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대동 본당

丹岱洞本堂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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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원교구 소속 본당. 경기도 성남시 중원구 금광2동 4245 소재. 1976년 10월 5일 수진동 본당에서 분리 · 설립되었으며, 주보는 성녀 소화 데레사. 관할 구역은 중 원구 금광1 · 2동, 은행1 · 2동, 중동 일부와 수정구 단 대동, 양지동 전지역. 〔교 세〕 1976년 2,404명, 1980년 3,275명, 1985년 4,613명, 1990년 7,651명, 1993년 9,184명. 〔역대 신부〕 초대 매니언(F. Mannion, 명) 프란 치스코(1976. 10~1978. 11), 2대 브라질(Sean Brazil, 진) 요 한(1978. 11~1982. 4), 3대 하재별(河在別) 미카엘(1982. 4 ~1992.2), 4대 임충승(林忠承) 시몬(1992.2~현재). 〔설립과 발전] 1969년 4월부터 서울 시내에서 강제 철거당한 무허가 건물 5만여 채의 주민들이 남한산성 서 남방 계곡에 위치한 경기도 광주군 중부면 단대리, 수진 리 일대에 집단으로 이주하였다. 뒤이어 이 지역에 광주 대단지(廣州大團地, 城南團地)가 형성되어 인구가 증가하 기 시작하자, 교구에서는 수진동 본당(당시 성남 본당) 관 내의 신자수 급증에 대한 사목 방침의 일환으로 성남에 제2의 본당을 설립하기로 계획하고, 1974년 5월에 단대 3동 769번지(현 본당 소재지)에 성당 부지 938평을 매입 하였다. 1976년 9월 골롬반 외방선교회의 지원으로 건 축 공사를 시작하던 중 그 해 10월 5일 본당으로 설립되 어 골롬반 외방선교회에 성당 건축과 본당 사목이 위임 되었다. 1976년 11월 4일에는 성당 1층 골조 공사를 완공하 고 첫 미사를 봉헌하였다. 이 1차 공사로 완공된 건물은 성당과 교리실, 수녀원 등 117평과 사제관(30평), 기타 부대 시설(15평)이었다. 같은 해 12월에는 인보 성체 수 도회 분원이 설치되어 사목에 협력하기 시작하였고, 1978년에는 성당 증축 공사에 착수하여 8월 15일 증축 된 2층 성당을 봉헌하였다. 1979년 5월에는 1층 옛 성 당을 교리실로 개수하고, 6월 6일 김남수 주교 주례로 성당 낙성식 및 봉헌식을 거행하였다. 1983년 10월 사 제관 증축에 이어 1984년 6월 수녀원을 개수하였고, 1991년 1월에는 성당 증축 공사를 재개하여 현재의 모 습으로 바뀌었는데, 증축 규모는 성당 206평(기존 성당에 연결), 성가대석 28평, 수녀원 34평이었다. 또 1992년 10월에는 기존 사제관을 철거, 3층 건물(114평)로 신축 하였다. 〔성장과 변모〕 초창기에는 성당 건축과 전입 신자 교 적 정리 등에 주력하던 단대동 본당은, 1980년대 들어 서면서 신자 재교육과 사목 협의회, 신심 단체, 반 조직 등의 활성화를 도모하기 시작하였다. 특히 반 조직을 통 한 공동체의 활성화와 15개 구역별로 조직한 전교회의 적극적인 활동으로 연 평균 400명의 영세자를 배출하기 도 하였다. 산 동네에 위치하고 있으며 신자 대부분이 공 장 근로자임에도 불구하고 1984년 이래로 생활비 보조, 의료비 보조, 학자금 보조, 타본당 보조 등의 사회 복지 비가 본당 예산의 10%를 차지하고 있다. 1987년 4월에 는 농촌 본당인 도척 본당과 자매 결연을 맺고 합동 피 정, 농산물 직거래와 같은 교류를 통해 나눔의 공동체를 실현하고 있다. 1978년 2월 상대원동 1753번지에 성당 부지 360평 을 매입하여 1979년 6월 상대원 본당을, 1984년 9월에 는 신흥동 본당을 각각 분가시킨 단대동 본당은 현재 날 로 신장되는 교세에 비해 대지와 성당 시설이 너무 협소 하여 본당 신설을 통한 신자 분할이 시급한 실정이다. (→ 수원교구) ※ 참고문헌  《가톨릭 사전》 천주교 수원교구청, 《수원 교구 30년 사》, 1993. [편찬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