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미안 드 베스테르 (1840~1889)
Damien de Veust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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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권

다미안 신부.
복자. 사제. 나환자의 사도이며 현대 구라 사업의 개척 자. 원명은 요셉 드 베스테르(Joseph de Veuster). 1804년 벨기에의 한 작은 마을에서 성실하고 신앙심 깊은 아버 지 프랑스와 드 베스테르와 어머니 가타리나 사이에서 태어났다. 부모들처럼 농사를 지을 생각이었으나 수도원 에 들어간 큰형의 영향을 받아 수도원에 들어가기를 희 망하였다. 어린 시절부터 그리스도에 대한 사랑이 깊어 기도와 고행을 실천하면서 성장하였다. 일찍이 영성(靈 性)에 눈을 뜬 그는, 고향에서 초등 교육 과정을 마치고 발론(Wallon) 지방의 르 콩(Brain le Comt)고등학교에 진 학하였다. 그곳에서 공부하던 중, 하느님의 부르심을 받아 복음 적 권고를 통해 완덕의 길을 걷기로 결심하고, 1859년 '예수와 마리아의 성심 수도회' (일명 Picpus 수도회)에 입 회하였다. 수도회 회칙에 따라, 의사로서 시칠리아 섬의 주민들을 헌신적으로 돕다가 4세기 초에 순교한 다미안 으로 세례명을 바꾸었다. 수도회 입회 후 벨기에 루뱅과 프랑스 파리에서 공부하였 다. 해외 선교를 주요 목적으로 삼고 있던 '예수와 마리아의 성심 수도회' 는 1825년 이래 수차에 걸쳐 하와이 군도의 샌드위치 섬에 선교사를 파견하고 있었다. 같은 수도회에 소속해 있던 큰형 팜필 신부가 1863년 선교사로 선발되어 하와이로 부임하게 되었으나 병자들을 간호하던 중 장티푸스에 걸리게 되자, 다미안은 형을 대신하여 하와이 선교단에 자원하였다. 이듬해 하와이로 건너간 후 다미안은 호놀룰루 근교의 아피마뉴 대신학교에서 약 2개월 간 공 부하고, 그 해 5월 호놀룰루 대성전에서 메그레 주교에 의해 사제로 서품되었다. 이후 푸노 지역에서 원주민들 을 대상으로 선교 활동을 시작한 다미안은, 1865년에는 코할라로 옮겨 원주민들의 인습과 싸우면서 그리스도를 증거하기 위하여 성당을 짓고 용암으로 덮인 섬을 돌아 다니면서 미사를 봉헌하였다. 1865년 하와이 군도에 나병 환자가 급격히 늘어나자 감염된 환자를 격리 수용하는 법이 제정되었는데, 이에 따라 나환자들은 몰로카이(Molokai) 섬에 격리 수용되었 다. 격리 수용된 나환자들이 농사를 지으면서 정착하기 를 기대했던 정부의 시책은 제반 여건의 불비로 폭동이 일어나는 등 난관에 봉착하게 되었다. 1873년 메그레 주교로부터 몰로카이 섬에 수용된 나환자들의 참상을 전 해 들은 다미안 신부는 33세의 나이로 그곳에 건너가 700여 명이 넘는 나환자들의 집을 지어 주고, 의사의 도 움 없이 나환자들의 고름을 짜 주고 환부를 씻어 주며 붕 대를 갈아 주고, 희망을 잃어버린 사람들에게는 그리스 도의 빛을 밝혀 주었다. 그리고 매일 죽어 가는 이들을 위하여 관을 만들고 무덤을 파고 장례를 치러 주었다. 이 렇게 어려움 속에서 나환자들을 위해 희생적으로 활동을 전개해 나가자 냉담하던 환자들도 신뢰와 존경심을 가지 고 따르게 되었다. 한동안 다미안 신부가 섬을 떠나는 것 을 금지시키고 아무도 그를 방문하지 못하도록 조처를 취하였던 하와이 정부뿐만 아니라 교회와 개인의 원조도 이어지게 되었다. 1881년에는 하와이 정부로부터 나환 자들을 위해 헌신한 공로로 '카라카우아' 훈장을 받았 다. 다미안 신부는 1885년 자신이 나병에 감염된 것을 알 았으나 용기를 잃지 않고 나환자들을 위하여 계속 일하 였다. 병이 진행되어 심각한 상태가 되었을 때도 "나 자 신은 건강을 잃어버렸지만, 하느님께서는 나병 환자들 틈에서 일하는 내 선교의 열매를 더욱 풍부하게 하시기 위하여 이 희생을 내려 주셨으니, 나의 이 희생은 극히 작은 것이지만 나 자신을 위해서는 매우 유익한 것이다" 라고 하면서 요양하라는 주위의 권고에도 불구하고 계속 해서 환자들을 돌보다가 1889년 4월 15일 세상을 떠났다. 1893년, 몰로카이 섬다미안가(街)에는 "벗을 위하여 제 목숨을 버리는 것보다 더 큰 사랑은 없다" (요한 15,12)라고 새겨진 기념비가 세워졌고, 1894년에는 벨기에의 루뱅에있는 성 야고보 성당 광장에 동상이 세워졌다. 유해는 1936년 몰로카이 섬에서 벨기에로 옮겨 안장되었다. 하와이 주정 부 청사에도 동상이 서 있다. 공포의 몰로카이 섬은 다미 안 신부의 헌신으로 이제 그 악명을 벗어 버리게 되었다. 오늘날에도 수십 명의 나병 환자가 살고 있고 의사와 간 호사가 봉사 활동을 펼치고 있지만, 새로운 나환자들은 이제 이곳으로 보내지지 않고 있다. 지금까지 살고 있는 환자들이 모두 죽은 후에 역사적인 자연 공원으로 조성 될 계획이라고 한다. 1992년 7월 시복 대상자로 확정되었고, 1995년 6월 4일 벨기에 브뤼셀의 퀘켈베르그 대성전 광장에서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에 의해 시복식이 거행되었다. ※ 참고문헌 小田部胤明 저, 김대신 역, 《다미안 신부》, 성바오로 출판사, 1987/ 이일선, 《성 다미안》, 성문학사, 1956. 〔李庚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