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양 성지

南陽聖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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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양 성지 전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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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양 성지 전경.


1866년 병인박해 때 순교한 무명 순교자들의 순교지. 경기도 화성군 남양면 남양리 1704번지 소재. 남양 반 도는 박해 시대에 많은 천주교인들이 숨어 살면서 옹기 를 구워 연명함으로써 인근에 백학, 활초 등 여러 공소들 이 형성되었다. 특히 백학 공소는 왕림(갓등이)과는 큰 들판 하나를 사이에 두고 있으며, 한국 초대 교회의 성지 인 안양의 수리산, 양지의 골배마실, 안성의 미리내, 진 천의 배티, 아산의 걸매리 등과도 가깝기 때문에 복음을 쉽게 접할 수 있었다. 한편 남양은 서해안의 군사적 요충 지로서 행정과 사법권을 부여받은 종삼품(從三品)의 도 호부사(都護府使)가 부임하던 곳이다. 따라서 남양 부사 는 경기도 관찰사의 감독 아래 일반 행정에 관한 권한 이 외에도 민사 소송과 사법권을 행사할 수 있었으며, 때문 에 남양은 물론이고 그 인근에서 체포된 천주교인들도 이곳에서 처형되었다. 《치명일기》와 《병인 순교자 증언 록》에 의하면, 지금까지 밝혀진 순교자로서 김 필립보와 박 마리아 부부, 그리고 정 필립보, 김홍서(토마) 등이 있다. 그러나 이들 4명 이외에도 더 많은 신자들이 남양 에서 순교하였을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남양 성지는 다른 성지들과는 달리 무명 순교자들의 치명터였기 때문에 오랜 세월 동안 무관심 속에 방치되 다가 1983년, 당시 남양 본당의 박지환(朴址煥, 요한) 신부에 의해 개발이 본격화되었다. 이후 남양 본당 전신 자들은 기금 마련과 함께 직접 노동력을 제공하였고, 특 히 이상각(李相珏, 프란치스코 사베리오) 신부가 김남수 주교에게 남양 성지를 성모 성지로 개발하고자 하는 의 지를 전하면서 이후 성지 개발은 전교구민의 관심 아래 진행되었다. 특히 1991년 9월 한달 동안은 교구 내 모 든 본당에서 기도 운동을 전개하여 마침내 로사리오의 성모 축일이며 수원교구 설정 기념일이기도 한 그 해 10 월 7일, 우리 나라에서 최초로 성모 성지로 선포되었다. 이후 남양 성지에서는 조국의 평화 통일과 죄인들의 회 개를 위해 24시간 묵주의 기도 고리 운동, 십자가 로사 리오 순례 운동, 낙태죄를 속죄하기 위한 기도 운동 등을 전개하고 있으며, 특히 1995년 2월부터는 성지만을 전 담하는 사제가 따로 임명되면서부터 성지 개발이 더욱 본격적으로 진행될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 〔편찬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