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상철 (1891~1978)

南相喆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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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상철.

남상철.


성 남종삼(南鍾三, 요한)의 손자. 교육자. 세례명은 프 란치스코. 경기도 안성군 미양면 갈전리(葛田里)에서 유 복자로 태어나 생후 1개월 만에 모친이 세상을 떠나자 외조부 슬하에서 성장하였다. 어려서 한학을 수학하고 통신 강의로 일본 와세다(早稻田) 대학을 졸업한 후 충 북 장호원(長湖院, 현 감 곡) 본당에서 운영하던 매괴보통학교 교사로 재직하였고, 1921년부 터 충북 음성군 감곡면 면장 겸 도(道) 의회 의 원으로 20여 년 동안 재직하였다. 해방 후인 1947년에는 영친왕(英 親王) 환국 추진위원회 회장으로 추대되어 그의 귀국을 위해 노력하 였는데, 이 활동으로 그 는 천주교를 박해한 흥 선 대원군(興宣大院君)의 후손을 위해 노력함으로써 신 앙의 차원에서 폭 넓은 아량을 보였다는 평가를 받았다. 한편 그는 순교자의 후손으로서 언제나 그리스도의 가르 침을 따라 생활하고자 하였으며, 재야의 교회 사학자로 서 교회사와 교회 사적지에 대해 관심을 갖고 그 연구에 노력한 결과 1962년에는 한국 땅에서 최초로 천주교 신 앙이 토론된 주어사(走魚寺)의 위치를 발견하기도 하였 다. 그러던 중 1978년 7월 13일, 노환으로 서울 삼양동 자택에서 사망하여 경기도 양주군의 가족 묘지에 안장되 었다. 유족으로는 3남 5녀가 있으며, 이들 중 3명이 수 도회에 입회하였다. 주요 논문으로는 <한국 천주교의 요 람지 주어사의 발견>(《경향잡지》, 1962년 11월호~1963년 1월호)이 있다. ※ 참고문헌  《가톨릭 사전》 <가톨릭시보> 제1111호(1978. 7. 2). 〔편찬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