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틀담 수녀회

- 修女會

〔영〕Congregation of the Sisters of Notre Da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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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설자 성녀 빌리아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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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설자 성녀 빌리아르.


1804년 프랑스의 성녀 빌리아르(St. Julie Billiart, 1751~ 1816)가 가난하고 버림받은 어린이들과 청소년들의 교육 을 목적으로 설립한 수녀회. 총 본원은 로마에 있으며, 한국 관구는 인천시 북구 계산2동 40번지에 있다. 〔창설과 영성〕 창립자 빌리아르는 1751년 7월 12일 프랑스 피카르디(Picardie) 지방의 퀴비이(Cuvilly)에서 영 세 상인의 여섯째 자녀로 태어났다. 그녀는 14세의 어린 나이에 스스로 동정(童貞) 서원을 할 만큼 어려서부터 남달리 신앙심이 깊었다. 그러나 1774년 23세 때에 신 경 조직이 마비되는 증세가 나타나게 되고, 1782년에는 의사의 부주의로 회복 불가능한 전신 마비의 불구자가 되어 30년 간을 줄곧 병상에서 지내게 되었다. 온갖 시 련 속에서도 신앙 및 인간성의 회복을 위해 끊임없이 노 력한 빌리아르는 하느님의 사랑에 보답하려는 마음으로 일생을 어린이와 부녀자들의 교육을 위해 바칠 것을 맹 세하고, 뜻을 같이하는 동료들과 함께 1804년 노틀담 수녀회를 창설하였다. 같은 해에 그녀는 예수 성심께 완 치의 은혜를 구하는 9일 기도를 드린 뒤에 병이 완쾌되 는 기적을 체험하고 더욱 전교에 힘써 '걸어 다니는 하 느님의 사랑' 이라고 불리기도 하였다. 창설 이후 끊임없이 발전한 노틀담 수녀회는 빌리아르 가 살아 있을 무렵에도 이미 세계 여러 나라에 전파되었 는데, 1809년에는 수녀회의 본원을 벨기에의 나뮈르 (Namur)로 옮겨 그 정신과 규칙을 계속 이어나갔다. 그 러나 평생을 신앙 전파에 힘썼던 그녀는 과로와 노환으 로 고통에 시달리다가 65세 때인 1816년 4월 8일에 영 면하였다. 빌리아르는 교황 비오 10세에 의해 1906년 5 월 13일에 시복된 후, 1969년 6월 22일 교황 바오로 6 세에 의해 시성되었다. 1823년에는 네덜란드의 아메스포트(Amersfoot)에 새 로 수녀회의 분원이 설립되었는데, 빌리아르의 정신과 수도 회칙은 그대로 계승되었지만 당시 북유럽 나라간의 정치적 여건 때문에 본원에서 분리되어 독자적으로 운영 되었다. 또 1848년 무렵, 독일 쾨스펠트(Coesfeld)에서는 평생을 가난하고 버림받은 어린이들을 위해 헌신할 것을 맹세한 성 람베르트(St. Lambert) 성당 소속 학교의 여교 사 볼브링(Alegonda Wolbring)과 퀼링(Lisette Kühling)에 의해 새로운 노틀담 수녀회가 창설 준비를 하고 있었다. 19세기 중반의 독일도 다른 유럽 국가들처럼 산업 혁명 이 일어난 지 얼마 되지 않았으므로 대부분의 부모들은 공장에 나가 일을 하였고, 이 때문에 아이들은 돌봐 줄 사람이 없어 종교 교육을 받을 기회가 거의 없었다. 또한 프랑스 혁명의 영향으로 교회가 탄압을 받아 수도회가 말살된 상태여서 수도회에 입회하려면 이웃의 다른 나라 로 가야 하는 형편이었다. 이런 상황이었기 때문에 두 여 교사는 그 학교 본당의 보좌인 엘팅(Theodor Elting) 신부 에게 도움을 요청하였으며 엘팅 신부는 그들의 열망을 수도 생활 안에서 확고히 결속시키기 위해 많은 노력을 하였다. 그들의 노력으로 1850년에는 창설자 빌리아르 의 정신을 계승한 네덜란드의 아메스포트 노틀담 수녀회 에서 3명의 회원을 독일의 쾨스펠트에 파견, 수도 생활 을 지도하였다. 