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테, 알리기에리 Dante, Alighien1265~13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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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곡>을 든 단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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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곡>을 든 단테.


이탈리아 최대의 시인. 정치가. 이탈리아 피렌체 출신 으로, 1265년 5월 말경 아버지 알리기에로 다 벨린치오 네(Alighiero da Bellincione)와 어머니 벨라(Bella) 사이에서 태어났다. 어머니가 일찍 사망하자 아버지는 라파(Lapa) 와 재혼하였다. 단테의 가문은 귀족 계층에 속하긴 하였 지만 신분이 그다지 높은 편은 아니었고, 아버지가 환전 상 겸 대금업에 종사한 것으로 보아 경제적인 형편도 좋 지 못하였던 것 같다. 어려서 가정 교사에게 교육을 받은 단테는, 후에 성당 부설 학교에 들어가 그곳에서 당시 최 고의 교육을 받았다. 또 상류 사회와 친교하며 라티니 (Latini)의 학문적인 영향을 받은 그는 카발칸티(Cavalcanti) , 라포(Lapo), 치노(Cino) 등과의 우정을 바탕으로 문학 활동에 열정을 보이기도 하였고, 1287년에는 볼로 냐로 가서 법률 · 철학 · 의학 과정을 수강하였다. 단테는 훗날 피렌체 공화국의 정치 지도자가 되었으나, 당파 싸움에 휩싸여 그토록 사랑하던 조국으로부터 영원히 축출당하였고, 인근 도시들을 방황하다가 라벤나 에서 비극적인 삶을 마쳐야 하였다. 떠돌이 유랑 생활은 베아트리체(Beatrice, 1266~1290)와의 만남과 더불어 그의 문학 세계를 형성하는 두 가지 중요한 사건이었다. 유랑 생활이 자기 성찰의 기회였다면, 베아트리체와의 만남은 선의 의지와 하느님의 섭리, 그리고 구원을 향한 구도의 방향을 잡게 하였기 때문이다. 특히 베아트리체에 대한 단테의 사랑은 아주 중요하다. 9세 때부터 시작된 그녀 에 대한 짝사랑으로 소년 시절 내내 연애시를 써 온 단테 는, 9년 후 그녀와 다시 만났을 때 눈짓으로 건네준 인사 를 받고 한없는 행복감에 젖어 영혼 깊은 곳에 그녀에 대 한 사랑의 불길을 끌어안는 시를 썼다. 이 서정시는 후에 《새로운 삶》(La Vita Nuova)이라는 작품에 실렸는데, 자 신의 젊은 시절에 대한 이야기, 주로 베아트리체를 향한 사랑을 시와 산문으로 엮어 놓은 이 작품은 《신곡》의 전 편 역할을 하고 있다. 24세라는 젊은 나이에 요절한 베 아트리체로 인하여 단테는 그녀의 죽음을 오랫동안 슬퍼 하였다. 단테에게 있어서 베아트리체는 실제적인 삶을 초월하여 정신 세계에 영원히 남아 생의 모든 것을 장악 한 여인이었다. 그러나 단테는 베아트리체가 죽은 지 5 년 후인 1295년에 젬마 디 도나티(Gemma di Donati)와 결혼하였는데, 이는 당시의 인습에 따라 부모에 의해 유 아 시절부터 미리 약속된 결혼이었다. 단테가 학문에 정진하고 있는 동안, 1293년 피렌체의 신흥 부유층 기업인들이 귀족들을 정치권에서 축출하는 데 성공하고, 1295년에 이루어진 화해 조치로 귀족들도 공공 업무에 종사할 수 있게 되어 수공업 조합(Corporazione)과 기능 조합(Arte) 등에 가입하였다. 1289년에 캄 팔디노, 1295년에 카프라이아에서 아레초와 피사의 기 벨리니(Ghibellim)에 대항하여 싸웠던 단테 역시 시민 생 활로 복귀하기 위하여 의사 및 제약사 조합에 가입하였 다. 