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 독일의 가톨릭 문학
독일 문화 내지 독일 문학의 전통은 세 가지 요소로 이루어져 있다. 첫째는 그리스 · 로마 고대 문화의 요소, 둘째는 그리스도교적 요소, 그리고 셋째는 게르만적 요소이다. 그중 가장 크게 영향을 끼친 것은 그리스도교적 요소이다. 특히 마르틴 루터의 종교개혁과 이에 대립해서 예수회 운동이 가장 활발하게 일어났던 독일에서는 그리스도교적 요소가 문화는 물론 문학에서도 가장 중요시되고 있다.
그리스도교 문학이 등장하기 이전의 초창기 독일 문학에서는 게르만적 요소가 지배적이었다. 대부분의 그 주제는 민족 이동 시기의 전쟁과 어려운 생활을 극복해 나가는 게르만 모습이며, 내용상으로는 신(神)이나 영웅에 대한 찬미, 주문(呪文), 결혼 축하, 그리고 일을 하면서 부르는 노래 등이다. 동(東)게르만의 주교 불필라(Wulfla, 311~383)가 성서의 복음서를 번역한 《은서 문서》(Codex Argenteus)는 독일 그리스도교 문학의 효시로 간주되며 고대 게르만어 연구의 중요한 자료가 된다. 북게르만어로 된 설화들도 많은데, 게르만의 신화 및 영웅 전설을 노래로 읊은 《에다》(Eda)가)가 대표적이다. 이외에도 메르제부르크 수도원에 보존된 《메르제부르크의 주문》(Merseburger Zauberspriche)과 게르만 민족 이동 시대를 읊은 최고의 영웅시 <힐데브란트의 노래>(Hildebrandslied)가 있다. 이 영웅시는 당시 유행하던 많은 영웅시들 중 유일하게 남아 있는 것으로서 7세기경 풀다(Fulda) 수도원의 수사가 글씨 연습을 위해 기도서의 첫 장과 마지막 장의 안쪽에 적어 놓았던 것이다. 비극적 인간 운명을 그린 <힐데브란트의 노래>는 힘찬 음률의 표현으로 통해 고대 게르만인의 생활을 자세하게 보여 주고 있다. 9세기에 들어서면서 독일의 국력은 점차 강대해졌다. 카롤링거 왕조의 칼(Karl) 대제는 현재의 독일, 프랑스, 이탈리아를 포함하는 넓은 지역을 통일하고 아헨을 중심으로 문학과 학술의 전성기를 이룩했다. 그러나 칼 대제가 죽고 그의 아들 루드비히가 즉위하면서 비(非) 그리스교적인 전설이나 영웅 문학은 배척되었고, 800년에서 1180년까지 독일 문학은 성직자들이 이끌어 나가기 시작했다. 이 시기의 대표적인 작품으로는 그리스도교의 가르침을 전파한 6천 행의 서사시 《구세주》(Heiland) , 1만 5천 행의 종교 서사시 《복음서》, 고고지독어(古高地獨語)로 쓰여진 《벳소브룬의 기도서》(Wessobrunnergebet), 세계의 종말을 통해 그리스도교 사상을 고취한 <무스필리>(Muspilli), 그리고 로스빗타 푼 간디스하임의 6권으로 된 《성도극》(聖徒劇) 등을 들 수 있다.
이렇게 해서 독일의 문화 전통은 라틴 문화의 지배를 크게 받은 듯한 인상을 준다. 그러나 독일 문화는 곧 정신적으로 고양된 그리스도 문화와 손을 맞잡고 화려한 꽃을 피우게 된다. 이 시기가 곧 수사 문학(修士文學) 뒤에 오는 '기사 문학 시대' 로서, 대개 독일 문학의 개화기로 본다. 이 개화기 문학은 게르만 문화, 그리스도교 문화, 고대 문화, 그리고 십자군 원정이라는 새로운 사건 등 네 가지가 서로 조화를 이루어 결합된 것이다. 이 시기의 대표적인 종교 문학 작품으로는 하르트만 폰 아우에(Hartmann von Aue)의 《그레고리우스》(Gregorius)와 볼프람 폰 에센바흐(Wolfram von Eschenbach)의 《파르치발》(Parzival)을 들 수가 있다. 근친 상간을 주제로 한 《그레고리우스》의 주인공 그레고리오는 기사(騎士)가 되어 조국에 돌아와 자기의 어머니인 줄 모르고 여왕과 결혼하는데, 후에 그 엄청난 비극을 깨닫고 17년 간의 고행 끝에 결국 교황의 자리에까지 오른다는 이야기이다. 이 작품은 1951년 현대 독일 소설 문학의 최고봉인 토마스만(Thomas Mann)에 의해 《선택된 인간》(Erwählte)이란 소설로 다시 한 번 작품화되었다.
1190년부터 1220년까지 기사 문학의 황금기가 지난 후 독일 문학은 '신비주의' 시대를 거쳐 종교개혁 시대 에 이르렀다. 이 시기에 독일어는 마르틴 루터의 성서 번역을 통해 순화되어 표준어 시대로 접어들였으며, 서민과 민중 계열의 많은 사람들이 독일 문학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또한 실추된 가톨릭의 명예를 회복시키고자 예수회 문학이 등장했는데 여기서부터 그리스도교 문학은 가톨릭 문학으로 자리바꿈하였다. 특히 예수회 학교에서 공연되었던 '예수희극' (Jesuitentheater)은 바로크 시대를 대표하는 극 형태로서 독일 희곡과 연극 미학에 큰 영향을 끼쳤다. 대표적인 희곡으로는 뮌헨 예수회 학교 수사학 교수 야곱 비더만(Jacob Bidermann)의 《체노독수스》(Cenodoxus, 1609)를 꼽을 수 있다. 이 작품은 천상의 위대함과 지상의 허망함을 바로크적 명암의 대비 속 에서 뚜렷하게 부각시키고 있다. 여기서는 현세의 모든 영광이 오직 신을 위한 봉사를 통해서만 그 의미를 가지 며, 현세는 공허와 허무로 나타난다.
계몽주의 시대에 들어와서 인간은 인성과 지각, 체험을 통해 세계를 이해하기 시작했다. 인간은 교회의 위력에서 벗어나 각자 스스로의 길을 모색하였다. 이런 상황에서도 클로프슈토크(Friedrich Gottlieb Klopstock)는 그의 대표적인 종교 서사인 《구세주)(Messias)에서 그리스도의 탄생에서 수난, 부활, 승천에 이르기까지의 생애를 힘차고 정열적인 어조로 노래하였다.
'질풍 노도' 를 거쳐 고전주의 시대에는 그리스의 영향을 받아 괴테의 범신론적 사상이 범람하였다. 그리고 낭만주의 시대에 들어와서는 감정을 중요시하고 머나먼 곳을 동경하게 되었다. 낭만주의자들은 에덴 동산은 물론 수사와 기사가 활동했던 중세를 그리워했고, 그 곳을 이 상향으로 생각했다. 그런 의미에서 이들은 가톨릭적인 인물들이었다고 말할 수 있다. 독일 낭만주의 문학의 대표자인 노발리스(Novalis)는 《밤의 찬가》(Hymnen an die Nacht, 1800)에서 애인 소피에 대한 사랑의 감정을 가톨릭 신앙과 결합하여 심령적이고 피안적인 신비로운 낭만 세계를 창조해냈다.
1830년을 전환점으로 낭만주의 문학은 점차 사실적인 경향을 띠게 되었다. 그 원인으로는 과학 기술의 발전, 산업의 근대화, 정치 · 사회 구조의 변화, 인구의 증가, 교통 수단의 발달, 그리고 가내 수공업을 대신한 공장의 등장 등을 들 수 있다. 풍요로운 물질 문명은 도덕적이거나 이상향적인 즐거움이 아닌 현세적인 생의 쾌락만을 가져다 주었고, 더 이상 인간은 낭만주의의 환상 속에서 살 수 없게 되었다. 종교는 이제 아무런 권한도 가지지 못한 채 인간 세계에서 쫓겨나게 되었고, 사람들은 모든 생의 비밀을 과학적으로 해결하고자 했다. 이런 현상은 자연주의 시대에 이르러 더욱 심화되어, 문학에 있어서도 종교의 문제는 완전히 도외시되었다. 문학은 생과 사회의 극단적으로 어두운 면을 주로 다루었고 무산 계급을 동정하는 사회주의적 경향으로 치우쳐 자본주의에 대한 투쟁을 즐겨 소재로 채택했다.
20세기에 들어와 독일 민족은 고흐(Vincent van Gogh)에서 시작된 표현주의를 수용하다가 제1차 세계대전을 경험하게 되었다. 제1차 세계대전은 그 이전의 문화 전통을 거의 파멸시켜 버렸고, 사람들은 허무와 폐허 속에서 좌절하였다. 그리고 곧 이어 나치스의 제3제국 시대를 거쳐 제2차 세계대전이 발발하였다. 이 대전에서 핵무기의 위력을 체험한 인류는 공포와 불안 속에서 방향 감각을 상실하기 시작했다. 하이데거, 카뮈, 사르트르는 실존주의 철학을 통해 인류가 나아갈 방향을 제시하려고 했으나, 이와 역비례로 불안과 초조는 회의와 불신을 거쳐 절망적인 상황에까지 기하급수적으로 가속화되었다. 이러한 무신론적 실존주의 사상의 소용돌이 속에서 유신론적 실존주의의 물결이 일기 시작했고, 이를 바탕으로 한 문학 사상이 재평가를 받게 되었다. 이것이 바로 신이 창조한 영원한 질서의 실재성을 믿는 가운데 세계 구조의 전체성을 인식하여 끊임없이 영원한 질서를 명시(明示, die Offenbarung)하고자 했던 가톨릭 문학이다. 그 대표적 작가들로는 프로테스탄트에서 가톨릭으로 개종한 베르겐그륀(Werner Bergengruen), 르 포르(Gertrud Le Fort), 안드레스(Stefan Andres) 등이 있다.
