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자 사목
勞動者司牧
〔라〕Cura pastoralis pro operariis · 〔영〕pastoral for the labou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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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 문제를 적극적으로 거론했던 매닝 추기경.
사회의 산업화로 새로운 환경에서 살게 된 노동 대중 에 대하여 교회가 사목적인 배려를 하는 것. 노동자 사목 은 노동자들에게 복음이 전해져서, 그들이 하느님 백성 가운데서 친교를 나누는 한 주체가 되고, 하느님 백성이 계속해서 노동자들에게 복음을 전파하고 노동계에서 복 음의 가치를 증거하며, 비인간화된 상태에 있는 노동계 를 복음의 새 창조 질서에 따라서 변화시키는 교회 활동 이다. 서구에서는 18세기 중엽, 영국에서 시작된 산업 혁명의 결과 형성되어 새로이 출현한 노동 대중에게, 한 국에서는 1960년대 중반에 들어서야 본격적인 공업화가 시작되어서 형성된 노동 대중에게 교회가 사목적 접근을 시도한 것으로 이는 낯선 과제이며 쉽지 않은 일이기도 하다. 노동자 사목의 대상이자 주체인 노동자는 좁은 의미에 서 피고용 육체 노동자를 뜻한다. 이때의 노동자는 관리 직 · 사무직 노동자들과 구별된다. 노동자 사목의 우선 적이고도 기본적인 대상은 협의의 노동자이다. 노동자 사목은 생산 대중 안에서도 피고용 육체 노동자에 대한 우선적인 선택이다. 넓은 의미의 노동자는 관리직 사무 직을 포함하는 피고용 노동 행위자이다. 나날이 기계 화 · 자동화되는 현대 세계에서 넓은 의미에서의 노동자 개념을 고려하는 것은 중요하고 바람직하다. 이 노동자 개념을 통해 노동자 사목은 보다 보편적인 인간 구원의 행위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사회의 총체적 의미에 있어 서의 노동자는 도시 빈민, 농어민을 포함하는 생산 대중 을 의미한다. 이들은 상호 밀접한 관계를 갖고 있다. 산 업화의 진행 과정에서 농촌을 떠난 농민은 대부분 노동 자가 되고, 산업 재해와 힘겨운 노동을 더 이상 할 수 없 는 나이가 되어 노동계를 떠나야 하는 노동자는 대부분 도시 빈민이 된다. 이들은 현대 세계의 물질적 생산을 지 탱하면서도 그 성과로부터 소외된다는 점에서 본질적으 로 하나이다. 따라서 이와 같은 인식은 노동자 사목을 가 난한 사람들 전체와 관련시킨다. 〔역사적 배경〕 18세기 중엽 영국에서 시작된 산업 혁 명은 19세기 유럽에 중대한 사회 변동을 초래하였다. 산 업 혁명이 성취되고 자본주의 사회가 확립됨에 따라, 생 산력은 비약적으로 발전하였으나 실업, 빈곤, 빈부의 심 한 격차가 사회적 불안정을 조성하였고, 경제 질서, 진보 의 문제보다도 안정의 과제가 더 중요시되었다. 특히 19 세기 말부터 20세기 초에 생산과 자본의 집적 · 집중에 기초를 둔 독점의 발생은 자본주의 발전의 일반 원칙이 되었다. 결국 물질적 진보에 따른 경제적 관념은 경제 활 동과 도덕 질서 사이의 관계를 무관한 것으로 만들어, 노 동자들에 대한 기업인들의 무자비한 착취가 이루어졌다. 그러는 동안 마르크스 사상은 그 후계자들에 의해서 발 전되어 가고 급속하게 국가 권력을 장악하면서 노동자 계급을 정복해 나갔으며, 노동자들은 점점 교회를 떠나 게 되었다. 