단테는 행정 업무 기능을 행사하는 100인위원회에 가담하였으며, 1300년 6월부터 8월까지 2개월 동안에 는 주민 자치체(自治體)인 코뮌(commune)의 가장 중요 한 행정 업무를 총괄하는 행정 위원(priore)직을 수행하 였다. 단테는 정파 의식이 약했으나 민중 지향적인 노선 을 표방한 궐피(Gueli)당의 백당(白黨, Bianchi)에 속하 였기에, 교황청의 후원을 받던 흑당(黑黨, Neri)과 대결 할 수밖에 없었다. 흑당은 민중 계층의 부상을 막으며 금 융 및 상공인 중심의 금권 정치를 모색하고 있었다. 두 정파 사이에 첨예한 대결이 벌어지고 있는 동안 단테는 그들의 우두머리들을 추방해야 한다는 주장에 동조하였 고, 자신의 친구인 카발칸티의 추방에도 찬동할 수밖에 없었다. 1301년 10월, 단테가 외교 사신의 임무를 띠고 로마에 간 동안, 교황 보니파시오 8세는 중재자로 프랑 스의 왕 카를로 디 발로아(Carlo di Balois)를 피렌체에 파 견하였다. 그러나 중재자로 파견된 그는 사실상 흑당으 로 하여금 정권을 장악하도록 도와 주었고, 백당에 대하 여는 가혹한 숙청 작업을 진행하였다. 단테도 공금 횡령 이라는 사기죄로 고발되어 삭탈 관직되고 2년 동안의 유 배형을 받았으나 1302년 궐석 재판을 통해 사형을 선고 받았다. 단테는 그 뒤부터 피렌체에 돌아가지 못하였다. 초기 에는 다른 유배자들과 더불어 무력을 써서라도 흑당의 정부를 전복시키려고 시도하였다. 백당과 기벨리니는 연 합을 모색하기도 하였으나 그 연합군이 1304년에 해체 되자, 단테는 혼자의 힘으로라도 대항하고자 인근 도시 국가들의 도움을 구하였고 학문 활동에도 정진하였다. 그 후 1310년 10월 독일에서 하인리히 7세 황제가 이탈 리아에 오자 그 동안 기벨리니 당원이 되었던 단테는 피 렌체로 돌아갈 수 있으리라고 생각하였다. 하인리히를 로마 제국의 권위를 재건하고 부흥시킬 수 있는 적격자 로 본 단테는, 그에게 탄원서를 보냈고 아울러 인근 도시 국가들의 군주들에게는 흑당이 지배하는 피렌체를 공략 하라고 촉구하였다. 이 일로 해서 피렌체에서 1311년 추방당하였던 백당 당원들에게 일대 사면이 베풀어졌지 만 단테는 제외되었다. 그 후 1313년에 하인리히가 시에나 부근의 부온콘벤 토에서 돌연한 죽음을 당하였다. 그는 로마에 가서 황제 위에 즉위하긴 했으나 끝내 피렌체만은 휘하에 넣지 못 한 상태였다. 이렇게 되자 단테의 꿈은 산산이 깨지고 말 았다. 그 후 1315년에 피렌체는 또 한 차례 사면령을 내 려 유랑자들을 불러들였다. 이때 단테 역시 자신의 죄를 공식적으로 인정한다고 선언하면 돌아갈 수 있었으나 명 예스럽지 못하다고 이를 거절하면서 오히려 비난을 퍼부 었다. 이에 분노한 흑당은 그에게 사형을 선고하는 궐석 재판을 단행했다. 단테는 라벤나에 가 노벨로(Novelo)의 비호를 받으며 창작에 전념하면서 여생을 보냈다. 〔작 품〕 청년기에 베아트리체를 사모하면서 쓴 《새로 운 삶》은 그녀와의 사랑을 이상화하고 신비화한 걸작 중 하나이다. 이 작품은 미와 선의 총체로서 천사적 이미지 를 지닌 이 여인에게서 존재 가치는 물론 내면적 구원까 지 구하고 있다. 모두 42장으로 구성되어 있고, 각 장마 다 시와 그 시에 대한 해설이 상세하게 기술되어 있는 《새로운 삶》은 그의 친구이자 당대 최고의 시인이었던 카발칸티에게 바쳐졌다. 《새로운 삶》과 더불어 단테의 사상을 가장 잘 나타내고 있는 작품으로는 《향연》(Convivio), 《속어 수사학》(De Vulgari Eloquentia) <신곡> 등이 있다. 《향연》은 철학적인 문제를 중점적으로 다루고 있 지만 본질적으로는 《새로운 삶》과 비슷한 이야기와 형식 을 가지고 있다. 원래는 14장으로 구성하려 했다고 하나 현재 4장만 전해지고 있다. 