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자
老子
글자 크기
3권

1 / 2
도가의 시조 노자.
중국 춘추(春秋, 기원전 770~481) 말기의 사상가. 도가 (道家)의 시조. 노자의 성명에 관한 고증은 이론이 많지만 오늘날까지 의 고증에 의하면 성은 '노' (老), 이름은 '담' (聃)이라는 설이 타당한 것으로 보인다. 《사기》(史記)는 그의 성을 '이' (李), 이름을 '이' (耳)로 기록하였다. 이에 의거하여 노자의 성명은 이미 이이(李耳)이며 노자란 노〔늙은〕 선 생의 존칭이라는 주장이 대두되었다. 그러나 선진(先秦) 시대는 성 아래 자(子)를 붙여 존칭하였으므로 만일 노 자의 성이 이씨라고 하면 마땅히 이자(李子)라고 칭하였 을 것이다. 또한 선진 시대의 《장자》(莊子), 《순자》(筍 子), 《한비자》(韓非) 등 고서는 노자의 이름을 한 번도 이이라고 기록하지 않았으며 노자 또는 노담이라고 기록 하였다. 그러므로 노자의 성은 노, 이름은 담이라 하겠 다.노자의 생애에 대하여는 상세히 알려지지 않고 있다. 노자는 초인(楚人) 또는 진인(陳人)이라고 하는데 이는 그의 고향으로 알려져 있는 고현(苦縣)이 본래는 진나라 에 속하였으나 춘추 말기 초나라에 의해 점령당했기 때 문이다. 그는 주(周)나라에 오래 머무르면서 수장실(守 藏室)의 사관(史官)을 지냈고 주나라가 쇠망하자 관직을 버리고 은둔하였다. 그의 죽음에 대하여는 알려지지 않 고 있다. 노자의 생존 연대에 대한 고증은 많은 논란이 있는데 논쟁의 요점은 공자와의 관계로 집약된다. 즉 노 자의 연대가 공자 전인가 후인가 하는 문제이다. 《사기》 는 공자가 노자를 방문하여 '예' (禮)를 물었다고 하였 다. 이 기록의 진위에 대한 이론은 분분하다. 그런데 공 자와 노자가 상봉한 기록은 《사기》뿐 아니라 전국 시대 의 《장자》, 《예기》(禮記), <공자가어>(孔子家語), 《여씨 춘추》(呂氏春秋) 등에도 나타난다. 이와 같이 공자가 노 자를 방문했다는 설이 유가 경전을 비롯한 계통이 다른 학파의 자료에 출현되는 점으로 보아 노자는 공자와 거 의 같은 시기에 생존하였다는 것을 알 수 있다(노자에 관 한 고증 문제는 《古史辨》 4권 참조). 〔시대 배경〕 노자가 생존하였던 춘추 말기와 그 뒤를 이은 전국(戰國) 시대는 중국의 정치, 사회, 경제, 문화 등 모든 분야에서 급격한 변화가 일어났던 격변의 시기 였다. 춘추 전국 시대의 변화는 오랫동안 주 왕조를 지배 하던 종법 봉건 제도(宗法封建制度) 자체의 모순과 농경 술의 발달이 가져온 생산력의 증가로 인한 경제 구조의 변화에 기인한다. 주대(周代)의 봉건 사회 조직은 상당히 조밀하고 복잡 하였다. 각 계층간의 관계는 고정되어 있었고 권리와 의 무는 물론 모든 생활 양식이 신분, 지위에 따라 분별되었 다. 복잡한 계층간의 질서는 '예' (禮)로 유지하였다. 따 라서 '예' 는 주대의 윤리, 도덕 등 사회 규범이 되었으며 또한 질서를 중요시함으로써 봉건 제도를 공고히 하는 정치적 기능을 수행하였다. 그러나 천자를 중심으로 사회 각 계층을 철저히 분별 하여 고정시킴으로써 천하의 질서를 유지하던 봉건 제도 는 춘추 전국 시대에 이르러 오히려 제후국의 독립, 자주 세력을 강화하게 됨으로써 천하를 혼란의 국면으로 몰아 넣었다. 