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어》
論語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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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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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가 사상의 맥을 시작한 공자.
'논' (論)은 논하다, 서술하다라는 뜻이고, '어' (語)는 담화나 가르침의 말씀을 지칭해서 《논어》란 공자(孔子, 기원전 551~479)와 그의 제자들, 또는 당대인들과의 문 답을 논술하여 엮은 책이라는 뜻이다. 대부분은 공자와 그 제자들의 말씀을 기록한 것이지만 10편 향당(鄕黨) 편은 공자의 행동 거지를 제자들이 기억하여 보고한 것 으로 공자의 행언록(言行錄)이라고 보면 틀리지 않을 것 이다. 《논어》의 상당 부분에서는 공자를 그냥 '자' (子), 곧 선생님으로 부르고 있고 자로(子路), 안연(顔淵), 자 공(子貢) 등을 관례(冠禮) 때에 받아서 남들이 보통 부 르는 이름인 '자' (字)로 부르는 것을 보아 공자 직제자 들의 말을 전수받아 공문(孔門)의 후학들이 그대로 편찬 한 것으로 보인다. 〔본문 비판〕 《한서》(漢書)의 <예문지>(糞志)에 보면 한나라 초기에 세 종류의 <논어> 이본(異本)이 있었다고 한다. 공자의 모국인 노나라에서 전승된 판본을 노논어 (魯論語, 今文, 20편)라고 불렀고, 공가(孔家)에서 발견되 어 노논어와 같은 전승이지만 옛날 글씨로 쓰여 있고 편 차에 차이가 있는 고논어(古論語, 21편), 자공 등이 활동 하던 제나라에서 전승된 판본인 제논어(齊論語, 22편)가 그것들이다. 가장 오래된 논어 주석서인 하안(何晏)의 《논어 집해서》(論語集解敘, 248)에 의하면, 전한 말에 장 우(張禹)가 노논어에 기초를 두며 제논어의 장점을 취하 여 《장후론》(張侯論)을 편찬하여 널리 통용되었다. 그 후 후한의 저명한 학자인 정현(鄭玄, 127~200)이 《장후 론》을 기초로 하여 노논어의 편장을 따르면서 제논어와 고논어를 다시 비교 고찰하여 삼론(三論)을 절충 교정한 후 거기에 주석을 달았다. 한대와 위(魏)나라의 주석가 들은 모두 정현의 판본을 받아들이고 그것에 주해를 달 았는데, 이런 주해서들을 수집한 것이 《논어 집해》(論語 集解, 248)이다. 그 후 앞에서 언급한 세 개의 초기 논어 판본들은 전해지지 않게 되었다. 《논어 집해》보다 앞서 서 돌에 새겨진 한석경(漢石經 혹은 嘉平石經, 175)의 남아 있는 부분을 살펴보면 오늘의 본문과 별 차이가 없다. 《논어》의 본문 자체는 오랫동안 전승되면서도 의미상에 차질을 가져올 만한 변화가 별로 없었다. 〔구 조〕 《논어》는 공자가 직접 저술한 것이 아니고 오 늘과 같은 형태로 편집되기까지는 수백 년의 시간이 흘 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논어》는 공자의 사상을 비교 적 정확히 보관하고 있는 유일한 사료라는 점에서 가치 가 높다. 《논어》는 20편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전통적으 로 전편과 후편으로 10편씩 구분되고 첫 두 글자로 다시 편명을 삼았다. 각 편은 보통 20개에서 40개에 이르는 짧은 담화문이나 공자의 언행을 모아 놓은 것인데 성서 의 길이로 보면 절에 해당하지만 전통적으로 장(章)이라 고 불린다. 장의 분류에 차이가 있어서 그 번호가 고주 (古注) 전통(한대에서 송초까지의 훈고적 주석서들)과 신주 (新注) 전통(주자의 《사서 집주》로 대표되는 성리적 주석서들) 사이에 두세 장씩의 차이가 있다. 청대의 고증학에서 시 작된 문헌 비판이 20세기에 들어와 서구 학문의 영향으 로 지속되어 《논어》의 편집사에 대한 연구도 상당히 진 척되었다. 학계에서 일반적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는 논어 의 편집 과정은 다음과 같다. 