하지만 영국의 매닝(H.E. Manning) 추기경, 독 일의 케틀러(W.E. von Kettler) 주교, 미국의 기본스(J.Gibbons) 추기경 등 교회의 몇몇 선각자들은 노동 문제 해결에 적극적이었다. 〔교회의 노동자 사목〕 사회 교리 반포를 통한 교황들 의 대처 : 교황 레오 13세는 가톨릭 사회 회칙의 효시인 <노동 헌장>(Rerum Novarum, 1891)을 발표하면서 노동자 의 권리를 옹호하였다. <노동 헌장>에서 자본과 노동의 권리와 의무를 다루면서 사유 재산을 옹호하는 한편, 자 본가들이 노동자들에 대한 착취에 강력히 항의하였다. 여기서 레오 13세는 먼저, 위정자의 임무가 모든 계층의 복리를 증진하는 것과, 특히 가난하고 약한 노동자의 노 동 조건을 개선하는 것, 즉 분배 정의를 실천하는 것임을 천명하였다. 또한 노동자의 임금 결정에 있어서 시장 법 칙의 극단적 적용에 대해 비판하면서 "최소한의 검소하 고 안락한 생활을 유지하기에 충분한 임금"을 지불할 것 을 촉구하였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노동 조 합의 결성을 지지한 것으로, 이는 자연법과 공동선이 요 구하는 것인 만큼 국가도 이러한 권리를 침해할 수 없다 고 천명하였다. <노동 헌장>은 노동자들에 대한 보편 교 회 최초의 체계적이고 공식적인 관심 표명이었으며, 이 후의 사회 회칙과 다른 교회 문헌들이 설 수 있는 굳건한 초석이 되었다. 이러한 <노동 헌장>의 정신은 이후 독일 에서 히즈 신부의 노력으로 1919년 ‘노동 헌장의 정신 을 따라서' 라는 말로 시작되는 노동 관계법이 통과되는 성과를 가져왔고, 미국에서는 라이얀(J.A. Ryan) 신부에 의한 미국 노동 관계법 제정에 크게 기여하였다. 특별히 독일과 미국 법률이 전세계에 영향을 미쳤다는 점에서 <노동 헌장>의 영향은 전세계적이라고 말할 수 있다. <노동 헌장>의 성과를 평가하면서 시작하는 <사십 주 년>(Quadragesimo Anno, 1931)은 교황 비오 11세에 의해 발표되었다. 그는 전세계가 대공황으로 시달리고, 사회 의 경제적 토대가 흔들리고 있을 때에 이 회칙을 써, 가 난한 노동자들에 대한 교회의 관심을 확대시키고, 그들 을 억압하는 제도에 대하여도 비판하였다. 이 회칙은 노 동 문제를 사회 구조의 문제로 바라봄으로써, <노동 헌 장>의 인식의 폭을 훨씬 더 넓히고 있다. 또한 이 문헌은 사회 · 경제 문제에 대한 교회의 권위를 극명하게 논함으 로써, 교회의 노동 문제에 대한 가르침의 본질, 그 방법 과 목적을 명시적으로 다루었던 문헌 중의 하나이다. 교황 요한 23세가 <노동 헌장> 70주년을 기념하여 발 표한 <어머니와 교사>(Mater et Magistra, 1961)는 처음으로 개발 도상국들의 상황에 대해 언급함으로써, 가톨릭 교 회의 사회적 가르침을 더 심화시키고 있다. 이 회칙은 노 동자의 정당한 임금에 대한 옹호와 더불어, 기업의 운영 에 있어서 노동자들의 참여를 주장한다. 그리고 노동 문 제를 포함한 사회 문제를 전세계적 관점에서 제시함으로 써, 부유한 나라와 가난한 나라의 상호 의존성을 촉구하 고 있다. 교황 요한 23세의 두번째 회칙 <지상의 평화> (Pacem inTerris, 1962~1963)는 지난 세기 동안의 노동자의 변화를 지적한다. "저들은 특히 사회 경제계에 있어서의 저들의 권리들을 주장함으로써 시작하였고, 다음 저들의 운동은 정치적 평등을 주장하는 방향으로 확대되었으며, 끝으로 더욱더 향상된 문화의 혜택을 획득하기에 이르렀 다." 따라서 "노동자들은 인간 사회의 모든 부문에, 즉 사회적 · 경제적 · 문화적 공생활에 자격이 있는 인간으 로서 처우되기를 원한다" 고 강조하고 있다. 