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 파비안 Damm, Fabian (1900~196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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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권

파비안 담 신부.
신부. 덕원(德源) 면속구 소속 선교사. 세례명은 파비 아노. 한국 이름은 탁세영(卓世榮) . 1900년 5월 15일 독일 바덴(Baden) 주에서 태어나 독일의 상트 오틸리엔 베네딕도 수도회에 입회하였다. 그 후 1928년 5월 10일 뮌헨 대학을 졸업하면서 사제로 서품되었고, 같은 해 7 월 18일 한국에 입국하였다. 1930년부터 원산교구 주교 좌 성당인 원산 본당 주임을 맡아 1949년 본당이 폐쇄 될 때까지 약 20년 동안 사목 활동을 하였다. 1937년 원산 성당을 신축하기 시작하여 이듬해에 완공했는데, 이를 계기로 다베르나스(K. d'Avernas, 羅國宰) 신부를 보좌 신부로 맞아들였다. 8 · 15 광복 후 북한에 공산 정권이 수립되고 교회에 대한 탄압이 가중되어, 당시 원산교구를 맡아 함경남북 도와 간도를 포교 지방으로 관할하고 있던 베네딕도회의 많은 성직자와 수도자들이 수난을 겪었다. 성당을 포함 한 모든 교회의 재산은 몰수되고 많은 성직자들이 감금 되었는데, 특히 1949년 5월 9일에 초대 원산교구장이었 던 사우어(B. Sauer, 辛) 주교, 덕원 베네딕도 수도원 원 장 로트(Roth, 洪泰華) 신부, 부원장 쉴라이허(Schleicher, 安世明) 신부, 덕원 신 학교 교수였던 클링사 이즈(Klingseis, 吉) 신 부 등이 함께 체포되었 다. 곧 이어 5월 11일 에는 원산 본당 주임인 담 신부와 보좌 노이기 르크(Neugirg, 兪順和) 신부도 함께 체포되어 북한의 강제 노동 수용 소에 수용되었다. 이후 4년 동안 감옥에 갇혀 있다가 1954년 1월 8 일 석방되어 본국으로 송환되었다. 1956년 한국에 재입국한 담 신부는 왜관(倭館) 대리 구에서 사목하면서 1958년 10월 25일 경북 김천(金泉) 의 평화동(平和洞) 본당을 분리 · 독립시키고, 초대 주임 신부로 부임하였다. 그러나 1964년 6월 20일 강원도 북 평(北坪)에서 휴가를 보내던 중 갑자기 심장 마비를 일 으켜 64세를 일기로 사망하였다. 현재 그의 유해는 왜관 베네딕도 수도회 성직자 묘지에 안장되어 있다. ※ 참고문헌 《가톨릭 사전》 《경 향잡지》 642호(1928. 7. 31), p. 324 ; 1157호(1964. 8), pp. 12~13. 〔李裕林〕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