같은 해에 독일에서도 빌리아르의 창립 정신과 회헌을 이어받아 새로운 공동체가 설립되었으며 1855년에는 아메스포트 노틀담 수녀회에서 분리되어 쾨 스펠트 노틀담 수녀회로 독립하게 되었다. 점차 발전을 거듭하게 된 쾨스펠트 노틀담 수녀회는 현재 독일과 미국, 브라질, 네덜란드, 이탈리아, 영국, 인도, 인도네시아, 파푸아뉴기니 그리고 한국 등에서 약 6,000명의 회원들이 대학교, 중 · 고등학교, 국민학교, 사회 복지 기관, 의료 기관, 양로원, 고아원, 기숙사, 본 당 등의 사도직 활동을 전개하고 있다. 1993년부터는 아프리카의 모잠비크와 탄자니아, 우간다에도 진출하였 다. 노틀담 수녀회는 창설자를 통하여 전달된 순박함과 겸 손과 순명의 정신으로 기쁘게 살아가는 '성모의 자매들' (Sister of Notre Dame)의 공동체이다. '마리아를 통하여 온 전히 예수께로' (Toute à Jesús par Marie)라는 표어 아래, 모 든 사도직을 하느님의 영광을 드러내기 위해 시행하고 있다. 특히 종교 교육을 통해 가난하고 불쌍한 어린이들 과 청소년들에게 하느님의 좋으심을 선포하고자 하려는 것이다. 〔한국 진출〕 노틀담 수녀회의 한국 진출은 1967년 7 월 7일 독일 쾨스펠트 노틀담 수녀회에서 파견한 3명의 독일 선교사 수녀와, 같은 해 9월 15일 로마에서 초기 양성을 마치고 첫 서원을 한 2명의 한국인 수녀에 의해 시작되었다. 이 진출은 당시 부산교구장이었던 최재선 (崔在善, 요한) 주교의 요청에 의한 것으로, 최 주교는 이 수녀회가 한국에 진출하기 전에 이미 한국인 지원자 들을 독일과 로마에 보냈었다. 1973년에 한국의 첫 지 원자가 수녀회에 입회하여 수련소에서 교육받기 시작했 으며, 그때부터 국내 회원의 양성이 시작되었다. 1987년에는 한국 진출 20주년 행사가 개최되었으며 1992년 10월에는 노틀담 수녀회의 한국 지부가 한국 관 구로 설정되었다. 이를 기념하기 위해 같은 해 10월 31 일에는 한국 진출 25주년 행사 및 본원 증축 축성식을 거행하여 발전의 기틀을 더욱 공고히 하였다. 노틀담 수녀회의 사도직 활동 중에 가장 큰 비중을 차 지하는 것은 유치원 교육과 청소년 교육으로 구분되는 교육 사업이다. 1972년에 부산 부민동에 노틀담 유치원 을 설립하였으며, 1975년에는 경기도 오산에 농촌 어린 이들의 교육을 위한 어린이 집과 유치원을 설립하였다. 또한 1974부터는 인천 박문여자중고등학교의 운영을 책 임지고 있으며, 사회 사업의 일환으로서 1969 ~ 1971년 에는 버스 안내양들을 위한 교양 교육 등을 실시하였고, 1979년에는 안내양 교양 센터를 개원하였다. 1984년 이 안내양 교양 센터가 줄리 학원으로 변경되어, 학습 부 진아의 지도와 방송 통신 고등학교에 다니는 근로 청소 년들을 위한 야학(夜學)의 역할을 하고 있다. 1987년부터는 노틀담 장애자 교육원의 운영도 맡아 장애자들을 위한 직업 · 사회 심리 · 의료 등의 재활 사업 과 지역 사회 자원 활용 및 홍보 사업 등을 벌여 나가고 있다. 1969년부터 1977년까지 운영하다가 수녀회 회원 의 증가로 잠시 중단하였던 서울 계동의 여대생 기숙사 를 1984년부터 다시 운영하고 있으며, 그 밖에 서울, 인 천, 대구, 대전, 수원 등 5개 교구의 여러 본당에서 사목 을 담당하고 있다. 최근에는 부산과 서울의 사회 복지 회 관 및 교구청 사도직, 신학원 강사로도 회원들을 파견하 고 있다. 1995년 현재 수도 가족은 종신 서원자 80명, 유 기 서원자 43명, 수련자 23명, 청 · 지원자 19명이다. ※ 참고문헌  J. Bland, 《NCE》 2, p. 157/ K. Hofmann, Unsere Liebe Frau, 《LThK》 10, pp. 521~523/ 《노틀담 수녀회 한국 진출 25주년 기념 집》, 노틀담 수녀회, 1993/ 백인실, <노틀담 수녀회>, 《교회와 역사》 225호(1994. 2), 한국교회사연구소, pp.18~21 ; 226호(1994. 3), pp. 16~22. 〔편찬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