인간과 인간, 계층과 계층 사이의 질서를 유지하 던 전통 문화의 중심인 '주례' (周禮)는 부단한 정치, 사 회의 변동으로 말미암아 더 이상 질서 유지의 기능를 발 휘하지 못하였다. 하늘이 규정한 것으로 여기던 예법 제 도의 종전 권위는 사라지고, '예' 는 인간 스스로 만들고 마음대로 고칠 수 있는 것이라고 생각되었다. 천자는 상 천(上天)을 대표하는 신성 불가침적인 존재라는 믿음은 사라졌고, 신하나 백성이 군주를 살해하거나 축출하기도 하였다. 그러한 상황에서 '예' 의 의미나 권위는 더 이상 인간 마음을 다스릴 위력을 발휘하지 못하였다. 봉건 제 도가 붕괴하자, 지식인층을 형성하고 있던 사(士) 계급 과 평민 중의 부농과 상인들은 정치 참여를 요구하며 새 로운 학설과 새로운 방법으로 시대의 상황에 부응하는 활약을 하였다. 당시는 철제 농기구 사용과 우경 등 농업 의 발전으로 평민 중 부농이 출현했는가 하면 상업의 발 전으로 거상(巨商)이 출현하였다. 농공상업의 발전과 생 산량의 증가는 원시 공동체적 경제 구조에 변화를 일으 켰고 또한 이러한 변화는 매매를 불허하던 토지 제도에 변화를 가져왔다. 토지 제도의 개혁으로 새로이 형성된 사 계급과 부농, 상인을 중심으로 한 지주 계층은 경제력 을 토대로 하여 정치 무대에 참여하였으며 신분 상승을 기도하였다. 경제 구조의 변화는 종법 봉건 제도의 사회 질서를 파 괴하였고 주 왕실은 몰락하였다. 계층간의 정치적 충돌, 패권을 꿈꾸는 제후국들의 병합을 위한 전쟁, 또한 그 뒷 바라지에 시달리며 삶의 터전을 잃은 백성들이 도처에서 일으키는 폭동 등으로 춘추 전국의 정국은 혼란으로 빠 져 들었다. 그러나 춘추 전국 시대는 사회 질서의 파괴와 정치적 혼란만 야기되었던 시대는 아니다. 정치, 사회 질 서의 파괴와 함께 자유 경제 체제가 발전할 수 있었고 자 유로운 학술 토론이 왕성할 수 있었던 시대였다. 격동과 개혁의 시대에 처해 많은 사상가들은 우주 만물의 기원 과 존재, 정치, 경제, 사회, 문화에 대한 견해를 세상에 내놓았는데 이들을 제자 백가(諸子百家)라고 한다. 제자 백가들의 한결같은 소망은 난세를 구하는 것이었다. 그 리고 노자도 그들 중의 하나였다. 〔현실 정치 사회 문제의 제기〕 노자는 당시 정국이 혼 란되고 백성들이 생활고에 시달리는 원인이 인위(人爲 혹은 有爲)적 정치에 있다고 지적하였다. 백성이 굶주리 는 원인은 위정자가 과중한 세금을 징수하기 때문이고, 백성을 다스리기 힘들게 된 원인은 위정자가 인위적으로 다스리기 때문이며 백성이 죽음을 무서워하지 않는 원인 은 위정자가 분수에 넘는 사치한 생활을 하기 때문이라 고 하였다(75장) 그는 위정자와 백성 간의 불공평한 관 계를 천도(天道)에 비교하여 비판하였다. "천도는 남는 것을 덜어 부족한 것을 보탠다. 인도(人道)는 그렇지 않 고 부족한 것을 덜어 남는 것을 보탠다" (77장). 인위적인 정치의 시행 방법은 '예' 와 '법령' 이다. 노 자는 형식적인 예문(禮文)의 범람이 정치, 사회의 혼란 을 야기했다고 보았다(38장). 예문의 번성은 결과적으로 백성의 논밭을 황폐시켰고 창고를 텅 비게 하였다. 