교황 바오로 6세는 <민족들의 발전>(Populorum Progressio, 1967)을 발표하면서 경제 계획과 개발 증진을 위한 원조를 옹호하고 무역 관계에 있어서 평등을 강조한다. 국제적 차원의 개발 문제만 전적으로 다루었던 이 회칙 은 전쟁에 소요되는 경제 자원 문제를 폭로하며 평화의 기본으로서 경제적 정의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그의 또 다른 회칙 <팔십 주년>(Octogesima Adveniens, 1971)은 경 제 문제가 정치적 해결을 요구한다는 것과, 노동 문제에 대해 상이한 지역에서 상이한 접근법이 채택될 수 있음 을 인정하였다는 점에서, 지역 교회의 노동 문제에 대한 자율적이고 적극적인 대처를 지지하고 있다. 교황 요한 바오로 2세는 <노동하는 인간>(Laborem Exercens, 1981)을 발표하면서 노동의 문제를 사회 문제의 중심에 놓고 있다. 이 회칙은 인간이 노동의 적절한 주체 라고 선포하면서, 물질보다 노동의 우위성을 강조하고 노동의 영성을 폭 넓게 전개시키고 있다. 즉 "노동은 주 체적인 면에서 볼 때 항상 인간의 행위(actus personae)이 다. 따라서 영과 육의 전인간이 노동에 참여한다. 믿음과 희망과 사랑의 인도를 받는 인간의 영혼 편에서의 어떤 내적인 노력은, 이러한 점들을 통하여 개개 인간의 노동 이 하느님 앞에서 가지는 의미를 부여받게 되기 위해서 필요하다. 그리고 그러한 의미 때문에, 노동은 그와 관련 된, 다른 정상적이고 특별히 중요한 요소들과 동등하게 구원 과정 안에 들어간다. 따라서 교회는 노동의 영성 교 육을 특별한 의무로 인식하고 있다." <노동 헌장> 100주 년을 기념하여 발표된 그의 또 다른 문헌인 <백 주년> (Centesimus Annus, 1991)은 동유럽 붕괴시 교회와 노동자 들의 운동 간의 만남을 다루고 있다. 이는 지난 세기 동 안에 교회가 노동자에게 기울인 일관된 관심의 결실로 받아들일 수 있다는 점에서, 100년 전 교회를 떠났던 노 동자들의 복귀로 이해할 수 있다. 교황 레오 13세 이후 발표된 사회 회칙은 전 세기에 걸쳐 축적되어 온 독특한 체험으로부터 발전되어 왔으며, 이는 가톨릭 학계의 사 상적 유산이 되어, 교회와 사회 교리 형성에 공헌하였다. 특히 100여 년 동안 지속된, 노동 문제에 대한 교회의 가르침은 노동의 참된 의미, 즉 자본에 대한 노동의 우위 성을 강조하였고, 노동하는 주체로서의 노동자들의 권리 를 옹호하였으며, 노동 세계의 복음화에 많은 기여를 하 였다고 할 것이다. 노동자들의 사도직 운동을 통한 사목적 실천 : 산업 혁 명 이후 새로 출현한 무산자 계급은 고향인 농촌을 떠나 공장에서 착취당하며 비참한 주거 환경에서 살았고, 그 들의 자녀들인 7~8세의 어린이들도 공장에서 일해야 했다. 산업 혁명의 결과, 정치적으로 신흥 자본 계급이 형성되면서 군주 제도는 1789년 프랑스 혁명으로 무너 지기 시작하였고 공화정이 생겨났다. 이 과정에서 군주 제도의 유지를 원하였던 교회는 보수적일 수밖에 없었기 에, 결과적으로 큰 타격을 받았으며 공화정 정부에 재산 과 지위를 빼앗기고 말았다. 이런 정치적 상황에서 교회 는 불안을 느낀 나머지 사회에 대해 폐쇄적인 태도를 취 하게 되었다. 교회는 활발하였지만 그들의 신앙은 사회 문제와는 별 관계 없이 개인적인 구원에 머물렀다. 즉 교 회는 신자들의 개인적인 성화를 위한 선교 활동을 하였 을 뿐, 산업화로 인한 새로운 사회 문제에 대해서는 제대 로 관심을 보여 주지 않았다. 인간다운 생활을 할 수 없 었던 노동자들은 신앙 생활까지도 하기가 어려웠다. 