니체아 콘스탄티노플 신경

- 信經

〔라〕Symbolum Nicaeno-Constantinopolitanum · 〔영〕Niceno-Constantinople Cre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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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차 콘스탄티노플 공의회(381)에서 채택된 신경. 4 세기 신경 역사에서 가장 큰 영향을 미친 것이기도 하다. '니체아 콘스탄티노플 신경' 이라는 이름은 베네딕도 카 르프조비우스(Joh. Benedikt Carpzovius)가 17세기에 처음 으로 붙인 것으로 여겨진다. 이 신경은 현존하고 있는 모 든 신경 중에서 동 · 서방 교회 모두가 받아들이고 있는 유일한 신경이다. 〔기원과 논쟁〕 이 신경이 공식적으로 첫 출현한 것은 칼체돈 공의회(451)에서였다. 이 신경은 공의회 제3 회 기 중인 451년 10월 10일 황제 특사의 명에 따라 '150 명 교부들의 신앙' 이라는 명칭으로 니체아 신경과 함께 콘스탄티노플의 대부제인 아에시우스(Aetius)에 의하여 낭독되었다. 아울러 이 신경은 니체아 신경과 함께 칼체 돈 공의회 교부들에 의하여 인준되고 봉인되었다. 기원에 대해서는 의견이 서로 분분하지만, 전통적인 견해에 따르면 제1차 콘스탄티노플 공의회에서 이루어 졌다. 즉 제1차 니체아 공의회에서 채택한 신경인 니체 아 신경을 확장한 것이라는 주장이다. 칼체돈 공의회에 서 도릴래움(Dorylaeum)의 에우세비오(Eusebius)와 치지 쿠스(Cyzicus)의 디오제네스(Diogenes) 등이 에우티케스 (Eutyches)를 고발하면서 한 말에 의하면, 디오제네스가 이미 니체아 신경을 확장시킨 신경을 염두에 두고 있는 것 을 알 수 있다. 단성론자였던 바실리스쿠스(Basiliscus)도 자신의 교서에서 니체아 신경만이 유일한 신경이라는 것 을 확언하고 있으면서 동시에 성령을 거스르는 이들에게 는 150명의 교부들이 작성한 신앙 정식이 제시되어야 하며 381년의 공의회가 니체아 신경을 '봉인했다' 고 하 였다. 또한 제노(Zeno)도 헤노티콘(Henoticon)에서 고백 되어야만 할 유일한 신경은 "150명의 교부들이 인준한 318명 교부들의 신앙 고백문"이라고 하였다. 유스티니 아누스(Justinianus) 황제도 533년에 발표한 교서에서 "150명의 교부들이 황제의 도시에서 설명하고 분명하게 했던 거룩한 318명 교부들에 의하여 작성된 신경 또는 거룩한 가르침에 대하여 자신이 충실하다" 는 것을 밝히 고 있다. 536년에 콘스탄티노플에서 개최된 교회 회의 와 제5차 세계 공의회로 콘스탄티노플에서 개최된 공의 회(553)에서도, 콘스탄티노플 신경이 니체아 신경을 발 전시킨 것이라는 생각이 더욱더 강하게 나타났다. 하지 만 중세에 들어서면서 콘스탄티노플 신경과 니체아 신경 의 근원적인 차이를 망각하고 대부분의 지역에서 니체아 신경으로 알려졌지만, 그 차이가 제시되는 곳에서는 이 단의 출현으로 말미암아 몇 구절이 삽입된 것으로 보고, 니체아 신경과 동일한 것으로 간주하였다. 이 전통적인 견해에 반대하며 다음과 같은 주장을 하 는 학자들도 많이 있었다. 첫째, 콘스탄티노플 공의회의 공식적인 속기록이 전해지고 있지 않기 때문에 공의회의 활동에 대하여 그 당시 그들의 자료를 토대로 볼 때, 공 의회가 신경을 작성하였다고 보기는 어렵다는 것이다. 이는 콘스탄티노플 공의회가 후대에 가서야 보편 공의회 였다는 것을 인정받았기 때문이다. 또한 테오도시우스 (Theodosius) 황제에게 보낸 공의회의 서한에서 자신의 활동에 대해 "니체아 공의회 교부들의 신앙을 정당화하 고 그것에 반대하여 일어난 이단을 파문하는 간략한 신 앙 정식을 공포한 후에"라고 간략하게 적고 있을지라도, 이를 콘스탄티노플 신경에 대한 암시라고 보기는 어렵다 는 견해이다. 