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재

沓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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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66년의 병인박해(丙寅迫害) 때 평양에서 순교한 성 유정률(劉正律, 베드로)의 탄생지이자 무덤이 위치해 있 는 곳. 평안남도 대동군 율리면 답현리(栗里面 沓峴里) 소재. 유정률은 1864년경에 영세 입교하여 열심히 신앙 생활을 하다가 박해가 일어나자 친척들에게 하직 인사를 한 뒤 이웃 마을인 고둔리(古屯里, 즉 율리면 秋斌里) 공소 에서 성 우세영(禹世英, 알렉시오) 등과 함께 모임을 갖 던 중 체포되어 평양 감영으로 압송되었다. 여기에서 그 는 혹독한 문초에도 굴하지 않고 신앙을 지키다가 체포 된 이튿날인 2월 17일(음 1월 3일)에 장하 치명(杖下致 命)하였다. 이때 배교한 교우들이 그의 시체를 대동강 물에 던져 버렸는데, 그의 아내가 관리들에게 돈을 주고 시체를 거두어 고향 답현리의 옹점산(瓷店山)에 안장하 였다. 이로부터 50여 년이 지난 1923년 초 한국 교회에서는 순교자 유정률을 복자품에 올리기 위해 그 무덤을 조사 하게 되었다. 당시 조사를 담당한 사람은 평양 본당의 제 3대 주임으로 있던 김성학(金聖學, 알렉시오) 신부였는 데, 그는 조사에 앞서 유정률의 아들 유원강(劉元綱)에 게 무덤의 도본(圖本)을 그리도록 하였다. 그리고 2월 12일 이순성(李順成, 안드레아) 부제를 서기로, 본당의 이 스테파노 회장과 유정률의 딸인 유지, 논재 공소의 신 자들을 증인으로 삼아 무덤의 위치를 확인한 뒤 미리 작 성한 도본과 옹점산(당시 평양군 율리면 下六理 瓮店洞 미력 골 소재)의 산형이 부합한다는 것을 증명하고, 이를 기록 으로 남겨 놓았다. 현재 이 조사 기록은 한국교회사연구 소에 소장되어 있다. (→ 유정률) ※ 참고문헌  <뮈텔 문서> 1923-15 및 1923-16, 金聖學 신부의 서 한/ <뮈텔 주교 일기>, 1923년 2월 19일자/ 한국교회사연구소 소장, 〈劉正律 墳墓 조사 보고서>(필사본). 〔車基眞〕