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톨릭 미술 -

美術

〔라〕ars Catholica · 〔영〕Catholic ar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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므와사크의 생 피에르 수도원의 기둥 조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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므와사크의 생 피에르 수도원의 기둥 조각.

① 세계의~
〔초기 그리스도교 미술〕 로마 제국의 박해와 핍박 속에서 초기 그리스도인들은 카타콤바(catacomba)라는 비밀 지하 집회 장소에 모여 예배하였고 하느님 영광을 드러내기 위한 상징적인 수법으로 그리스도교 미술을 이루어 나갔다. 때문에 이 시기의 미술은 어떤 특정 양식을 지칭하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교의 성립 이후 처음 5세기 동안에 그리스도교를 위해 만들어진 모든 미술 작품들을 가리킨다. 특히 카타콤바는 그리스도인들의 기도 장소이자 신성한 전례 장소로서 그리스도교 미술의 발상지가 되었는데 주목되는 것은 천장과 벽면의 프레스코화이다. 당시 흔히 사용된 주제는 구약성서의 요나나 방주 속의 노아 이야기와 같은 구세사와 그리스도의 기적에 관한 것이었다. 이 시대 그리스도인들은 세상에서의 행복보다 구세주와 내세 생활에 더 깊은 관심을 지니고 회화를 통해 그리스도의 힘과 영광을 표현하였다. 대표적인 작품은 로마 성 베드로와 마르첼리노(St. Pietro e Marcellino)의 카타콤바 벽화와 천장화들이다. 또한 이 시기에 특징적인 것은 그리스도의 상(像)이 서기 200년 이후에는 수염이 없고 짧은 머리의 청년상으로 그려졌다는 점이다. 그리스도는 이후 알렉산드리아에서도 무염단발(無髥短髮) 청년으로 그려졌으나 소아시아에서 이 청년상이 변형되어 긴 머리가 어깨까지 드리워지게 되었고 4세기 후반부터 동방과 이탈리아에서는 수염을 가하여 전통적인 그리스도의 두수상(頭首像)이 생겨났다. 313년의 콘스탄틴 대제의 밀라노 칙령을 통해 그리스도교의 박해는 종식되었고 신앙의 자유가 공인되면서 지하의 예배 장소는 지상으로 옮기게 되었다. 이때 지상의 예배 장소로 고대 로마의 재판과 집회에 쓰였던 회당이 사용되었다. 좌우 상칭 구조이고 건물 내부에 원주열이 늘어서 있는 로마의 바실리카(Basilica) 양식이 회당으로서의 편리한 구조 때문에 성당 건축에 계승되었다.
〔비잔틴〕 4~5세기에 걸쳐 동 · 서로마 제국은 그리스도교 미술의 발전에 다같이 공헌했으나 6세기에 이르러서부터는 콘스탄티노플을 중심으로 하는 동로마 제국이우세하게 되어 6세기의 그리스도교 미술은 콘스탄티노플의 옛 명칭인 비잔티움의 이름을 딴 비잔틴 미술의 황금 시대를 맞이한다. 따라서 이 시대에는 강한 동방적 성격을 배경으로 그리스도교 미술의 혁신적인 계기가 되는 거대한 성당이 세워지고 그 성당을 장식할 예술품의 필요가 늘어나게 되었다. 그 가운데 성당의 실내를 장식한 모자이크가 가장 대표적이다. 로마 시대에도 여러 가지 색의 돌조각으로 된 마룻바닥 모자이크가 있었으나 이 시대의 모자이크 재료는 색유리를 불에 구운 것으로 이 색유리 장식은 딱딱한 벽면을, 반사되는 광선에 의해 반짝거리는 스크린으로 변모시켰다. 