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예

奴隷

〔라〕servus · 〔영〕sla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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흙을 버리고 있는 노예(아시리아 부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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흙을 버리고 있는 노예(아시리아 부조).


〔고대 오리엔트 문헌에 나타난 노예〕 인간으로서의 합 당한 권리나 자유가 인정되지 않고 다른 사람에게 매여 갖가지 노무에 종사하며 물건처럼 매매 · 양도되기도 하 는 노예의 존재는 이미 원시 문자 시대 초기(기원전 3500 경)의 그림이나 조각 혹은 그림 글자에 나타난다. 메소 포타미아에서는 도시 국가들의 패권 교체기(기원전 2800 경)부터, 이집트에서는 고왕조(제1~2왕조) 시대부터 상 당히 구체적인 노예상이 확인된다. 노예 공급원(供給源) 은 전쟁 포로들이었다. 처음에는 모두 살육하였으나 노 예의 사회적 의의와 사용 가치가 증대함에 따라 그들을 죽이지 않고 노역을 시키며 재산의 일부로 간주하게 되었다. 〔성서상의 노예〕 구약성서 : 주로 다음 세 가지 히브리 어가 노예(종)를 뜻하는 말로 사용되고 있다. 에베드(עַבֵד : 남자 노예, 799회), 아마(אָמָה : 여자 노예), 나아르(נַעַר : 남 · 여종) 이 밖에도 몇 가지가 더 있으나 유동적으로 사 용되고 있다. ① 공급원 : 반유목민적 생활을 하던 이스라엘 부족들 이 가나안 땅에 정착하여, 소가축 사육자층, 농민층, 도 시 정주 문벌층이 구성되면서 노예 제도 역시 새로운 양 상을 띠기 시작하였다. 일찍부터 노예의 주요 공급원이 었던 전쟁 포로들이(민수 31, 9. 18. 26 신명 21, 10-13) 왕정 시대로 접어들면서 늘어나고, 특히 다윗 시대(기원 전 1000~961)부터 포로들(거의 가나안 종족)은 대부분 왕 가 노예로 다루어졌다. 포로의 일부는 전리품으로서 성 소 노예로 바쳐지고(민수 31, 40 ; 여호 9, 22-23 ; 에제 44, 7-9 ; 에즈 8, 20), 또 일부는 군대 지휘관이나 고관들 에게 분배되기도 하였다(신명 20, 10-14 ; 21, 11 ; 판관 5, 30). 솔로몬(기원전 961~922)의 대대적인 건설 사업에 왕가 노예들이 동원되었는데(1열왕 9, 20-21), 이들은 후 대에 '솔로몬의 종들' 이라 불리었다(에즈 2. 55 ; 느헤 7, 57). 사회 계층이 지배층과 서민층으로 분화하면서 노예 의 수요가 증가함에 따라 상인들을 통해 매매되는 노예 들(창세 17, 27 ; 레위 25, 44-46)과, 노예의 자식(씨종)들 이 상당한 공급원이 되었다(창세 14, 14 ; 17, 12 ; 전도 2, 7). 왕국 분열(기원전 922) 시대로 접어들어서는 대토지 소유제가 발전하면서 가난한 자유인인 부모가 자녀를 노 예로 팔아넘기기도 하고, 또 생계를 위해 스스로 노예가 되는 사람도 늘어갔다. 이런 복합적 요인으로 채무 노예 가 새로운 공급원이 되었다. 노예는 사유 노예와 국가 노 예로 대별되는데, 전자는 자유인 가정의 가내(家內) 노 예로서 수공업 및 농업 생산에 상당한 역할을 하였고, 후 자는 성전 노예와 왕가 노예를 가리킨다. ② 처우 : 인근 국가들에 비해 이스라엘에서의 노예 처우는 관대하였다. 물론 노예는 그 처자와 함께 주인의 소유 재산(동산)으로 간주되었으므로(출애 21, 21) 매매 되고 증여되고 저당 잡히기도 하고 유산의 일부로 상속 되기도 하였다(레위 25, 46). 