게 다가 교회마저 그들의 처지에 별 관심을 보여 주지 않자, 많은 노동자들은 교회를 떠나서 그 당시에 전 유럽을 휩 쓸던 새 사회 이념, 즉 마르크스주의를 신봉하게 되었다. 1891년 5월 15일 교황 레오 13세가 발표한 회칙 <노동 헌장>은 그 당시로는 전혀 새로운 사회 교리였지만, 공 산당은 노동자들을 이미 조직화하였고 많은 노동자들은 그들의 운명을 공산당에 맡겼다. 그리고 교황이 회칙을 발표한 후에도, 교회는 이 사회 문제에 대하여 오랫동안 주춤거렸다. 20세기에 들어와서 벨기에의 카르딘(J. Cardijin) 신부 (1965년, 추기경)는 이 중요한 문제에 대한 구체적인 해결 책을 찾아내었다. 1925년에 가톨릭 노동 청년회(J.O.C : 이하 가노청)를 세운 것이다. 그 당시 벨기에의 노동자들 가운데에는 사회주의자들이 많았는데, 그들은 교회를 반 대하였다. 카르딘 신부는 젊은 노동자들 사이의 선교 운 동인 가노청을 통해서, 젊은 노동자들이 성서를 연구하 고 복음의 빛으로 그들의 생활을 관찰하며 사회 안에서 사도직(투사)을 수행하도록 지도하였다. 가노청 활동을 통해서, 젊은 노동자들 스스로가 주체가 되어 동료들에 게 그리스도의 메시지를 전하며 복음적인 사회를 건설하 고, 하느님으로부터 받은 인간의 존엄성을 되찾도록 조 직적으로 운동을 펼쳐 나갔다. 이후 가노청 운동은 급속 도로 발전하여 국제적인 조직을 갖추어 나갔다. 결혼을 하고 가노청을 떠난 선배들은 가노청의 연장으로서, ’가 톨릭 노동 장년회' (C.W.M : 이하 가노장)를 결성하였다. 이는 부부가 회원이 되어 노동계에서 사도직 운동을 더 욱 폭 넓고 심도 있게 펼쳐 나가기 위한 것으로, 노동계 안에 존재하는 교회이다. 다른 노동자들과 같은 조건과 환경 속에서 그들과 함께 인간다운 사회 · 노동계를 건설 해 나가는 가노장의 투사들은, 우선 자신의 환경인 노동 계에서 동료들과 이웃에게 그리스도의 복음을 증거 · 증 언하였다. 교회를 떠나간 노동 계급에게 복음을 전하는 성직 중 심주의가 한계에 부딪치자 평신도 사도직이 절실히 필요 하게 되었고, 이 운동들은 제2차 바티칸 공의회 정신에 매우 충실한 선구적 평신도 운동이 되었다(교회 31, 33항 ; 평신도 13, 18, 19항). 〔한국의 노동자 사목〕 한국 주교단의 활동 : 한국은 1876년 개항으로 세계 자본주의 체제에 편입된 후, 산 업화를 추진해 왔지만, 1960년대 초반까지는 농업 인구 가 전체 인구의 대다수를 차지하는 전통적 사회 구조를 유지해 왔다. 그러나 1960년대 중반 이후 공업화 정책 을 본격적으로 추진하여 1960~70년대에 고도 경제 성 장을 이룬 결과 사회 구조는 급속히 변화되었고, 이런 과 정 속에서 노동자들의 삶은 성장을 위한 희생 제물이 되 어 성장의 그늘 속에 파묻혀 버리고 말았다. 한국 주교단 의 노동 문제에 대한 본격적 개입은 <우리의 사회 신조> (1967)라는 주교단 공동 선언을 발표하면서부터였다. 주 교단은 한국 사회에 본격적으로 출현하여 법의 보호도 받지 못하고 착취당하는 노동자들을 위해서 사회 · 경제 문제 전반에 걸친 가톨릭 교회의 입장을 처음으로 명백 히 천명하였다. 가노청에 대한 최초의 탄압과 모략이라 고 할 수 있는 1968년도 강화도 심도직물의 노사 분규 에 신속히 대처하여, <강화도 사건에 대한 주교단의 공 동 성명>(1968. 2. 9)과 <사회 정의와 노동자 권익 옹호를 위한 성명서>(1968. 2. 24)를 각각 발표하여, 한국 주교들 은 가난하고 짓밟히는 노동자들을 위한 착한 목자의 모 습을 유감 없이 보여 주었다. <오늘의 부조리를 극복하자>(197)는 제목으로 발표된 주교단 공동 교서도 노동 현실을 개탄하고 있다. 