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은 자
- 者
〔라〕reliquiae · 〔영〕remna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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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권

노아의 방주로 살아 남은 자들.
커다란 자연 재앙이나 전쟁 같은 참변에서 살아 남은 자. 잦은 전쟁과 참혹한 학살, 인간의 생명을 위협하는 갖가지 재앙들이 늘 있었기 때문에, 남은 자에 대한 관심 은 고대 세계의 각종 문학 양식에서 자주 표현되었다. 그 렇지만 남은 자 사상의 기원은 아직 확실치 않다. 일반적 으로 바빌로니아 제의(祭儀)와 신화에서 연유된 종말론, 완벽한 승리를 추구하는 아시리아의 전쟁 정책, 죽음의 위협에 직면한 인간의 실존적인 상황 등이 그 기원으로 제시되고 있다. 이와 더불어 '남은 자' 는 적의 세력을 완 전히 말살하는 전쟁 처리 방식을 묘사하는 고대 동방의 군사 용어였다고 하는 견해(W.E.L. Müller)와 함께, 외적의 공격을 받는 무리들의 삶이 지속되도록 근본적으로 보호 하는 것을 뜻한다고 보는 견해(G.F. Hasel)도 주창되고 있다. 〔구약성서〕 구약성서에서 남은 자를 가리키는 단어로 가장 많이(220회) 쓰인 스아르(שְׁאָר)는 전체에서 큰 부분 이 떨어져 나가고 남아 있는 나머지를 가리킨다. 그 부분 은 너무 작아 보잘것없고 무의미할 정도이지만, 거기에 놀라운 생명력이 깃들어 있음이 암시된다. 그 외에도 스 에리트(שארית), 팔라트(טלפ)와 말라트(טלמ) . 야타르 (רתע) 등이 있는데, 그중 팔라트와 말라트에는 재앙으로 부터 피하여 목숨을 부지하게 되었다는 뜻이 들어 있다. 이 단어들은 갖가지 생물(창세 7. 2-4), 뭇 민족(즈가 14, 16), 불레셋족 등 다른 민족(2사무 21, 2 ; 이사 14, 30 ; 17, 3 ; 아모 1, 8 ; 9, 12 ; 즈가 9, 7)과도 연관되어 거론되 지만, 주로 유대와 이스라엘과 관련되어 사용된다. 이 단 어에는 이중적인 의미가 들어 있다. 즉 때로는 남은 자가 없거나 보잘것없을 정도로 재앙의 규모가 큼을 뜻하는 부정적인 의미로 사용된다(2열왕 21, 14 ; 이사 17, 6 ; 예 레 8, 3 ; 에제 14, 22 ; 아모 3, 12 ; 9, 1-4). 하지만 대개 의 경우, 엄청난 재앙에서 살아 남은 자는 희망의 표지로 서 새로운 공동체의 바탕이 된다는 긍정적인 뜻으로 쓰 인다(창세 8, 15-19 ; 1열왕 19, 18 ; 이사 28, 5-6 ; 예레 23, 3-4 ; 요엘 3, 5 ; 오바 1, 17 ; 미가 2, 12 ; 4, 6-7 ; 스바 3, 11-13). 구약성서에서 남은 자는 크게 두 부류로 나뉜다. 하나 는 말뜻 그대로 외적의 공격에서 살아 남은 생존자이다 (2열왕 19, 4 ; 25, 11 ; 2역대 34, 21 ; 36, 20 ; 이사 37, 4 ; 예레 24, 8 ; 에제 9, 8 등). 다른 하나는 이를 신학화시켜 재앙을 하느님의 심판으로 받아들이고 재앙에서 살아 남 은 자를 구원의 표지로 보는 경우이다(보기 : 노아, 창세 6, 5-8 : 7, 1. 23) . 구약성서에서 주로 거론되고 중요시되는 경우는 후자이다. 신학 개념으로서 남은 자는 하느님의 심판과 자비, 심 판과 구원의 약속이란 양면성을 함께 보여 준다. 남은 자 는, 엘리야 시대에 바알에게 굴복하지 않고 야훼 하느님 께 대한 신앙을 잃지 않은 7천 명(1열왕 19, 18)처럼 의 롭고 신실한 이가 남은 자가 되기도 하지만(스바 2, 3 ; 3, 12-13), 자신의 선행이나 신앙으로 인해 선택되지는 않 는다. 