그러 나 귀족은 문채가 화려한 옷을 입고 날을 세운 칼을 차고 음식이 아무리 좋아도 싫증을 내고 재산이 넘쳤다(53 장). 예문은 인간 탐욕의 도구로 전락하였다. 예문은 천 하를 다스리기에 부족하며 오히려 천하의 혼란을 조성한 다고 본 노자는, 예문의 중요한 요소인 '인의예성지교 리' (人義禮聖智巧利)를 버릴 것을 주장하였다(18~19 장). 또한 당시 백성에게는 예를 대신하여 형벌이 적용되 고 있었다. 노자는 형벌로 백성을 다스리는 것을 반대하 였다. "금하는 것이 많으면 백성은 가난해지고, 법령이 많으면 도둑이 많아진다"(57장). 백성은 법으로 금하면 법을 피하기 위해 더욱 간교해지고 형벌로 다스리면 더 욱 난폭해지며 난폭해진 백성은 죽음조차 두려워하지 않 는다. 백성이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으면 더 이상 다스릴 수 없게 된다(72, 74~75장). 인위적인 '예' 나 '법' 은 인 간을 더욱 간교하고 포악하게 만들며 그로 인해 세상의 혼란이 야기된다는 것이다. 인문 세계를 형성하는 인위적인 정치의 기초는 지혜이 다. 그러나 노자는 유한한 인간의 지혜로 세상을 다스리 겠다는 것은 잘못이라고 지적하였다. "지혜가 나오자 큰 허위가 생겼다"(18장). 유한한 지적 능력으로 사물을 판 단 · 분별하는 지혜는 오히려 편견에 기울고 위선으로 진 실을 가린다. 그러므로 지혜로 나라를 다스리는 것은 나 라를 해치는 것이다(65장) 지혜는 사물을 가치 있는 것 과 없는 것으로 구분한다. 그러한 구분에 따라 사람들은 가치 있는 것을 추구하게 되며 또한 명리(名利)와 재화 를 대상으로 분쟁을 일으킨다. 그래서 노자는 소위 가치 있는 현명함을 숭상하지 않으면 백성을 다투지 않게 할 수 있으며, 얻기 어려운 재화를 진귀하게 여기지 않으면 백성을 도둑질하지 않게 할 수 있고, 탐욕을 일으킬 만한 것을 보이지 않으면 민심을 어지럽히지 않을 수 있다고 하였다(3장). 인위적인 정치는 지배 계층과 피지배 계층 사이의 격 차와 빈익빈, 부익부 현상을 빚고 백성들의 저항과 폭동 을 도발한다(53, 75, 79장). 지혜를 기초로 한 인문 세계 의 형성은 물질의 발달과 생활의 사치, 허식, 기교의 범 람을 가져왔다. 따라서 세상은 탐욕과 기교로 사악해진 인간들의 명리(名利) 경쟁과 전쟁으로 혼란에 빠졌다 (12, 24, 46장). 그러므로 노자는 천하란 신묘한 그릇과 같은 것이므로 그것을 훔쳐서 인위적으로 다스릴 수는 없으며 인위로 다스리면 천하를 망치고 천하에 집착하면 잃을 것이라고 경고하였다(29장). 〔이상 정치론〕 인위적인 정치와 그 기초인 지혜를 부 정하고 사회적 병폐를 지적한 노자는 시대적 문제를 해 결할 방안으로 '무위' (無爲) 정치술과 '소국과민' (小國 寡民)의 이상향을 제시하였다. 무위 정치는 위정자가 백 성을 자신의 도구로 이용하거나 또는 예, 법령 등으로 간 섭 · 억제하지 않고 백성들 스스로 살아가도록 내버려 두 는 것이다(5, 37장). 그러나 백성이 스스로 편안히 살 수 있도록 하는 것은 위정자의 큰 업적이다. 그런데도 위정 자는 자신의 공로를 드러내지 않고 항상 뒤로 물러나 있 으므로 백성들은 위정자가 있는 줄도 모르며 스스로 모 든 일을 이루어 간다고 알고 있다(17장). 