베르겐그륀은 형이상학적 보편성, 즉 가톨릭적인 신앙과 신념에 의한 창작으로 널리 존경과 사랑을 받는 현대 독일 문학의 거봉이다. 그에게는 신앙에 대한 정열이 모든 사상의 원동력이 되었다. 그는 시공적인 면에서 넓은 안목을 지닌 작가로서 해박한 역사 지식을 바탕으로 고대에서 현대에 이르는 시대상을 면밀하게 재현시켰다. 또한 장편과 단편 및 시를 통해 그의 고향 리가(Riga)를 중심으로 유럽 각 지역은 물론 동양에까지 작품의 무대를 광범위하게 확대해 나가면서 인간과 신의 근원적인 문제를 다루었다. 그는 무수히 많은 지역을 여행함으로써 창작의 생명력을 얻었고, 여행에서 접한 모든 작품의 대상들을 신의 심장과 손에 의해 이루어진 영원한 질서로 보았다. 즉 절망과 위기의 시대 속에서 신앙을 간직하면서도 관념에 빠지지 않고 구체적인 명시를 통해 인간의 위치와 영원한 질서를 끊임없이 알린 것이다. 영원한 질서의 명시를 자신의 문학적 사명으로 여긴 베르겐그륀은 그의 작품에 등장하는 모든 인물들이 영원한 질서를 받아들이도록 그 질서를 명시해 줌과 동시에 그들로 하여금 복잡한 시험과 유혹 속에서 투쟁케 하였다. 그리고 이를 통해 인간은 시험과 유혹 속에 던져진 자연의 티끌이지만 그리스도의 정신을 가지고 끊임없이 투쟁함으로써 신의 영원한 은총을 받을 수 있음을 보이고자 했다. 그의 대표작으로는 《대폭군과 심판》Der Großtyrann und das Gericht, 1935), 《천국에서도지상에서도》(Am Himmel wie auf Erden, 1940), 《스페인의 장미 나무》(Der spanische Rosenstock, 1940) 등이 있다.
베르겐그륀 이외에 유명한 현대 가톨릭 작가로 르 포르 여사를 들 수 있다. 그녀 역시 프로테스탄트에서 가톨릭으로 개종하였으며, 신앙의 정열을 모든 창작의 원동력으로 살았다. 대표작으로 《성 베로니카의 수건》(Das Tuch von der Veronika, 1946)과 성담(聖譚) 소설인 《유대인 거리의 교황》(Der Papst aus demGhetto, 1930)이 있다. 목사가 되기 위해 신학교에 들어갔다가 가톨릭으로 개종하고 작가가 된 안드레스도 손꼽히는 가톨릭 작가이다. 대표작으로 스페인 내전 때에 신앙과 양심 문제를 다룬 《우리는 유토피아》(Wir sind Wtopia, 1942)와 노아 시대를 소재로 한 《대홍수》(Die Sindflut, 1959)가 있다.
이들 세 명의 가톨릭 작가 이외에 전후(戰後)에 본격적으로 창작 활동을 한 가톨릭 작가로 뵐(Heinrich Böll)을 들 수 있다. 독일 최초의 노벨 문학상 수상 작가인 그는 신앙과 휴머니티를 작품의 주제로 삼았다. 그는 전쟁 고발 작가로서, 사회주의 가톨릭 작가로서, 그리고 해방 신학 작가로서 현장에 직접 뛰어들었으며, 약자와 민중을 위한 창작을 계속했다. 대표작으로 죽음의 전쟁터로 향하는 한 병사의 이야기를 다룬 《정각 열차》(Der Zug war Piinktlich, 1949), 파괴된 영혼의 재건을 부르짖은 《아담 어디에 있었는가?》(Adam WO warst du, 1951), 수도원의 복구와 신앙 문제를 결부시켜 20세기의 성서라고 찬사받은 《아흡 시 반의 당구》(Biliard um halb zehn, 1959), 물질 만능주의로 몰락해 가는 서구사회의 성(性) 윤리를 해부한 《여인과 군상》 (Gruppenbild mit Dame, 1971), 해방 신학적 성격을 띤 《카타리나 블룸의 잃어버린 명예》(Die verlorene Ehre der Katharina Blum, 1974) 등이 있다.
※ 참고문헌 Augst Schuchert, Kirchengeschichte, von der Anfangen der Kirche bis zur Gegenwart, Band I, · Ⅱ, Wien, 1958./ Fritz Martini, Deutsche Literaturgeschichte, Stuttgart, 1968/ Gero vor Wilpert, Lexikon der Weltliteratur, Band I, Autoren U., Band II, Werk, Stuttgart, 1975/ Helmut De Boor · Richard Newald, Geschichte der Deutschen Literatur, Miinchen, 1970/ Max Schele, Philosophische Weltanschauung , Bonn, 1929/ Wilhelm Grenzmann, Dichtung und Glaube, Probleme und Gestalten der Deutschen Gegenwartsliteratur, Bonn : 5. neubearbeitete Auflage, 1964/ Claus Träger(Hrsg.), Wörterbuch der Literaturwissenschaft, Leipzig, 1986. 〔金光堯〕
Ⅱ . 스페인의 가톨릭 문학
스페인은 전통적으로 가톨릭을 바탕으로 모든 문화가 발전되어 왔다. 예수의 12사도 중 한 사람인 야고보가 복음을 전하였고, 813년경 그의 무덤이 북부 도시 산띠아고 데 콤포스뗄라(Santiago de Compostela)에서 발견됨으로써 스페인 국민들의 종교적 믿음은 더욱 강해졌다. 313년 콘스탄틴 대제에 의해 그리스도교가 공인되자 이베리아 반도에서는 수많은 그리스도교 문학 작품이 출간되었다. 4세기 스페인 사제였던 가요 베티오 후벤꼬(Cayo Vettio Juvenco)는 《복음사》(Historia Evangélica)를 썼고, 교황 다마소 1세(St. Damasus I)는 여러 편의 찬미가와 《예 루살렘 애가》를 썼다. 아우렐리오 프루덴시오(Aurelio Prudencio)도 같은 시기의 유명한 그리스도교 시인이다. 로마가 게르만족에 의해 멸망하자 이베리아 반도에는 서고트 왕국이 들어서게 되었는데 587년 그들은 아리우스설을 포기하고 가톨릭교를 받아들임으로써 스페인 문화에 동화되었다. 당시 스페인의 성 이시도로(San Isidoro)는 그리스도교 및 철학적인 저서들을 출간하여 고대와 중세를 잇는 가교 역할을 하였다.
711년 서고트 왕국이 아랍인들에 의해 무너지자 이베리아 반도는 이슬람교 문화의 영향을 받게 되었다. 그러나 스페인은 가톨릭 정신으로 무장하여 싸웠고 모든 서사 문학 속에 종교심이 흘러 넘쳤다. 1140년경 스페인어로 쓰여진 최초의 문학 작품 《엘 시드의 노래》(EI Cantar de Mio Cid)가 익명으로 발표되었다. 국토 회복 전쟁 시기의 국민적 영웅이었던 엘 시드 기사의 무훈을 노래한 이 작품에는 첫 구절부터 끝까지 심오한 가톨릭 정신이 배어 있다. 13세기 국토 회복 운동이 스페인에 유리하게 돌아가자 신앙심을 고조시키려는 의도에서 신부들을 중심으로 '승려 문학' 이 등장하였다. 주로 성모 마리아의 기적과 성인들의 생애를 다루었는데 대표 작가로 곤살로 데 베르세오(Gonzalo de Berceo) 신부를 들 수 있다. 그의 대표작 《성모 마리아의 기적》은 대중적이고 깔끔한 문체로 감동을 불러일으킨다.
14세기에 접어들자 세속적인 남녀간의 사랑을 주제로 한 문학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최고의 걸작 《가연지서》(Librode Buen Amor)는 이따(Hita) 마을의 수석 사제인 후안 루이스(Juan Ruiz)에 의해 쓰여졌다. 르네상스의 기운이 엿보이는 14세기 스페인 사회의 세속적인 모습을 15개의 사랑 이야기로 그리고 있는데 신부 작가의 종교적 의도와 인간의 관능적인 사랑 추구라는 두 세계가 교차되고 있다. 이로써 '현세는 눈물의 계곡이다' 라는 중세 그리스도교적 관념이 사라지고 '인생을 즐기자' (Carpe diem)라는 쾌락주의가 유행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내세보다는 현실의 쾌락에 집착하던 인간들에게 가장 두려운 것이 죽음임을 인식하게 되었고 이를 소재로 한 풍자시들이 많이 발표되었다. 그리스도교 정신에 의해 죽음을 극복할 수 있는 방법은, 생전에 미덕을 많이 쌓는 것이라는 호르헤 만리케(Jorge Manrique)의 《아버지의 죽음에 바치는 애가》는 걸작 중의 걸작이다.
15세기에는 종교극이 유행하였는데 수도원 등에서 공연되었던 고메스 만리께(Gómez Manrique)의 《우리 주님 예수의 탄생극》(Representación del Nacimiento de Nuestro Señor)은 성찬 신비극(Autos Sacramentales)의 선례가 되었다. 종교극의 쇠퇴와 함께 세속극이 서서히 유행하였는데 15세기 최고 걸작으로 페르난도 데 로하스의 《라 셀레스띠나》(La Celestina, 1499)를 들 수 있다. 두 남녀의 세속적인 사랑은 신의 처벌로써 결국 죽음으로 끝나지만사랑의 열정은 인간사의 필요악임을 보여준 이 작품은 중세와 르네상스의 양 요소를 지니고 있으며 당시의 사회상과 종교심을 잘 보여준다. 1492년의 이사벨 여왕과 르난도 국왕(이른바 가톨릭 국왕 부처라 부른다)은 그라나다에서 이슬람교도들에게 승리하면서 800년 만에 완전한 국토 회복을 이룩하였다. 8세기 동안 이슬람 세력에 대항하며 견딜 수 있었던 것은 가톨릭 종교와 믿음의 힘이 컸다. 유럽에서는 최초로 스페인에서 시스네로스 추기경의 후원 아래 《다국어 성서》(La Políglota, 1517~1520)본이 발간되었다.