남은 자는 온전히 하느님의 자비함(이사 1, 9 ; 아모 5, 15), 하느님의 열정(2열왕 19, 31 ; 이사 37, 32), 하느 님의 은총(창세 6, 8 : 45, 7 : 예레 31, 2. 7), 하느님의 용 서(예레 50, 20 : 미가 7, 18)에 의한 것이다. 하느님께서 남은 자를 둔 까닭은 그분의 옴을 준비하는 새로운 공동 체를 형성하기 위함이니, 남은 자들은 정화되어 야훼의 백성으로 모범적인 생활을 하도록 요청받는다(이사 1, 25-26 ; 4, 3-4 ; 10, 20 ; 에즈 9, 13-14). 따라서 남은 자 의 의미는 현재 살아 남았음에 있지 않고 앞으로 그들을 통해 이루어질 종말론적인 공동체에 있다(이사 11, 10-16 ; 28, 5-6 ; 예레 23, 3 ; 31, 7-9 ; 미가 4, 6-7 ; 5, 6 ; 스바 2, 7. 9). 다시 말해 남은 자는 하느님의 약속이 구현되는 이로서 희망의 표징의 역할을 맡는다. 남은 자 사상은 예 언서, 특히 후기 예언서에서 발전하였는데 시기별로 성 격이 조금씩 변모하였다. 바빌론 포로기 이전 시대 : 아모스는 임박한 하느님의 심판을 선포하면서 극소수는 살아 남지만(아모 3, 12 : 5, 3), 그 남은 자마저 모두 멸망할 것이라고 예언한다(9, 1-4). 그렇지만 악을 버리고 선을 행하면 일부 살아 남은 요셉 가문을 하느님께서 불쌍히 보아 줄 것이라고 살 길 을 밝힌다(5, 14-15). 이사야는 남은 자 사상을 가장 다채롭게 전개한 예언자이다. 그가 예언자로 부름받은 것은 심판을 예고하기 위함이니(이사 6, 9-13), 야훼를 거역하는 이들 중에서 살 아 남는 이들은 실로 얼마 되지 않을 것이다(10, 19 ; 16, 14 ; 17, 6 : 21, 17). 그러나 심판은 정화하기 위함이니 (1, 25-26 ; 4, 2-4), 그의 아들의 이름 '스알여숩' (שאר ישוב)이 뜻하듯 "남은 자는 돌아오게 될 것이다" (7, 3). 하느님이 세워 준 남은 자들은 메시아(용사이신 하느님 : 9, 5) 곁으로 모여 들고(10, 20-22), 유대인뿐 아니라 이 방인 남은 자들도 하느님께 모여 와(45, 20) 하느님의 축 복을 받을 것이다(11, 10-16 ; 28, 5-6). 미가는 살아 남은 이스라엘 백성을 하느님께서 모을 것이며(미가 2, 12-13), 그 절름발이들을 씨앗으로 남겨 강대국을 만들겠다는 하느님의 약속을 전한다(4, 6-7). 살아 남은 야곱의 후손은 야훼께서 내리는 이슬같이 축 복의 원천이 되거나 양 떼 가운데 젊은 사자같이 멸망의 원천이 될 것이며(5, 6-8), 그 남은 자에게 하느님의 사 랑과 자비가 내려질 것을 간구한다(7, 18-20). 미가서에 서 '남은 자' 가 메시아 시대에 정화될 백성을 가리키는 전문 용어로 쓰이고 있음을 볼 때, 미가서의 남은 자 구 절은 포로기 이후에 편집된 것으로 보인다. 바빌론 포로 시대 : 이 시기에 앞서 활동하기 시작한 예레미야는 팔레스티나에 남은 자도 칠 만큼 하느님의 심판이 철저하겠지만(예레 8, 3 ; 24, 8), 하느님은 장차 포로로 끌려간 이들을 모아 크게 불어나게 할 것이라는 (23, 3-8 ; 24, 5-7) 희망을 선포한다. 바빌론 포로 생활 에서 팔레스티나로 귀환하는 유대인들이 이스라엘의 남 은 백성으로(31, 2-7), 하느님과 새로운 계약을 맺게 되 는 거룩한 백성이 될 것이다(에제 11, 16-20 ; 20, 40-43 ; 34, 24-31). 스바니야도 하느님의 진노를 피하는 길은 그 분의 법대로 바로 사는 것이며(스바 2, 3), 남은 자인 겸 손하고 가난한 사람들은 더 이상 그릇된 일을 하지 않을 것이라고 선언한다(3, 11-13). 이 시기에 와서 '남은 자' 는 생존자와 구분되면서 특별히 선택된 거룩한 자라는 의미를 갖는다. 포로 이후 시대 : 역대기 사가는 유대인들이 그 못된 죄악을 저질렀음에도 불구하고 살아 남아 돌아올 수 있 게 된 것은 온전히 하느님의 너그러움 덕분임을 고백한 다(에즈 9, 8. 