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트, 마르틴 (1902~1968)

Noth, Mart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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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전 후 독일에서 활약한 가장 탁월한 프로테스탄트 구약학자 중의 한 명. 1902년 8월 3일 독일 드레스덴 (Dresden)의 고등학교 교사 집안에서 3형제 중의 맏아들 로 태어나, 에르랑겐(Erlangen) 로스토크(Rostock) 라이 프치히(Leipzig) 대학에서 수학하였다. 특히 라이프치히 에서 유명한 키텔(R. Kittel) 교수의 마지막 세미나에 참 석한 노트는 그에게서 커다란 영향을 받았다. 그러나 그 에게 중요한 스승은 알트(A. Alt) 교수였다. 알트가 노트 에게 끼친 영향은 참으로 지대하다고 볼 수 있는데 그것 은 노트의 작품을 통해서 잘 나타나 있다. 고대 이스라엘 의 역사를 재구성하는 일이나 또 전승의 과정을 추적하 는 일에서, 노트는 알트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 특히 이 스라엘 땅, 팔레스티나 지역의 지리 · 역사에 관한 지식 과 관심 및 열정은 모두 알트의 영향이라고 볼 수 있다. 노트는 알트가 운영해 왔던 '성지 고고학 독일 프로테스 탄트 연구소' (Deutsches Evangelischen Institut für Altertumswissenschaft des Heiligen Landes)의 소장으로 일하기 위해 서 독일 본(Bonn) 대학에서 은퇴하기 3년 전인 1964년 에 그의 거주지를 이스라엘로 옮겼을 정도로 이스라엘 땅에 관한 그의 관심과 사랑은 지대하였다. 그는 거기서 발굴 작업을 하던 중 1968년 5월 30일 갑자기 쓰러져 65세의 나이로 세상을 뜨고 말았다. 사인은 혈전증으로 알려져 있으며 베들레헴 공동 묘지에 묻혀 있다. 노트는 1926년에 <고대 근동 인명(人名)의 맥락에서 본 이스라엘의 인명 연구>(Die israelitischen Personnennamen im Rahmen der gemein-semitischen Namengebung)로 박사 학 위를 취득하였고, 이 주제를 교수 자격 논문으로 발전시 켰다. 이 연구는 이 분야에서 거의 독보적인 위치를 차지 하고 있는데, 그 이후로 나온 연구들은 거의 모두 그의 이론을 답습하고 있는 형편이다. 그는 1930년 괴닉스베 르크(Königsberg)에서 정교수로 취임하였고 거기서 제2차 세계대전을 치른 후, 1945년 본 대학으로 자리를 옮겨 1967년 은퇴할 때까지 계속 본 대학에서 가르쳤다. 그 곳에서 그는 두 번이나 총장직을 맡았는데 사람들은 본 대학을 소개할 때마다 "뛰어난 학문적 열정과 원칙 그리 고 명석함을 갖춘 당대의 구약학계의 지도자 노트 교수 를 모신 대학"이라고 말할 정도였다. 노트 자신은 국가 정치나 교회 정치와는 거리가 먼, 거 구의 전형적인 위엄 있는 학자였다. 그는 인기를 끌거나 거대한 학파를 형성하고자 노력하지 않았다. 그러나 연 구에 충실하고 또 연구 결과들이 시류에 따라 변하지 않 는, 정확한 근거와 이론을 바탕으로 한 것인 만큼, 결과 적으로 많은 구약학자들은 그의 학파의 일원이 되었다. 그의 동료로는 쾨닉스베르크 대학의 신약 교수 슈니빈트 (J. Schniewind)를 들 수 있다. 특히 바르트(K. Barth)와의 만남은 그에게 특별한 것이었다. 바르트가 교회 교의학 에서 구약 주석에 관해 언급한 것을 노트는 높이 평가해 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바르트의 '말씀의 신학' 에 대 해서는 시간이 지남에 따라 점점 더 유보적인 태도를 지 녔다. 노트의 주요 관심사는 역사에 있었다. 많은 사람 들은 그를 '신명기 역사가의 아버지' 라고 불렀고 그의 연구들은 과학적이고 분석적이고 역사적이었다. 그는 마치 자연 과학자가 대상을 다루듯이 성서의 내용과 연 구 대상들을 객관화하면서 분류하고 정리하여 질문에 대답하려고 하였기 때문에 그의 연구 방향을 신학적이라고 보기는 힘들 것이다. 따라서 조직 신학적 관심을 가지고 구약 서적을 읽고 답을 찾기를 원하는 사람은 그 에게서 실망감을 느끼게 될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는 경 건한 신앙으로 성서를 사랑하였고, 그가 신명을 바쳐 얻 은 연구 결과가 신학적으로 미친 영향은 이루 말할 수 없이 크다. 