위정자가 무위를 하면 백성은 스스로 변화하여 삶을 이끌어 간다. 즉 위정자가 '예' 나 '법령' 을 번잡하게 만 들지 않고 고요함을 좋아하면 백성들은 스스로 바르게 되고, 위정자가 자신을 위한 일을 만들지 않으면 백성들 은 스스로 부유해지고, 위정자가 욕심이 없으면 백성들 은 스스로 순박해진다(57장). 그래서 노자는 '무위' 로 다 스리면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 같지만 모든 것을 한다고 주장하였다(3, 37장) '무위' 는 위정자의 덕이 '무' (無)의 경지에 이르러야 시행될 수 있다. 마음을 완전히 비우는 '무욕' , 유한한 지혜를 초월하는 '무지' , 자신을 앞세우거나 드러내지 않는 '겸허' , 물같이 백성을 감싸는 '부드러움' , 백성을 자신과 하나로 여길 줄 아는 '포용' 등의 덕이 요구되며 그러한 덕을 갖춘 위정자를 '성인' 이라고 한다(2~3, 7, 22~29, 47, 49, 57~58, 63~64, 70, 73, 77, 79, 81장). 성 인은 그 덕으로 백성을 무욕, 무지하도록 변화시킨다. 지 혜와 욕망은 항상 상호 작용을 하며 인간의 순박한 진실, 자연성을 가리고 교활하게 변화시킨다. 그러므로 백성의 마음을 비게 하고 의지를 약하게 하는 반면 배를 채워 주 고 골육을 강하게 하여 무지, 무욕의 상태에서 생활하도 록 해야 한다(3, 12장). 즉 과분한 삶의 욕망도, 지력이나 기교에 의한 작위도 없이 자연 본능의 만족 상태에 머물 도록 해야 한다. 노자는 성인에 의해 다스려지고 소박한 백성이 평화롭 게 사는 이상적인 사회를 문명의 이기가 있어도 사용하 지 않고, 그대로의 의식주 생활에 만족하며, 나라와 나라 사이는 경계가 없어 닭과 개의 울음 소리를 서로 들을 수 있는, 그러나 형식적인 빈번한 왕래가 없는 백성수가 적 고 작은 나라라고 묘사하였다(80장). 노자의 이상은 원 시 사회 인간의 소박하고 어린아이와 같이 진실한 덕성 (28, 55, 57장), 그리고 신뢰를 기초로 한 인간 관계를 회 복(8, 17, 23, 38, 49, 81장)하는 것이었다. 〔존재의 근원인 '도'〕 노자의 정치, 사회, 문명 비판의 이론 근거는 ‘도’ (道)이다. 그는 위정자가 마땅히 지녀 야 할 덕성과 행하여야 할 정치의 모범으로서 ‘도' 를 제 시하였다. 즉 이상적인 위정자와 백성의 관계를 ’도' 와 '만물' 의 관계를 통하여 제시한 것이다. '도' 는 노자 사상의 중심 관념으로 《노자》에 76번 나 오며 여러 가지 다른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중국 고서에 서 ‘도' 는 길, 방법, 의리 등의 의미가 있었으며 후에 우 주와 인생의 변화 원리 또는 법칙으로 의미가 변화되었 다. 그리고 노자는 여기에 새로운 의미를 부여하였다. 즉 그는 '도' 로써 전통적 '천' (天)을 대신하였다. 따라서 고대 '천' 의 몇 가지 중요한 특성이 ’도' 개념 중에 나타 난다. 