노동 문 제에 대한 주교단의 관심은 1972년에 "사회 정의위원 회"를 구성하게 하였고, 두번째 <우리의 사회 신조>를 발 표하게 하였다. 하지만 1972년 유신 헌법 제정으로 인 한 학생 중심의 저항과 수난에 교회의 관심이 집중되면 서, 상당 기간 노동 문제에 관한 주교단의 공식적 표명은 줄어들었다. 1984년 한국 천주교회 200주년 기념 사목 회의 의안 중 하나인 '특수 사목' 에서 '노동자 사목' 이 발표되었 다. 여기서 '노동자 사목' 은 한국 노동 현실을 분석하고 가노청의 활성화, 노동자 사목 전담 사제, 신자들에 대한 올바른 노동관의 교육 등 노동자 사목의 방향을 제시하 고 있다. 이 노동자 사목 의안은 노동 문제에 대해 많은 분량을 할애하였고 체계적으로 분석하였으며 본격적인 의미에서의 사목을 제시했다는 점에서 커다란 의의를 지 닌다. 1985년 한국 주교 회의에서 발표한 <이 시대의 인 간화를 위하여>는 노동자들의 인간다운 삶의 회복을, 인 간화된 사회 건설을 위한 핵심 과제로 제시하였다. 그때 까지 발표된 사회 사목 교서 중에서 이 교서는 노동자의 생존 문제를 가장 폭 넓게 언급하고, 이에 대한 교회의 과제를 세밀하게 정리 · 제시한 교서이다. 한국 교회의 노동자 사도직 운동의 발전 : 한국 가노청 은 1958년 서울대학병원에서 순전히 평신도들에 의해서 회합이 시작되었다. 그 뒤 박성종 신부가 지도 신부로 부 임하고, 같은 해 11월에 카르딘 주교가 한국을 방문하여 첫 투사 선서식을 집전함으로써 발족을 보게 되었다. 그 러나 당시 한국의 처지는 아직 본격적인 산업 사회로 들 어가지 못한 사회 단계와 노동 상황이었으므로, 1963년 까지의 초기 가노청은 아직 청년 노동자들 가운데서 활 동하는 청년 노동자들의 운동이라고 할 수 없었다. 다만 그때까지 청년 활동이 전무하던 상태에서 가노청은 교회 내 청년 단체로서의 활발한 봉사 활동으로 교회로부터 각광을 받았던 것이다. 1963년 이후 공화당 정권이 차관에 의한 수출 주도형 경제 개발 계획의 일환으로 공업화를 추진하자 가노청의 활동은 점차 임금 노동자 속으로 파고들어 갔다. 현장 노 동자 중심으로 회원을 확장하는 가운데 가노청 활동은 점차 노조 결성이나 임금 인상 등 노동 조건 개선 활동으 로 관심을 돌리면서 노동 운동에 뛰어들어 노동자 교육 활동을 하였다. 그리고 1969년 이후 본격적인 산업화가 추진됨에 따라, 노동 문제가 심각한 사회 문제로 등장하 게 되었다. 수출 주도형 경제 개발에 따른 저임금 정책과 외국인 투자 기업을 위한 특례법 제정 등, 노동자의 권리 가 유린당하는 상황 속에서, 가노청의 활동도 많은 어려 움을 겪었다. 노동의 가치와 인간의 존엄성을 깨우쳐 주 는 가노청의 활동은 저임금을 유지하기 위해서 노동 운 동을 억압하고 노동자의 의식을 위축시키는 당국의 노동 정책과는 상반되는 것이었다. 1960년대 조직 확대와 기 구 정비의 시기를 거친 가노청은 1970년대에 아직 일반 노동 운동의 역량이 미약한 상태에서 조직 경험의 전수 와 대책 활동으로 노동 운동의 성공에 많은 도움을 주었 다. 따라서 정부 당국은 언론을 통해 가노청을 용공 내지 는 공산주의로 왜곡 보도하는 등의 탄압을 가하였다. 본 당 청년 단체로서 환영받던 가노청이 사회에서는 정부와 기업의 탄압을 받고, 교회에서는 성직자들과 평신도들로 부터 냉대를 받기에 이르렀다. 이런 와중에서도 가노청 은 성서 연구를 통해서 자신들의 환경과 삶을 조명함으 로써 노동계, 특히 젊은 노동자들의 복음화에 기여하였 다. 