그가 제2차 세계대전에 참가하였을 때에도 늘 히브리어 성서를 몸에 지니고 다니면서 시간이 날 때 마다 읽었다는 일화는 널리 알려져 있다. 노트는 벨하우 젠(J. Wellhausen), 알트 등이 이룩해 놓은 연구 결과를 종 합하면서, 그것을 토대로 광범위하고 폭 넓게 연구의 틀 을 잡아 나갔다. 그는 선입견이나 교리적 체계를 미리 앞 세우지 않고 히브리 성서와 고대 근동 문헌, 이스라엘 땅 의 지리학 등을 정확히 조사하고 연구하려고 노력하였 다. 노트는 구약학계를 뒤흔들어 놓은 중요한 이론을 연달아 제시한 구약학자로 유명하다. 그가 제시한 열두 지파 동맹(Zwölfstämmebund) 가설은 그중에서도 특히 유명한 데, 노트는 1930년에 발표한 <이스라엘 열두 지파 동맹 체 제>(Das System der Zwölf Stämme Israels)에서 이 이론을 전 개함으로써 국가 성립 이전의 이스라엘 역사를 새롭게 보는 계기를 마련하였다. 노트는 창세기 49장과 민수기 12장의 열두 지파 명단이 서로 다른 것에 주목하고 이들 열두 지파 명단이 판관 시대 때의 것이라고 보면서 그리 스, 로마 등지의 암픽티오니(Amphiktyonie) 제도와 유비 적으로 고대 이스라엘도 열두 지파 동맹체로 이루어졌었 다는 가설을 제시하였다. 고대 이스라엘은 중앙 성소, 가 령 세겜, 실로, 길갈 등지에 있었던 성소에서 계약의 하 느님 야훼를 섬기는 공동의 종교 의식을 통하여 결합된 열두 지파 혹은 여섯 지파로 구성되었다는 것이다. 그리 고 각 지파는 한 달 또는 두 달씩 교대로 중앙 성소를 돌 보면서, 평상시에는 종교 공동체로 또 전투시에는 공동 으로 전쟁에 임하는 공동체로 운영되었다고 주장하였다. 노트는 이렇게 국가 성립 ·이전의 고대 이스라엘의 역사 를 재구성함으로써 제2차 세계대전 이후 가장 강하게 구 약학계를 뒤흔들어 놓게 되었다. 이 이론은 찬반의 논리 가 현재까지 지속되고 있고 부분적인 수정은 필요하지만, 이런 지파 동맹체의 틀을 고려하지 않고는 고대 이스 라엘의 형성과 결속을 이해하기 힘들다. 또 1943년에 내놓은 《전승사학적 연구》(Überlieferungsgeschichtliche Studien)에서 노트는 여호수아서 주석서 (1938)에서 전개한 신명기 역사 학파(Deuteronomisten)에 관한 이론을 정리하였다. 아이스펠트(O. Eißfeldt)가 그를 '신명기 역사가의 아버지' 로 칭하였듯이, 이 책은 여호 수아서에서 열왕기까지의 신명기 역사서 이해에 결정적 공헌을 하였다. 노트는 그때까지 계속되어 오던 시도, 즉 역사서에서 오경(五經) 설화의 야휘스트 · 엘로히스트 · 제관기 자료를 찾으려던 시도를 거부하면서, 신명기 정 신에 입각해 역사가 정리된 신명기 사가적 역사서와 사 경(Tetrateuch, 창세기~민수기) 사이의 문체적 연결을 부인 하였다. 그에 의하면, 여호수아서에서 열왕기에 이르는 역사서들은 기원전 550년에 유대에서 신명기적 정신에 의해 역사를 평가하고 옛 자료들을 수집하여 신명기적 역사가들이 편집한 역사서이다. 따라서 이들 책 속에서 정확한 역사의 기록을 읽는다기보다는 신명기 역사가들의 역사에 대한 신학적 해석을 읽게 된다는 것이다. 노트가 쓴 책 중에서 또다시 커다란 논란을 야기시킨 것은 1948년에 발표된 《오경의 전승사>(Überlieferungsgeschichte des Pentateuch)인데, 이 책에서 노트는 오경의 형성이 신앙 고백적 양식에서부터 출발하였으며 오랜 전 승 과정을 걸쳐 오늘날의 형태를 갖추게 되었다고 보았 다. 그는 오경의 기초가 되는 신앙 고백으로 출애굽 전승 을 꼽았고 그 밖에 시나이 산 전승, 광야 전승, 족장 전 승, 정착 전승 등의 전승군들을 꼽았다. 그는 각 전승군 들을 또 세부적으로 나누어 주(主) 전승과 세부 전승으 로 분리하였는데, 여기서 주목할 만한 사실은 모세의 역 사적 자리가 출애굽 전승이나 시나이 산 전승에 있는 것 이 아니고, 신명기 34장 5-6절에 나오는 모세의 무덤 전 승에 있는 것으로 드러난다는 것이다. 그러나 모세의 무 덤 전승만을 역사적 모세와의 결합이 가능한 것으로 보 는 가설은 많은 학자들에 의해 거부되고 비판받고 있는 형편이다. 노트의 연구 작업의 총체적 종합이라고 볼 수 있는 책 은 《이스라엘 역사》(Geschichte Israels, 1950)이다. 이 책은 여태까지 나온 이스라엘 역사서 중에 가장 우수한 수작 으로 손꼽히고 있는데, 고대 근동의 정황까지도 함축성 있게 고려한 훌륭한 역사서이다. 