제1편인 학이(學而) 편은 머리말로서 배움으로 시작되는 공문(孔門)의 대정신을 소개하였고, 2~9편은 증자, 자사, 맹자로 이어지는 노나 라 전승을 기록한 것이다. 10편은 공자의 생활을 기록하 여 군자의 행동 규범을 제시하였다. 11~15편은 자공, 자하, 자유, 자장으로 이어지는 제나라 전승을 기록한 것 으로 노나라 전승보다는 후기 것으로 보인다. 《논어》 안 에 비슷한 말씀이 반복되어 나오는 이유도 두 개의 전승 이 수집되어 한 권의 책으로 엮어졌기 때문이다. 《논어》 의 마지막 5편 즉 16편 계씨(季氏) 편에서 20편 요왈 (堯日) 편은 순수한 공자의 말씀보다는 후학들에 의한 전승이 많이 가미된 것으로 본다. 이 편들 안에는 문체적 으로도 삼우(三友), 삼계(三戒), 구사(九思) 등 교리 문 답적이고 암기적 교훈체의 글이 많아서 공문에서 제자들 을 가르치면서 형성된 것일 것이다. 내용을 보더라도 상 식적이고 일반적으로 통용되던 격언들이 그대로 유입된 것이 상당 부분 있어서 앞 부분에 나오는 독창적인 공자 의 사상과는 다른 경우가 있기 때문에 세밀히 비교 고찰 할 필요가 있다. 《논어》의 앞 부분 15편도 편찬 시기에 약간의 차이가 있고 부분적으로는 공자 후학들의 사상이 들어온 것도 있다. 그러나 대체적으로 앞 부분 15편은 공 자의 말씀이 비교적 정확하게 구두 전승되다가 백 년이 지나 맹자 시기에 수집 편찬된 것으로 보인다. 《논어》의 내용을 분석하고 전문 용어들을 살펴보아도 사상의 일관 성을 느낄 수 있어 사료적 가치를 높게 평할 수 있다. 〔주 제〕 《논어》의 단편적인 말씀들을 모아 모자이크를 만들어 보면 중심되는 주제들, 곧 인간 수양론과 도덕적 정치론 및 그 바탕이 되는 천관(天觀)이 선명하게 드러 난다. 인간 수양론으로 덕의 극치인 인(仁)을 체현한 군 자상(君子像)이 제시되고 있다. 《논어》 이전에는 지배 계급을 가리키던 용어인 군자가 《논어》에서는 인격의 완 성자라는 도덕적 의미를 갖게 되고, 모든 이 특히 학문을 하는 사람이 추구해야 될 목표로 상정된다. 《논어》에 나 오는 인간관의 특성은 지적인 배움과 인격적 성숙이 밀 접하게 연결되어 있다는 사실이다. 사실 여기서 옛 전통 을 배우는 공부가 지식만을 전달한다면 별 의미가 없고 배움을 통해 인도(人道)를 깨닫게 되고 일상 생활에서 덕을 실천해야 한다는 유가의 기본 방향이 결정된 것이 다. 부모에게 하는 효와 가정에서 힘쓰는 우애, 친구간의 신의 등은 인격 형성의 기조를 이루기 때문에 이런 인륜 의 실천이 도덕적 정치 사회를 형성하는 데 기반이 된다 고 보았다. 따라서 '수기' (修己)는 주위 사람들을 편안 하게 하는 '안인' (安人)의 효과를 가지고 있고, 때를 만 나면 관리가 되어 '안백성' 安百百姓, 憲問 편 44장)할 수 있는 능력을 부여한다. 《논어》의 도덕적 정치관은 임금은 임금답고, 신하는 신하다워야 한다는 정명(正名) 사상(顔淵 편 11장)과 경 제적 부의 분배를 지향하는 균등(季氏 편 1장) 사상 및 백 성의 신임을 받을 수 있는 정치가의 신의를 사회의 기초 로 본다(顔淵 편 7장). 이와 같은 공자의 덕치 사상은 맹 자와 순자에 의해서 더욱 발전되고 체계화되지만, 그 핵 은 이미 《논어》 안에 자리잡고 있다. 한마디로, 유가의 인간론이나 정치론은 공자의 가르침에 뿌리를 박고 있고 《논어》는 공자의 말씀을 순수하게 보존한 유일한 책이라 는 점에서 유가 사상의 원초적 비전과 특성을 파악하는 데 가장 중요한 사료인 것이다. 《논어》가 인간의 도덕성과 인격 성숙에 중심을 둔 인 문적 분위기를 지니고 있는 것은 사실이나 그 배경에는 도덕의 원천이며 규범으로서의 천(天) 신앙이 자리잡고 있다는 사실을 간과해서는 안될 것이다. 《논어》의 첫머 리가 배움의 기쁨으로 시작한다면 그 끝은 하늘의 명을 알아야〔知天命〕 군자가 될 수 있다는 종교적 사명관을 드러내고 있다. 공자는 자신에게 덕을 부여해 준 주체가 하늘(述而 편 22장)이기 때문에 사람들에게 문화를 전수 하여 도덕적 인간이 되도록 가르치는 자신의 사명도 하 늘에서 왔다(八佾 편 24장 ; 子罕 편 5장)고 믿었다. 