《향연》이란 '정신적인 연회' 를 의미하는데, 시는 음료, 산문은 음식을 가리킨다. 이 작품 또한 《새로운 삶》이나 대표작 《신곡》과 같이 라틴 어가 아니라 이탈리아어의 모체인 피렌체 방언으로 씀으 로써 지식층은 물론 일반 대중까지 의식한 것으로 보인 다. 단테는 언어의 문제, 즉 가장 훌륭한 문어(文語)로서 의 민중어의 발굴을 중요하게 생각하고, 《속어 수사학》 이라는 언어학 이론서를 집필하였다. 이 작품은 정치학 이론서인 《제정론》(De Monarchia)과 더불어 라틴어로 쓰 여졌다. 그 외에 서정시, 전원시, 서간문, 물과 땅의 문 제를 다른 자연 과학적 논문을 남겼다. 그의 작품 중에서 가장 대표적인 것은 무엇보다도 베 아트리체에 대한 추억을 영원화하기 위하여 쓴 《신곡》이 다. 이 작품의 원제는 La Divina Commedia' 로 알려져 있 으나, 단테가 처음 붙인 제목은 La Commedia di Dante Alighieri' 였다. 여기서 'Commedia' 란 희극을 뜻하지만, 단테가 의도한 고전적 의미로는 "불행하고 처참한 시작 에서 행복한 결말로 이르는 이야기"를 말한다. 《신곡》은 죽음 이후의 세계를 다루는 일종의 환상 여행기로서 서 로 깊은 유대 관계를 맺고 있는 세 편, 즉 <지옥 편>, <연 옥 편>, <천국 편>으로 나뉘어져 있다. 자신을 주인공으 로 하여 신화와 역사에 나오는 인물들의 이야기를 통해 정신적 · 윤리적 진리를 규명함과 동시에 인간의 자유 의 지의 중요성과 신의 섭리가 지닌 오묘하고 신비스러운 위대함을 증언하고자 했으므로 전반적으로 중후하고 진 지한 성격을 지니고 있다. 모든 시어들과 인물들, 그리고 모든 에피소드와 사건들이 상징성을 띠고 있는 《신곡》에 서 단테는 죄와 벌의 세계인 지옥, 죄의 묵상과 정화의 세계인 연옥, 그리고 하느님의 지고한 사랑과 축복의 세 계인 천국을 총체적인 조화와 융화 속에 시적으로 형상 화하였다. 〔평 가〕 세계 문학사에서 독보적인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 단테는 호머(Homer)와 베르질리우스(P. Vergilius)의 화려한 전통을 이어받으면서도 나름대로의 독창적인 시 정신을 후세에 전달함으로써 자타가 공인하는 시성(詩 聖)으로 평가받고 있다. 그의 문학 세계는 가톨릭 정신 에 철저하게 뿌리를 내리고 있으며 가톨릭 정신을 문학 적으로 가장 완벽하게 웅변해 준다고 볼 수 있다. 그는 중세와 근대의 갈림길에서 전 유럽의 문화가 새로운 기 운을 찾아 몸부림치고 있을 당시, 인간 내면 세계의 적나 라한 양상과 신의 섭리를 대비시킴으로써 가톨릭 문학의 지평을 확립하였다. 그를 일컬어 시성이라고 하는 까닭 은 그가 남긴 불후의 명작 《신곡》의 승고한 예술적 가치는 물론이려니와 그가 추구했 던 우주주의적 사상이 시공을 초월하여 광활한 공감대를 형성하고 있기 때문이다. (→ 《신곡》) ※ 참고문헌  한형곤 역, 《신곡》, 삼성출판사, 1978/ 최민순 역, 《신곡》, 을유문화사, 1960/ 한형곤, 《이탈리아 문학의 이해》, ┨암출판사, 1984/ A. Dante, La Divina Commedia, La Nuova Italia, Firenze, 1968/ 一, Tutte le Opere, Mursia, Milano, 1965/Croce, La Poesia di Dante, Laterza, Bari, 1966/ Barbi, trans. by Ruggiers, Life of Dante, UC in Berkeley, 1954/ Fergusson, Dante, MacMillan, New York, 1966/ Sapegno, Il Trecento, Vallardi, Milano, 1966. 〔韓炯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