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평 본당

南平本堂

글자 크기
2

광주대교구 소속 본당. 전남 나주시 남평읍 동사리 158-18 소재. 1971년 12월 5일 나주 본당 소속 공소에 서 본당으로 승격 분리되었으며, 주보는 성녀 소화 데레 사. 관할 구역은 남평읍, 산포읍 지역이고, 관할 공소는 호혜원 1개소이다. 〔교 세〕 1971년 369명, 1980년 560명, 1988년 683명, 1993년 542명. 〔역대 신부〕 초 대 올리어리(Andrew O'Leary, 오) 안드레아(1971. 12~ 1973. 10), 2대 우드(Francis Woods, 우) 프란치스코(1973. 10~11), 3대 망간(Kevin Mangan, 만) 가비노(1974. 3~1982. 5), 4대 장옥석(張玉石) 루치오(1983.4~1989. 8), 5대 표 재현(表宰玄) 토마(1990. 2~1995. 1), 6대 백용수( 白龍洙) 마태오(1995. 1~현재). 〔공소 시대〕 본당의 모체는 남평 · 호혜원 · 덕례리 공 소가 통합, 승격된 것으로 우선 남평 공소는 남평 지역에 거주하는 신자 몇 명이 먼 거리에도 불구하고 나주 본당 에서 주일 미사를 참례하자 나주 본당 9대 주임인 김창 현(金昌鉉, 바오로) 신부가 1955년 3월부터 공소 발족 을 적극 추진하였다. 김 신부는 1955년 8월 남평면 동 사리 151번지에 15평의 양철집과 대지 1,000평을 매입 하고 전교 회장을 파견하였으며, 1957년 10월에는 협소 했던 양철 공소 건물을 30평으로 증축하고 17평의 사택 을 신축하였다. 1969년 10월 당시 나주 본당의 11대 주 임이었던 장옥석(루치오) 신부가 현재의 본당 건물인 붉 은 벽돌집을 증축하여 헨리(H. Henry, 현 하롤드) 대주교 의 집전으로 축성하였다. 한편 덕례리 공소는 1958년 2월 김창현 신부가 산포 면 덕례리에 대지 600평과 초가집 1동을 매입하고, 전 교 회장을 파견하여 거주케 하고 이어 이듬해 4월 덕례 리 공소 첫 미사를 봉헌하였다. 나병 환자 정착 마을에 세워진 호혜원 공소는 1949년 3월 광주 북동 본당 신부 의 후원으로 광산군 송정읍(현 광주시 광산구 송정동) 극락 천 부근에 설립된 성좌회 지부에서 비롯되었다. 이 지부 는 1950년 6월 전라남도 당국의 방침에 따라 당시 나주 군 산포면 신도리로 이전하면서 호혜원으로 부르게 되었 고, 1953년 1월 나주 본당 장옥석 신부와 신자들의 도 움으로 목조로 된 공소 건물을 신축하였다. 이 건물은 1957년 7월과 1960년 2월, 1964년 8월 세 차례의 증 축을 거쳐 1966년 6월 시멘트 블럭 건물로 새로 지어졌 다. 1971년 12월 남평 공소는 덕례리와 호혜원 공소를 합하여 본당으로 승격되었다. 〔설립과 변모〕 본당 설립과 함께 초대 본당 신부로 골 롬바노회의 오 안드레아 신부가 부임하였고, 1973년 10 월 31일에는 우 프란치스코 신부가 2대 본당 신부로 발 령받았으나 그 해 11월 7일에 선종하여 4개월 동안 본 당 신부 없이 공석으로 있다가 1974년 3월 만 가비노 신부가 부임하였다. 관할 공소인 덕례리 공소는 1975년 부터 교세가 줄어들자 1981년에 공소 건물을 매각, 처 분하였으며 1982년 5월 19일 만 신부가 후임 없이 본국 으로 휴가를 떠나자 남평 본당은 나주 본당 관할 공소로 환원되었다. 그러나 1983년 4월 26일 다시 장옥석 신부 가 4대 본당 신부로 부임, 본당 재건에 힘써 1986년 5 월 수녀원 준공식을 가졌다. 그 해 6월 17일 성모 성심 회 수녀들이 파견되었으나 1991년 철수하고 뒤이어 까 리따스 수녀회에서 몇 개월 사목에 협조하기도 하였다. 현재 자녀 교육 문제 등 이농 현상으로 신자수가 감소하 는 추세에 있다. (→ 광주대교구) ※ 참고문헌  《가톨릭 사전》 1 천주교 광주대교구, 《광주대교구 50년사》, 1990. 〔편찬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