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마스커스 〔히〕Р함ㅁ [그]\équoros [라 · 영〕Damascus
〔히〕דמַשֵׂק · 〔그〕Δάμασκὸς · 〔라 · 영〕Damascu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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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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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도 바오로의 다마스커스 탈출(젠틸리니 작).
시리아의 고도(古都) . 사도 바오로의 개종지 . 〔역 사〕 이집트 제18 왕조의 툿트모시스 3세(기원전 1479~1425)는 자신이 정복한 도시 이름들을 이집트 중부 테베에 있는 카르낙 신전 돌기둥에 새겨 놓았는데 그 가 운데 다마스커스도 들어 있다. 아멘호텝 4세(일명 아케아 톤, 기원전 1370~1352)가 테베를 버리고 새 수도로 택한 아마르나에서 발굴된 외교 서간집에 다마스커스라는 명 칭이 역사상 두 번째로 나온다. 구약성서에 따르면 다윗 이 다마스커스를 점령한 바가 있다(2사무 8, 5-6). 그러나 솔로몬 치세 때에 이르면 강력한 아람 왕국이 다마스커 스에 정도(定都)하여 동으로는 아시리아 제국과, 남으로 는 이스라엘 왕국과 패권을 다투었다. 알렉산더 대왕의 막료 셀레우쿠스 니카토르(Seleucus Nicator)가 기원전 311년 시리아에 셀레우쿠스 왕조를 세우고 오론테스 강 변에 안티오키아를 건설하고 수도로 삼음으로써 다마스 커스는 일개 지방 도시로 전락하였다. 기원전 84~72년 나바테야 왕국의 아레타 3세가 다마스커스를 다스렸고, 기원전 64년 로마 장군 폼페이우스는 시리아를 로마의 속주로 만들고 팔레스티나를 시리아 속주에 포함시켰다. 635년 이슬람 군대가 이 도시를 점령한 이래 다마스 커스는 이슬람 도시가 되었다. 656~750년 우마이야 왕 조가 다마스커스에 수립되어 이슬람 제국을 통치함으로 써 다마스커스는 사상 최대의 영화를 누렸다. 이 무렵 다 마스커스 그리스도인들 가운데 가장 출중한 인물이 다마 스커스의 성 요한(675~749경)이다. 그는 다마스커스에서 그리스도인들의 대표자로 활약하다가 716년경 예루살 렘 근교 성 사바 수도원으로 은퇴하여 사제 서품을 받았 다. 726~730년에 성화상 공경을 옹호하는 글을 세 편 써서 성화상 파괴 운동에 제동을 걸었다. 다마스커스의 요한은 동방 교회의 마지막 교부였으며 교회 학자로 추 대되었다. 1516~1918년 오스만 투르크 제국이 시리아 를 강점(强占)하였으며, 1920~1945년에는 국제 연맹 이 위임한 프랑스의 통치를 거쳐 1946년 완전히 독립하 였다. 〔사도 바오로의 개종지〕 사도 바오로는 36년경 다마 스커스의 그리스도인들을 붙잡으러 가던 도중에 갑자기 개종하였다. 부활한 그리스도의 현시를 보고 갑자기 그 분에게 사로잡혔던 것이다(1고린 9, 1 ; 15, 8 ; 필립 3, 12 ; 사도 9, 1-19 ; 22, 3-21 ; 26, 9-18). 다마스커스 근교에 서 개종한 다음 다마스커스 시내 '바른 길' 에 사는 그리 스도인 유다의 집으로 가서 교회 지도자 아나니아를 만 나 세례를 받았다(사도 9, 11-19). 그리고 "아라비아로 떠 나갔다가 다시 다마스커스로 돌아왔다"(갈라 1, 17)고 바 오로는 자술한다. 