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인 본당
多仁本堂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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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권

안동교구 소속 본당. 경북 의성군 다인면 서릉2동 소 재. 1961년 5월 25일 대구교구 군위 본당 관할 공소에 서 본당으로 승격 · 분리되었으며, 주보는 성 베르나르 도. 관할 구역은 의성군 다인면, 상주군 중동면, 예천군 풍양면 등지이고, 관할 공소는 신락, 신산, 상광, 곤대, 길말, 산성, 풍양 등 7개소이다. 〔교 세〕 1970년 1,775 명, 1975년 1,707명, 1980년 1,591명, 1985년 1,506 명 1990년 1,446명, 1994년 1,488명. 〔역대 신부〕 초 대 김규태(金圭泰) 디모테오(1961. 5~1964. 4), 2대 조상 익(趙相益) 베드로(1964. 4~1965. 6), 3대 정학모(鄭學模) 루가(1965. 6~1966. 12), 4대 이길준(李吉俊) 바오로(1966.12~1970. 1), 5대 정호경(鄭鎬庚) 루도비코(1970. 1~1972. 8) 6대 독(R. Doc, 朴) 로제리오(1972. 8~1979. 5), 7대 이 상복(李相福) 비오(1979. 5~1983. 2), 8대 바힐로(P.Bahillo, 方一賢) 바오로(1983. 2~1984. 1) , 9대 류강하(柳 康夏) 베드로(1984. 3~1988. 7), 10대 정희욱(鄭喜郁) 안 드레아(1988. 7~1992. 6), 11대 권상목(權相木) 요한(1992.6~1995. 7), 12대 황재모(黃在模) 안셀모(1995. 7~현재). [공소 시대] 이 지역 신앙 공동체의 역사는 1948년 상 주군 중동면 다래 공소 출신인 김시종이 다인면으로 이 사를 오면서부터 시작되었다. 1952년경에는 김시종의 권유로 누나 김옥순(말지나) 부부가 이사를 오게 되었는 데, 그녀는 이 마을의 권태선과 강말님을 다래 공소로 데 리고 가서 예천 본당 신현옥(申鉉玉, 치릴로) 신부로부 터 세례를 받게 하였다. 이렇게 해서 1953년에 다인면 최초의 영세자가 탄생하였다. 김시종이 운영하는 사진관 에 모여 공소 예절 등을 봉헌하던 이들은 가톨릭 구제회 (NCWC) 구호 물품인 밀가루와 옥수수를 퇴강 본당(현 함창 본당 관할 공소)에서 받아다 다인면 주민들에게 나누 어 주면서 전교를 하였다. 이에 힘입어 점차 신자수가 늘 어나자 집터가 넓은 어느 교우의 집으로 옮겨 주일 첨례 를 지냈다. 1957년 다인 공소가 설립된 후, 공소 건물의 필요성 이 제기되었다. 이에 퇴강 본당의 지원을 받아 서릉1동 에 위치한 옛 양조장 건물인 2층 목조 건물을 매입, 개축 하여 1층은 구호품 보관 창고로, 2층은 첨례 장소로 사 용하였다. 한편 같은 해에 설립된 하광 공소도 1959년 퇴강 본당에서 헌 목재를 얻어 공소 건물을 건축하였다. 그러나 공소 자리에 자기 조상의 묘가 있다는 사람이 나 타나 공소 마룻바닥을 파헤친 사건이 일어났다. 이 일로 냉담자가 증가하고 끝내는 공소 건물을 프로테스탄트에 넘겨주는 시련을 겪기도 하였다. 다인 지역의 이들 공소 들은 1959년 의성 본당으로 편입되었다가 1년 뒤 다시 군위 본당으로 소속이 변경되었다. 〔설립과 발전〕 대구교구는 1961년 5월 25일 다인면, 안계면, 구천면, 단밀면, 신평면, 비안면, 단북면 등 7개 면을 관할 구역으로 안계에 본당을 설정하고 초대 본당 신부로 김규태 신부를 임명하였다. 그러나 김 신부는 현 재 안계 본당 자리에 있었던 허술한 공소에 거처하는 것 이 불가능하자 다인 공소 1층을 수리하여 사제관으로 삼 고 다인에 머무르게 되었다. 이에 따라 본당 유치를 계획 한 다인 지역 신자들은 본당 부지 확보 및 신축 기금 모 금 등을 시작하였고, 안계 지역 신자들과 본당 유치 문제 로 한동안 갈등을 겪기도 하였다. 다인으로 본당 유치가 결정된 후 1962년 4월에는 상 주군과 풍양면의 공소들이 다인 본당으로 편입되었고, 그 해 4월 28일 매입한 본당 부지에 성당을 짓기 시작, 이듬해 축성하였다. 1966년에는 병인 순교 100주년을 기념하는 성모상을 안치하였으며, 1969년 5월 29일에 는 안동교구 설정으로 대구교구 왜관 대리구에서 안동교 구로 소속이 변경되었다. 1978년 1월 본당 입구 진입로 를 매입하였고, 이듬해 12월에는 사제관을 신축하였다. 〔성장과 변모〕 1981년 2월 28일 정의의 거울 쁘레시 디움을 창설하고, 1983년 1월에는 본당 공동 묘지를 매 입하는 등 안정기에 접어든 다인 본당은, 1985년 6월 17일 새 성당 신축 기공식을 거행하였다. 6천여 평의 야 산을 깎아 성당 우회 도로를 건설하는 한편 부지 400여 평에 단층 성당(127평)을 완공하여, 1986년 4월 1일 두 봉 주교 집전으로 본당 설립 25주년 기념 행사와 함께 봉헌하였으며, 1988년 11월에는 '나눔의 집' 을 준공하 였다. 본당 관할 공소 관계를 보면 1971년 2월 신평면의 금 곡 공소가 의성군으로 편입되면서 본당 관할이 되었고, 같은 해 8월에는 수산 · 산광 공소를 신축하였으며, 효제 공소와 쌍호 공소(현 안계 본당 소속)를 수리하였다. 이듬 해인 1972년 9월 15일에는 안계 공소를 본당으로 승격 분리하였다. 1975년 8월 10일 신산 공소, 1976년 5월 30일 산성 공소를 각각 신축하였으며, 1989년에는 상광 공소를 축성하였다. 1992년 7월에는 풍양면 내의 공 덕 · 풍덕 · 효제 · 수산 네 공소가 이농 현상으로 유지하 기가 어렵게 되자 네 공소를 합쳐 면 단위의 풍양 공소를 새로 건립하였다. 교리 교육을 통해 신자 재교육을 실시 하려던 풍양 공소는 지역민 대다수가 노년층으로 80% 이상이 문맹자임을 감안, 1992년 12월 한글 · 한문 학교 를 개설하였으며, 다음해 5월에는 영어 학교도 추가로 개설하여 신자와 지역민에게 큰 호응을 받았을 뿐만 아 니라 간접 선교에도 기여하였다. 한편 다인 본당은 1983년 1월 30일 발족한 가톨릭 농 민회 다인 지역 협의회를 주축으로 하여 1985년 7월 소 값 폭락으로 인한 소몰이 시위, 같은 해 12월 농지 개량 조합 현물 납부 투쟁, 1986년 9월 양담배 및 농축산물 수입 반대 행진 등 정부의 무책임한 농정에 반대하는 단 체 행동에 적극 참여하기도 하였다. 또한 매년 추수 감사 제 및 풍년 기원 미사 등을 통해 농촌 본당으로서의 역할 에도 최선을 다하고 있다. → 안동교구) [편찬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