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천 본당

南川本堂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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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천동 본당 신자들의 성체 거동 및 시가 행진(1968년 6월 16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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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천동 본당 신자들의 성체 거동 및 시가 행진(1968년 6월 16일).


부산교구 주교좌 본당. 부산시 남구 남천1동 69-1 소 재. 1979년 6월 8일 설립되었으며, 주보는 성 정하상 바오로. 관할 구역은 남천1 2동과 대연3동 · 광안2 · 4 동 일부. 〔교 세〕 1979년 582명, 1984년 3,226명, 1987년 4,465명, 1991년 5,440명, 1993년 6,407명. 〔역대 신부〕 초대 제찬규(諸燦奎) 시메온(1979. 6~1983. 2), 2대 신상도(辛尙道) 아우구스티노(1983. 2~1985. 9) , 3대 정명조(鄭明祚) 아우구스티노(1985. 9~1990. 1), 임시 최영철(崔榮喆) 알로이시오(1990. 1~2), 4대 이영식(李永 植) 히지노(1990. 2~현재). 〔설립과 발전〕 남천동은 황령산 아래 바다 매립지 6,500여 평에 3천여 세대의 대단위 아파트가 건립됨에 따라 형성되었다. 더욱이 1970년대 중반에는 행정의 중 심인 남구청과 기타 부속 단체, 남부 교육구청과 KBS 방송국이 새로이 설립되면서 남구의 중심지가 되어 갔 다. 이에 따라 주민수와 함께 신자수도 급증하게 되자 부 산교구에서는 1979년 6월 8일에 본당 설립을 확정하고 광안 본당과 대연 본당의 신자 일부 및 타지역에서 이주 해 온 신자들로 남천 본당을 설립하였다. 당시 경제적 여 건으로는 새 성전 건립이 어려웠으므로 우선 데레사병원 의 사옥으로 사용하다가 당시 부산교구의 가톨릭 교육원 으로 사용되던 건물을 임시로 사용하였다. 초대 주임 신부로 부임한 제찬규(시메온) 신부는 병원 건물 일부를 개조하고 내부 시설을 정비하는 한편 사목 지침을 '한 집안 운동' 으로 정하였다. 이 운동은 점차 대 형화되는 교회 현실에서 지역 소모임을 활성화하여 본당 신자들간에 유대감을 조성하였다. 그러나 당시 남천 본 당의 가장 큰 과제는 새 성전 건립이었다. 그 동안 사용 해 온 성당은 실 사용 면적 200여 평에 최대 수용 인원 이 800명 정도였기 때문에 1980년대에 들어서면서 신 자수가 2,000여 명이 넘게 되자 신자들을 전부 수용할 수 없었다. 이에 신상도(아우구스티노) 신부는 1985년 2월에 성전 건립위원회를 조직하여 준비에 착수하였고 같은 해 9월, 정명조(아우구스티노) 신부가 부임하면서 성전 건립은 더욱 본격화되었다. 그러나 제반 기구를 재 정비하는 한편 1988년 12월 4일 기공식을 거행한 정명 조 신부는 1989년 10월 23일자로 군종교구 주교로 임 명되면서 본당을 떠나게 되었고 이영식(히지노) 신부가 부임하면서 성전 기금 마련, 바자회 개최 등으로 마무리 작업에 박차를 가하여 마침내 1992년 5월 31일 이갑수 주교의 주례로 축성식을 거행하였다. 대지 3,327평 연 건평 2,191평에, 지하 1층은 각종 회합실, 지상 1층은 소성당 · 강당 · 교리실, 2층은 대성전, 중층에 성가대 · 일반석 및 120여 평 규모의 만남의 광장과 성모 동상 등 으로 이루어졌다. 또한 조광호(趙光鎬, 엘리지오) 신부 가 스테인드 글라스로 제작한 '천지 창조' 와 '구세사' , 원성득이 제작한 성모자상과 옥외와 옥내의 십자가의 길, 본당 주보인 성 정하상 바오로의 동상은 전문 작가의 작품으로서 신자들의 신심을 돈독히 하는 한편 예술 작 품 유치라는 데에서도 의의를 찾을 수 있다. 특히 남천 본당은 성당 준공과 함께 그 동안 35년 간 부산교구 주 교좌를 맡아온 중앙 성당으로부터 주교좌의 대표성과 역 할을 물려받게 되었다. 총 공사비 50억 원에 달하는 대 공사를 성공적으로 이룩할 수 있었던 원동력은 기도를 동반한 남천 본당 신자들의 적극적인 노력과 희생이었 다. 신자들은 성전을 건립하는 동안 갖가지 기도 운동도 함께 전개하여 성전 건축이 단순한 건물의 완공이 아닌 신앙으로 다져진 본당 공동체 형성의 기회로 삼았다. 한편 남천 본당은 1979년 7월부터 올리베따노 성 베 네딕도 수녀회의 분원이 파견되었고, 이듬해에는 사목위 원회를 조직하였으며, 이후 다양한 평신도 단체들이 조 직되면서 본당으로서의 면모를 다져갔다. 특히 신앙의 내실화에도 노력하여 초창기에 설립된 각종 신심 단체는 한국 순교 성인들의 삶을 기리고자 단체명을 한국 성지 (聖地) 이름으로 정하여 회원들이 최소한 그 성지와, 성 지와 관련된 신앙 선조들의 삶을 배워 실천하도록 하고 있다. 1981년 4월, 천사 유치원을 개원하였고 1984년 에는 출감자 돕기 시민 음악회도 개최하였다. 1985년부 터는 성당 신축에 주력하였고 공사가 점차 마무리되면서 본당 공동체의 쇄신에 주력하였다. 특히 1994년부터는 구역 공동체 활성화의 일환으로 남성 신자 공동체를 형 성하여 매월 1회 모임을 갖고 있다. 또한 흰돌 노인 대학 을 개교하여 지역 주민과의 친교를 통한 복음화 구현과 노인 복지에 대한 교회의 역할도 수행하고 있으며, 매년 7월과 8월에는 매일 오전 6시부터 7시까지 광안리 해수 욕장 주변 청소 작업을 실시하여 지역 사회에 봉사하고 환경 운동에도 기여하며, 아울러 관광객들과의 대화를 통하여 자연스러운 전교의 기회도 갖고 있다. 뿐만 아니 라 그 동안 복음 선교에 각별히 관심을 갖고 전교의 달에 는 황령산을 찾는 등산객들을 대상으로 본당에서 제작한 안내 소책자로 가두 선교를 실시하였고, 레지오 단원들 은 한 해 동안에 권면할 입교 대상자 3명을 정하여 이들 에게 지속적으로 관심을 갖고 교회로 인도하고 있다. (→ 부산교구) 〔편찬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