모자이크의 특징은 형태를 단순화시키고 생략법을 사용한 것이다. 모자이크는 이탈리아 변방이었던 라벤나에 많이 남아 있는데 대표적인 것이 성 비탈리스(St. Vitalis) 성당 제단의 양쪽 벽면에 있는 〈유스티니아누스(Justrimans)와 시종들>과 <테오도라(Theodora) 왕비와 시녀들>의 한 쌍의 모자이크이다. 이와 같은 모자이크 작품들은 단순한 교회의 장식을 넘어서 화려함과 장엄함을 갖춘 종교적인 승엄함을 이루게 되었다. 726년의 성화상 금지령이 발단이 되어 약 1세기 동안 계속된 성화상 논쟁으로 인해 비잔틴 회화와 모자이크는 잠시 중단되었다. 그러나 1세기 이후 다시 성화상이 허용되면서 제2의 황금기를 맞게 된다. 이 제2 황금 시기의 걸작들은 유스티니아누스 시대의 모자이크에 나타난 인간미의 이상과 훌륭하게 조화된 고전주의적 작품이다. 초기 그리스도교 미술에서 그리스도를 그 인간적 특성보다 신성과 영원성을 강조하여 표현한 것과 달리 이 시기에는 고전주의의 영향과 함께 그리스도의 수난과 인간적 고통이 강조되었다. 당시의 비잔틴 회화는 모자이크와 함께 판넬에 그려진 성화상인 이콘(Icon)과 채색 사본의 채색화와 소묘화를 뜻하는 미니아튀르(Miniature) 페인팅이 발달하였다.
〔로마네스크〕 11세기 후반에 유럽 전지역에서 일어났으며 그 명칭은 건축에서 고대 로마 건축의 모티브인 반원 아치와 원주를 응용한 것에서 붙여졌다. 이 시기에는 로마 제국의 붕괴와 함께 소멸되었던 대규모의 석조 조각이 다시 급속히 부활하였다. 이는 일반 서민 사이에 다시 신앙이 부활했다는 사실과 연관이 있다. 조각은 본질적으로 공공적이고 대중적인 예술로서 장소적으로 폐쇄된 수도회보다는 일반 신도들에게 공감을 줄 수 있도록 의도된 것이었다. 프랑스 로마네스크 조각의 절정을 이루는 므와사크(Moissac)의 생 피에르(St. Pierre) 수도원의 중심 기둥은 예언자상과 짐승이 놀라울 정도로 유연하게 조각되었다. 이는 로마네스크의 대표적 양식으로 동물과 괴수가 건축의 여러 부분을 받치고 있어서 힘을 나타낸다. 또한 성당 정면 입구의 반원형 벽면인 팀파눔(Tympanum)에는 대개의 경우 묵시록적 환상에서 비롯된 옥좌에 앉은 그리스도나 최후의 심판의 장면이 조각되었다. 로마풍과 비잔틴 미술을 이어받고 있는 로마네스크 조각은 아직 독립적인 장식물이라기보다는 건축에 종속되었지만 그리스도교 미술의 초월성과 묵시록적인 환상의 세계를 창조해 냈다. 이러한 성당의 건축 조각은 12세기에 이르러 성지 순례의 길을 따라 전파되고 발전하였다. 조각에 비하여 회화는 그리 큰 발전을 이루지 못했다. 그 가운데 뛰어난 세밀화인 <복음사가 성 요한>의 장식적 꽃 문양은 고대 로마의 장식 모티브를, 그리고 인물상은 비잔틴 미술을 이어받고 있다. 회화에 있어서는 신자들에게 설득력을 줄 수 있는 성인의 모습과 성인들의 설화가 묘사되어졌다. 따라서 세밀화들은 예배의 대상으로서 중요한 기능이 되었을 뿐만 아니라 문맹자를 위한 성서로서의 역할도 하였다. 건축 또한 프랑스에서 최고의 발전을 이루었다. 초기 그리스도 교회의 목조 지붕은 이 시기에 석조의 둥근 천장 구조로 바뀌었고, 내부 공간에서 시선을 신속히 후진으로 유도하던 원주열의 간격은 한층 넓어져 중후함을 느끼게 하며, 한편 창문의 크기가 줄어들어 내부 공간이 더욱 신비감을 갖는 것이 특징이다.
