으나 외교인인 형제들의 노력으로 배교하고 석방된 뒤 그 동 안의 죄를 보속하기 위해 순교를 결심하고 다시 열심히 수계 생활을 하였다. 이후 김대건(金大建, 안드레아) 신 부가 입국하자 그를 도와 활동하던 중 1846년 윤 5월 (음) 김대건 신부와 함께 체포되었던 선주(船主) 김성룡 (金成龍)의 밀고로 남대문 밖에 있던 자신의 집에서 체 포되었다. 체포될 당시 그는 금위영(禁衛營) 군인 신분 이었으므로 남보다도 혹독한 형벌과 고문을 받았으나, 이를 모두 이겨내고 신앙을 증거한 뒤 9월 20일(음 8월 1 일), 한이형(韓履亨, 라우렌시오) 임군집(林君執, 요셉) 등과 함께 포청에서 장형(杖刑)을 받고 순교하였다. 1925년 7월 5일 교황 비오 11세에 의해 복자위에 올랐 고, 1984년 5월 6일 요한 바오로 2세에 의해 시성되었 다. (→ 병오박해) ※ 참고문헌  《日省錄》/《右補盜聽謄錄)《달레 교회사》 下. 〔편찬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