니콜라오 폰 플뤼에 (1417~1487)
Nikolaus von Flüe
글자 크기
3권

1 / 4
성 니콜라오 폰 플뤼에.
성인. 축일은 3월 21일. 스위스의 옵발덴(Obwalden) 주 삭셀른(Sachseln) 부근의 플뤼얼리(Flüeli)라는 마을에 서 1417년 3월 21일에 태어났다. 결혼하여 행복하게 살 던 중 주님의 부르심을 체험한 니콜라오는, 아내 도로테 아 비스(Dorothea Wyss)와 5남 5녀의 자녀를 남겨 두고 살던 집으로부터 1킬로미터 남짓 떨어진 란프트(Ranft) 계곡에서 은수 생활을 하다가 자신의 70회 생일인 1487 년 3월 21일 세상의 삶을 마쳤다. 집을 떠난 후 20년 간 오로지 성체 외에는 아무것도 먹지 않았다고 한다. 기도 와 명상, 고행과 극기 속에 일생을 보낸 신비가 니콜라오 는 은수 생활 중에도 자신을 찾아오는 수많은 이들에게 기도와 영적 상담 및 정치적 충고 등을 통하여, 특히 가 정과 나라에 '화해와 평화' 를 이룩하는 데 지속적인 도 움을 주었다. 그와 동시대의 스위스 사람들은 그를 일컬 어 '살아 있는 성자' 라고 할 정도였다. 당시 스위스와 독 일 등 유럽의 많은 사람들은 이 '살아 있는 성인' 을 만나 고, 신비에 쌓인 그의 삶을 보고자 플뤼얼리 란프트 (Flüeli Ranft) 계곡으로 모여들었다고 한다. 교황 비오 12 세에 의하여 1947년에 성인품에 올랐다. 〔활동 및 사상〕 농사를 짓던 니콜라오는 군인 장교로, 지방 의회 의원으로, 또 판관으로서의 임무도 훌륭히 수 행하였다. 그러던 중 하느님의 부르심을 받게 된 그는 자 신의 소명을 의식하고 그에 대한 확신을 얻기 위해 부인 도로테아와 함께 2년 이상 기도하면서 기다렸다. 나이 50이 되던 해에 부인의 허락을 얻어 은수자로서의 삶을 시작한 그는 아무런 저서도 남기지 않았지만, 그 대신 짧 은 기도문 <나의 주님 나의 하느님>(Mein Herr und Mein Gott)과 이른바 '기도서' (Gebetbuch) , 그리고 수많은 묵 상 그림(명상 도형)들도 전해진다. 그는 국내 및 국경 지 대에서 일어나는 잦은 분쟁들과 사회 · 정치 및 가정 문 제 등으로 인해 위기에 처한 때에 나라를 구했다는 이유 로 1481년에는 '조국의 구원자' 란 칭호를 받았다. 그가 남긴 다음의 기도문은 그의 사상을 잘 반영하고 있다. "나의 주님 나의 하느님/ 내가 당신께로 나아가는 데 방해되는 모든 것을/ 내게서 치워 주소서// 나의 주님 나 의 하느님/ 나를 당신께로 인도하는데 도움 되는 모든 것을/ 내게 보내 주소서// 나의 주님 나의 하느님/ 나를 받아들이시어/ 나를 전적으로 당신것으로 삼으소서." 이 기도문은 그가 어떠한 신앙심의 소유자였는지를 단적으로 요약해 준다. 또한 그의 신비 사상 이면에는 <높은 탑>, <말이 삼켜 버린 백합>, <활활 타는 불꽃>, <솟구치는 샘물> 등에서 보듯 수많은 발현(發顯, vision) 체험들이 자리잡고 있다. 그가 고안해 낸 바퀴 그림도 그의 인간관 및 그 자신이 체험한 신관을 종합해 준다. 이 그림은 하느님 묵상에 직 접 도움을 준다. 가운데 핵심점은 모든 것을 하나로 만드 는 원동력으로서 그 원점으로부터 인류와 온 우주를 지 탱해 주는 모든 힘이 솟아 나온다. 니콜라오는 이 핵심점 을 일컬어 '나님 없으신 하느님의 본질' 이라 하였다. 그 로부터 모든 것이 나오게 되고 다시금 모든 것이 그곳으 로 향해 돌아간다고 하였다. 이와 같은 내면적 능력을 바 탕으로 현자(賢者)가 된 니콜라오는 가난하고 고통받는 이들의 위로자가 되고 그들의 변호자가 되었다. 〔영 향〕 니콜라오가 세상을 떠난 지 500여 년이 지난 오늘날에도 그의 얼은 그를 아는 모든 이들 마음속에 생 생하게 살아 있다. 프로테스탄트와 가톨릭을 막론하고 대 부분의 스위스 사람들은 그를 '클라우스 형제' (Bruder Klaus)라고 부른다. 스위스 시민들뿐 아니라 유럽 여러 나 라에서 그의 생가 및 은수처를 찾아가 순례하며 그의 삶 을 회상하고, 그가 남긴 업적을 기리며 그가 물려준 기도 문을 노래하고 그의 모범을 따르고자 한다. 니콜라오는 스위스가 낳은 가장 위대한 신비가로 꼽히고 있으며 스위 스 사람들은 그를 '조국의 아버지' (Vater des Vaterlandes), '평화를 이룩한 분' (Friedensstifer)으로 섬기고 있다. 실 제로 '클라우스 형제' 는 오늘날 스위스의 초급 학교 어 린이들에게도 친근감을 불러일으키는 이름이다. 특히 나 라가 온통 내란 등으로 위기에 처한 상황에서 그는 피흘 림 없는 기도와 단식, 조언 등을 통하여 조국의 평화를 가져 온 민족적인 영웅으로, 성자로 추앙받고 있다. 이러 한 그의 삶은 하느님의 신비를 체험하는 것과 세상 안에 서 하느님 나라를 건설하는 것이 서로 동떨어진 일이 될 수 없음을 보여 주는 좋은 본보기가 되고 있다. 오늘날까 지도 그의 삶과 영성은 많은 학자들로부터 끊임없이 연 구되고 있으며, 많은 사람들로부터 길이 칭송되고 있다. ※ 참고문헌 G. Heer, 《LThK》 7, pp. 985~986/ H. Stirnimann, Der Gottesgelehrte Niklaus von Flüe, Universitätsverlag Freiburg Schweiz, 1981/ A. Spichtig · M. Spichtig, Nikolaus von Fliie, Herderbichererei 852, Freiburg-Basel-Wien, 1986/ W. Abel, Das Gebetbuch des heiligen Bruder Klaus, Geheimmis der Mitte, Stein am Rhein, Schweiz, 1984. 〔辛敎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