그러나 노자는 ‘도' 의 존재 양식은 '무' (無)이며 '무위' 로써 만물을 대하고 만물 스스로 변화하도록 버려 둔다고(3장) 함으로써 주재적, 인격적인 '천'' 과는 다름 을 분명히 하였다. '무위' 의 '도' 는 일체 존재의 근원이 며 시작으로 우주 만물이 형성되기 전부터 존재하였고 만물은 모두 ’도' 에 의해 생겼다(1, 4, 40, 42, 51장). 그런데 노자는 "도를 도라고 말할 수 있으면 그건 영 원한 도가 아니다"(1장)라고 하였다. 인간의 인식 능력으 로 파악할 수 없기 때문에 이름을 붙일 수도 없다. ‘도’ 는 일정한 시공 안에 존재하는 구체적 사물이 아니라 '무형' (無形)한 존재이다. 구체적 사물은 시공의 변화에 따라 생멸 변화하지만 ‘도' 는 시공의 한계를 초월하여 존재하기 때문에 외적 조건의 변화에 따라 생성, 소멸하 지 않는다(14, 21, 25장). 그러므로 노자는 유한하고 상 대적인 사물을 지칭하는 언어와 문자로는 무한하고 절대 적인 ’도' 를 지칭할 수 없다고 하였다. 상대적인 현상계 를 초월하는 절대의 '도' 를 노자는 '무' 라고 표현하였 다. '도' 가 '무' 라는 것은 '전체' 라는 의미로서 일체 존 재의 화해와 통일을 이룬다는 것이다. 즉 ‘도' 는 무형하 기 때문에 각양각색의 서로 다른 우주 만상을 하나로 포 용하고 또한 다양한 형상을 구분하여 각자가 제 모습대 로 스스로 살아가게 하기 때문에 만물에 대하여 '무위'하다고 하는 것이다. 〔도의 변화 운동〕 무형한 ‘도' 는 유형한 만물을 생성 한다(1, 40장). 현상계의 모든 상반적 모순 현상은 ’도'의 운행 중에 통일된다. 노자는 ‘도' 를 항상 변화 운동하 는 존재로 보았다. ’도' 의 변화에는 만물을 낳는〔生〕 과 정과 수렴하는〔復歸〕 과정이 있다. '도' 는 하나를 낳고 하나는 둘을, 둘은 셋을, 셋은 만 물을 낳는다(42장). 그런데 '도' 가 만물을 생성하는 것은 인격적인 창조주가 자신의 의지대로 만물을 '창조' 한 것 과는 다르다. 만물의 생성은 '도' 의 변화 운동에 의해 자 연히 생성되는 것이다. "천하 만물은 유(有)에서 생겼고 유는 무(無)에서 생겼다" (40장). '무' 에서 '유' 가 생겼다 는 말은 어떤 일정한 시기에는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았 고 후에 '유' 가 생겼다는 뜻이 아니다. 이것은 무형의 유 (無形之有)가 유형의 유(有形之有)로 변화하면서 만물 이 생기는 '도' 의 운행 과정을 말한다. '도' 의 변화 과정 에서 '무' 와 '유' 의 관계는 '유' 는 '무' 의 변화에서 생기 고 '무' 는 '유' 에 의해 현현된다. '무' 와 '유' 는 다르면 서도 분리할 수 없는 일체이다. '도' 는 '무' 에서 '유' 로 변화하지만 또한 '유' 에서 '무' 로 변화하는데 이것은 만물이 근원으로 되돌아가는 〔復歸〕 과정이다. 노자는 '귀근' (歸根) 관념을 중요시하 였다(16, 28, 40장). "만물이 함께 자라지만 나는 되돌아 감을 볼 뿐이다. 무릇 만물은 무성하게 자라지만 결국에 는 근원으로 되돌아갈 뿐이다"(16장). 근원으로 복귀하 는 길은 근원에서 만물이 생성되는 길과 상반된다. 생성 의 길은 하나〔一〕에서 여럿〔多〕으로, 단순에서 번성으로 향하는 길이지만 복귀는 반대로 여럿에서 하나로, 번성 에서 단순으로 변화하는 길이다. 