〔고 딕〕 많은 박해와 고난에서 시작된 그리스도교 미술은 고딕 시대에 그 절정을 이룬다. 고딕 양식은 1200년경부터 1500년경까지 발달한 시대 양식이며 그 명칭은 후대의 르네상스 예술가들이 고트(Goth)족의 천하고 상스러운 양식이라 하여 중세 건축을 비난하는 뜻으로 쓰여진 것이다. 12~13세기의 도시의 성장은 생활의 중심을 수도원에서 도시로 이동시켰고 이제 도시에는 대성당이 연이어 세워지게 되었다. 이러한 성당 건축은 프랑스 북부를 중심으로 발전했으며 당대의 정치적, 종교적 권력자였던 쉬제(Suger)에 의해 큰 발전을 이루었다. 1137년부터 1144년까지라는 짧은 기간 동안 쉬제는 조그만 카롤링 왕조의 성당이었던 생 드니(St. Denis)를 수 많은 신자들을 수용할 수 있는 대규모의 건축물로 개조하였다. 이는 인간에 의해 만들어진 것을 신의 완벽한 반영으로까지 고양시키도록 계획되었다. 그리고 동일한 의도 아래 파리, 샬트르, 아미앙, 랭스, 루앙 등의 도시에도 대규모의 고딕 성당이 세워졌다. '무한' 의 개념을 동경한 고딕 건축가는 내부적으로는 로마네스크 성당의 천장을 끌어올려 신을 상징하는 빛을 끌어들이고자 했으며, 외부적으로는 하늘을 향해 끝이 뾰족한 첨탑을 세웠다. 이는 모두 신과의 합일(合一)을 동경하는 고딕 정신의 표현이다.
고딕 건축의 성립은 회화에도 영향을 미쳐 스테인드글라스라는 중요한 양식이 생겨나게 하였다. 조그만 색 유리를 작은 납조각으로 이어 붙인 커다란 유리 그림이 창으로 사용되어지는 이 스테인드 글라스는 빛의 은은한 발산을 통하여 건축 내부를 신비롭게 하였으며 그로 인해 신자들의 영적 감성을 고양시키는 역할을 했다. 고딕 대성당인 살트르(Chartres) 성당에는 건축 당시의 스테인드 글라스가 지금도 남아 있다. 한편 프랑스에 이어 순수한 회화는 13세기 말에 이탈리아에서 전성기를 이루었다. 이탈리아 고딕 시대의 중심적 화가인 지오토(Giotto)는 <피에타>로 대표되는 그의 작품들을 통해 힘차고 간결한 형태와 인물의 호소력 있는 표현 그리고 통일감 있는 화면 구성을 이루었다. 지오토와 함께 고딕 회화를 대표하는 두치오(Doccio)는 지오토와는 달리 비잔틴 회화에서 비롯된 경직된 형태에 생명력과 온화함을 불어넣으려 하였다. 그의 대표 작품으로 <그리스도의 예루살렘 입성>을 꼽을 수 있다. 고딕 조각은 이제까지의 부조 조각이 환조 조각으로 변화한 점에서 의의가 크다. 살트르 대성당의 서쪽 정문의 문설주 조상은 환조의 시도를 잘 나타낸다. 그리고 로마네스크의 반자연적 세계는 사라지고 온화하며 자연스러운 인물상들이 나타난다. 고딕 조각가는 초자연적 환상에서 자연과 일상의 존재를 반영하고자 한 것이다. 고딕 조각은 프랑스와 함께 독일에서 큰 발전을 이루었다.
