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해 본당
南海本堂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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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산교구 소속 본당. 경남 남해군 남해읍 아산리 381 소재. 1961년 12월 28일 삼천포 본당에서 분리 설립되 었으며, 주보는 성모의 통고. 관할 구역은 남해군 전지역 (창선면 제외), 남해읍, 서면, 남면, 이동면, 고현면, 설천 면, 상주면, 미조면, 삼동면. 소속 공소는 3개소(미조, 상 주, 은점). 〔교 세〕 1988년 1,100명, 1993년 1,286명. 〔역대 신부〕 초대 칼마리니(D. Calmarini, 姜) 도나토 (1961. 12~1965. 4). 2대 나르지(C. Nargi, 南) 가르멜로 (1965. 4~1967. 1), 3대 이종창(李鍾昌) 바르톨로메오 (1967. 1~1969. 4), 4대 김덕신(金德信) 요셉(1969. 4~1970. 8), 5대 페나(A. Pena) 알로이시오(1970. 8~1971. 6), 6대 에스피노사(A. Espinosa) 아르만도(1971. 6~1971. 8), 7대 정순재(鄭淳在) 베드로(1971.8~1972. 12), 8대 박재근(朴 在根) 아우구스티노(1972. 12~1974. 6), 9대 박해준(朴海 俊) 치릴로(1974. 6~1977. 4), 10대 안명옥(安明玉) 프란 치스코(1977. 4~1979. 1), 11대 허성학(許盛鶴) 아브라함 (1979. 1~1982. 2), 12대 제찬석(諸璨錫) 요한(1982. 2~1985. 2) 13대 배기현(裵基賢) 콘스탄티노(1985.2~1989. 7), 14대 김상진(金賞鎭) 레미지오(1989. 7~1991. 7), 15대 양태현(梁泰炫) 그레고리오(1991. 7~1994. 8), 16대 유봉호(劉奉鎬) 바르톨로메오(1994. 8~현재). 〔설립과 발전〕 남해 지방에는 1930년을 전후하여 남 해읍을 중심으로 신자들이 생기기 시작하면서 공소도 설 립되었다. 그러나 이들 초기 신자들이 점차로 사망하고 또 그 자손들도 타처로 이주한 경우가 많아 계속적인 교 세 증가가 어려운 가운데 남해 공소는 8 · 15 해방 후에 는 진주 본당(현 옥봉 본당)에, 1957년부터는 삼천포 본 당에 소속되었다. 그러나 이듬해 1958년부터는 전남 여 수에서 남해로 이사 온 김봉수(베드로)와 남해 교우 한 루치아, 박 베드로 회장 등이 공소 재건 운동을 전개하면 서 본당으로 승격되었다. 꼰벤뚜알 성 프란치스코회 소속이었던 강 도나토 신부는 특히 전교에 주력하여 1963 년경에는 신자수가 많이 증가하였고 성당 건축도 활발히 전개되어 성당(1961), 사제관(1962), 수녀원(1963)을 신 축하였다. 그 후 1966년, 마산교구 설정과 함께 남해 본 당 사목을 교구 소속 한국인 사제가 맡도록 결정되면서 1967년 1월 31일 이종창(바르톨로메오) 신부가 부임하 였다. 그 후 잠깐 동안 멕시코에서 진출한 과달루페회에 서 맡았으나 1971년부터는 다시 교구 소속 한국인 신부 가 사목을 담당하고 있다. 남해 본당은 1970년대 중반까지는 교통 시설 및 도로 조건이 좋지 않아 본당 중심의 사목이 어려웠던 관계로 공소들의 설립, 육성에 주력하였다. 그러나 1973년 6월 에 남해 대교가 놓여지면서 관광지로서 발돋움하는 지역의 발전과 더불어 본당도 점차적으로 발전하게 되었다. 1977년 유치원의 설립 인가로 지역 내의 유아 교육 사 업을 처음으로 시작하였고 1978년에는 청년 사목에도 관심을 기울여 본당과 공소 청년들이 함께 참여하는 체육 대회를 개최하였다. 1985년에는 '성서 40주간' , 1988년에는 '좀더 많이 알고 좀더 많이 모으자' 라는 표 어 아래 성서 읽기 운동이 전신자 참가 대상으로 실시되 었다. 아름다운 자연 속에 위치한 본당 소속 3개 공소는 여름 기간에는 타본당 주일학교 학생들의 산간 학교 장소로 제공되며 또한 1985년 9월에는 남해 지역 내 교육 자들과 지식인들을 대상으로 1주일 간 가톨릭 사상 강좌 를 실시하기도 하였다. 1987년 11월에는 관내 중고등 학생 통학 버스의 부재로 학생들의 크고 작은 사고가 잇 달아 일어나는 것을 보고 당국에 대한 시정 요구와 함께 본당 전신자의 침묵 시위와 죽은 학생들을 위한 추모 미 사를 올리기도 하였다. 이처럼 꾸준한 발전을 이룬 남해 본당은 신자수가 점차 증가하자 1987년 9월 9일 신축을 시작, 대지 1,400 여 평, 연 건평 230평에 지하 1층, 지상 2층의 공사를 마치고 1989년 1월 30일, 장병화 주교의 주례로 축성식 을 거행하였다. 남해의 아름다운 자연 경관과 어울리도록 산(山) 모양으로 설계된 성당은 전신자들의 일치된 마음의 표현이기도 하였다. 사실 주일 미사 평균 참례자 가 1~200명에 불과하고 그중 대부분이 외짝 신자요, 60세 이상 할머니들이 대부분인 본당으로서 유치원과 교육관 등 부대 시설을 포함한 대공사에는 어려움이 많았지만 전신자들의 기도와 희생 등으로 완공할 수 있었다. 1994년 2월 19일, 사제관과 수녀원의 완공으로 성 당 건축을 마무리한 남해 본당은 앞으로 더욱 반모임과 공소의 활성화, 신자 재교육과 냉담자 가정 방문에 관심 을 갖고, 아울러 지역 사회에 봉사하는 본당 공동체로 발 전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 마산교구) 〔편찬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