16세기에는 르네상스의 열기가 근대 정신의 숨결을 불어넣으면서 문학의 황금 시기를 이룩하였다. 합스부르크 왕조의 첫 국왕이면서 독일 황제를 겸했던 카를로스 1세는 아메리카 신대륙을 정복하였고, 프로테스탄트의 종교 개혁에 대항하여 유럽에서 무수한 전쟁을 치르었으며, 국내적으로는 종교 재판을 통해 프로테스탄트에 강력히 대응하였다. 이 시기의 신비주의 문학 작품으로는 프란시스코 데 오수나 신부의 《정신의 자모표》(Abecedario Espiritual, 1527), 라레도 신부의 《시온 산으로의 등정》(Subida del monte Sion, 1535), 오로스코 신부의 《신을 섬기는 법》(Arte para servir a Dios, 1521), 후안 데 아빌라 신부의 《모든 사람을 위한 정신적 서간집》(Epistolario espiritual para todos los estados, 1578) 등이 있다.
16세기 후반은 신비주의 작가들이 왕성한 활동을 보여주었으며 반종교 개혁(Contrarreforma) 운동의 절정기였다. 스페인 가톨릭 신앙의 발로에서 시작된 신비주의 문학은 신과의 합일이라는 내적 종교 체험을 문학화하였다. 신비주의 문학을 대표하는 작가로 가르멜회의 예수의 성 데레사(Santa Teresa de Jesús, 1515~1582)와 십자가의 성 요한(San Juan de la Cruz, 1542~1591)을 들 수 있다. 성녀 데레사는 《자서전》(Libro de Su vida), 《보고서》, 《창립서》, 《완성의 길》, 《신의 사랑의 의미》, 《내면의 성》 등을 집필하였고, 신비주의 최고의 시인인 십자가의 성 요한은 《어두운 밤》, 《영혼의 노래》, 《타오르는 사랑의 불꽃》 등을 남겼다. 그외에 도미니꼬회의 루이스 데 그라나다(1504~1598)는 《기도 명상서》(Libro de la Oraci6n y la Meditación, 1554), 《교리 문답서》(Guía de Pecadores, 1556), 《믿음의 상징》(Intrducción del Simbolo de la fe, 1583)을, 아우구스티노회의 말론 데 차이데(Malon de Chaide) 신부는 《막달레나의 개종서》(1598)를, 프란치스코회의 후안 데 로스 앙헬레스는 《신과 사랑의 승리》(Triunfos del Amor de Dios, 1590), 《신과 영혼 사이의 정신과 사랑의 투쟁》(Lucha Espiritual y Amorosa entre Dios y el Alma, 1600), 《하느님의 은밀하고 정신적인 왕국의 정복에 대한 대화》(Dialogos de la Conquista del Espiritual y Secreto Reino de Dios, 1595)를, 예수회의 설립자 성 이냐시오 로욜라(San Ignacio de Loyola)는 《영성 수련》(Exercitía Spiritualia, 1548)을, 예수회의 리바데네이라(Ribadeneyra) 신부는 《성 이냐시오의 생애》(Vida de San Ignacio, 1583)와 《영국 종교 분열의 역사》(Historia sobre el Cisma de Inglaterra, 1588)를 썼다. 16세기는 스페인 종교 문학의 절정기였다.
17세기 스페인은 정치적 패권 상실과 함께 쇠퇴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 현세적 삶에 대한 찬양은 곧 절망으로 바뀌었다. 또한 반종교개혁의 사회 분위기는 가톨릭에 대한 집착을 강하게 하였고 연극 분야에서는 《성찬신비극》(Autos Sacramentales)이 절정에 이르렀다. 이 같은 종교극의 대표적 작가로는 로뻬 데 베가와 칼데론 데 라바르카를 들 수 있다. 메르세데스회의 가브리엘 테예스 수사는 티르소 데 몰리나(Tirso de Molina)라는 필명으로 스페인 문학에 있어서 불멸의 인물 돈 후안(Don Juan)을 창조하였다. 《세비야의 농락자와 석상의 초대객》의 주인공 돈 후안은 그가 저지른 부도덕한 행위에 대하여 모든 육체적인 행위를 악으로 보는 극도의 금욕주의가 17세기 반종교개혁 시대에 팽배해 있음을 보여준다. 돈 후안이 고해도 못한 채 지옥의 불구덩이로 떨어지는 마지막 장면은 17세기 가톨릭 문학의 절정이라 할 수 있다. 티르소 데 몰리나 수사는 16세기 말부터 시작된 자유 의지론(libre albedrío)과 숙명론(predestinación)에 관한 예수회와 도미니코회의 격렬한 신학 논쟁(La guerra intelectual)을 주제로 종교극 《불신에 의해 벌받은 자》(EI condenado por desconfiado)를 썼다. 또 다른 걸작으로 칼데론 데 라 바르카의 《인생은 일장춘몽》(La vida es sueño)이 있는데 신학적 테마 속에 인간 존재에 대한 철학적인 문제까지 다루었다. 스페인 문학의 최고 걸작 《동키호테》(1605~1615)가 출간된 것도 바로 이 시기였다. 세르반테스가 가톨릭에 대한 심오한 믿음을 가졌기에 《동키호테》에는 그리스도교 정신이 근대 사상과 잘 조화를 이루고 있다.
17세기 최고의 산문 작가인 예수회의 발타사르 그라시안(Baltasar Gracián) 신부는 스페인어로 쓰여진 최고의 우의 소설 《비평꾼》(EI Criticón, 1657)에서 이성과 감성의 상징을 통해 인간이 지니고 있는 두 가지 양면성을 종교적으로 훌륭하게 그렸다. 18세기 스페인에서는 합스부르크 왕조가 끝나고, 프랑스의 부르봉 왕조가 열리면서 계몽주의가 유입되었다. 프랑스 문학의 영향 아래 놓이게 된 스페인 문학은 전통을 수호하려는 강한 주체 의식을 드러냈다. 베네딕도회의 베니토 헤로니모 페이호(Benito Jerinimo Feijoo) 신부는 계몽주의의 개혁 정신과 가톨릭 교리 사이에서 중재자 역할을 하면서 《일반 비평 서설》(EI Teatro Critico Universal) 8권을 집대성하였다. 18세기에는 산문, 연극, 시 분야에서도 전형적인 계몽주의 문화의 흐름이 이어졌다. 계몽주의 물결과 함께 1767년 예수회의 추방이 이루어졌고 《성찬 신비극》의 공연도 금지되었다.
19세기는 나폴레옹의 침공으로 주권을 잃은 스페인 역사에 최대의 격동기였다. 1478년 이후 계속되어 오던 종교 재판이 1834년 완전히 철폐되었으나 전통적인 가톨릭의 교권주의와 자유 사상가들 사이의 격렬한 대립은 계속되었다. 카탈루냐 출신의 하이메 발메스(Jaime Balmes) 신부는 종교와 자유주의 사상의 조화를 추구하면서 《유럽 문명과의 관계에 있어서 가톨릭과 프로테스탄트의 비교》를 썼다. 19세기 후반 사실주의 문학이 지속되는 동안 1870년경 에밀 졸라의 영향으로 자연주의가 유입되었다. 그러나 과학적인 분석 방법을 문학 작품에 도입한 자연주의는 스페인의 전통적인 그리스도교 정신과 상치되면서 스페인에 뿌리를 내리지 못하였다. 그러나 유럽 문화의 유입이 가속화되며서 세속적인 가톨릭 신자(laico)들이 급증하였다.
20세기에 접어들자 스페인에서는 '98세대' 라는 문학 운동이 활발하게 전개되었는데 1898년 미서전쟁 패배의 충격으로 생겨난 '98세대' 의 젊은 작가들은 무너져가는 조국의 영광을 되찾고자 각 예술 분야에서 조국이 나아갈 방향과 새로운 민족 혼을 부르짖으며 스페인의 근대화를 추구하였다. '98세대' 의 대표 작가 미겔 데 우나무 노는 신의 존재에 깊은 회의를 보였는데 수필로서 <생의 비극적 느낌>(1913)과 <그리스도교의 고뇌>(1925)가 있고 소설로 《순교자 성 마누엘》(1933)이 있다. 이후 스페인 문학은 '27세대' 의 출현과 함께 전성기를 맞았다. 그들은 유럽의 신사상의 영향을 받았지만 전통적인 가톨릭교에 대한 믿음을 지니고 전통과 개혁을 문학에서도 추구하였다. 가르시아 로르카(Garcia Lorca), 알베르티(AIbérti), 비센테 알레이산드레(Vicente Aleixandre) 등을 통하여 20세기 스페인 문학은 오랫만에 활기를 되찾으며 황금기를 만깍하였지만 1936년 스페인 내란으로 비극적 결과를 체험하였다. 1939년, 3년 간의 내란이 끝나면서 스페인 문학에도 세대 교체가 이루어졌다. 전후 스페인 문학은 사상적 진공 상태에서 종교적 주제가 증가하였다. 다마소 알론소는 《분노의 자식들》(1944)에서 생의 비극적인 면을 묘사하면서 하느님의 구원을 갈구하는 전후 최초의 시작품을 썼다. 20세기 대표적인 작가로는 1989년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가밀로 호세 셀라(Camilo José Cela)를 들수 있다. 카뮈의 《이방인》에 대비되는 그의 대표작 《파스꾸알 두아르테의 가족》(1942)은 내란으로 상처받은 스페인 국민의 절망감과 고통이 너무나도 적나라하게 그려져 있다. 개방적인 가톨릭 이념을 보여주는 중견 작가 미겔 델리베스(Miguel Delibes)는 소설 《시프레스 나무 그늘은 길어지고》(La sombra del ciprés es alargada)에서 이기주의와 불의를 고발하였다. 그리고 호세 마리아 히로네야(José Maria Gironella)는 《시프레스 나무들은 신을 믿는다》를 발표하여 스페인 가톨릭 문학의 전통을 이었다.