집회서에서는 "당나귀에게 는 여물과 몽둥이와 짐을 주고, 종에게는 빵과 매와 일을 주라" 고 하면서도(33, 25), 또한 "그를 형제처럼 다루라"고도 한다(33, 32). 욥은 더 뜻 깊은 말을 한다. "나를 모 태에 생기게 하신 바로 그분이 그(종)들도 내시지 않으셨 던가?"(31, 15) 성서는 자주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조상 들이 이집트에서 노예 생활을 한 것을 상기시키며(신명 15, 15 등), 노예들에게 너그럽게 대하기를 권고한다. 실 상 율법은 노예들을 여러모로 보호하였다. 노예를 죽인 주인은 벌을 받아야 하고(출애 21, 20. 21), 노예에게 중 상을 입혔으면 자유의 몸으로 풀어 주라고 하였다(출애 21, 26. 27). 도망한 노예를 보호하는 법도 있었다(신명 23, 16). 그러나 율법은-특히 후대로 내려오면서-이방 인 노예와 히브리인 노예를 엄밀히 차별하였다. 히브리인 노예는 혹사하지 말고 품꾼으로 여겨야 하며 (레위 25, 39-43), 6년 동안 부린 뒤 7년째는 데리고 들어 온 아내와 함께 해방시켜야 하였다(출애 21, 2-3 ; 신명 15, 12 이하). 외국인에게 팔려 간 히브리인 노예의 해방 을 위해 그 가족이나 친척은 물론 공동체도 각별한 배려 를 해야 하였다(레위 25, 47-54). 이방인 노예는 원칙적 으로 회년(50년째)에야 해방의 기회가 주어졌다. 이방인 노예라도 할례를 받으면 가족의 일원으로 간주되어 축제 에도 참석하고(출애 12, 44 ; 신명 12, 12. 18), 제관의 종 은 성별된 음식도 먹을 수 있었다(레위 22, 10-12). 여자 노예는 남자 노예와 결혼한 경우, 남편이 전매 (轉賣)되거나 해방되면 운명을 같이하였다. 그러나 어떤 주인에게 속해 있다가 주인의 주선으로 혼인한 경우에는 남편이 해방되더라도 자식과 함께 주인의 소유로 남아 있어야 하였다(출애 21, 4) . 여자 노예는 대개 주인이나 그 아들의 첩이었다. 율법은 이들을 보호하며, 마음에 안 든다고 전매하는 것을 금하고, 정식으로 혼인을 하였을 때는 자유를 주어야 하였다(출애 21, 7-11). 노예의 가격 은 나이, 성별, 정신적 · 신체적 특질에 따라 큰 차이가 있었다. 전쟁 때에는 공급이 증가하여 값이 떨어지고 평 상시에는 값이 오르곤 하였는데, 이스라엘에서는 노예의 평균 몸값이 은 30세겔이었다(1세겔은 11.5g, 출애 21, 32). 특기할 것은 이스라엘 사람들이 바빌론 유배의 역경 속에서 노예 개념을 종교적으로 성찰하고 승화시켜, 대 속적(代贖的)인 수난과 죽음으로 인류에게 봉사하는 '야 훼의 종' 이라는 가장 승고한 이상을 정립한 점이다(이사 42, 1-4 ; 49, 1-6 ; 50, 4-9 ; 52, 13-53, 12). 예수는 이 '종' 의 의미를 결정적으로 변화시켰다(마태 20, 26-28). 신약성서 : 노예(종)를 가리키는 그리스어로는 주로 δοῦλος(도올로스, 127회)가 사용되고 있으나, παίς(파이 스), ὑπηρέτης(위페레테스) 등도 같은 의미로 쓰이는 경 우가 자주 있다. 예수 시대의 팔레스티나에는 로마나 그 리스의 대도시들에서와 같이 사회 불안의 요인이 된 강 력한 노예 계급은 없었으나, 가내 노예는 꽤 많았던 것 같고, 성서에는 헤로데 왕가의 노예, 대제관의 노예 이야기도 나온다. 노예들은 구약 시대와 마찬 가지로 인간 대접을 받지 못하고 물건이나 시장 상품처 럼 주인들의 자의(恣意)에 맡겨져 있었다. 