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성동 본당

農城洞本堂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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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대교구 소속 본당. 광주시 서구 농성2동 637-18 소재. 1975년 4월 24일 월산동 본당에서 분리 설립되 었으며, 주보는 원죄 없이 잉태되신 마리아. 관할 구역 은 농성1 · 2동 · 화정동1 · 2동 · 월산4동 일부, 주월2동 화정 아파트 지역이0다. 〔교 세〕 1975년 597명, 1980년 1,994명, 1985년 4,622명, 1987년 6,841명, 1994년 5,631명. 〔역대 신부〕 초대 오네일(Noel O'Neil, 천) 노 엘(1975. 5~1981. 1), 2대 보크(Martin Baurke, 부) 마르티 노(1981. 1~1982. 6), 임시 키스터(Daniel Kister, 기) 다니엘 (1982. 6~1983. 2), 3대 정형달(鄭亨達) 바오로(1983. 2 ~1988. 2), 4대 김재영(金在營) 아우구스티노(1988.2~1991. 2), 5대 박영웅(朴榮雄) 가브리엘(1991. 2~현재). 〔설립과 변모〕 광주시 서쪽에 위치한 농성동에 대단위 주택 단지가 조성되어 신자수가 날로 증가함에 따라 월 산동 본당으로의 미사 참례가 불편하게 되자 이 지역에 새 본당 설립이 요구되었다. 이에 1975년 4월 본당이 설립되고, 천 노엘 신부를 초대 신부로 맞이하였으며 1977년 9월 4일에는 교구청에서 마련해 준 501평의 성 당 부지에 골롬바노회로부터 35,000달러를 지원받아 성 당과 강당의 준공 및 축성식을 가졌다. 1978년 11월 1 일 샬트르 성 바오로 수녀회의 분원이 설치되어 본당 사 목과 제반 업무에 협력하였고, 1979년부터 간행한 본당 소식지는 1984년 7월 8일 <농성골>이란 제명을 붙여 주 보로 발간하기 시작하였다. 1983년 2월 7일 부임한 정형달 신부는 기존 성당으로 는 급증하는 신자들을 수용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신자 들의 영성 생활 및 지역 사회에 대한 친교 기능을 담당할 수 없기에 새 성당 신축을 계획하였다. 이에 정형달 신부 를 총재로 한 본당 신축위원회를 구성, 1985년 9월 19 일 성당을 철거하고 화정동 주공 아파트 다동 상가 2층 을 임시 성당으로 정하고 10월 1일에 기공식을 가졌다. 1987년 5월 30일 윤공희 대주교가 참석한 가운데 대지 501평, 연건평 650평에 지하 1층, 지상 3층의 새 성당 축성식을 거행하였다. 한편 본당 신자들은 1985년 10월 공사를 시작하면서 성당 건립 기도 100만 회 봉헌을 결 의, 축성식 날까지 목표를 초과 봉헌하였으며, 당시 신축 중이던 두암동 본당에 공사비 잔액 1천만 원을 전달하기 도 하였다. 이후 교세 증가에 따라 1988년 1월에는 염주동 본당 이, 1992년 2월에는 주월동 본당이 각각 분리 설립되기 도 하였다. 1989년부터는 진료단을 구성, 매년 1회씩 무의촌 진료를 실시하고 있으며, 1995년 1월부터는 본 당 내에 경로 복지관을 설치, 노인 사목을 비롯한 지역 복음화에 앞장서고 있다. (→ 광주대교구) ※ 참고문헌  《가톨릭 사전》/ 천주교 광주대교구, 《광주대교구 50 년사》, 1990. 〔편찬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