이밖에도 현대의 가톨릭 문학 작가로 헤수스 페르난데스 산토스(Jesús Fernández Santos), 후안 베넷(Juan Benet), 후안 마르세(Juan Marsé), 토렌테 바예스테르(Torrente Ballester), 후안 고이티솔로(Juan Goytisolo) 등을 손꼽을 수 있다.
※ 참고문헌 박철, 《서반아 문학사》, 서울, 송산출판사, 1992/José García López, Historia de la literatura española, Barcelona, Vicens, 1984/ José Luis Alborg, Historia de la literatura española, Tomo I-IV, Madrid, Gredos, 1980/ José J. Llopis Miquel Ferrer, Literaturas castel-Lana, catalana, gallega y vascuence, Madrid, Daimon, 1984/ Fernando Lázaro · Vicente Tusón, Literatura española, Anaya, Madrid, 1982/ Teodoro Villarreal · Gaspar Borregán, Literatura española, ediciones SM, Madrid, 1986/ Guillermo Fraile, Historia de la filosofía española, BAC, Madrid, 1972. [朴 哲]
Ⅲ. 영미의 가톨릭 문학
7세기 이후 약 8세기 동안 영국에서는 깊이 있는 '그리스도교 문학' 작품이 풍성하게 발표되었다. 그 중 대표적인 것은 8세기 초에 저술된 것으로 생각되는 작자 미상의 <십자가의 꿈>(The Dream of the Rood), 14세기 인물로 단테에 비교되기도 하는 가톨릭 시인 월리엄 랑글랜드(William Langland)의 작품으로 추정되는 <농부 피어스의 꿈>(The Vision of Piers the Plowman), 덕과 악의 문제를 주제로 교훈적인 시를 발표한 죤 가우어(Sir John Gower, 1330?~1408)의 시 등이 대표적이다. 그러나 이 시기의 작품들은 영어 해독(解讀)의 어려움이 많아 역사적인 의의에 머무르는 경우가 많았다. 오히려 쉽게 이해할 수 있는 작품들은 16~17세기 이후에 발표된다.
〔16~18세기〕 16세기 중엽, 영국이 로마 교황청과 관계를 단절하고 '영국 국교 (성공회)를 설립한 것은 헨리 8세의 이혼 문제 때문이었다. 하지만, 그 후 영국에서 발표된 많은 종교적인 문학 작품은 교황과 교계 제도의 문제를 제외하면, 교리 면에서는 천주교와 차이가 없었다. 1935년에 시성된 토마스 모어(St. Thomas More, 1478~1535)는 《유토피아》(Utopia, 1516)에서 노동과 나눔과 사랑이 지배하는 원시 공산(原始共産)의 이상향을 그렸는데 초대 신자들의 생활을 연상시키기도 했다. 또한 토마스 모어와 같은 해에 순교하고 함께 시성된 죤 피셔(St. John Fisher, 1469~1535)는 명문장가(名文章家)로 루터의 종교 개혁을 반박하는 논설 등 신학에 관한 많은 글을 남겼다.
17세기, 영국에서는 '형이상학파' (形而上學派)라는 매우 독특한 시인 그룹이 결성되었다. 이들은 승고한 것과 비속한 것, 영혼적인 것과 육신적인 것 등 서로 대립되는 것들을 결합시켜 깊이 있는 시적 효과를 도모하였다. 이러한 기법은 '형이상학적 기상' (起想)이며, 이러한 현상은 인문학과 과학의 발전을 가져온 르네상스의 영향이라고 할 수 있었다. 존 단(JohnDone, 1572~1631)의 시에는 심각한 영 · 육간의 갈등이 드러나 있는데 19편의 <거룩한 소네트>(Holy Sonnets)가 유명하다. 조지 허버트(George Herbert, 1593~1633)는 매우 맑고 경건한 마음으로 신을 찬미하는 시를 썼고, 오늘날 낭만주의의 선구자로 여겨지는 헨리 본(Henry Vaughan, 1622~1695)은 대담한 목소리로 사물의 신비를 노래하였으며, 토마스 트래헌(Thomas Traheme, 1637?~1674)도 종교적인 상념의 시를 발표하였다. 청교도에서 가톨릭으로 개종한 리처드 크레쇼(Richard Crashaw, 1613?~1649)는 분방한 상상력과 타는 듯한 정열로 불꽃과도 같은 믿음의 시를 발표하였다. 존 밀튼(John Milton, 1608~1674)은 인류 원조의 타락에 관한 창세기의 짧은 이야기들을 근거로 《실락원》(失樂園 , Paradise Lost, 1667)을 썼다. 하느님의 공의로움을 밝히기 위해서 썼다는 이 작품에서 그는 칼뱅의 생각과는 대조적으로 인간의 '자유 의지' 를 강조했다. 또한 사탄의 비참한 패퇴와 그리스도의 구속 사업이 이루어지는 경위를 《복락원》(福樂園, Paradise Regained, 1671)에 표현하였다. 존 번연(John Bunyan, 1628~1688)은 인간의 영혼이 구원을 얻기까지의 고난을 빼어난 우의적(寓意的) 방법으로 그린 소설 《천로역정》(天路歷程, Pilgrim's Progress, 1678~1684)을 발표하였다.
합리성과 양식(良識)이 지배했던 18세기 영국에서는 괄목할 만한 종교적인 문학 작품이 발표되지 못했다. 알렉산더 포우프(Alexander Pope, 1688~1744)의 시 <인간론>(Essay on Man, 1733~1734)도 표현은 재치 있고 세련되었지만 내용에 있어서는 당시의 낙천적인 인생관이나 도덕관을 벗어나지 못했다.
〔19세기〕 19세기 초, 영국에서는 짙은 감정과 치열한 생명력, 독창적인 개성, 문학에서의 창조 정신이 강조되는 '낭만주의 운동' 이 시작되었다. '영원의 모습' 을 추구한 월리엄 블레이크(Willam Blake, 1757~1827)는 시대를 초월하는 상상(imagination)의 천재였다. 그는 기존의 여러 종교적 설화를 소재로 《예언서》(Prophetic Books)에 그 나름의 방대한 신화 체계를 구축하였다. 존 헨리 뉴먼(John Henry Newman, 1801~1890)은 옥스포드 운동을 주도하여 많은 추종자와 함께 성공회에서 가톨릭으로 개종하였고, 1879년에는 추기경에 서임되었다. 그는 종교적 자서전 〈Apologia pro Vita Sua>(1864)에서 명석한 문장으로 천주교의 정통성과 교황의 권위를 적극 옹호하였다. 제라드 맨리 흡킨스(Gerard Manley Hopkins, 1844~1889)는 영미 문화권에서 가장 가톨릭적인 시를 썼다. 옥스포드 운동에 참여한 후 천주교로 개종하여 예수회의 수사 신부가 된 그는 시어(詩語)의 밀도(密度)와 힘차고 개방적인 리듬 감각으로 20세기의 영시(英詩)를 예견하는 시를 썼다. 그는 각 사물의 본질(inscape)과 그 안에 내재하는 고유의 힘(instres) 등의 개념을 도입하여 창조주와 모든 피조물을 열렬히 찬미하였다. 프란시스 톰프슨은 〈하늘의 사냥개〉(The Hound oh Heaven, 1893)에서 신앙인으로서의 지식인의 고뇌와 하느님의 자비로운 손길을 노래하였다.
〔20세기〕 20세기의 영미 시의 풍토는 17세기와 상통한다. 20세기의 대표적 시인이며 가장 종교적인 시인인 엘리어트(Thomas Sterns Eliot, 1888~1965)는 <네 사중주곡>(Four Quartets, 1944)에 종교적인 명상을 짙게 담았다. 20세기 최고의 상징시라 할 수 있는 이 시편에는 시간과 영원, 예술과 언어, 기도와 수도 등 거의 모든 문제가 서로 관련되어 있다. 그중의 하나가 성인상(聖人像)의 추구인데 십자가의 요한에게서 크게 영향받았음을 보여 준다. 찰스 월리엄스(Charles W.S. Williams, 1886~1945)는 시 · 소설 · 희곡 등에 독특한 신학 이론을 표현하였고, 데이비드 존스(David M. Jones, 1895~1974)는 <봉헌>(Anathemata, 1952)을 통해 그리스도의 비의(悲意)를 표현하였으며, 딜런 토마스(Dylan Thomas, 1914~1953)는 종교적인 색채가 짙은 시들을 발표하였다.
현대 영국의 대표적인 가톨릭 작가로는 그레암 그린(Graham Greene, 1904~1991)을 들 수 있다. 그는 심리 묘사와 추리 소설의 수법을 곁들여 악과 죄의 문제를 집요하게 추구하였으며 《사건의 핵심》(The Heart of the Matter, 1948)과 《정사(情事)의 종말》(The End of the Affair, 1951) 등 많은 작품을 남겼다. 《성채》(城砦, The Citadal, 1937), 《천국의 열쇠》(The Key of the Kingdom, 1941) 등의 대표작을 가진 크로닌(Archibald Joseph Cronin, 1896~1981)은 천주교인과 이교도와의 마찰을 주제로 다루기도 하였으나, 언제나 폭 넓은 관점으로 삶을 포용하려 하였다. 토마스 머튼(Thomas Merton, 1915~1968)은 《칠층산》(The Seven Story Mountain, 1948)에서 트라피스트회에 입회하기까지의 정신적 편력을 아름답고 진실되게 그렸다. 아우구스티노의 《고백록》에 비견되기도 하는 이 작품 외에도 머튼은 간명하고 명쾌한 문체로 종교적 명상이 담긴 많은 작품을 남겼다.