또 382년에 다시 콘스탄티노플에서 모인 주교단이 다마소(Damasus) 교황에게 보낸 서한에서도 "지난해 콘스탄티노플에서 개최된 보편 공의회에서 공포 된 것으로 우리의 신앙을 보다 완전하게 고백하고 있으 며 서면으로 최근에 발생한 이단들을 파문에 처하는 선 언문"이라는 표현을 사용하고 있지만, 이것으로도 역시 새롭게 작성된 신경이라고 보기는 어렵다는 것이다. 둘 째, 역사가들과 다른 저술가들의 외적 증거 역시 그러하 다는 것이다. 예컨대 역사가인 소크라테스는 공의회의 목표가 "니체아 신경을 정당화"하는 것이라고 하였고, 소조메노(Sozomenus)와 테오도렛(Theodoret) 역시 그러 한 관점을 피력하고 있다. 하르낙(Harnack) 역시 당시 공 의회의 의장이었던 나치안츠의 그레고리오가 자신들의 작업을 니체아 신경을 정당화하는 것에만 한정지었을 것 이라고 주장한다. 셋째, 381년부터 451년까지 콘스탄티 노플 신경에 대하여 외적으로 침묵을 지키고 있다는 것 이다. 그토록 중요한 것이었다면 왜 431년 에페소 공의 회나 449년 '도둑 공의회' (Robber Synod)에서 콘스탄티 노플 신경에 대해서 언급하지 않았는가 하는 것이 그들 의 의문이다. 아울러 이러한 주장을 뒷받침해 주는 외적인 증거로 콘스탄티노플 공의회가 개최되기 이전에 이미 콘스탄티 노플 신경이 존재하고 있었다는 것이다. 콘스탄시아 (Constantia)의 에피파니오(Eipiphanius)는 자신의 논문인 <안코라투스>(Ancoratus)에서 팜필리아(Pamphilia)의 스예 드라(Syedra) 교회의 사제들에게 세례 때의 신앙 고백문 으로 권하고 있는 신경이 콘스탄티노플 신경과 유사하다 고 했다. 이 유사함을 인정한다면, 콘스탄티노플 신경은 381년 제1차 콘스탄티노플 공의회와 연결점을 찾을 수 있지만, 공의회에 의해 만들어졌다는 점은 인정될 수 없 다. 따라서 공의회가 이미 존재하고 있던 지역 교회의 세 례 때 신앙 고백문을 승인하고 검증한 것이라고 결론을 내릴 수 있지만, 그렇다고 해서 모든 문제가 다 해결되는 것은 아니다. 왜냐하면 에피파니오가 신경을 제시한 후 에 "이 신앙은 거룩한 사도들과 그 문제 때문에 거룩한 도시의 교회에 모인 310명이 넘는 거룩한 주교들에 의 하여 전달된 것이다"라고 표현하고 있기에, 여기서 에피 타니오가 다시 만든 이 신경은 과연 무엇인가 하는 문제 가 제기되기 때문이다. 이에 대하여 보스(G.J. Voss)가 처 음에 주장하고 호르트(FJ.A. Hort)가 완성한 대답은, 그 신경이 니체아 신경의 방향에서 재조정된 '옛 예루살렘 신경' 이라는 것이다. 호르트는 예루살렘 신경이 치릴로 (Cyrillus)에 의하여 작성된 것이라는 주장을 하는데, 이 는 콘스탄티노플 공의회에 참석한 그의 정통성을 서방 교회에서 의심하고 있었기에 그가 자신의 신학적 정통성 을 주장하기 위하여 작성하였다는 것이다. 이것이 공의 회의 속기록에 삽입되었고, 시간이 흐른 뒤에 당시의 분 위기를 잘 알지 못하는 사람들이 공의회에 의하여 공포 된 신경이라고 생각하게 되었다고 한다. 반면에 군체(J.Kunze)와 번(A.E. Burn)은 콘스탄티노플 신경이 콘스탄 티노플 공의회 도중에 콘스탄티노플의 주교로 선출된 넥 타리우스(Nectarius)의 세례성사와 주교 성성에서 사용된 것이라고 주장한다. 또 슈바르츠(Schwaz)와 동료 학자 들은 에피파니오가 자신의 논문인 <안코라투스>에서 제 시한 신경이 용어 면에서 보더라도 콘스탄티노플 신경이 아니라 니체아 신경이라고 주장하였다. 결국 '니체아 콘스탄티노플 신경' 의 기원에 대해서는 정확한 결론을 내릴 수는 없다. 하지만 콘스탄티노플 공 의회의 목적은 니체아 신앙을 증진시키는 것이었기 때문 에 이 목적을 수행하는 과정에 있어, 콘스탄티노플 신경 이라고 알려져 있는 정식(定式)을 작성했을 수도 있다. 