정기적으로 피정을 하면서 신앙 생활을 심화시켜 나 갔고 사회 조사를 통하여 노동자 탄압에 대한 대처 방법 등을 연구하였다. 근로 기준법과 노동 조합에 관한 교육 도 실시하였다. 그리고 노동자들의 자질을 향상시키고, 노동에 대한 긍지와 노동하는 인간의 존엄성을 일깨워 주기 위한 교육에 노력을 기울였다. 이렇게 가노청은 한 국의 산업화 초기 과정에서 노동 운동과 노동 현장의 복 음화에 커다란 기여를 하였다. 한국 가노장은 30년이 넘는 역사를 가지고 있지만, 조 직이 아직 매우 미약한 상태이다. 그래도 가노장 회원들 은 노동자 정신과 노동법 등을 알리기 위해서 교육하고 사회 분석을 시도하며 노동자의 사회적 활동을 촉구하고 있다. 그리고 노동자의 존엄성을 위한 활동으로서 노동 자의 가치를 각성 · 이해시키기 위한 활동을 하며 남녀 평등 운동을 전개하고 작업장 안전과 위생 관리, 환경 보 호와 공해 방지 등의 운동을 펼쳐 나가고 있다. 또한 비 그리스도인에 대해 개방된 자세를 견지하고 이민 노동자 를 위한 활동도 하고 있다. 가노장의 회원들이 부부이기 때문에, 일상 생활 속에서 그들에게 우선 중요하게 다가 오는 문제는, 가정 성화와 자녀들에게 올바른 의식을 심 어 주는 교육 문제이다. 그리고 대부분의 가난한 노동자 들의 경제적인 고통은 회원들로 하여금 항상 경제적인 생활의 향상을 함께 추구하게 한다. 어려운 조건에서도 가노장은 국제적인 교류를 통해 연대 의식을 강화해 나 가면서 공동체 의식을 갖고, 나라와 지역에 따라 어느 정 도의 차이는 있지 만 비슷한 상황에 놓인 노동자 자신들 의 문제를 공동 대응해 나가려고 애쓴다. 노동계 전반에 걸쳐 교회가 건설되고, 복음적 질서의 확립으로 회원들 자신을 비롯한 각 노동자들, 환경과 생활 조건, 기타 사 회 모든 분야에 변화가 일어나도록, 가노장 회원들은 끊 임없이 기도하고 복음 연구와 사도직 활동을 추구하고 있다. 그 밖에 한국 교회의 노동자 배려 : 내외국인 노동자들 을 위한 노동 문제 상담소가 개설되어 있다. 기숙사를 운 영하기도 하며 노동자들의 교육을 위한 여러 단체도 있 고 노동자들에게 무한정으로 개방하는 공간도 제공하고 있다. 〔과제와 전망〕 교회의 역사가 짧고 산업화의 역사 또 한 짧은 한국에서 교회가 활발하다고는 하나, 노동 현장 에 복음적 가치를 침투시키고 사회를 변화시키는 노동자 사목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며 실제로 노동자 사목의 규 모는 매우 미약하다. 최근 소련과 동유럽 공산주의 정권 의 붕괴 이후 자본주의만이 유일한 이데올로기인 양 비 쳐지고 있어서 세계적으로나 한국에서나 노동 운동이 악 화 일로에 있고, 교회의 노동자 사목 또한 더 약해지고 있다. 실제로 노동부가 1992년 8월 3일에 발표한 바에 따르면, 산재로 사망한 노동자 숫자는 1980년에 1,273 명, 1987년 1,761명, 1990년에 2,236명, 1991년에 2,299명으로 계속해서 늘어나는 추세이다. 노동자들의 처지는 갈수록 어려운데도 불구하고, 사회와 교회는 현 대 세계의 중심 문제인 노동 문제에 대해서 더 무관심해 지고 있다. 그러므로 성직자들과 평신도들은 교회의 본 성상 더욱더 노동자들에 대한 사목적 투신을 아끼지 말 아야 한다. 공산주의는 사라지고 있지만, 자본주의 사회에 분명하 게 자리잡고 있는 무신론적 성향은 결코 약화되지 않고 있다. 더구나 자동화 · 기계화로 인하여 개인주의로 더욱 이끌리고 물질적 안락에 안주하려는 유혹을 강하게 받는 현대인, 특히 노동자 대중에게 교회는 사목적 배려를 아 끼지 말아야 한다. 동아시아에서 냉전 시대가 완전히 사 라지는 것이 실감나는 이때에, 교회는 자기 나라 노동자 들만 돌볼 것이 아니라 시야를 넓혀 다른 나라 노동자들 도 염두에 두어야 한다. 