※ 참고문헌 David Daiches, A Critical History of English Literature, vols. 2, New York, Ronald, 2nd ed., 1970/ Robert E. Spiller · Willard Thorp and Others ed., Literary History ofthe UnitedStates, New York, Macmillan, 4th ed., 1974/ Elijabeth Jennings, Christian Poetry, New York, Hawthorm Books, 1965/ Joan Bennett, Five Metaphysical Poets, Cambridge, Cambridge Univ. Press, 8th ed. 1978/ James Milroy, The Language of Gerard Manley Hopkins, London, André Deutsch, 19771 Helen Gardner, The Art of T.S. Eliot, London, The Cresset Press, 1949. [成贊慶]
Ⅳ. 이탈리아의 가톨릭 문학
이탈리아는 가톨릭 국가라 해도 과언이 아닐 만큼 국민의 절대 다수가 가톨릭과 깊은 유대 관계를 맺고 있다. 라틴 문학의 화려한 전통을 이어받은 이탈리아 문학은 초기부터 가톨릭 신앙에 뿌리를 내리고 출발하였다. 따라서 이탈리아 문학은 처음부터 가톨릭적 성격을 띠고 있었다. 반교회적인 작품들도 있고 그래서 교회로부터 금서로 지정되기도 했지만 이탈리아의 대부분의 고전들은 가톨릭적인 범주 안에서 이해될 수 있다.
이탈리아의 문학에는 라틴어로 된 작품들이 있었지만 그러한 글들은 참다운 의미에서 이탈리아 문학으로 간주될 수 없었다. 민중어로 된 문학이 곧 특정 민족 국가의 문학으로 대접받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많은 토속어 문학들 가운데 오늘의 이탈리아 문학의 근원을 이룬 작품들은 토스카나 지방의 피렌체 방언으로 되어 있다. 이탈리아의 문학에서는 가톨릭 문학의 창시자를 성 프란치스코(San Francesco d'Assisi, 1182~1226)라고 한다. 그의 많은 작품들 중에 <피조물들의 찬가>(Cantico delle creature)를 특히 중요하게 생각하는 이유는 그것이 피렌체의 지방어와 아주 흡사한 움부리아의 지방어로 쓰여졌지만 오늘의 이탈리아 문학으로 이어지는 원천적 문서이기 때문이다. 움부리아와 토스카나는 이웃하고 있는 지방들로 방언이 거의 같다. 프란치스코 성인 이후 활발한 작품 활동을 전개했던 야코포네 다 토디(Jacopone da Todi) 시인도 가톨릭 주제를 즐겨 다루었지만 그의 문학은 일면 종교에 비판적인 점이 있었다.
단테 알리기에리(Dante Alighieri, 1265~1321)는 이탈리아뿐만 아니라 전세계적으로도 가톨릭 문학의 대가이다. 이탈리아 문학의 실질적인 창시자라 할 수 있는 단테의 문학은 여러 가지 면에서 종교 문학의 전형으로 평가받고 있으며, 그 중에서도 《신곡》(Divina Commedia)은 불후의 명작이다. 하느님의 사랑과 섭리, 그리고 구원을 통한 축복과 행복의 세계로의 안내를 주제로 삼고 있는 이 작품은 죽음 이후를 편력하는 환상 여행이 골격을 이루고 있는데, 교리에 입각해 '지옥 편' , '연옥 편' '천국편' 등 3부로 나뉘어 있다. 단테의 문학에서는 영원한 여성상의 상징적 의미를 지닌 베아트리체(Beaatrice)가 매우 중요하다. 이 여인에 대한 사랑과 동경은 《신곡》을 정점으로 하여 <새로운 삶〉(La Vita Nuova)과 청신체시(Dolce stil novo)의 전형으로 분류되는 많은 서정시들 속에 깊이 형상화되어 있다. 중세와 근대의 여명기에 걸쳐 살았던 시성(詩聖) 단테는 교회의 위력이 절정에 달했던 시대의 참 신앙이 무엇이며, 어떻게 하면 그것을 인간의 내면 깊숙이에 각인시켜 구원을 통해 영원한 행복으로 이끌어 갈 것인가를 시적으로 형상화시키는 데 성공하였다.
단테에 이어 이탈리아 문학을 발전시킨 사람은 페트라르카(Petrarca)와 보카치오(Boccaacio)이다. 인문주의의 기치를 내걸고 르네상스 시대를 화려하게 장식한 이들에게서 가톨릭적 요소는 별로 감지할 수 없지만 그들이 끼친 영향은 무시할 수 없다. 저자 미상의 《성 프란치스코의 작은 꽃들》은 문학적인 가치로는 페트라르카의 작품들에 비할 수 없지만, 프란치스코 성인과 그의 제자들에 얽힌 일화들을 통해 교리의 심오한 뜻을 전하고 있는 점이 돋보인다. 시에나의 가타리나 성녀의 서간문들도 문학사에 길이 기억될 주옥 같은 글들이다.
다음으로 아리오스토(Anosto) 시인을 들 수 있다. 그는 르네상스 전성기의 희곡계에도 지대한 공헌을 하면서 불후의 명작 《미친 오를란도》(Orlando Furioso)를 1516년에 발표하여 인문주의자들에 의해 공백 상태로 전락하려던 이탈리아 문학에 새로운 기운을 불어넣었다. 전쟁과 사랑과 신앙, 그리고 인간애의 수레바퀴를 댐도는 주인공 오를란도의 심적 갈등과 고뇌가 예술적으로 잘 승화되어 있다. 타소(Tasso)의 대표작 《해방된 예루살렘》(Gerusalemme liberata)도 전유럽의 문학에 영향을 끼쳤던 걸작으로서 십자군 전쟁을 배경으로 그리스도교 정신을 고양시키고 서사시의 새로운 지평을 확립하면서 가톨릭 문학의 전형을 이루었다.
17세기 바로크 시대의 이탈리아 종교 문학은 답보 상태를 벗어나지 못하였다. 시의 순수성을 추구하는 아르카디아(Arcadia)라는 아카데미아가 창설되어 전국에 지부가 결성되었지만 창설 목적에 부응하는 작품들이 뒤따르지 못했다. 이러한 현상은 18세기까지 이어졌다. 시민 의식을 불러일으키는 개혁적인 희극들을 많이 발표함으로써 이탈리아의 극문학 발전에 획기적인 업적을 남긴 골도니(Goldoni)도 작품에 종교적인 내면 세계를 구현하지는 못했다. 그러나 시민 의식과 국민 의식을 개도하려는 목적에서 작품을 썼던, 알피에리(AIfieri)와 파리니(Parini)의 작품들은 다분히 가톨릭적 가치관 안에서 이해될 수 있다. 희곡 《사울》(Saul)은 성서에 바탕을 두고 있다.
19세기에는 비교적 활발한 문학 활동이 전개되었다. 레오파르디(Leopardi)는 이탈리아 사람들의 가슴에 단테와 페트라르카로 거슬러 올라가는 문학적 흐름을 설정해 주었다. 그의 서정성은 한국인의 한(限)의 정서 못지않게 철저한 비관주의에 바탕을 두고 있다. 특히 초기의 시에서 그는 인간의 비극적 운명의 창조자로서의 자연을 극렬하게 비난하면서 자신의 염세적 인생관을 갈파하였다. 레오파르디의 서정시는 《노래》(Canti)라는 시집으로 엮어졌다. 그는 또한 《수상록》과 기타 도덕적 산문으로 자신의 인생 철학은 물론 문학적 사상을 후세에 전하였다.
만초니(A. Manzoni)는 단테와 더불어 가장 가톨릭적인 작가이다. 그의 문학 세계는 시와 산문, 희곡과 문학론 등으로 다채롭게 구성되어 있는데, 소설은 그 모든 것을 초월한다. 그의 소설 《약혼자들》(Ⅰ Promesssi Sposi)은 단테의 《신곡》 이후 이탈리아인들이 가장 소중히 여기는 문학 작품으로 평가받고 있다. 만초니는 이 작품에서 역사 소설 기법을 사용하여 인생의 비극과 희극을 명료한 문체로 표현하고 있다. '17세기의 밀라노 역사' 라는 부제가 달린 《약혼자들》은 19세기의 이탈리아 현실을 17세기의 밀라노에 투영시켜 생동감을 주고 있다. 두 젊은이 렌초와 루치아를 등장시켜 겨레의 연대 의식을 고취시키고, 하느님의 섭리에 입각한 참 사랑의 승리를 웅변하였다. 하느님의 사랑과 섭리의 위대함을 직접적으로 찬양한 <거룩한 노래>(Inni sacri) 또한 그의 문학에서 빼놓을 수 없는 훌륭한 시이다. 만초니 이후 19세기 말의 이탈리아 문학에서는 종교적 색채가 차층 옅어져 갔다. 사실주의 문학이 뿌리를 내리면서 반그리스도교적인 경향이 강했는데, 이러한 흐름은 상당히 오랫동안 지속되었다. 그러나 그런 중에도 카르두치(Carducci) , 파스콜리(Pascoli, 파피니(Papin), 요비네(Jobine) 그리고 1980년대 이후의 에코(Eco)는 가톨릭 문학에 크게 기여했다.