〔르네상스〕 순수한 종교 미술인 고딕 양식이 발전하고 있는 동안, 1400년대의 이탈리아 미술은 르네상스로 향하고 있었다. 예술가들은 합리주의에 입각한 자연과 인간성에 대한 새로운 시각 속에 신과 종교에 예속되지 않고 자유로운 표현을 시도하였다. 표현 양식에 있어서 사실 정신 및 과학적 정확성의 추구는 원근법의 발달을 이루었고 해부학적 지식에 기초한 인체 묘사의 실체감이 두드러졌다. 또한 벽화와 판화가 주된 부분으로 발전했으며 프레스코 템페라에 이어 유화 기법이 개발되었다.
르네상스는 시기별로 15세기는 초기 르네상스 시대, 16세기는 전성기 르네상스 시대로 구분된다. 초기 르네상스인들은 중세 이전의 매우 인간적이었던 그리스, 로마 시대에 대하여 향수와 동경심을 갖고 바라보았고, 그리스, 로마가 도달한 학문과 예술의 위대한 업적을 되살리는 것을 목적으로 삼았다. 초기 르네상스 시대의 대표적 작가로 조각에는 도나텔로(Donatelo) 그리고 회화에는 마사치오(Masaccio)와 만테냐(Mantegna)를 들 수 있다. 1430년 전후에 도나텔로가 제작한 청동제의 <다윗>은 고대 이래 최초의 등신대의 독립 나체상으로서 혁신적인 것이었다. 이 작품의 훌륭한 균제미는 고대 조각의 이상을 구현하고 있으며 고대의 조상과 마찬가지로 신체가 얼굴 표정보다 더 웅변적이다. 조각에 비해 그 발전이 10년이나 뒤졌던 회화 부분에서는 마사치오에 의해 2차원의 평면에, 투시도법에 의한 3차원의 공간을 구성하고 개성을 지닌 조형적인 인간상의 표현 등 새로운 양식이 발전되었다. 그의 <성모와 성 요한이 있는 성 삼위일체>는 인물의 신체 조직과 육체의 운동감이 면밀히 묘사되어 중세와 크게 대조를 보인다.
전성기 르네상스 양식은 초기 르네상스의 모든 경향이 도달한 정점이었다. 전성기 르네상스의 최초의 거장인 레오나르도 다 빈치(Leonardo da Vinci)의 <최후의 만찬>은 전성기 르네상스 고전주의 이상을 최초로 완벽하게 실현한 것으로 평가되는 작품이다. 이 그림은 종래의 프레스코 기법을 떠나 유성 템페라 로 새롭게 시도한 것이며 그 구도의 완벽한 균형감과 안정감이 뛰어나다. 한편 레오나르도 다 빈치에 비해 매우 감성적이고 종교적인 힘이 강한 미켈란젤로(Michelangelo)는 1509~1512년에 걸쳐 4년 간 시스티나 성당 천장의 프레스코화를 제작했다. 이 천장화는 창세기의 아홉 장면 즉 천지 창조로부터 포도주에 취한 노아에 이르기까지의 내용이 그려져 있다. 조화와 아름다움의 천재인 라파엘로(Raphael)는 바티칸궁을 장식하였고, <성모 마리아와 아기 예수> 등의 많은 걸작들을 남겼다.
건축은 십자형을 기본으로 둥근 지붕의 옛 로마 시대의 형식을 발전시킨 성당이 르네상스 시대를 지배하였고 그중에서도 로마의 성 베드로 대성당은 1506년에 착공되어 로셀리노(Rossellino), 라파엘로, 미켈란젤로, 가롤로 마데르노(Carlo Maderno) , 베르니니(Bemin) 등의 설계에 따라 건축되었다.
〔바로크〕 17세기에는 서구의 여러 나라가 왕권 신수설에 입각한 전제 군주국을 이루어 국왕은 예술가, 학자를 자신의 영광화에 봉사토록 했다. 이러한 군주 중심 문화를 배경으로 미술에서 종교적 영역이 축소되기는 했으나, 반종교 개혁 운동으로 안정을 되찾은 가톨릭 교회는 개혁주의자들의 부정의 대상이 되었던 성모, 성인, 교황권을 수호하며, 신앙의 열정을 드러내는 감동적 미술을 추구하였다. 이러한 경향은 바로크 미술의 자유 분방하며 활기에 넘친 힘찬 동세, 강렬한 명암의 대비 등 동적이고 격정적인 표현의 특징과 함께 발전하였다.
