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양 본당
潭陽本堂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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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권

광주대교구 소속 본당. 전남 담양군 담양읍 천변리 174 소재. 1957년 2월 24일에 설립되었으며, 주보는 사도 성 마티아. 관할 구역은 담양읍, 고서면, 무정면, 봉산면, 월산면, 용면, 금성면. 〔교 세〕 1965년 669명, 1975년 887명, 1980년 1,052명, 1988년 1,566명, 1994년 1,501명. 〔역대 신부〕 초대 제라티(B. Geraghty, 지) 베르나르도(1957. 2~1959. 11), 2대 컨(E. Quinn, 변) 에 드워드(1959. 11~1961), 3대 카르(F. Carr, 갈) 프란치스코 (1961~1963. 9) 4대 카롤란(C. Carolan, 차) 가롤로(1963.9~1964. 3), 5대 망간(K. Mangan, 만) 첨제노(1964. 3~1965.7), 6대 희키(G. Hickey, 석) 고르디아노(1965. 7~1967. 8) , 7대(임시 포함) 김성용(金成鎔) 프란치스코(1967. 8~1972.2), 8대 백용수(白龍洙) 마태오(1972. 2~1974. 4), 9대 장 용복(張容福) 미카엘(1974.4-1976.3), 10대 강영식(姜永 植) 안드레아(1976. 3~1979. 10), 11대 노완석(魯玩錫) 타 데오(1979. 10~1983. 2), 12대 이경철(李炅哲) 안드레아 ( 1983. 2~1985. 2), 13대 오요안(吳要安) 요한(1985. 2~ 1989. 4), 14대 김계홍(金桂洪) 그리소스토모(1989. 4~ 1992. 1), 15대 김충호(金忠鎬) 미카엘(1992. 1~1995. 1), 16대 장지권(張志權) 요한(1995. 1~6), 임시 윤영남(尹永 男) 시몬(1995. 6~현재). 〔본당 승격〕 담양 본당은 담양읍 양각리에서 북동 본 당 관할 공소로 발족되었다. 담양 본당의 모태가 되었던 담양 공소의 시작은 나주의 이기만(레온시오)이 직장 때 문에 이곳으로 이주해 오면서부터였다. 확실하지는 않지 만 옛 신자들의 증언에 의하면, 이기만이 이주해 온 것은 1940년경이며, 계속 전교에 주력한 결과 이대성(베드 로) 가족의 입교를 시작으로 일제 말기에는 지금의 양각 리에 초가 한 채를 구입하여 공소를 시작하였고, 목포에 가 살던 오 마르티나가 돌아와 합세함으로써 활기를 띠 기 시작하였다고 한다. 광복이 되면서 북동(北洞) 본당 의 물켄(T. Mulkern, 姜) 신부가 잠시 이들을 돌보았으며 같은 해 쿠삭(T. Cusack, 高) 신부가 부임하여 1947년까 지 미사 등을 집전하였고, 북동 본당 주임 모나한(P. Monaghan, 牟) 신부는 1948년에 현재의 성당 부지를 매입하 였다. 6 · 25 한국 전쟁으로 양각 공소에서 현 본당 소재 지로 장소를 옮기게 되었을 때 용면 신자들이 흡수되었 고, 1957년 초 제라티 신부가 초대 주임으로 부임하면 서 양각 공소는 비로소 본당으로 승격되었다. 〔설립과 발전〕 1958년 성당 건축에 착공하여 이듬해 봉헌식을 가진 담양 본당은, 1960년 가을에 부지를 매 입하여 수녀원을 설립하고 예수 성심 시녀회 수녀 2명을 맞이하였다. 1961년에는 대치 공소 강당을 건립하였으 며, 1966년에는 창평 지역 신자들의 요청으로 창평 공 소를 설립했고, 본당 사제관도 신축하였다. 예수 성심 시 녀회가 철수한 5년 후인 1975년에는 인보 성체 수도회 수녀들이 사목을 보조하게 되었고, 1976년에는 성심유 치원이 개원되어 1984년에 학교 병설 성심유치원이 설 립되어 휴원할 때까지 본당의 주일학교 및 어린이 사목 에 많은 도움을 주었다. 한편 1982년에는 교통과 거리 관계로 창평 공소를 광주 중흥동 본당으로 관할권을 이 관하였으며, 1986년에는 남면 공소를 신축하였으나 이 듬해 계림 본당으로 관할권를 이관하였다. 1987년 12월 에 성심유치원이 폐원되자 그 자리에 수녀원을 새로 신 축하였고, 1989년에는 대치 공소를 오치동 본당으로 이 관하였으며, 사제관을 교육관으로 전환시키고 새 사제관 을 신축하였다. 본당 신심 단체는 1960년도에 창설된 학생회, 불우 이웃 돕기를 주로 하고자 1986년에 결성된 빈천시오회 55세 이상 신자들의 친목과 신심 · 기도 생활을 도모하 기 위해 조직한 안나회 등 다양하다. 그리고 모든 성인의 모후 꾸리아가 탄생된 것도 이때였으며, 7월에는 산간 학교를 조직하여 자라나는 청소년들에게 하기(夏期) 수 련을 통하여 참된 그리스도인의 삶을 부각시켜 주는 등 청소년 사목을 활발하게 전개해 나가고 있다. 그 동안 전 교 활동의 결과로 신자수도 많이 증가하였으며, 신자들 의 내적 쇄신과 성전을 아름답게 꾸미는 외적인 발전이 현저하게 이루어졌다. (→ 광주대교구) ※ 참고문헌 《가톨릭 사전》 천주교 광주대교구, 《광주대교구 50 년사》, ,빛고을출판사,190. [편찬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