여기서 말하는 아라비아는 다마스커스 에서 남쪽으로 155km 떨어진 보스라(Bosra)에서 아카바 만까지의 넓은 사막(대충 지금의 요르단 왕국)을 다스리던 나바테야 왕국을 가리킨다. 사도 바오로가 아라비아, 곧 나바테야 왕국의 어느 지역을 찾아갔는지는 알 길이 없 으나 보스라 지역 또는 그 아래쪽에 자리잡은 데카폴리 스 지역이었을 것이다. 그는 이곳에서 행한 일에 대해 아 무런 말도 하지 않지만,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했음 에 틀림없다. 그러나 전도 성과는 전무(全無)하였다. 바 오로는 그 일대에 교회를 설립하지 못하였으며 나바테야 왕국에 머문 기간도 알 수 없다. 다마스커스로 돌아온 다음 3년 동안 살다가 예루살렘 으로 탈출하여 보름 동안 시몬 베드로와 함께 묵었다(갈 라 1, 18). 사도 바오로는 그 자신의 극적인 탈출을 이렇 게 서술하였다. "다마스커스에서는 아레다 왕의 총독이 나를 잡으려고 다마스커스 사람들의 도성 성문을 지키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나는 광주리에 담겨 성벽에 나 있는 창문을 통해 내려져서 그의 손아귀를 벗어났습니다" (2고 린 11, 32-33). 여기서 아레다 왕은 아레다 4세(기원전 9~서기 39)를 가리킨다. 아레다 왕의 총독은 다마스커스 에 사는 나바테야인들의 우두머리일 것이다. 바오로가 그들의 미움을 산 것은 분명하나 그 까닭은 알 길이 없 다. 아마도 거듭해서 나바테야 사람들에게 전도하였지만 전혀 먹혀 들지 않자 불행을 예고했거나 저주하는 말을 했을 것이다. 〔유 적〕 바오로의 유적 : 다마스커스 고도는 성곽으로 둘러쳐 있고, 성안을 동서로 관통하는 길이 사도행전 9 장 11절에 언급된 '바른 길‘ 이다(지금의 Midhat Pasha 및 Bab Chargi. 그리고 동쪽 성문(Bab Charqi)과 그 북쪽에 있 는 토마 성문(BabTouma) 사이에 아나니아 경당(Kanissat Hananya)이 있다. 바오로가 개종한 다음 다마스커스 '바 른 길' 에 사는 유다의 집을 찾아갔는데, 다마스커스 교 회 지도자 아나니아가 찾아와서 바오로의 먼눈을 고쳐 주고 세례를 베푼 곳이라 한다(사도 9, 11-19). 동쪽 성문 남쪽에 자리잡은 카싼 성문(Bab Kassane)에는 성 바오로 경당이 있다. 사도 바오로가 광주리에 담겨 성벽을 내려 와서 예루살렘으로 도망친 곳이라 한다(2고린 11, 3233). 우마이야 모스크 : 다마스커스 성안 북쪽에 자리잡은 우마이야 모스크 터는, 기원전 9세기에 아람인들이 아닷 신전을 지었던 매우 유서 깊은 곳이다. 그리고 3세기에 로마인들이 거대한 유피테르 신전(380×310m)을 지었는 데, 4세기에 세례자 요한 성당으로 개조되었다. 705년 우마이야 왕조의 제6대 군주 엘 알리드(el Walid)는 성당 을 허물고 전무후무할 만큼 야심에 찬 모스크를 지었는 데, 1893년 화재로 골조만 남고 내부 장식은 다 타버렸 다. 이 모스크 안에는 세례자 요한의 머리를 안장했다는 묘소가 있다. 이슬람에서도 세례자 요한을 야히야 벤 자 카리야(Yahyal ben Zakariya)라 부르면서 정성껏 받든다. ※ 참고문헌 Alif Bahnassi · Robert Boulanger, en Syrie, Paris, Hachette, 1988/ Hugh Finlay, Syrie Jordanie, Paris, Arthaud, 1989/ E. Hammerschmidt, 《LThK》 3, pp. 132~134/ J.F. Whealon, 《NCE》 4, pp. 622~624. 〔鄭良謨〕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