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리, 필립보 (1515~1595)
Neri, Filippp · Neri, Filipp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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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권

성모자와 필립보 네리(피아체타 작).
성인. 오라토리오(Oratorio)회의 창설자. 축일은 5월 26 일. 1515년 7월 22일 이탈리아 피렌체에서 공증인(公 證人)의 아들로 태어난 필립보 네리는 산 마르코(San Marco)의 도미니코회 회원들에게서 교육을 받았다. 18세 때 실업가인 큰아버지의 양자가 되어 사업 경력을 쌓기 도 했던 그는 로마 여행을 하던 중 그곳에서 두 해 동안 의 은둔 생활을 하다가 1535~1538년에 철학과 신학을 공부하였다. 그러나 학기 말년에 학업을 포기한 필립보 는, 책을 팔아 얻은 돈을 가난한 이들에게 나누어 주었다. 〔활 동〕 그는 로마의 영성적 삶을 부흥시키는 일을 필 생의 목표로 삼았다. 병원, 은행, 가게, 도매 상점들을 방문하면서 많은 사람들을 만났었는데, 그러던 중 1544 년에 마침내 성 이냐시오 로욜라(Ignatius de Loyola)와 친 분을 맺게 되었다. 1548년 그의 고해 신부 페르지아노 로싸(Persiano Rossa)와 함께 가난한 평신도들을 위한 '가 장 거룩한 삼위 일체회' (The Confraternity of the Most Holy Trinit)를 설립하고 캄포에 있는 성 살바토르(S. Salvatore) 성당에서 영적 회합을 갖고 회원들을 지도하였다. 열성 적인 회원들을 통해서 필립보는 기도 생활을 널리 전파 하였고 순례자들과 회복 단계에 있는 환자들에게 활발한 봉사 활동을 전개하였다. 필립보는 17년 간 평신도로서 로마에서 활동한 후 로 싸의 충고로 사제품을 받기로 결심하고, 1555년 5월 23 일에 서품을 받았다. 그의 사제 생활은 매우 특이하였다. 아침부터 그의 방에서는 장기와 카드 놀이를 하는 젊은 이들로 붐볐을 정도로 젊은이들을 대단히 사랑하였고, 고해성사를 중요시하여 이를 위해 많은 시간을 할애하곤 하였다. 신분의 고하를 막론하고 회개하고자 하는 많은 이들이 도움을 청해 올 정도로 그는 고해 신부로서 높은 명성을 얻게 되었다. 오라토리오회 : 필립보는 수도 생활에 대한 꿈을 실현 하고자 점차 그와 뜻을 함께하는 사제들을 중심으로 공 동체를 형성하여, 본격적으로 영적 권고와 고해성사 및 청년 사목에 주력하였다. 찾아온 사람들을 함께 지도하 던 그 당시의 사제들은 통상적으로 오라토리오회 회원들 이라 불렸다. 이는 그들의 공동 기도 시간에 종을 쳐서 사람들을 기도하도록 모았던 것에 기인한다. 그러나 이 이름은 성 요한 성당에서 필립보와 함께 모였던 젊은 사 제들의 소그룹에 속하는 명칭이다. 필립보는 그들에게 생활 규칙을 만들어 주었는데, 서원을 하거나 그들의 재 산을 포기하는 것은 금하였다. 이 그룹의 구성원은 빠르 게 늘어갔고, 1575년에 교황 그레고리오 13세는 오라토 리오회를 공식 승인하였으며, 그 후 발리철라(Vallicella) 에 있는 성 마리아(St. Maria) 성당을 그들에게 맡겼다. 필 립보는 교황과 성 샤를르 보로메오(Boromeo)와 많은 다 른 이들의 도움을 받아 이 오래 된 성당을 다시 지을 수 가 있었다. 그 후 이 성당은 '새로운 교회' (Chiesa Nuova) 로 불리게 되었다. 1577년 4월 오라토리오회는 '새로운 교회' 에 거주하 였지만 필립보 자신은 1584년까지 산 지롤라모(San Girolamo)에서 머물렀다. '로마의 사도' 로 알려진 필립보 는 끊임없이 방문객들을 맞이하였는데, 뛰어난 영적 지 혜와 환시를 통하여 부자든 가난한 사람이든, 권력자든 보통 사람이든 관계치 않고 한결같이 진심으로 대하였 다. 교황 그레고리오 4세가 그에게 추기경 직위를 내렸 으나 끝내 이를 거절하였지만, 죽기 2년 전에 친구이자 제자인 교회사가 체사르 바로니우스(Caesar Baronius)의 호의로 오라토리오회의 장상을 지냈다. 건강이 악화된 말년에는 작은 기도실 안에서 미사를 드리는 특별 허락 을 받았다. 괴테가 유머가 많은 성인으로 찬탄해 마지않던 필립보 는, 1595년 5월 26일 병상에 누워서 벽에 걸린 십자가 를 손짓하며, "보십시오. 주께서는 저처럼 고통을 바치 면서 십자가에 못박혀 달려 계시는데, 이 비천한 저는 이 런 호화스러운 자리 위에서 친절한 사람들의 간호를 받 으며 쉬고 있습니다. 얼마나 염치없는 노릇입니까 ··· 예 수 그리스도 이외의 것을 원하는 자는 참으로 해야 할 일 을 모르는 자입니다"라는 말을 최후로, 그 순결한 영혼 을 하느님께 돌려드렸다. 필립보는 겉으로는 속인처럼 보였지만 교만과 허례 허식과 탐욕을 익살로써 교정하고 기도의 기쁨과 하느님 사랑의 고귀함을 가르친 거룩한 성인이었다. 그의 작품들은 모두 유실되고 몇 편의 시만 이 남아 있다. 유실된 작품들은 죽기 직전 그 자신이 모 두 불에 태운 것으로 전해진다. 그의 유해는 '새로운 교 회' 에 남아 있으며, 1615년에 교황 바오로 5세에 의해 복자품에 올랐고, 1622년 그레고리오 15세에 의해서 시 성되었다. (→ 오라토리오회) ※ 참고문헌 김정진 편역,《가톨릭 聖人傳》, 가톨릭출판사, 1987/ 최정오 편, 《가톨릭 성인 사전》, 계성출판사, 1987/ 배문한, 《그리스 도의 향기》, 성모출판사, 1993/ John Coulson, The Saints, Guild PressNew York/ Terrence F. O'Donnell, 《CE》8. 〔裵文漢〕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