13-15 느헤 1, 2. 3). 하깨와 즈가리야 예언 자도 포로 생활에서 돌아와 새로운 공동체를 이룬 사람 들을 "살아 남은 자"들이라 부르며 그들에게 새 날을 약 속한다(하깨 1, 12. 14 : 2, 2 ; 즈가 8, 6. 11-12). 마지막 날에는 불레셋 족 같은 이방인으로 살아 남은 자도 하느 님을 예배할 것이다(즈가 9, 7 ; 14, 16). 이 시기에 수립 된 유대교 신정 공동체에서 '남은 자' 는 야훼 신앙을 지 키며 율법에 충실하게 종교적으로 생활하는 사람이라는 점이 두드러진다(1마카 1, 52-53에서 유대인과 달리 이스라 엘인은 율법에 충실한 자를 가리킨다). 한편 유대의 묵시 문 학에서 남은 자는 하느님이 한 미래의 약속이 실현될 집 단으로 여겨진다(에녹 83, 8 2에스 12, 34 ; 13, 48 등). 〔신약성서〕 자신들을 이스라엘의 남은 자로 철저하게 자처했던 에쎄네파와 달리, 신약성서에는 남은 자 사상 이 별로 부각되지 않는다. 복음은 만민에게 열려 있으며, 단지 세례자 요한의 심판 예고(마태 3, 7-10), 좁은 문 비 유(마태 7, 13-14 ; 루가 13, 23-24), 가라지의 비유(마태 13, 24-30), "부르심을 받은 사람들은 많지만 뽑힌 사람 은 적다"는 말씀(마태 22, 14), 제자들과 바깥 사람들을 구분하는 까닭(마르 4, 10-12), "작은 양 떼" (루가 12, 32), 예수의 수용와 배척(요한 1, 11-12), 나타나엘을 참 이스라엘 사람이라 부르는 구절(요한 1, 47) 등에서 암시 적으로 남은 자 사상이 엿보일 따름이다. 신약성서에서 남은 자 사상을 본격적으로 펼치는 이는 사도 바오로이다. 그는 로마서 9-11장에서 남은 자 사상 을 잘 보여 주는 구약의 성구(이사 1, 9 ; 10, 22-23 ; 1열 왕 19, 18 등)를 인용하면서 이스라엘의 남은 자가 누구 인가를 밝힌다. 그에 의하면, 이스라엘 태생이라고 해서 모두 이스라엘은 아니며(로마 9, 6b) 언약의 자녀라야 되 는데(9, 8), 지금은 그리스도의 복음을 받아들인 자가 하 느님의 은총으로 선택된 남은 자이다(11, 5). 즉 바오로 는 남은 자에 깃들어 있는 구약의 종말론적인 성격을 배 제하고 이미 약속을 성취시킨 그리스도와 연관시킨다. 따라서 그의 관심은 현존하는 그리스도를 받아들이고 그 분께 돌아서는 회개이다. 그는 궁극적으로 남은 자가 전 체가 될 것이라는, 이스라엘 백성 모두를 포함하는 모든 이의 구원에 대한 희망을 밝힌다(11, 11-32). 한편 묵시록은 우상에 물들지 않고 하느님께만 희망을 둔 이들을 "남은 자"라 부르며(묵시 2, 24 ; 3, 4), 마지막 날에 닥칠 멸망의 재앙에서도 남은 자들은 살 것임을 밝 힌다(11, 13 : 12, 17). 이 종말론적 희망을 갖고 그리스 도 안에서 사는 남은 자, 하느님께 충실한 이스라엘은 이 제 교회이다(갈라 6, 16). ※ 참고문헌 J.C. Campell, God's People and the Remnant, 《SJT》 3, 1950, pp. 78~85/ G.F. Hasel, The Remnant, 2nd ed., Andrews University Monographs 5, Berrien Springs, MI, 1974./ K. Koch, The Prophets, vol. 1, Philadelphia, Fortress Press, 1983, pp. 140~143/L.V. Meyer, 《ABT》 5, pp. 669~671/ W.E.L. Müller · H.D. Preuss, Die Vorstellung vom Rest im AT, 2nd ed., Neukirchen-Vluyn, 1973/ Schrenk · Herntrich, 《TDNT》 4, pp. 194~214. 〔李鎔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