※ 참고문헌 Cecchi e Sapegno, Storia della letteratura italiana, vol. 11, Garzanti, Milano, 1969-1990/ M. Sansone, Mario, Disegno storico della letteratura italiana, Principato, Milano, 1969/ N. Sapegno, Compendio di storia della letteratura italiana, La Nuova Italia, Firenze, 1969/ G.B. Squarotti, Letteratura italiana, D'Anna, Messina, 1985/ E.H. Wilkins, A Historiy of Italian Literature, Harvard Univ. Press, Massachusetts, 1968/ 한형곤, 《이탈리아 문학의 이해》, 거암, 1984. 〔韓炯坤〕
V . 포르투갈의 가톨릭 문학
12세기 초 사모라 공의회(Concilio de Samora)에서 공식 승인을 받아 국가로 출범하게 된 포르투갈은 국민의 90% 이상이 가톨릭 신자인 전통적인 가톨릭 국가로 오랜 기간 동안 가톨릭이 정신적, 사상적 지주로서 국민생활에 밀접히 자리잡고 있다. 이러한 종교적 배경은 당연히 포르투갈의 예술, 특히 문학에 큰 영향을 끼쳐 왔다. 실제 중세부터 현재까지 가톨릭은 시대에 따라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하나의 거대한 정신적 지주로서 포르투갈 문학의 발전에 기여해 왔다.
초기 포르투갈 문학에서는 그 어느 시기보다 가톨릭의 영향이 컸다. 중세의 문학은 사회 특성상 소수의 엘리트 귀족을 제외하고는 성직자 계급에 의해 독점되고 있었기에 수도원을 중심으로 이루어진 가톨릭 문학은 프랑스 남부 프로방스 지방에서 유래한 음유 서정시(Trovadorismo)와 함께 전반기 중세 포르투갈 문학의 주류를 이루었다. 일반적으로 수사 문학으로 불리는 이 시기의 가톨릭 문학은 성모 마리아 · 예수 · 성인들의 생애, 종교적 전설, 고전 이야기 등 주로 가톨릭이나 문화 · 교화적 성격을 지니고 있지만, 간혹 세속적인 영웅들의 이야기를 주제로 다루기도 하였다. 그러나 이러한 수사 문학은 거의 대부분 라틴어, 스페인어, 특히 프랑스어로 쓰인 외국 원전의 번역으로 초기에는 산따 크루쓰(Santa Cruz) 수도원, 이후에는 알코바싸(Alcobaça) 수도원의 수사들에 의해 이루어졌다. 이 가운데 주목할 만한 작품으로는 당시 성행하였던 기사 문학인 "성배를 찾아서"(Demanda do Santo Graol)를 주제로 한 《쥬제 드 아리마테아의 책》(O Livro de José de Arimateia, 14세기 작품)을 꼽을 수 있다. 순수 포르투갈 문학으로는 14세기 말경에 쓰인 작가 미상의 《이솝의 원예밭》(O Horto do Esopo)과 15세기 초에 쓰인 역시 작가 미상의 《유쾌한 숲》(O Bosco Deleitoso)를 들 수가 있다. 《영적 노래와 기도책》(O Livro das Landes e Cantigas Espirituais)이란 시가집을 남긴 안드레 디아스(AndréDias)는 이 시기의 대표적인 작가로 현대시를 연상케 하는 그의 작품은 다양한 종교적 주제를 다루고 있다.
중세 후기에 들어 포르투갈어가 거의 정착되고 인본주의 사상이 유입되면서 문예 부흥의 여파가 포르투갈에 미치게 되었다. '포르투갈 연극의 아버지' 라 불리는 질 비센테(Gil Vicente, 1465~1540)가 이 시기를 대표한다. 그는 당시 사회의 부패나 가치관의 몰락 등을 주제로 한 사회 비판적 성격의 희곡과 더불어 가톨릭 교리에 바탕을 둔 도덕적 · 교화적 성격의 종교극 등 총 44편의 주옥과 같은 희곡을 남겼다. 가톨릭 교리, 특히 부활의 신비와 선과 악의 투쟁을 섬세하게 그린 《영혼 소극》(Auto de Alma, 1518)은 삼부작인 《트릴로지아 다스 바르카스》(Trilogia das Barcas, 1517~1519)와 더불어 그의 가장 대표적인 종교극으로 여겨지고 있다.
포르투갈 역사 중 가장 화려했던 16세기에 시작되고 발전된 고전주의 시대는 일반적으로 루이스 드 카모엔스(Luis de Camões, 1524~1580)와 쥬앙 드 바로스(João de Barros, 1496~1570)의 작품 속에 담겨 있는 포르투갈의 해양 진출의 서사적, 애국적인 정서로 특징지워지고 있다. 그러나 인도 항로를 최초로 발견한 바쓰코 다 가마(VascodaGama)가 인도의 캘커타에 도착해 "향료와 그리스도인을 찾으러 왔다" 라고 자신의 여행 목적을 말했듯이 가톨릭은 포르투갈 해양 진출의 정신적 이념으로 이 시기의 수많은 작가들에 계속 영향을 미쳤다. 실제로 이 시기뿐만 아니라 포르투갈 최고의 시인으로 여겨지고 있는 카모엔스는 그의 대표작이며 포르투갈 문학의 최대 걸작인 서사시 《루시아다스》(Os Lusíadas, 1572)와 주옥과 같은 수많은 서정시에서 메시아적 팽창주의를 통한 가톨릭 정신을 보여 주고 있다. '흘러가는 강가에서' (Sôbolonnion que vao)라는 시편 136편을 소재로 한 작품과 같이 성경, 특히 시편을 소재로 한 수많은 종교적 성격의 시를 남긴 그는 이상적인 천상의 그리스도교 세계와 현실의 모순된 세계를 대조하면서 오직 예수를 통한 하느님의 은혜만이 구원을 받을 수 있다는 일종의 그리스도교적 실존주의를 보여 주고 있다. 이외에 동시대의 작가로서 아폰소 10세 이후 첫번째로 가장 위대한 가톨릭 작가로 알려진 디오고 베르나르디스(Diogo Bernardes, 1530~1595?)는 《선량한 예수에 대한 시》(Várias Rimas ao Bom Jesus, 1594)를 남겼고, 베르나르디스의 동생이며 또 한 사람의 뛰어난 가톨릭 작가인 아우구스티노 다 크루쓰(Agostinho da Cruz) 수사는 자신의 종교적 체험을 토대로 하느님과 하느님의 사랑의 상징으로서의 자연을 노래하며 조물주의 위대함을 찬양, 경배하는 수많은 소네트와 엘레지아를 남겼다. 이들 외에 신비 문학을 대표하는 에이토르 핀투(Frei Heitor Pinto, 1528~1584?)와 사무엘 우쓰키(Samuel Usque, 1492?~?)를 들 수 있는데 수도원 신비 문학을 대표하는 핀투 수사는 열한 개의 대화로 이루어진 《그리스교적 삶의 상》(Imagm da Vida Crista)이란 작품에서 중세의 가톨릭 정신과 르네상스의 플라톤주의를 잘 조화시켜 초월적인 진리의 세계를 구현하였다. 세속적인 신비 문학을 대표하는 우쓰키는 《이스라엘의 고난에 대한 위로》(Consoloção ás Tribulações de Israel, 1553)라는 작품에서 당시 종교 재판에 의해 박해받던 유대인의 실상을 그렸다. 이러한 신비 문학, 특히 수도원 신비 문학의 바탕에는 르네상스의 이교적 성격에 대항하여 그리스도교 정신의 불길이 비록 활발하지는 않지만 자리잡고 있다. 이 불길은 17세기로 접어들어 반종교 개혁 운동(Contra-Refoma)이라는 사회적 분위기에 힘입어 거세게 타올랐다.
17세기 포르투갈에서는 인간과 하느님, 천상과 지상, 종교적인 것과 세속적인 것 등 중세와 르네상스가 남긴 두 개의 유산을 결합하려는 의도에서 시작된 반종교 개혁 운동의 정신적 동기에 의해 탄생된 바로크가 시작되었다. 포르투갈 문학에서 바로크는 내적 성찰의 경향 속에 정신적, 종교적인 면이 매우 확연히 드러나는데 이는 당시 침체되어 있던 포르투갈 사회의 분위기 외에 종교 재판으로 강화된 반종교 개혁 운동과 활발했던 예수회의 활동에 기인한다. 가장 대표적인 작가로는 200여 강론을 남긴 안토니오 비에이라(Pe. António Vieira, 1608~1697) 신부이다. 특히 그는 포르투갈의 주도하에 이루어진 제5제국의 설립에 관한 이론을 남겼는데, 이는 후에 세바스티아니즘(Sebastianismo)과 결합하여 메시아 출현에 관한 많은 민간 설화의 기원이 되었다. 이외에 완전히 종교적인 문제에 심취하여 도덕주의 · 신비주의 문학의 걸작을 남겨 놓은 마누엘 베르나르데스(Pe. Manuel Bernardes, 1644~1710) 신부가 있다. 그는 《빛과 열》(Luz e Calor, 1696), 《새로운 숲》(Nova Floresta, 1706~1728) 등의 여러 작품에서 명상과 하느님께 가까이 가는 방법 등을 구어체에 아주 가까운 소박한 문체로 표현하였다.
