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산 대건중고등학교 論山大建中高等學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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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산 대건중고등학교 전경.

논산 대건중고등학교 전경.


대전교구 대지학원에서 운영하는 사립 중등 교육 기관. 1946년 3월에 설립되었으며 충남 논산군 논산읍 등 화리 5번지에 소재. 교명인 '대건' (大建)은 한국 최초의 사제인 성 김대건 신부의 이름을 본딴 것으로 국가 건설 의 주역이 되라는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로마서 12장 31절을 차용, '이선승지' (以善勝之)를 교훈으로 하여 윤 리 · 도덕적으로 선(善)을 실천하는 인생관을 학생들에 게 심어 주고 있다. 〔설립 배경 및 경과] 이 학교의 모태가 된 것은 1933 년 논산 본당의 공베르(J. Gombert, 孔安世, 1877~1950) 신부가 설립한 소화학원(小花學院)이었다. 이 당시 소화 학원은 보통 학교(현 국민학교) 미취학자들을 대상으로 한 간이 학교 형태를 갖추고 있었으나 일제 말기의 극심 한 탄압 속에서도 한글 교습 시간을 마련하여 아동들에 게 민족 의식을 일깨워 준 민족주의 교육의 산실이었다. 이 때문에 1944년 여름 일제에 의해 강제로 폐지되었으 나 1945년 8 · 15 해방과 함께 새로운 교육 기관으로 재 출발하였다. 공베르 신부로부터 세례를 받은 류익선(柳 益善, 안드레아)이 같은 해 9월부터 당시 논산 본당의 조인원(趙仁元, 빈천시오) 신부의 적극적인 협조와 지원 하에, 성당 구내에 있던 옛 소화학원 건물(현 샌뿔여고 자 리, 논산읍 부창리 1번지 소재)을 빌려 지역 청소년들을 위 한 영어 강습소를 개설하였다. 강습소를 개설한 지 몇 개월 후부터 대다수의 학생들 과 학부형들이 강습소를 정식 중학교로 발전시켜 줄 것 을 희망함에 따라 조인원 신부는 1946년 2월 9일 강습 소를 종료하고 약 2개월 동안 중학교 설립을 준비하였 다. 그러나 이 기간 중에 조 신부는, 교지가 협소하고 재 정적 뒷받침이 따르지 않는 등 제반 여건이 불비함을 들 어 학교 설립을 반대하는 일부 본당 신자들의 반발을 무 마해야 했고, 당시 충청도 지역을 관할하던 서울교구의 노기남 주교 동의를 구하기 위해 여러 차례 방문해야만 하였다. 이러한 어려움 속에서도 조인원 신부는 그를 도 와 주는 류익선 선생과 영어 강습소 수강생들의 도움을 받아 인근 지역에 개교를 홍보하는 동시에 교사, 학생을 모집 · 선발하는 작업을 착실히 진행하였다. 그래서 1946년 4월 5일 논산 지역 최초의 인문계 중학교인 대 건중학교 개교식 및 입학식을 거행할 수 있었다. 개교한 지 2개월이 경과한 후인 1946년 6월 15일, 충 청남도 군정 장관으로부터 학교 운영에 관한 가승인을 받았다. 1947년 2월 초급 중학교(3년제 6학급)의 인가를 받았고 정식으로 조인원 신부가 초대 교장으로 취임하는 동시에, 경성교구 천주교 유지 재단 이사장인 노기남 주 교가 이 학교의 재단 이사장이 되었다. 1948년 8월 고 급 중학교(6년제 12학급)로 인가받았고, 10월 말경에 교 실을 증축하고 운동장을 확장하였다. 