지안로렌조 베르니니(Gianlorenzo Bernini)의 <법열의 성녀 데레사>는 이 시기의 신앙적 감동의 극치의 상태를 표현한 바로크 양식의 대표적인 조각 작품이며 그의 <다윗>상 또한 걸작이다. <다윗>이 보여 주는 새로운 특징은 눈에 보이지 않는 골리앗의 존재로서 주변 공간을 보다 긴장되고 활기 있게 만드는 바로크 조각의 특성이 잘 나타나 있다. 회화에서 이탈리아 바로크의 최대의 화가였으며 명암의 뚜렷한 대비에 의해 근대 사실화의 길을 개척한 카라밧지오(Carvaggio) 또한 <성 마태오의 소명>과 같이 성서에 나오는 사건을 통해 종교적 감동을 표현하였는데, 그의 특성은 인물과 사건을 이상화하지 않으며 매우 일상적이고 사실적인 표현으로 종교적 감성을 강하게 드러내는 것이다.
〔19세기 이후〕 17~18세기까지 성서상의 내용은 서구 미술의 주요 주제로 자리잡았으나 19세기 이후에는 '주의' 나 '주장' 곧 '이즘' (ism)이 새롭게 형성되면서 미술 본래의 문제, 특히 형식적 · 방법론적 탐구가 활기를 띠었다. 따라서 이전의 체계적 종교 미술은 볼 수 없게 되었고 미술 자체의 표현 유형 안에서의 한 작품으로, 그리고 극히 개인적인 신앙심의 발로로 표현되어짐으로써 그 맥을 이어갔다. 개인적인 신앙심을 바탕으로 현대에 종교 미술의 맥을 이은 대표적인 작가는 루오(Rouault)이다. 그는 중세의 그리스도교의 부활에 의한 사회 혁신을 희망하는 가톨릭 사회주의 이념을 바탕으로 정치, 사회의 모순을 비판하는 작품들을 많이 그렸다. 그 외에도 루오 이전에 중세 미술에 대한 큰 동경을 가졌던 고갱(Gauguin)은 시골 농민들의 순박한 신앙심을 <황색 그리스도>라는 작품으로 나타내었다. 한편 개인적 신앙심의 표현이라기보다는 종교적 주제만을 차용하여 성당 제단과 벽면의 회화적 장식 그리고 성당 건축에 참가한 작가로서 레제(Leger)와 마티스(Matisse) 같은 현대 미술의 대가들과 1950~1955년에 프랑스 롱샹의 성모 성당을 건축한 르 코르뷔지에(Le Corbusier)를 들 수 있다. (⇦ 그리스도교 미술)
※ 참고문헌  C.R. Morey, Christian Art, W.W. Norton and Company Inc., New York, 1935/ William S. Rubin, Modern Sacred Art and the Church ofAssy, Columbia University Press, New York and London, 1961/ H.W. Janson, History of Art, Harry N. Abrams, Inc., Prentice-Hall Inc., ed. 3rd,1986/ Helen Gardner, Art through the Age, HBJ, ed. 9th, 1991/ Robert Rosenblum · H.W. Janson, 19th-Century Art, Harry N. Abrams Inc., New York, 1984/ Frederick Hartt, History of Italian Renaissance Art, Harry N. Abrams Inc., New York, ed. 2nd, 1979/ George Zarnecki, Art of the Medieval World, Harry N. Abrams Inc., New York, 1975/ Encyclopedia of Art, McGrow-Hill Book Company Inc., New York, 1960. 〔鄭泳沐〕
② 한국의~ (⇨ 한국 가톨릭 미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