이 신경은 니체아 신경과 다른 새로운 것이 아니라 실체 적으로는 니체아 신경과 같은 것이며, 당시의 오류에 맞 서기 위하여 채택된 고유한 것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발 전〕 칼체돈 공의회 이후로 니체아 콘스탄티노플 신경은 니체아 신경과 마찬가지로 정통 신앙이라는 공식 적인 인정을 받았다. 따라서 일찍부터 세례 때의 신앙 고 백문으로 채택되었고, 451년 칼체돈 공의회 이후로는 콘스탄티노플 교회의 세례 때 신앙 고백문으로 사용되었 다. 제노의 헤노티콘에서도 그리스도교 신자들이 세례를 받을 때 고백하는 유일한 신경은 150명의 교부들에 의 해 인준된 318명 교부들의 신경이라고 하고 있다. 이러 한 과정을 통하여 니체아 콘스탄티노플 신경은 모든 동 방 교회의 유일한 세례 때의 신앙 고백문이 되었다. 553 년 콘스탄티노플에서 개최된 제5차 세계 공의회가 니체 아 신경과 콘스탄티노플 신경을 완전하게 인용하고 있 어, 후자의 위치가 그 이후로 더 상승되었기 때문이다. 미사 중에 니체아 콘스탄티노플 신경이 사용된 곳은 단 성론자였던 풀러(Peter Fuller) 총대주교 하에 있던 안티오 키아에서부터였다. 이것은 결국 로마 교회와 일부 서방 교회의 세례 때의 신앙 고백문이 되었다. 서방 교회에서 사용되기 시작한 것은 '성자로부터' (filioque)라는 단어가 삽입된 제3차 톨 레도 교회 회의(589)부터이다. 이 교회 회의에서는 스페 인과 골 지방의 모든 교회들은 동방 교회의 관습에 따라 150명의 주교들에 의해 이루어진 콘스탄티노플 공의회 의 신경이 '주의 기도' 전에 회중들에 의해 낭송되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그럼으로써 참 신앙에 머물고 신 자들은 그리스도의 몸과 피를 신앙에 의하여 정화된 마 음으로 받아 모실 수 있게 되기 때문이라고 하였다. 로마 전례에 이 신경이 사용된 것은 1014년에 대관식 때문에 로마를 방문한 헨리 2세가 로마에서는 미사 중에 신경이 낭송되지 않음에 충격을 받고, 매주일 이 신경을 낭송하 도록 교황 베네딕도 8세를 설득한 이후였다. 〔구 조〕 니체아 신경과 니체아 콘스탄티노플 신경을 비교해 보면, 후자는 전자에 몇 가지를 삽입하여 약간의 차이가 있음을 알 수 있다. 먼저 삽입된 단어들은 다음과 같다. '하늘과 땅의 창조주' , '모든 세대에 앞서 태어나 신' , '하늘에서 내려오시어' , '성신으로 동정녀 마리아 에게서' , '본시오 빌라도 치하에서 우리를 위하여 십자 가에 못박히시고' , '묻히시며' , '성서 말씀대로' , '하늘 에 올라 성부 오른편에 앉아 계시며' , '영광 속에 다시 오시리라' , '그의 나라는 끝이 없으리이다' 그리고 성령 에 관한 부분에서는 '주님이시며' , '생명을 주시는 분'이라는 표현들이다. 원래의 니체아 신경에서 생략된 부 분은 다음과 같다. '성부의 실체로부터' , '하늘에 있는 것과 땅 위에 있는 것들' 그리고 파문 조문 등이다. 이렇 게 두 신경의 차이점을 고려할 때, 서로 다른 점을 알 수 있다. 호르트 역시 니체아 콘스탄티노플 신경에서 사용 된 약 178개의 단어 중에서 단지 33개 혹은 1/5만이 니 체아 신경에서 유출(流出)한 것이라고 지적하고 있다. 그는 또 니체아 콘스탄티노플 신경이 4세기의 신경들과 도 직접적인 관계가 있다면, 니체아 신경이 아니라 다른 신경일 것이라고 계속해서 지적하고 있다. 따라서 구조상 으로 보면 에피파니오의 <안코라투스>에 나온 신경과 유 사하며 테오도시오 부제의 모음집에 나온 것으로 '거룩한 사르디스 교회 회의 신경' (Synbolus sanctae synodi Sardici) 이라는 이름이 붙어 있는 라틴어 신경과도 유사하다. 