능지처사

凌遲處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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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시대 모반 · 대역죄를 지은 중죄인에게 행하던 가 장 잔인한 형벌. 죄인이 살아 있는 상태에서 사지를 잘라 내고 마지막에 목을 베어 여섯 토막을 내어 죽이는 것이 므로 능지처참(凌遲處斬)이라고 하였다. 그러나 일반적 으로 몸을 토막내는 것에 그치지 않고 시체 토막을 기시 (棄市)하거나 효시(梟示)하여 공개함으로써 대중에게 경계심을 주는 부가형이 가해졌다. 그러므로 조선 시대 에도 이 형벌이 잔혹하다 하여 대신 시체를 거열(車裂) 하는 방법이 이용되었다. 능지처사는 조선 고유의 것이 아닌 대명률(大明律)에 따른 형벌이었고, 사형 중의 참 형(斬刑)보다도 가혹하였으며, 조선 초부터 그 예가 나 타난다. 조선 후기 천주교인들을 처형할 때에는 이 방법 이 흔하게 사용되지는 않았으나, 1801년 신유박해(辛酉 迫害) 때 서울 서소문 밖에서 순교한 황사영(黃嗣永, 알 렉산델)과 전주에서 순교한 유항검(柳恒儉, 아우구스티 노), 유관검(柳觀險) 윤지헌(尹持憲, 프란치스코) 등이 '서양 선박을 불러들여 나라를 해롭게 하는 데 앞장섰 다' 〔洋舶請來事件〕는 반역죄를 적용받아 능지처사의 형 벌을 받았다. 그리고 다른 경우와 마찬가지로 그들의 가 산은 적몰되었고, 가족과 노비들은 대부분 유배형을 받 았다. (→ 군문 효수) ※ 참고문헌  《달레 교회사》 權仁鎬 《行刑史》, 國民書館, 1973/ 吳道基, <大明律과 經國大典 刑典의 實體法的 比較 研究>, 螢雪出版 社, 1977. 〔편찬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