능곡 본당
陵谷本堂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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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권

서울대교구 소속 본당. 경기도 고양시 토당동 292-39 소재. 1909년 5월 약현(현 중림동) 본당에서 분리 설립된 행주 본당(幸州本堂)의 후신. 1982년 8월 26일 수색 본 당(水色本堂)에서 분리 설립되었으며, 주보는 성모 성 탄. 관할 구역은 경기도 고양시 토당동, 행주동, 화전동, 행신동과 화정동 일부. 〔교 세〕 1981년 400여 명, 1984 년 1,544명, 1988년 2,880명, 1993년 3,987명. 〔역대 신부〕 초대 민병덕(闞炳德) 비오(1982. 8~1987.9) 2대 이 해욱(李海旭) 프란치스코(1987. 9~1991. 8), 3대 장덕범 (張德範) 바오로(1991. 8~현재). 이 지역 신앙 공동체는 1881년 정기홍 · 이범성 두 회 장이 자신들의 사랑방에서 공소를 치름으로써 시작되었 다. 20여 년 동안 공소로 운영되어 오다가 1909년 5월 약현(현 중림동) 본당에서 분리, 행주 본당(幸州本堂)으 로 승격되었다. 김원영(金元永, 아우구스티노) 신부가 초대 주임으로 부임하여 같은 해 8월 경기도 고양군 지 도면 행주외리 197번지에 성모 승천을 주보로 한 성당 을 건축, 축성하였다. 1922년 성당 증축과 함께 사제관 이 신축되었고, 경기도의 고양(高陽), 파주(坡州), 양주 (楊州), 김포(金浦), 강화(江華) 등 5개 군을 관할하였 다. 일제 말기 선교사 추방 등 교회에 대한 탄압으로 성 직자가 부족해지자 한때 공소로 격하되기도 하였다. 해 방이 되자 행주 공소는 1938년 김성운(베르나르도)이 기증한 현재의 능곡 성당 터에서 1947년 김성환(金成 煥, 빅토리오) 신부를 맞이하여 본당으로 부활하였다. 본당 재출발로 활기를 되찾았으나 이후 도시화 현상으로 신자수가 감소하게 되자 1953년 주임으로 부임한 임충 신(林忠信, 마티아) 신부가 1957년 수색으로 본당 소재 지를 이전, 다시 수색 본당 관할 공소가 되면서 공소 이 름이 능곡으로 바뀌었다. 1978년 당시 수색 본당 김택 암(金澤巖, 베드로) 신부가 신자수의 급증에 따라 행 주 · 능곡 공소의 대지 정리와 토지 환수 사업을 착수하 여 현재의 능곡 본당 소재지에 40평 규모의 공소 성당을 마련하였다. 그러나 이 지역이 서울의 위성 도시로 급성 장하자 1981년 8월 10일 기공식을 시작으로 상주하던 이치열(李致烈, 안토니오) 군종 신부와 신자들이 협력하 여 새 성당 건립을 추진하게 되었다. 〔설립과 변모〕 1982년 8월 26일자로 다시 본당으로 승격한 능곡 본당은 1984년 9월 8일 김수환 추기경 주 례로 지상 3층 총건평 392평 규모의 새 성전을 봉헌했 다. 본당 승격 이후 1984년까지 신자 배가 운동을 전개 하였고, 뒤이어 본당 공동체의 활성화를 위해 여러 단체 들을 창설하였으며 1987년 3월에는 유치원을, 5월에는 노인 대학을 각각 개설하였으나 노인 대학은 후에 중단 되고 말았다. 1984년 2월 15일 샬트르 성 바오로 수녀 회의 분원이 설치되어 유치원 경영 및 주일 학교, 본당 각 단체 지도, 가정 방문 등을 통한 본당 발전에 이바지 하고 있으며 1989년 세계 성체 대회 준비로 성체 조배 와 매일 성체 강복을 실시하기도 하였다. 현재 수도권 팽 창에 따른 도시화로 신자수가 급증하는 추세에 있다. (→ 서울대교구 ; 수색 본당) ※ 참고문헌 《가톨릭 사전》/ 천주교 중림동 교회, 《약현 본당의 공소와 교세 통계표》, 1991/ 《서울교구 연보》 2, 한국교회사연구소, 1987. 〔편찬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