노자는 "반(反)이 도의 움직임이다"(40장)라고 하였다. 여기서 '반' 은 '복귀' 와 '반대' 의 두 가지 의미가 있다. 복귀의 길은 만물이 즐기 는 생성의 길과 반대로 가야 한다. '도' 는 번성하는 사물 을 하나로 자신 안에 수렴한다. "현묘한 덕은 깊도다! 멀 도다! 사물과 반대로 돌아간다. 그런 후에 큰 따름〔大順〕 에 이른다" (65장). 사물은 마치 생성의 길만 있는 듯 생 명의 번성함만을 추구하지만 '도' 는 생명을 다시 수렴한 다. 이러한 '도' 의 운행 이치를 따르는 것이 도의 덕을 체득하는 것이다. '도' 의 무위, 자연적인 변화 운동은 생성과 귀근이라 는 상반되는 현상을 하나로 연결하고 있다. 즉 생성과 복 귀는 나타난 현상만으로 보면 서로 상반되지만 '도' 의 관점에서 보면 다만 하나의 '도' 의 변화하는 양면일 뿐 이라는 것이다. 이와 같이 노자는 '도' 의 운행을 통하여 현상계의 상반되는 요소들, 즉 '유' 와 '무' , '변화' 와 '불변' , '다' (多)와 '일' (一), '동' 과 '정' , '순' (順)과 '역' (逆)을 하나로 통일하였다. 〔상대적 가치관의 초월〕 노자는 '도' 와 만물은 하나로 연결된 관계라고 보았다. "천하는 시작이 있고 그것으로 근원〔母〕을 삼는다. 이미 그 근원을 얻었을진대 만물 〔子〕도 알고 이미 만물을 알면 다시금 근원을 지킨다" (52장). '본' (本)과 '말' (末), '모' (母)와 '자' (子), '도'와 '현상' 을 어느 한 쪽만 아는 것이 아니라 서로 연결된 관계로 파악하고, 현상을 보면서도 근원인 '도' 를 보며, '도' 의 입장에서 만물을 하나로 통일하여 보는 것이 중 요하다. 그러나 노자는 현상계 사물 사이의 차이성을 부 정하지 않았다. 그는 현상계가 대립적 요소로 구성되어 있음을 인정하였다. 다만 그는 대입적 요소를 어떤 관계 로 파악하는가 하는 문제를 중요시하였던 것이다. "유와 무는 서로 낳고, 어려움과 쉬움은 서로 이루며, 긴 것과 짧은 것은 서로 겨룬다" (2장). 세상의 모든 대립적 현상 은 피차 의존하여 이루어지며 서로 분리해서 존재할 수 없는, 하나로 연결된 관계라는 점을 그는 강조하였다. '도' 와 만물이 일치하고, 또한 만물 사이의 상이적(相 異的) 요소들이 대립적 관계가 아닌 연결된 관계를 이룬 다는 관점에서 노자는 상대적인 분별을 기초로 한 세상 의 모든 가치 판단을 부정하였다. 아름다움과 추함, 선과 불선, 옳고 그름, 높고 낮음 등의 판단은 그 기준이 절대 적인 것이 아니라 어떤 입장에서 보는가에 따라 변하는 상대적인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상대적인 가치를 추구하기 위해 서로를 해치며 불행을 자초한다. 모든 상대적인 만물을 하나로 포용하는 '도' 처럼, 모 든 사람을 포용하는 사람을 노자는 '성인' 이라고 하였 다. "성인은 항상 사람을 구원하기 좋아한다. 따라서 사 람을 버리지 않는다. 항상 사물을 구제하기를 좋아한다. 따라서 사물을 버리지 않는다"(27장). 모두를 구하는 길 은 차별을 버리는 것이다. 