느보 산
- 山
〔영〕Mount Neb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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느보 산 전경.
요르단 왕국 마다바 읍에서 북서쪽으로 약 10km에 있 는 산. 모세가 이스라엘 백성을 이끌고 이집트를 탈출한 지 40년 만에 느보 산 비스가 봉우리에 당도하여 가나안 땅을 바라본 다음 거기서 120세로 죽었다고 한다(민수 27, 12-14 ; 신명 32, 48-52 ; 34, 1-8). 느보 산의 중요한 봉우리는 셋이다. 가장 높은 봉우리가 니바(Ras al-Niba, 835m)이고 두 번째 높은 봉우리는 무카야트(KhirbetelMukhayyat, 790m), 세 번째로 높은 봉우리가 시야가(Ras Siyagha, 710m)이다. 모세가 가나안 땅을 바라보고서 죽었다는 느보 산 비 스가 봉우리는 세 번째 봉우리 시야가라는 것이 학계의 통설이다. 사실 시야가는 가나안 땅을 바라보기에 가장 전망이 좋은 곳이다. 지중해보다 수면이 400m나 낮은 사해, 그 서북변에 위치한 예수 시대의 유대교 수도원 유 적지 쿰란, 사해에서 북쪽으로 15km 떨어진 오아시스 도시 예리고, 굽이굽이 흐르는 요르단 강, 요르단 강과 예루살렘 사이의 삭막한 유대 사막, 시야가에서 직선 거 리로 50여km 떨어진 올리브 산 꼭대기 등을 훤히 바라 다볼 수 있는 명승지가 바로 시야가 봉우리이다. 예루살렘에 자리잡은 프란치스코회 성서 연구소에서는 1933~1976년 시야가를 발굴하여 여러 건축물을 찾 아냈다. 모세의 죽음을 기념하여 4세기에 세운 소성당이 발굴되었는데, 스페인 또는 남프랑스 출신의 에테리아 수녀가 380년경에 이 소성당을 찾아 참배했다는 기록이 남아 있다. 5세기에는 소성당 근처에다 제의방과 세례당 과 장례당을 두루 갖춘 대성당을 지었다. 제의방에서는 시골 풍경과 사냥 모습을 그린 모자이크가 발굴되었는데 531년에 제작되었다는 기록도 함께 나왔다. 제의방 옆 세례당에서 발굴된 옛 세례당과 하느님의 어머니 경당에 서 발굴된 새 세례대도 볼거리이다. 대성당 마당에는 구 리뱀이 장대에 높이 달려 있다(민수 21, 4-9 참조). 모세가 느보 산에서 가나안 복지를 바라보기만 하고 거기로 들어가지 못한 이유를 두고 구약성서에는 두 갈 래 전승이 수록되어 있다. 첫째 전승에 따르면, 이스라엘 백성이 시나이 반도에서 야훼께 반역한 죄 때문에 모세 는 가나안에 들어갈 수 없었다고 한다(신명 1, 37 ; 4, 2) 둘째 전승에 따르면, 모세가 시나이 반도 씬 광야 카데스 에서 하느님의 명을 어긴 죄 때문에 가나안 땅을 밟을 수 없었다고 한다. 곧 하느님께서 모세에게 이르시기를, 지 팡이를 가지고 백성을 불러모은 다음 바위를 향해 물을 내라고 명령하라고 하였건만, 모세는 분부대로 하지 않 고 지팡이로 바위를 두 번 쳤다는 것이다(민수 20, 1-13). 이 불충 때문에 모세는 느보 산에서 임종하였다고 한다 (민수 27, 12-14 ; 신명 32, 48-52 ; 34, 1-8). 오늘날 이스 라엘에서는 모세의 사인(死因)을 이와는 또 달리 설명하 는 우스갯소리가 나돌고 있다. 모세는 가나안을 젖과 꿀 이 흐르는 낙원으로 상상하면서 이스라엘 백성과 함께 40년 동안 온갖 고초를 견디어 냈다. 마침내 느보 산 비 스가 봉우리, 곧 지금의 시야가 봉우리에 올라 가나안 땅 을 바라보니 예리고 오아시스 한 곳만 푸른 초원이고 나 머지는 온통 황량한 유대 사막뿐이었다. 하느님의 거듭 된 약속과는 달리 너무나도 기대에 어긋나는 광경에 그 만 모세는 분하고 치가 떨려 심장마비로 급사하였다고 한다. ※ 참고문헌 Jordanie(Guides Bleus), Paris : Hachette, 1986, pp. 96~98/ Michele Piccirillo, 《ABD》4, pp. 1056~ 1058. 〔鄭良謨〕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