〔교의적 내용〕 먼저 예수의 참된 인성을 거부한 아폴 리나리우스주의(apollinarianism)를 단죄한 '성신으로 동 정녀 마리아께 혈육을 취하시고' 라는 구절을 들 수 있 다. 니체아 신경에서는 단순히 '육을 취하셨다' 고만 나 오지만, 구체적으로 '성신으로 동정녀 마리아께 혈육을 취하시고' 라고 함으로써 아폴리나리우스의 관점을 배격 하고 있는 것이다. 또한 성령의 신성을 강력하게 주장하 고 있다. 381년 콘스탄티노플 공의회와 382년 공의회 서한에서는 성령의 완전한 신성과 동일 실체성 그리고 세 번째 위격으로서의 존재를 제시하고 있다. 신경이 성 령에 관하여 사용하고 있는 단어는 성서적이다. 우선 '성부에게서 좇아나시며' 라는 표현은 예수가 직접 한 말 씀(요한 15, 26)에서 나온다. 또 '예언자들을 통하여 말 씀하셨나이다' 라는 표현은 베드로 후서 1장 21절에서 상기시키고 있는 초기 그리스도교 케리그마에서 나온 것 이다. 성령에 관한 구절 중 가장 중요한 것인 '성부와 성 자와 더불어, 같은 흠숭과 같은 영광을 받으시며' 라는 표현은 '성부와 성자와 함께 영광을 받으시는 분' 이라는 성 아타나시오(Athanasius)의 표현을 거의 재사용하고 있 는 것이다. 더욱이 이 표현은 바실리오(Basilius)의 표현 이기도 하다. 그는 "성자는 성부와 동일 실체임을 고백 하고 성령 역시 그분들과 함께 동일한 흠숭으로 경배를 드리는 분임을 고백하는 건전한 교의"에 관하여 언급하 고 있다. 그는 또 성부와 성자와 함께 성령이 영광을 받 는 것은 성령이 신성에서 벗어나 있지 않기 때문이라고 하였다. 가장 문제가 되는 것은 원래 신경에는 없었던 '성자에 게서' (filioque)라는 표현이다. 서방 교회의 삼위 일체론 은 "성부로부터 성자를 통하여"라는 전형적인 정식을 사 용한 테르툴리아노 이후로 성령이 성부와 성자에게서 나 온 것이라고 주장하였다. 특별히 이 가르침은 아우구스 티노에게서 큰 발전을 이루었다. 아우구스티노가 이러한 주장을 한 것은 성부를 다른 두 위격의 근원으로서 본 것 이 아니라 삼위 일체에서 본질적인 하나의 단순한 신성 으로 삼위 일체론을 발전시켰기 때문이다. 하지만 니사 의 그레고리오 같은 동방 교회 신학자들은 세 위격 중 성 부를 다른 두 위격의 근원으로 보고 있기에 성자가 성부 의 도구라는 관점 하에서 "성부로부터 성자를 통하여"라 는 정식을 내세울 수 있었다. 하지만 성부만을 신성의 근 원으로 보고 있었고, 성자와 성령은 성부로부터 나온 것 으로 성자는 성부에게서 태어난 것이고, 성령은 유출 (processio)된 것으로 보았던 것이다. 따라서 서방 교회는 589년 제3차 톨레도 교회 회의를 통하여 '성자로부터' 라는 표현을 삽입하였고, 점차적으로 여러 서방 교회 지 역에서 사용하였다. 로마 교회가 이 표현을 사용하게 된 정확한 시기는 알 수 없지만, 니체아 콘스탄티노플 신경 이 로마 전례에서 사용되도록 헨리 2세가 교황 베네딕도 8세를 설득한 시기로 보인다. 하지만 결국 이것은 동 · 서방 교회가 갈라지게 되는 결과를 초래하게 되었다. (→ 니체아 공의회 ; 콘스탄티노플 공의회 ; 사도 신경) ※ 참고문헌  J.N.D. Kelly, Early Christian Creeds, London, Longmans, Green Anc Co. Ltd., 2nd ed., 1960/ Stuart G. Hall, Doctrine and Practice in the Early Church, London, SPCK, lst ed., 1991/ B.A. Gerrish, Creeds : Christian Creeds, 《ER》 4, Chief : Mircea Eliade, 1987/ Pierre Thomas Camelot, Creeds, 2, 1968/ A.E. Burn, Creeds and Aricles(Ecumenical), 《ERE》/ T. Ryan, 《NCE》 10/ I. Oritz de Urbina, 《LThK》. 〔邊宗燦〕