유대인들은 레위기 25장 39-41절에 따라 동족 노예들의 조건을 완 화시키기는 했으나, 콤란의 엣세네파를 제외하고 노예 제도의 폐지 같은 문제는 전혀 거론하지 않았다. 예수도 그런 시대적 정황을 바꾸려는 정치적 혁명이나 사회적 · 경제적 개혁을 시도하지는 않았다. 오히려 그가 가장 염려한 것은 죄로 말미암아 모든 사람에게 씌워진 '정신적 노예의 굴레' 였다. 예수는 그 죄와 악덕으로부 터의 해방을 강조하였던 것이다. 그러나 초기 교회에서 는 입교하는 노예들이 늘어감에 따라 그들과 자유인들의 신분 차이를 어떻게 극복하느냐가 중요한 현실적 문제로 부각되었다. 여기서 "그리스도 안에서는 이미 자유인도 없고 노예도 없다"는 결정적인 원칙이 천명되었다(1고린 12, 13 ; 갈라 3, 28 ; 골로 3, 11). 바오로 사도는 이 원칙 을 부연하여, 주님 안에 부르심을 받았을 때 노예였던 사 람도 이미 주님에 의해 해방된 몸이고, 이와 마찬가지로 부르심을 받았을 때 자유인이었던 사람도 그리스도의 노 예라고 하였다(1고린 7, 21-24). 바오로 신학의 이 영향을 받은 이른바 수인(囚人) 서 간의 저자들과 사목 서간의 저자들은 노예들에게 그 신 분 특유의 덕성을 지니도록, 곧 주인에게 복종하고 기쁜 마음으로 일을 하도록 격려하고(골로 3, 22-25 ; 에페 6, 5-8 ; 1디모 6, 1 ; 디도 2, 9), 고생하는 노예들에게는 우 리를 위해 수난당하고 본보기를 남겨 준 "그리스도의 발 자취를 따르도록"(1베드 2, 18-25) 권고한다. 숙명적으로 모욕과 고난을 당하는 노예들이야말로, 현세에서 숱한 시련을 겪으며 주님을 따라야 하는 그리스도인의 전형으 로 공언되고 있다(1베드 1, 6-9 ; 2, 22-23 ; 3, 9. 14-18). 무엇보다도 바오로 사도가 도망한 노예 오네시모를 그 주인 필레몬에게 돌려보내면서, 그를 노예로서가 아니라 그리스도 안에서 사랑하는 형제로 맞아들이기를 호소한 편지는 참으로 감동적이다. 이 서간으로 미루어, 초기 교 회는 입교한 노예들을 형제적 사랑으로 신앙 공동체 안 에 받아들임으로써 하나의 중대한 표징을 설정하고, 적 어도 노예들의 비참한 운명을 바꿀 수 있는 길을 열 어 놓았음이 확실하다. 그리스도의 메시지에서 필연적으로 결론될 수 있는 노예의 해방이 제도적으로 실 현되기까지는 그 후 오랜 세월이 걸렸다. 그러나 해 마다 12월 10일이 되면 '세계 인권의 선언' 이 기념 되는 오늘날에도, 미천한 이들과 멸시받는 이들을 깊 은 애정으로 받아들이라는 원시 교회의 권고는 여전히 절실한 윤리적 요구로 남아 있다. ※ 참고문헌  N. Brockmeyer, Antike Sklaverei, Erträge der Forschung 116, Darmstadt, 1979/ R. Schnackenburg, Die sittliche Botschaft des Neuen Testaments, Band I(Von Jesus zur Urkirche), Freiburg-Basel-Wien, 1986, pp. 250~253/ R. Gayer, Die Stellung der Sklaven in den paulinischen Gemeinden und bei Paulus, BernFrankfurt a. M., 1976/ E. Schweizer, 《EvTh》 32, 1972, pp. 502~506/ Daniel-Rops, La vie quotidienne en Palestine au temps de Jésus, Hachette, Paris, 1961(황춘흥 . 김윤주 초역, 《예수시대의 팔레스 티나》 상, 분도출판사, 1968, pp. 117~121). 〔金允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