계몽주의 시대로 접어들면서 가톨릭 문학은 조금씩 쇠퇴하기 시작하지만 성직자를 중심으로 그 전통은 계속 이어져 내려온다. 이 시기의 주요 가톨릭 작가로는 알렉산드르 구스마웅(Pe. Alexandre Gusmão, 1629~1724) 신부, 예수회 신부인 쥬앙 다 폰세카(João da Fonseca)를 꼽을 수 있다. 19세기 근대 문학으로 접어들며 포르투갈의 주요 작가들은 다시 가톨릭 정신을 기초로 한 작품을 쓰기 시작했다. 특히 알렉산드르 에르굴라노(Alexandre Herculano, 1810~1877), 소아레스 드 파소스(Soares de Passos, 1826~1860) 등의 낭만주의 작가들에게 있어 하느님의 존재는 매우 특별한 위치를 차지하였다. 이 중 에르굴라노의 문체는 성경의 직접적인 영향을 받았으며, 그의 대부분의 시는 성경을 바탕으로 쓰여졌다. 이 외에도 알메이다 가렛(Almeida Garrett), 에싸 드 께이로쓰(Eça de Queirós) 등 낭만주의, 사실주의를 대표하는 수많은 작가들이 하느님 · 예수와 관련된 작품을 남겼다. 19세기 후반의 테이쉐이라 바쓰코아에쓰(Teixeira Pascoaes, 1877~1852)는 정치적, 경제적으로 황폐한 당시의 포르투갈 사회와 관련하여 카모엔스 · 비에이라 신부의 전통적인 메시아니즘을 다시 부활시켰다. 이 정신은 모더니즘 시대에 들어와 카모엔스와 더불어 포르투갈 최고의 시인으로 여겨지는 페르난도 페소아(Fernando Pessoa, 1888~1935)에 의해 계승되고 발전되어 《신탁》(Mensagem, 1934)이란 또 하나의 위대한 포르투갈 서사시를 탄생하게 하였다.
페소아 외의 20세기 포르투갈 현대 문학에서 주요한 가톨릭 작가로는 호세 레지오(José Régio, 1901~1969)와 미구엘 토르가(MiguelTorga, 1904~ )를 들 수 있다. 《신과 악마의 시》(Poemas de Deus e do Diabo, 1925), 《야곱과 천사》(Jacob e Anjo, 1940) 등의 작가인 레지오는 하느님과 피조물인 인간의 갈등과 고통을 노래하였고, 토르가는 《또 다른 욥기》(O outro Livno de Job, 1936), 《연옥의 벌》(Penas do Purgatório, 1954) 등 현재까지 방대한 작품을 남기며 아담과 욥과 같이 하느님의 섭리에 대항하는 인간의 의지를 그리며 테이쉐이라의 정신을 어느 정도 계승하고 있지만 인간적인 면을 더욱 강조하는 또 다른 성격의 가톨릭 문학을 창조하였다. (→ 포르투갈)
※ 참고문헌 António José Saraiva, O Crepúsculo da Idade Média em Portugal, Lisboa, 1988/ António José Saraiva e Oscar Lopes, Historia da Literatura Portuguesa, Porto, 1979/ Dalia L. Pereira da Costa, Misticos por-tugueses do século XVI, Lisboa, 1986/ Fidelino de Figueiredo, História Literária de Portugal, Coimbra, 1994/ Hernani Cidade, Lições de Cultura e Literatura Portuguesa, vol. 1-2, Coimbra, 1984/ Jacinto do Prado Coelho, Originalidade da Literatura Portuguesa, Lisboa, 1983/ João Mendes, Literatura portuguesa II , Lisboa, 1982/ Mário Martins S.J.A Biblia na Lit-eratura Medeval Portuguesa, Lisboa, 1979/ Maria Clara de Almeida Lucas, Hagiografia Medieval Portuguesa, Lisboa, 1984/ Maria de Lourdes Belchior, Os Homens e OS Livros Séculos XVI e XVI, Lisboa, 1971/Teófilo Braga, História da Literatura Portuguesa., vol. 1-3, Lisboa, 1984.
〔金勇載〕
Ⅵ . 프랑스의 가톨릭 문학
국민의 약 85%가 가톨릭 신자인 프랑스에서는 가톨릭 전통이 프랑스인들의 문화 전반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프랑스의 문학 역시 가톨릭 문학으로부터 시작되었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가톨릭 문학은 독창적인 가톨릭 작가들에 의해 시작되고 계승되었으며, 프랑스 국민의 독특한 정신적 풍토 안에 깊은 뜻을 갖게 되었다.
가톨릭 문학 작품이 프랑스어로 쓰여지기 시작한 것은 813년에 개최된 투르 공의회(Council de Towrs) 이후였다. 투르 공의회 이전에는 라틴어를 사용하였는데 9세기 중엽부터는 프랑스어의 전신인 로망어(roman)를 사용하기 시작했다. 따라서 프랑스어로 쓰여진 최초의 가톨릭 작품은 《성녀 에울랄리아의 속창(續唱)》(Séqence de Sainte Eulalie, 882)이다. 이 종교시는 신자들이 종교 의식을 행할 때 기도문으로 제창한 가사(歌詞)에서 비롯되었다.
〔중세기〕 프랑스의 중세기 문학은 가톨릭 신자들의 교화(敎化)를 위한 성인전과 군주에 대한 기사들의 충성을 노래한 무훈시가 양대 지주를 이룬다. 이 중 성인전은 가톨릭 문학의 중심이 되었으며, 이와 더불어 종교극도 크게 성행하였다.
성인전 중 가장 대표적인 것으로는 《알렉시오 성인전》(Vie de Saint Alexis, 1040)을 들 수 있다. 그 밖에 10세기 후반의 것으로 추정되는 <레제 성인전》(Viede Saint Léger)을 비롯하여 약 200편의 성인전이 있다. 한편 12세기의 종교극은 신자들의 신앙 교육을 위해 성탄절과 부활절에 전례극으로서 성당 안에서 연출되었다. 그 후 소재가 다양해지고 등장 인물이 많아짐에 따라 종교극은 교회 밖에서도 성행하게 되었고 동시에 세속극도 탄생했다. 아담과 하와의 실총(失寵)과 구세주의 탄생을 소재로 한 12세기 후반의 《아담극》(Jeu d'Adame)은 현전하는 가장 오래 된 종교극이다. 또한 1198년경 장 보델(Jean Bodel)이 니콜라오 성인의 기적을 소재로 쓴 《성 니콜라오극》(Jeu de Saint-Nicolas)은 기적극의 대표적인 작품이다. 이 밖에 한 죄인이 회개하여 기적적으로 성모님의 용서를 받게 된다는 뤼트뵈프(Rutebeuf)의 《데오필의 기적극》(Miracle de Théophile), 14세기 후반에 쓰여진 《성모의 기적극》(Miracles de Notre-Dame par personnages)도 그 당시 유행했던 기적극이다. 그리고 아르눌 그레방(Arnoul Gréban)의 《그리스도 수난 사화》(Le Mystère de la Passion)는 등장 인물이 22명이며 공연 일이 4일이나 소요되었던 대작이다. 종교극은 16세기 중엽까지 계속되다가 르네상스의 물결에 부딪쳐 중지되고 고전 비극이 그 자리를 차지하였다.
〔르네상스 시대〕 프랑스의 르네상스는 16세기 초 이탈리아 르네상스의 영향을 받아 발생하였는데, 고대 인문학을 연구하는 휴머니즘과 복음주의에 의한 종교개혁이 뒤섞여 격류를 이루며 16세기 문학을 휩쓸었다. 특히 복음주의에 의한 종교개혁은 16세기 후반 약 40일 간의 내란으로 발전하였으며, 그 영향으로 문학 분야에서는 회고록과 풍자 문학이 탄생하였다.
회고록으로 유명한 것은 가톨릭을 옹호하고 프로테스탄트를 소탕한 명장(名將) 몽뤼크(Blaise de Monluc)의 전투 기록인 《회상록》(Commentaires)이다. 앙리 4세는 이 책을 '군인들의 성서' 라고 불렀다. 간결하고 강력한 문체 때문에 르네상스 산문의 걸작으로 높이 평가되고 있다.
풍자 문학 작가 중 온건한 가톨릭 시인 롱사르(Pierre de Ronsard)는 프랑스의 통일과 평화를 희망하면서 《이 시대의 비참함에 대하여 논함》(Discours des Misères de ce temps)이란 시집을 발표했다. 조델(Etienne Jodelle)은 <새로운 의견을 가진 사제들을 반대함>(Contre les ministres de la nouvelle opinion)이란 소네트(Sonnet, 이탈리아에서 시작된 14행의 정형시)로 롱사르와는 달리 과격하게 프로테스탄트들을 공격하였다. 가장 공격적인 풍자시를 쓴 작가는 프로테스탄트인 도비네(Agripa d'Aubigne)이다. 그의 대표작인 《비극시집》(Les Tragiques, 1616)은 가톨릭 교도에 대한 분노와 자신의 열렬한 신앙심으로 일관된 풍자적이고 서정적인 서사시이다. 이 작품은 바로크 문학의 명작으로 평가되고 있다. 한편 양 교파간의 투쟁에서 중립을 지킨 온건파 기요(Jacques Guillot) 및 그 외 6명이 쓴 《메니프의 풍자》(Saint-Ménippée, 1594)는 당시 종교계와 사회 전반에 대한 신랄한 풍자문이다.
〔고전주의 시대〕 17세기 고전주의 시대에는 가톨릭이 프로테스탄트를 수용하고, 합리주의와 신앙이 공존하며, 절대 왕권과 절대 신권 사상이 강화되었다. 이 시대의 가톨릭 문학 작품은 호교적인 것이 특징인데, 대표적인 작가로 파스칼(Blaise Pascal)과 보쉬에(Jacques-Bénigne Bossuet)를 들 수 있으며 종교극도 다시 성행하였다. 호교론자인 파스칼은 얀세니즘의 온상인 포르 르와얄(Port-Royal) 수도원에서 공부한 열렬한 얀센주의자로서 예수회의 공격에 대응하여 《시골 벗에게 보내는 편지》(Les Provinciales, 1656~1657)를 발표하여 성공을 거두었다. 이 작품은 강력한 추론과 자연스러운 표현 때문에 고전주의 최고의 걸작으로 평가받고 있다. 그는 1657년에 《그리스도교 변호론》(Apologie de la Religion Chrétienne)을 계획하여 1년 간 단편 약 900편을 썼는데, 이것이 그의 사후에 발표된 유명한 《팡세》(Pensées, 1670)이다.