1951년 8월에는 고등학교(3년제 6학급)를 인가받았으며, 6년제 중학교의 제1회 졸업식과 3년제 중학교의 제1회 졸업식을 동시에 거행하였다. 1954년 10월 2층 4교실을 증축하였으며, 부창리 209-4번지에 신축 교사 부지 8천 평을 확보하 여, 1956년 9월에 고등학교 본관 2층 6교실을 신축하였 다. 1964년 4월에는 학교 법인 천주교 대지학원을 설립 하고 서울대교구로부터 학교 경영권을 이관받아 오기선 신부가 임시로 이사장직을 맡아 오다, 이듬해 4월 황민 성 주교가 제2대 이사장으로 취임하였다. 1975년 고등 학교가 다시 15학급으로 인가받았고, 1977년 2월에는 고등학교 교감을 별도로 임명하여 중 · 고 교무실을 분리 하였으며, 1984년에는 경갑룡 주교가 제3대 재단 이사 장으로 취임하였다. 1992년 현 소재지인 등화리 5번지 일대 15,000평을 신축 부지로 매입하여 이듬해 12월 준 공, 이곳으로 이사를 하였다. 〔현황과 계획] 1995년 2월 현재, 중학교 12개 학급, 고등학교 24개 학급에 총 1,700여 명의 학생이 등록되 어 있으며, 중학교는 설립 이후 45회에 걸쳐 9,399명의 졸업생을, 고등학교는 44회에 걸쳐 9,685명의 졸업생을 배출하였다. 조인원 신부, 김준수, 윤성호, 박창래, 한영 택, 오경호, 이범석, 안효설, 리운용, 김문배 등이 역대 교장으로 재임해 왔으며, 본교 출신 성직자로는 송갑의 (宋甲儀, 요한) · 유흥식(俞興植, 라자로) · 김인수(金仁 洙, 스테파노) · 김선태(金善泰, 야고보) · 유호식(偸浩 植, 아우구스티노) 신부 등이 있다. 이 학교의 운영 방침은 1985년 강석준(姜錫俊, 미카 엘) 교목 신부가 부임한 이래 학력의 신장과 인간 교육, 윤리적 위상 정립, 역사적 위상 정립, 시설의 현대화 등 을 목표로 현재까지 계속 추진 중에 있다. 특히 학력 신 장과 인간 교육을 동시에 달성하기 위하여 새로이 능력 별 이동 수업을 도입할 것을 고려하면서도, 학생 각자가 올바른 세계관과 가치관을 가질 수 있도록 지금까지 실 시해 온 일인 일기(一人一技)의 취미 활동과 전일제(全 日制) 특별 활동을 앞으로도 계속 실시하여 개성적인 인 간으로 성장하도록 유도하고 있다. 또한 입학식 전에 개 최되는 신입생 수련회를 통하여 학생 각자가 자아를 개 방하는 시간을 가짐으로써 자신들의 정체감(正體感)을 확인할 수 있게 하며, 김대건 신부의 축일을 전후하여 열 리는 '대건제' 를 통하여는 주보 성인의 승고한 영성과 행적을 돌아봄으로써 모교에 대한 긍지와 자부심을 가질 수 있게 하고 있다. 또한 이 학교는 설립 이래 대전교구 내 소신학교의 역할을 수행하여 매년 4~5명의 성소자 를 꾸준히 배출하는 성소의 온상이 되고 있는데, 앞으로 이를 더욱 효과적으로 발전시켜 나가기 위해서 기숙사 시설을 적절히 활용하는 방안을 강구 중에 있다. 또한 학 생들이 현대의 심각한 자아 상실과 비인간화의 현상에 매몰되지 않고 건전한 가치관을 가지고 살아갈 수 있도 록 환경을 보존하고 생명을 중히 여기는 생명 공동체 의 식을 심어 주고자 노력하고 있다. (→ 부창동 본당 ; 공 베르 ; 조인원) ※ 참고문헌  천주교 대전교구, 《대전교구 30년》, 1988/ 천주교 대 전교구, 《천주교 대전교구 통계 자료집X(183-1989 교세 통계 표), 1990. 〔元載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