그리고 한반도의 통일을 대비하 여, 북한에서 노동자 사목을 어떻게 시작하고 전개해 나 가야 할지에 대해서도 준비해야 한다. 한반도를 중심으 로 한 국제 경제의 변화에 따라, 한국의 산업 구조가 변 화함은 물론 한국 노동자들의 노동과 생활의 양상도 바 뀔 것으므로 이를 주시하고 있어야 한다. 이에 따라 새로 운 형태의 가난한 사람들에 대한 사목적 대처도 요구될 것이기 때문이다. 예수의 직무를 닮고 증거하기 위해서, 한국 교회는 유 교의 영향이 강한 동아시아 지역에서 노동자들과 같은 조건으로 노동하고 생활하며, 고통과 희망을 나누면서 평신도 노동자들과 함께 선교하는 노동 사제의 배출에 대해서도 진지하게 고려해야 할 것이다. (→ 가톨릭 노 동 운동 ; 가톨릭 노동 장년회 ; 가톨릭 사회 운동) ※ 참고문헌 두봉 외, 《노동과 인간화》, 한국천주교중앙협의회, 1981/ 오경환 외, 《자본주의 사회와 가톨릭 교회》, 한국사목연구소, 1991/ 호인수 외, 《노동의 복음》, 일과 놀이, 1991/ 김춘호, 《사회주의 와 가톨릭 사회 교시》, 분도출판사, 1991/ Herve Carrier S.J., The Social Doctrine of the church revisited, Pontificim consilium de iustitia et pace, 1990(강대인 역, 《사회 교리란 무엇인가?》, 한국천주교중앙협의회, 1992)/ Donal Dorr, Optionfor the poor, Dublin, 1983(오경환 역, 《가난한 이를 위한 선택》, 분도출판사, 1987)/ Leo 13, Rerum Novarum, Vatican, 1891(한국 천주교 정의평화위원회 교육 분과 역, <노동 헌장>, 성바 오로출판사, 1982)/ Pius 11, Quadragesimo Ammo, Vatican, 1931(오경환 역, <사십 주년>, 한국천주교중앙협의회, 1987)/ Johannes 23, Mater et Magistra, Vatican, 1961(이해남 역, <어머니와 교사>, 한국천주교중앙 협의회, 1964)/ Johannes 23, Pacem in Terris, Vatican, 1963(정규만 역, <지상의 평 화>, 성바오로출판사 1983)/ Gaudium et spes, Vatican, 1965(김 남수 역, 《공의회 문헌》, 한국천주교중앙협의회, 1969)/ Paulus 6, Populorum Progressio, Vatican, 1967(김남수 역, <민족들의 발 전>, 한국천주교중앙협의회, 1976)/ Octogesima Adveniens, Vatican, 1971(김남수 역, <노동 헌장 반포 80주년>, 한국천주교중앙협의회, 1971)/ Johannes Paulus 2, Laborem Exercens, Vatican, 1981(범선배 역, <노동하는 인간>, 한국천주교중앙협의회, 1983)/ - Sollicitudo Rei Socialis, Vatican, 1987(성염 역, <사회적 관심>, 한국천주교중앙협의 회, 1988)/ -, Centesimus Annus, Vatican, 1991(김춘호 역, <백 주년>, 한국천주교중앙협의회, 1991)/ 《한국 천주교 200주년 사목 회의 의 안 노동자 사목》, 한국천주교중앙협의회, 1984/ 한국 가톨릭 노동 청년회, 《한국 가톨릭 노동 청년회 25년사》, 분도출판사, 1986/ 《노동 장년》 12, 14, 16호. 〔朱秀郁〕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