여기서 그는 이스라엘 의 정확한 시작을 지파들이 가나안에 정착한 시대로 보 고 있으며, 이스라엘 역사의 종결을 이스라엘이 로마에 대항할 힘을 완전히 잃은 135년경까지로 보고 있다. 이 밖에 주석집 《독일어 구약성서》(Das Alte Testament Deutsch)에서 출애굽기(1959), 레위기(1962), 민수기(1966) 주석서를 썼으며, 주석집 《성서와 교회》(Bibel und Kirche) 에서는 열왕기 상권 1~16장의 주석(1968)을 썼다. 이스라 엘 땅에 대한지식과 고대 근동의 역사에 관한 지식이 가득 담겨 있는 주석집 《구약성서 편람》(Handbuch zum Alten Testament)에서 여호수아서 주석(1938)이나 《구약성서의 세계》(Die Welt des Alten Testaments, 1940), 구약성서를 그 냥 율법으로 동일시하는 것에 대해 이의를 제기한 《오경 안의 율법》(Die Gesetze im Pentateuch, 1940) 등은 성서 신 학적으로 볼 때 매우 귀중한 작품들이다. 노트의 율법 연 구는 '율법과 복음' 이냐 '복음과 율법' 이냐라는 논전에 기여하였으며, '복음과 율법' 을 주장한 바르트의 견해에 무게를 실어 주었고 나아가 폰 라트(G. von Rad)가 쓴 《구 약성서 신학》(Theologie des Alten Testaments, 1960)에도 많 은 영향을 끼쳤다. 또한 성서 연구 방법에 있어서도 여러 가지 다양한 방법론을 골고루 사용하였는데, 특히 편집 사학적 연구 방법론을 개척한 것으로 높이 평가받고 있 다. 이에 더하여 고고학과 성서 연구와의 관계에 대해서 그는 너무 쉽게 둘을 결합시키지 말 것을 당부하곤 하였 다. 노트는 또한 구약 학술지 발간에도 매우 적극적이어서 커 다란 공헌을 하였다. 《독일 팔레스티나 탐방 협회》(Deutche Verein zur Erforschung Palastina, 1929~1964), 《동방 세계》 (Welt des Oriento, 1947~1964), 《신학과 교회》(Zeitschrift für Theologie und Kirche, 1950~1962), 《구약성서》(Vetus Testamentum, 1951~1959)의 발행인으로 활약하였으며, 그의 주도 아래 《구약성서 주석서》(Biblische Kommentar Altes Testament)라는 주석 시리즈도 발간되기 시작하였다. 이 시리즈에서 그는 사무엘서와 열왕기서의 주석을 맡았으 나 갑작스런 그의 사망으로 열왕기 상권 1~16장까지의 주석서만이 출판되었을 뿐이다. (→ 성서) ※ 참고문헌  K. Galling, 《RGG》 4/ N. Noth, Die israelitischen Personnennamen im Rahmen der gemein-semitischen Namengebung, 《BWANT》3, 10 XIX, Stuttgart, 1928/ 一, Das System der Zwölf Staimme Israels, 《BWANT》4, 1, Stuttgart, 1930/ 一, Das Buch Josua, (HAT》 I. 7. XⅥ, Tuibingen, 1938/ 一, Die Welt des Alten Testaments, Sammlung Töpelmann, 2, Reihe. Bd 3. ХⅥ, Berlin, 1940/ 一, Überlieferungsgeschichtiche Studien I. Schriften der Königsberger Gelehrten Gesellschaft. Heft 2, Halle-Saale, 1943/ 一, Überlieferungsgeschichta des Pentateuch 8, Stuttgart, 1948/ 一, Geschichte Israels 8, Göttingen, 1950/ 一, Könige I , 1~16, 《BKAT》 Ⅸ 1, Neukirchen-Vluyn, 1968/ 一, Das Zweite Buch mose. Exodus, 《ATD》 5, Göttingen, 1959/ 一, Das Dritte Buch mose, Leviticus, 《ATD》 6, Göttingen, 1962/ 一, Das vierte Buch mose, Numeri, 《ATD》 7, Göttingen, 1966/ R. Smend, Deutsche Alttestamentler in drei Jahrhunderten, Göttingen, 1989, pp. 255~275. 〔李慶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