보쉬에는 전형적인 성직자이자 위대한 웅변가로서, 가톨릭 교리를 강론하고 프로테스탄트와 정적주의자들(quiétistes)에 대항하여 가톨릭교를 옹호했다. 특히 약 200회에 걸쳐서 한 그의 강론을 모아 만든 《강론집》(Sermons)과 《추도사》(Oraisons funébres)가 유명하며, 《프로테스탄트의 변천사》(Histoire des variations des Eglises protestantes, 1688)는 유명한 역사책이다.
종교극 분야에서 라신 (Jean Racine)은 만년에 생시(Saint-Cyr) 수도원의 학생들을 위하여 《에스테르》(Esther, 1689)와 《아탈리》(Athaie, 1691)를 썼는데, 이 작품들도 격조 높은 문체로 쓰여진 걸작이다. 또한 코르네이유(Pierre Corneille)의 《폴리윅트》(Polyeucte, 1643)는 신앙이 사랑에 승리한다는 내용이다.
〔계몽주의 시대〕 18세기 계몽 사상가들은 이성과 신을 융화시킨 일종의 자연신(déisme)과 범신론(panthéisme)적인 이신론(理神論)을 주장하였다. 그들은 인간의 이성으로 파악할 수 있는 한도 내에서의 신만을 인정하였다. 이러한 사상적 풍토 속에서 가톨릭 문학은 교화 문학(La littérature édifiante)에 치중하게 되었다. 교화 문학의 주요 내용은 하느님의 율법을 충실히 지키고 주님의 뜻을 따르면 행복하게 살지만, 그렇지 않으면 비극적인 종말을 맞게 된다는 것이다. 프레보 신부(L'abbe Prévost)의 《마농레스크》(Manon Lescaut, 1731)가 대표적인 작품이다. 그러나 일반적으로 이 작품은 은총이 전혀 개입되지 않은 사랑은 비극적인 숙명을 가져온다는 저자의 의도와는 달리 격정적인 사랑의 비극적인 숙명만을 묘사한 것으로 이해되고 있을 뿐이다.
〔19세기〕 19세기의 가톨릭 문학은 낭만주의 · 자연주의 · 상징주의 시대로 구분해 볼 수 있다. 낭만주의 시대의 최고 걸작은 18세기 무신론적 사조에 대항하여 그리스도교의 옹호와 재건을 외친 샤토브리양(François-René de Chateaubriand)의 《그리스도교 정수》(Le Génie du chris-tianisme, 1802)이다. 특히 이 작품 안에 포함되어 있는 소설 《르네》(René, 1802)와 《아탈라》(Atala, 1801)는 별도로 발표되어 대성공을 거두었다. 이밖에 같은 계열의 작품인 《순교자》(Les Martyrs, 1809), 예루살렘과 근동(近東)의 성지 순례기인 《파리에서 예루살렘까지의 여행》(L'Itinéraire de Paris a Jérusalem, 1811)이 있다. 한편 당시의 저명한 평론가 생 뵈브(Charles Augustin Sainte Beuve)는 17세기의 얀세니즘과 가톨릭 교회의 양상을 부각시킨 불후의 걸작 《포르 르와얄의 역사》(Port Royal, 1840~1859)를 써서 남겼다.
자연주의 시대의 평론가 르낭(Ernest Renan)의 《예수의 생애》(Vie de Jésus, 1863), 《그리스도교 기원사》(Histoire des origines du Christianisme, 1868~1883)는 종교 서적을 과학적인 방법을 기초로 하여 쓴 것으로서 성공을 거두었다. 한편 자연주의 노선에서 이탈하였다가 만년에 가톨릭교로 귀의한 위스망(Joris Karl Huysmans)은 샬트르(Chartres) 성당의 아름다움을 묘사한 《대성당》(La Cathédrale, 1898) 등을 통해 자신의 신앙심을 작품화하였다.
상징주의 시대의 대표작으로는 베를렌(Paul Verlaine)이 방탕 생활 끝에 가톨릭교로 귀의한 후 발표한 《지혜 시집》(Sagesse, 1888)을 들 수 있는데, 가톨릭 서정시의 극치를 이룬 걸작이다.
〔현 대〕 20세기 초에 활약했던 3명의 가톨릭 시인을 꼽는다면 프랑시스 잠(Francis James), 클로델(Paul Claudel), 그리고 페기(Charles Péguy)이다. 프랑시스 잠은 하느님을 신비하고 관조적(觀照的)인 수법으로 묘사하며, 자연을 통하여 하느님의 섭리를 느끼게 하는 섬세한 전원 시인이다. 시집으로 《새벽 삼종 기도에서 저녁 삼종 기도까지》(De I'Angélus de I'Aube à l'Angélus du Soir, 1898), 《삶의 승리》(Le Triomphe de la Vie, 1902), 《그리스도교 농경시》(Les Géorgies chrétiennes, 1911~1912) 등이 있다. 끝까지 상징주의를 고수했던 클로델은 인생을 통해 체험한 하느님의 섭리를 강조하면서 작품들 속에 자신의 열렬한 신앙심을 표현하였다. 서정시집으로 《5대 서정단시》(Cinq Grand'es Odes, 1909), 《성인들의 찬가》(Feuilles des Saints, 1925) 등이 있고, 희곡으로 《황금의 머리》(Têted'Or, 1890), 《성모 영보》(L'Annonce faite à Maire, 1912) 등이 있다. 그리고 가톨릭 시인이자 사상가인 페기는 공식화된 제도와 사회에 반기를 들고 오직 진리와 정의를 위한 양심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면서 인간의 내적 투쟁을 실감나게 묘사하였는데, 《잔 다르크의 '사랑' 의 신비》(Le Mystère de la Charité de Jeanne d'Arc, 1910), 《제2 미덕의 신비로 가는 길》(Le Porche du Mystère de la Deuxième Vertu, 1911) 등의 작품이 있다.
1930년대에 이 시대의 정신적 고뇌와 불안을 묘사한 대표적인 가톨릭 작가로는 모리악(François Mauriac), 베르나노스(Georges Bemanos), 그린(Julien Green)을 들 수 있다. 전통적 가톨릭 작가인 모리악은 하느님의 도움을 구하지 않음으로써 빚어지는 인간의 비극과 내적 갈등을 묘사하면서도 항상 구원의 가능성을 제시하였다. 그는1952년 노벨 문학상을 받았다. 대표작으로 소설 《데레즈 데케루》(Thérèse Desqueyroux, 1926), 희곡 《사랑받지 못하는 사람들》(Les Mal-Aimés, 1945) 등이 있다. 모리악과 함께 당대 최고의 가톨릭 작가로 손꼽히는 베르나노스는 영혼의 가장 신비스러운 영역 및 은총의 신비를 표현함과 동시에 은총과 죄악 사이에서 겪는 내적 갈등을 묘사하였다. 그의 《시골 사제의 일기》(Journal d'un Curé de Campagne, 1936)는 아카데미 프랑세즈 소설 대상을 받은 것으로 유명하다. 희곡으로는 《가르멜 수도자들의 대화》(Dialogues des carmélites, 1949)가 있다. 미국계 프랑스 가톨릭 작가인 그린은 인간의 영혼을 하느님과 사탄의 싸움터로 생각했다. 그는 하느님의 은총과 구원의 신비 앞에서는 죄악으로 이끄는 온갖 유혹도 무력해지고, 인간은 희망과 기쁨을 갖게 된다고 하였다. 그의 소설로는 《아드리엔 므쥐라》(Adrienne Mesurat, 1928)가 있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에는 마리탱(Jacques Maritain)의 전통적 가톨릭 사상과 마르셀(Gabinel Marcel)의 가톨릭 실존주의 사상이 중요한 역할을 하였다. 한편 시몬느 베이유(Simonne Weil)는 전통적인 가톨릭 작가와는 맥락을 달리했으나 해외에서 가난한 자와 핍박받는 자 편에서 행동함으로써 가톨릭 사상을 실천하였다. 또한 지질학 교수를 역임한 샤르댕(Pierre Theilhard de Chardin)은 과학과 종교를 접목시키면서 새로운 우주적 진화론을 전개하였다. 최근의 가톨릭 작가로서 신시(La nouvelle poésie) 운동의 대표적 시인인 미쇼(Henri Michaux)는 인간의 영혼 속에 자리잡고 있는 신비로운 의식 세계를 신앙인의 독특한 영감으로 묘사하여 독자적인 시의 세계를 개척하였다. (→ 그린, 줄리앙 ; 모리악)
※ 참고문헌 A. Feugère, Mouvement religieux dans la littérature du XVⅡ siecle, Paris : Boivin & Cite, 1939/ André Lagarde-Laurent Michard, Moyen Age, XVP Siècle, XVIF Siecle, WVIIF Siecle, XIX Siècle, ⅩⅩe Siècle, Paris, Bordas, 1962/ Ch. M. Des Grangges · Ch. Charrier, La littérature expliquée, Paris, ibrairie Hatier, 1959/ E. Mireaux et al., Neuf siecle de la littérature frangaise, Paris, Librarie Delagrave, 1958/ G. Lanson · P. Tuffrau, Manuel illustré d'histoire de la liittérature française, Paris, Librarie. Hachette, 1957/ Henri Bremond, Histoire Littératire du sentiment religieur en France. Depuis lafin des guerres de religion jusqu'à nos jours, tome I-XI, Paris, Librairie Armand Colin, 1968/ Lucien Goldman, Le Dieu caché, Paris, Gallimard, 1959/ P. Brunel et al., Histoire de la littérature française, tome I-II, Paris, Bordas, 19721 Pierre Georges Castex · Paul Surer, Mamuel des fétudes littéraires françaises, tome I-VI, Paris, Librairie Hachette, 1946.
〔曺圭哲〕
Ⅶ. 한국의 가톨릭 문학 (⇨ 한국 가톨릭 문학)
가톨릭 문학 -
文學
〔라〕litterae Catholicae · 〔영〕Catholic literatu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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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힐데브란트의 노래》 필사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