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레, 클로드 샤를르 Dallet, Claude Chades(1829~18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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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권

샤를르 달레 신부.
파리 외방전교회 선교사. 교회사가. 1829년 10월 18 일 파리 동남부에 위치한 소도시 랑그르(Langres)에서 태 어났다. 일찍부터 성직에 뜻을 두어 랑그르 소신학교를 졸업하고 랑그르 대신학교에서 4년 간 공부한 다음, 선 교 지방에서 활동하기 위해 1850년 10월 5일 파리 외방 전교회 신학교로 전학하여 2년 간 신학을 배웠다. 중고 등학교와 대학 과정을 거치는 동안 달레는 훌륭한 성품 과 뛰어난 두뇌를 지닌 학생으로 총애를 받았다. 신학 공 부를 마치고 1852년 6월 5일 사제 서품을 받은 달레는, 학생 시절부터 문학 특히 시에 남다른 재능이 있어 파리 외방전교회 회원들이 요즘도 애창하는 노래를 작사하기 도 하였다. 그 가운데 선교사들이 선교 지방으로 떠날 때 부르는 <선교사들의 출발 노래>(대신학교 재학 시절 작사) 와 친구 베나르(Théophane Vénard)가 베트남에서 순교하 였다는 소식을 듣고 1861년에 작사한 <순교 찬가>가 뛰 어나다. 작곡가 구노(C.F. Gounod)가 이 두 작품에 곡을 붙였다. 〔선교 활동〕 파리 외방전교회 전통에 따라 달레는 서 품을 받자마자 인도 마이쑤르(Maïssour) 교구로 발령을 받고 1852년 8월 20일 임지를 향해 떠났다. 그리고 처 음에는 블랙팔리(Blackpally) 본당에서 보좌 신부로 일하 다가 1857년 미소르(Mysore) 본당 주임 신부로 부임하 였다. 이때 마침 콜레라가 발생하자 그는 헌신적으로 구 제 활동을 펴 군주로부터 표창을 받았다. 1858년 파리 외방전교회 신학교 교수로 발탁되었으나 사양하고 선교 지방에서 계속 활동하기를 자청하였다. 선교 활동에 열 성적이면서도 신학과 교리에 관한 연구를 계속하여 프로 테스탄트의 교리를 논박하는 《논박 교리서》를 1859년에 출판하였다. 시대 상황 탓으로 이 《논박 교리서》는 지나 치게 호교론적이지만 당시로서는 훌륭한 저술로 평가받 았다. 같은 해에 그는 파리 외방전교회의 회칙 개정 작업 에도 참가하였다. 그러던 중 간질병에 시달리기 시작하 여 부득이 선교 사업을 중단하고 프랑스로 귀국하였고, 나폴레옹 3세 직속으로 설립 · 운영된 황립 인쇄소의 일 을 도와 인도에서 사용되는 텔루구(Telugu)어와 카나라 (Kanara)어의 활자를 주조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하였 다. 또 황립 인쇄소의 일을 도와 주면서 자기가 속했던 선교 지방에 인쇄소를 설치할 수 있도록 하였다. 프랑스 에서 치료를 받았지만 완치될 희망이 없자 그는 1863년 치료를 포기하고 인도로 돌아가 선교 활동을 재개하였으 나, 병마에 시달려 1867년 다시 본국으로 귀국하였다. 파리에서 간질병은 완치하였으나 몸이 쇠약해 인도로 돌 아갈 수 없게 되자 파리 외방전교회 본부에 머물다가 1871년 남북미 지역으로 긴 여행을 떠났다. 캐나다에 오랫동안 체류하면서 보불전쟁(1870-1871)으로 어려운 처지에 빠진 파리 외방전교회의 재건을 위한 원조를 구 하였다. 아울러 선교 지방에 도움이 되는 일을 잊지 않았 다. 지금 퀘벡(Quebec)주 라발(Laval) 대학에 있는 중 국 · 일본 박물관은 그때 달레 신부의 노력으로 설립된 것이다. 〔저술과 선종〕 달레 신부가 남긴 가장 훌륭한 업적은 1874년에 2권으로 펴낸 《한국 천주교회사》(Histoire de I'Eglise de Corée)이다. 한국에 오지도 않은 달레 신부가 이 기념비적 저서를 남길 수 있었던 것은 1836년부터 고종 때까지 조선에 밀입국하여 전도한 프랑스 선교사들 이 파리 외방전교회 본부로 보낸 수많은 편지와 자료를 참고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한국 천주교회사》는 두 부 분으로 짜여 있다. 제1부는 거의 200쪽이나 되는 서문 으로 한국을 소개하는 글이다. 서문에는 한국의 지리와 기후, 역사와 정치, 행정 제도와 사법 제도, 과거와 교육 제도, 한글과 언어, 사회 계급과 여성 문제, 풍속과 가정 제도, 종교와 조상 숭배 사상과 미신, 국장 의식, 한국인 들의 의식 구조와 장단점, 세시 풍속과 놀이, 주거와 의 복, 과학과 공업과 상업, 조선의 국제 관계 등이 기록되 어 있다. 따라서 서문은 서구에 한국을 알리는 데 크게 기여한 것으로 평가된다. 제2부는 천주교 조선 전래부터 고종 때까지의 한국 천주교회의 역사를 기록한 것으로, 주로 다블뤼(Daveluy, 安敦伊, 1818~1866) 주교가 모아 보 낸 <다블뤼 주교 비망기>를 참고하였다. 또 그는 1875년 에 파리 외방전교회 신학교에서 사용할 《전례 의식서》를 편집하였으며, 200여 년에 걸친 파리 외방전교회(1658년 창립) 역사를 집필하려는 원대한 계획을 세웠다. 이에 그 는 본부에 보관된 문서와 자료의 내용을 보충하고 나아 가서 새로운 자료를 구하려고 파리 외방전교회 회원들이 활동하는 선교 지방을 여행하기로 결심하고 1877년 2월 파리를 떠났다. 그리고 일본, 중국 동북부, 만주, 북경을 거쳐 인도차이나 남부 지방을 방문한 다음 하노이로 향 하였으나, 거기에 체류하는 동안 이질에 걸려 1878년 4 월 25일 50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났다. 〔주요 저술〕 <선교사들의 출발 노래>(Chant pour le départ des missionnaires, 1852), <순교 찬가>(Cantique pou l'anniversaire de nos martyrs, 1861), 《논박 교리서》(A Controversial Catechism or Short Answers to the Objections of Protestants against the True Religion, 1859), 《파리 외방전교회 신학 교 역사》(Le Séminaire des Missions Etrangères de Paris, 1871), 《한국 천주교회사》(Histoire de I'Eglise de Corée, vols. 2, Paris, 1874), 《전례 의식서》(Benedictionale Eucharisticum, 1875), 《파리 외방전교회 소속 주교들과 선교사들에게 보낸 서한》 (Lettre aux évèques et aux missionnaires de la Société des Missions Etrangères, 1876). (→ 다블뤼 ; 《한국 천주교회 사》) ※ 참고문헌 Ch. Dallet, Histoire de I'Eglise de Corée, vols. 2, Paris, 1874(安應烈 · 崔奭祐 譯註, 《한국 천주교회사》 전3권, 한국교회사 연구소, 1979~1980)/ Compte Rendu, 1878/ Les Missions Catholiques, t. x, 1878/ 崔奭祐, <달레 著 韓國天主教會史의 形成過程〉, 《教會史研究》 3집, 한국교회사연구소, 1981. 〔呂東贊〕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