좋은 사람에게 좋게 대하고 좋 지 못한 사람에게도 좋게 대하며, 믿을 수 있는 사람은 믿고 믿을 수 없는 사람도 믿어 주는 사람, 그런 사람만 이 세상을 구원할 수 있다(49장). '선' 은 '선' , '악' 은 '악' , '믿음' 은 '믿음' , '불신' 은 '불신' 으로 갚는다면 인간 사이의 원한과 불신은 끊임없이 엉키고 꼬여 갈 것 이다. 그래서 노자는 "원한을 덕으로 갚으라" (63장)고 호 소하였다. 이것은 원한과 은혜라는 구별이 주는 속박으 로부터 자신을 자유롭게 하는 것일 뿐 아니라, 세상의 원 한 맺힘까지도 풀어 주어 자유롭게 하는 길이다. 노자는 이러한 태도로 세상에 임하는 사람이야말로 '도' 를 체득 하고 '무위' (無爲)를 행하는 성인이며, 성인이 세상에 임하면 세상은 평화롭게 될 것이라고 하였다(49장) 〔주요 저서〕 노자의 저서로 전해 오는 것은 《노자》 한 권뿐이다. 《도덕경》이라고 알려져 있는 《노자》가 정말 노자 자신이 저술한 것인지에 대해서는 오늘날까지 많은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 그러나 《노자》는 문체가 간명하 며 전체의 이론 전개가 일관성이 있고 서술에 있어 자신 을 '나' 〔我, 吾〕로 칭하고 있는 점 등을 보아 여러 사람 의 글을 편집한 것이 아니라 기본적으로는 저자 한 사람 에 의해 저술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그러나 《노자》가 책으로 완성된 것은 상당히 후대의 일이며, 그 과정에서 구절의 순서가 바뀌기도 하고 다른 사람들의 글이 삽입 되기도 하였다. 《노자》는 전체가 81장으로 구성되어 있 는데, 1~37장은 '도경' (道經), 38~81장은 '덕경' (德 經)이라고 한다. 그런데 1973년 마왕퇴(馬王堆)에서 출 토된 <백서 노자〉(帛書老子)는 덕경이 앞에 나오고 도경 이 뒤에 나온다. 〔의의 및 평가〕 노자가 본 당대의 문제는 인문의 발달 과 그에 따른 상대적 가치관이 존재의 진실과 근원인 '도' 를 가린 것이었다. 따라서 그는 현상계의 상대적 가 치관의 한계를 초월하여 만상을 하나로 통일하고 포용하 는 무한한 '도' 로 되돌아갈 것을, 시대의 문제를 푸는 열 쇠로 제시하였다. 이와 같은 노자의 초월 정신과 그가 제 시한 형이상(形而上)의 '도' 는 도가 사상의 중심으로 이 어져 현실적이고 실천적인 면을 중시한 유가 사상과 함 께 중국 사상사에 있어 양대 산맥을 이루었다. 노자 사상은 이미 선진(先秦) 시대에 도가의 장자(莊 子), 유가의 순자(筍子), 법가의 한비자(韓非子) 등이 각 각 다른 학설을 형성하는 데 영향을 주었다. 특히 그의 '도론' (道論)은 중국 형이상학의 발전에 크게 기여하였 다. 그러나 '자연' 에 대한 지나친 신뢰로 인간의 능력과 노력을 경시하였다는 지적과 함께 그의 초월 정신과 '무 위 청정' (無爲清靜)의 처세술은 비록 본의는 아니라 할 지라도 소극적인 인생 태도와 도피로 흐를 가능성을 내 포하고 있다는 비판을 받았다. (→ 《도덕경》) ※ 참고문헌 王弼, 《老子道德經注》/ 河上公, 《老子道德經注》/ 釋 德清, 《老子道德經憨山解》/ 焦竑 《老子翼》/ 金敬琢 《老子》, 한국자 유교육협회. 〔任金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