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베르나스, 카누트 d'Avernas, Kanut(1884~19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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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권

카누트 다베르나스 신부.
덕원 면속구 소속 신부. 베네딕도 수도회 회원. 한국명 은 나국재(羅國宰). . 레오폴드 다베르나스(Laopold d' Avernas, 羅碧宰) 신부의 형이다. 1884년에 독일에서 태어나 1914년 8월 13일 사제로 서품되었으며, 1920년 말에 한국 선교사로 임명되었다. 이듬해 1월 16일 한국에 입 국한 그는 서울 백동(柏洞, 지금의 혜화동)에 있던 베네딕 도 수도원에 머무르면서 우선 한국말을 배웠다. 그러다 가 1920년 8월 5일 원산 대목구의 설정으로 함경도 지 역과 간도(間島), 남만주 일대가 새 대목구에 속하게 되 고, 베네딕도 수도회가 파리 외방전교회로부터 그 지역 을 인계받으면서 1921년 5월경 간도 삼원봉(三元峰, 일 명 英岩村) 본당의 3대 주임으로 부임하였다. 그러나 당 시 베네딕도회에서는 사제수가 부족하였으므로 얼마 안 되어 그를 원산 주교좌 본당의 초대 보좌로 전임시키게 되었다. 원산 본당에서 엑카르트(Andreas Eckardt, 玉樂 安) 신부를 보좌하여 2년 동안 전교 활동을 한 다베르나 스 신부는 1923년 8월에 함경남도 내평(內坪) 본당의 임시 주임을 맡았다가 곧 10대 주임으로 임명되어 이 본 당에서만 11년 간을 사목하였다. 다베르나스 신부가 내평 본당에서 재임하는 동안에 이 룩한 가장 큰 일은 성당을 내평에서 신고산(新高山)으로 옮긴 것이었다. 내평 본당은 1887년에 설립된 안변 본 당의 후신으로, 1896년 2월 내평으로 이전된 전통 있는 본당이었다. 그러나 경원선(京元線) 철도가 개통된 이래 내평보다는 신고산역 지역이 발전하게 되었고, 따라서 전교 활동에 어려움이 있었다. 이에 다베르나스 신부는 신고산역 인근에 있던 가옥들을 매입하여 성당과 사제관 을 마련한 뒤 1930년 초 이전하였다. 이때부터 이 본당 은 '고산(高山) 본당' 으로 불리게 되었다. 이 무렵 원산 의 베네딕도 수녀회에서는 신고산에 부지를 매입한 뒤 건축에 착수하여 1933년 3월 수녀원을 완공하고, 신고 산 분원을 설립했다. 그 후 다베르나스 신부는 심장병으 로 몸이 쇠약해져 사목 활동이 어렵게 되었으므로 1934 년 7월경에는 고산을 떠나 원산 본당에 머물며 베네딕도 수녀원의 영신 지도 신부를 맡았고, 그 해 늦가을부터 1935년 9월까지 필리핀에서 요양 치료를 받고 같은 해 10월 초에 다시 원산으로 돌아오게 되었다. 한편 그는 1935년 3월, 고산 본당 이웃에 해성(海星)보통학교를 설립하고 수녀들의 도움을 받아 운영하였다. 광복 후에도 다베르나스 신부는 계속 원산 수녀원에 머물렀는데, 북한의 공산 정권이 교회 탄압을 확대해 나 가면서 수녀들과 함께 점차 어려움을 겪게 되었다. 그러다가 1949년 5월, 고산 본당 주 임이었던 다고베르트엔크(Dagobert Enk, 嚴光豪) 신부와 수녀들과 함께 정치 보위부원들에게 체포되어 평양 인민 교화소로 이송되었고, 8월에는 다시 자강도 전천군 별하면 쌍방리(慈江道 前川郡別下面 雙芳里)의 옥사독 수용소로 이송되었다. 그리고 이듬해 6 · 25 한국 전쟁이 발발한 지 얼마 안되어 이른바 '죽음의 행진' 을 겪어야만 했다. 이때 그 는 10월 25일 만포(滿浦) 교화소로, 국경을 넘어 만주 로, 다시 만포 교화소로 이송되는 가운데 11월 6일 병으 로 고난을 견디지 못하고 사망했다. (→ 고산 본당 ② ; 덕원 면속구) ※ 참고문헌 포교 성 베네딕도 수녀회 편, 《원산 수녀원사》, 1988/ 한국교회사연구소 편, 《원산교구 연대기》, 함경도 천주교회사 간행 사업회, 1991/ 한국교회사연구소 편, 《함경도 천주교회사》, 함경도 천주교회사 간행 사업회, 1995. 〔車基眞〕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