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고산

老姑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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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강대학교 뒤편의 노고산.

서강대학교 뒤편의 노고산.


박해 시대의 사적지. 서울 마포구 노고산동에 있는 서 강대학교 뒷산으로, 본래의 이름은 한양(漢陽)의 서쪽 끝에 있다는 뜻으로 '한미산' (漢尾山)이라 하였는데, 후 에 '할미산' 〔老姑山〕으로 변하였다. 1839년 9월 21일 (음 8월 14일)에, 앵베르(Imbert, 范世亨) 주교와 모방 (Maubant, 羅伯多祿) · 샤스탕(Chastant, 鄭牙各伯) 신부 가 군문 효수형을 받고 새남터에서 순교하자, 몇몇 신자 들은 형장 근처의 모래 사장에 묻혀 있는 그들의 시신을 거두려고 노력하였다. 그러나 감시가 심하였으므로 순교 후 3일 동안은 시신에 접근할 수가 없었고, 4일째 되던 날 3명의 신자들이 시신에 접근하다가 그중 한 명이 체 포되기까지 하였다. 그러던 중 순교일로부터 약 20일이 지난 뒤, 박 바오로를 비롯한 7~8명의 신자들이 그곳에 잠입하여 시신을 거두는 데 성공하였다. 박 바오로는 훗 날 순교자들에 대해 여러 가지 사실을 증언한 박순집(朴 順集, 베드로)의 부친으로 병인박해 때 체포되어 양화진 (楊花津)에서 순교하였다. 당시 선교사들의 시신은 큰 궤에 담겨져 노고산에 안장되었다가 1843년 관악산 줄 기에 있는 박 바오로의 선산(일명 三聖山, 관악구 신림동 산 57의 1번지 소재)으로 이장되었으며, 1901년 11월 2 일에 다시 명동 성당 지하 묘지로 이장되었다. (→ 기해 박해 ; 삼성산) ※ 참고문헌  《달레 교회사》 中/ 金秉相 . 吳基先 편, 《聖地》 , 東 林文化社, 1981/ 성기숙 편, 《한국의 성지》, 도서출판 크리스찬, 1988.〔편찬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