또한 인간이 생사와 불치병이나 실패 등을 안온하게 받아들일 수 있는 것도 이 모든 일이 하늘의 명임을 알기 때문이다 (顔淵 편 5장 ; 雍也 편 8장 ; 憲問 편 38장). 이와 같이 긍정 적 사명 의식이든 부정적 운명의 수용이든 《논어》의 천 관(天觀)이 앞에 내세워져 있는 것은 아니지만 군자의 삶과 인격 형성의 기초가 되고 궁극적 증거(雍也 편 26장) 및 이해자가 된다(憲問 편 37장). 현대적 표현을 빌리자면 공자는 무신적 휴머니스트가 아니라 천(天) 신앙을 지닌 유신적 휴머니스트였다. 단, 하늘은 침묵 속에 사계절의 변화를 통하여 만물을 키우고(陽貨 편 9장) 인간 마음 안 에 도덕성을 주어 인격의 완성을 통해 천명을 다하게 하 는(述而 편 34장) 특성을 갖는다. 〔경학적 역사와 현대적 의의〕 경전의 중요성은 그 책이 당대에 가졌던 사상적 위대함에 있을 뿐만 아니라, 그 책이 지속되는 전통 속에서 어떤 역할을 했는가에 달려 있다. 《논어》가 동아시아 문화에 지닌 의미는 실로 지대하다고 하겠다. 우선 한나라 때에 《논어》는 경서인 오경(五經)을 해석하고 보충하는 기(記) 내지 전(傳)으로 간주되었다. 육조 시대와 수당 시기에도 《논어》 연구는 성행했지만 유교 경전의 한 부분으로 들어간 것은 송초에 훈고학적 고주 전통이 집대성된 《십삼경주소》(十三經注疏)에서였다. 이 안의 논어 주석서로는 하안의 《논어 집해》(論語集解)와 형병(邢昺)의 소(疏)가 들어가 있다. 12세기 말 주희(朱 熹)가 성리학적 주해서인 《사서 집주》(四書集注)를 출판하면서, 《논어》는 최고의 스승인 공자의 말씀을 보존한 책이라는 점에서 그 중요성이 커지고, 《대학》, 《중용》, 《맹자》와 더불 어 '사서' (四書)로서 '오경' (五經)보다도 앞 서는 위치를 갖게 되었다. 명청 시기에는 과거 문제가 사 서에서 나왔기 때문에 600~700년 동안 서당 교재로 교 육의 기초가 되었고, 동아시아인들의 정신적 기틀을 이루었다. 한국 정신사에서 《논어》가 갖은 정확한 위치는 밝혀지 지는 않았으나 1,600년 간 우리 조상들의 정신적 양식 이 되어온 것에는 틀림이 없다. 372년 고구려가 태학을 세웠을 때부터 《논어》는 필수 교과목이었고, 788년에 신라에서 시작한 독서 삼품과에도 효경과 더불어 필수 과목이었다. 고려 시대 최충의 구재학당(九齋學堂)의 처 음이 성인 되기를 즐거워함〔樂聖〕이었다는 것도 《논어》 의 주제를 따른 것이다. 조선조에 와서 성리학이 국가 이 념으로 확정되면서, 사서의 하나로서 《논어》에 나오는 공자의 말씀들은 조선인의 삶에 윤리적 규범과 이상을 제시하였고 고난을 이겨 나가고 죽음을 받아들일 수 있 는 힘을 제공하였다. 《논어》에 나오는 '안빈낙도' (安貧 樂道)니, '살신성인' (殺身成仁)이니 하는 말들은 고도의 정신적 수양을 필요로 하지만, 지금까지도 우리 생활의 한 부분으로 인식되고 있다. 한국 유학자 중에서도 《논 어》에 대한 주석을 남긴 사람들이 많은데, 주희의 《사서 집주》와 다른 독립적 견해를 표명한 대표적 예를 들자면 박세당(朴世堂)의 《논어 사변록》(論語思辨錄)과 정약용 의 《논어 고금주》(論語古今注) 등을 꼽을 수 있다. 최근 현대적 시각에서 《논어》를 바라보면서 그리스도교적 해 석을 시도하고 있는 예는 《영성 생활》 잡지에 연재되고 있는 "논어의 그리스도교적 이해"를 들 수 있다. 유교는 2,500년 간의 역사에서 시대에 따른 해석학적 변천과 제도적 수정 과정을 겪어 왔는데, 이런 변화된 모 습을 거슬러 올라가 공자 본래의 비전과 사상을 발견하 려 할 때 《논어》는 필수적 사료이며, 공자의 인간적 체취 를 보존하고 있다는 점에서 인류가 보관해 온 귀중한 보 배 중의 하나이다. (→ 공자 ; 군자) ※ 참고문헌 차주환 역, 《논어》, 을유 문고 22/ 남만성 역, 《논어》, 을유 문고 145/ 김승혜, 《원시 유교》, 민음사, 1990/ 최근덕, 《論語人 間學》, 열화당, 1987/ 윤사순 외, 《孔子 사상의 발견》, 민음사, 1992/ 한토다이가 . 야마다 구니오 저, 최효선 역, 《논어와 禪》, 민족사, 1992/ <논어의 그리스도교적 이해>, 《영성 생활》, 다산출판사, 1990~ 1994. 〔金勝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