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헌서》
湛軒書
글자 크기
3권
조선 후기 북학파(北學派)의 실학자 담헌(湛軒) 홍대 용(洪大容, 1731~1783)의 문집. 내집(內集) 4권, 외집(外 集) 10권 등 총 14권 7책의 비교적 많은 양으로 이루어 져 있다. 이 책은 당시 사회 제도와 유교적인 폐습, 주자 학적 세계관에 대한 홍대용의 철저하게 비판적인 태도와 함께 그가 독창적인 문학 사상가이면서 철학가, 뛰어난 자연 과학자의 한 사람이었다는 사실을 잘 드러내고 있 다. 1939년에 서울 신조선사에서 5대 손 홍영선(洪榮 善)이 편찬하여 정인보(鄭寅普)가 서문을 쓰고 홍명희 (洪命熹)가 교정한 《담헌서》 7책이 처음 발간된 이래, 1969년 경인문화사에서 상 · 하 2책으로 영인 복간(影 印復刊)했으며, 1974년에는 민족 문화 추진회에서 《국 역 담헌서》를 간행하였다. 〔내 용〕 《담헌서》의 내집은 4권 2책으로 권1에 <심성 문>(心性問) · <사서문변>(四書問辨) · <삼경문변>(三經 問辨) 등의 경학 관계 저술 12편과 스승 김원행과의 일 화를 기록한 <미상기문>(漢上記聞) 등이 수록되어 있고, 권2에는 역대 중국의 역사적 인물 80여 명에 대한 인물 평을 한 <사론>(史論)과 세손 익위사 시직(世孫翊衛司侍 直)으로 재직하면서 정조에게 경사(經史)를 강의하고 문 답한 내용을 기록한 <계방일기>(桂坊日記)가 수록되어 있다. 그리고 권3에는 〈서〉(書) · <서>(序) · <기>(記) · <발>(跋) · <설>(說) · <시>(詩) 등이, 권4에는 <묘문>(墓 文) · <제문>(祭文) · <애사>(哀辭) 등이 수록되어 있다. 또한 보유(補遺)로서 봉건적 신분제의 타파를 주장하는 홍대용의 정책과 병법에 관한 논문인 <임하경륜>(林下經 綸) 및 그의 학문관 · 자연관 · 사회관 · 국가관 · 역사관 등이 종합적으로 내포되어 그의 세계관을 뚜렷하게 제시 하고 있는 <의산문답>(驪山問答) 등이 수록되어 있다. 외집에는 권1에 홍대용이 동지사(冬至使)의 서장관이 된 숙부 홍억(洪憶)의 자제 군관(子弟軍官)으로서 북경 을 방문했을 때에 유리창(琉璃廠)에서 만난 중국인 문사 (文士)들과 귀국 후에 주고받은 편지들을 모은 <항전척 독〉(杭傳尺牘)이 수록되어 있다. 권2와 권3에 항주 삼학 사(杭州三學士)인 엄성(嚴誠) · 반정균(潘庭筠) · 육비 (陸飛) 등과 북경의 건정동에서 처음 만난 뒤에 귀국할 때까지 필담한 내용을 기록한 〈건정동필담〉(乾淨衕筆 談)이 수록되어 있다. 권4~6에는 홍대용의 실학 사상의 중요한 일부를 차지하는 산법(算法)과 천문 · 지리의 관 측 및 측정법에 대한 설명이 <주해수용>(籌解需用)에 제 시되어 있어, 수학과 천문에 관한 그의 수준 높은 이론을 짐작할 수 있게 한다. 권7~9에는 종래의 숭명 배청(崇 明排淸)의 관념을 타파하고 적극적으로 청나라의 문물을 수용해야 한다는 내용의 북경 기행문인 <연기>(燕記)가 실려 있는데, 여기에서 홍대용은 서양의 문물을 먼저 접 한 청나라에 대한 새로운 견문과, 서점 · 점포 · 시가 · 고 적 · 명소 등의 탐방, 그들의 생활 · 풍속 등에서 느낀 것 을 비교적 자세하게 기록하고 있다. 그 밖에 부록으로, 그와 절친했던 박지원(朴路i原)이 쓴 <홍덕보 묘지명>(洪 德保墓誌誌名)과 이송(李淞)의 〈담헌 홍덕보 묘표>(湛軒洪 德保墓表) , 홍대응(洪大應)의 <종형 담헌 선생 유사>(從 兄湛軒先生遺事) 등과 함께 김종후(金種厚)의 <애오려 기>(愛吾廬記) , 반정균의 <담헌기>(湛軒記) 육비의 <농 수각기>(籠水閣記), , 엄성의 <팔영>(八詠) 등이 수록되어 있다. 위의 저작들 가운데 <의산문답>은 홍대용의 가장 대표 적인 저술로서, 허자(虛子)와 실옹(實翁)이라는 가공 인 물 사이의 문답 형식을 통해 그의 사상이 체계적이고 종 합적으로 서술되어 있는 산문이다. 이 저술에서 홍대용 은 지구 자전설, 화이론의 배척, 학문의 자유 등에 대한 독자적이고 주목할 만한 주장을 하고 있다. 또한 <연기> 의 '유포문답' (劉鮑問答)에서는, 홍대용이 연행(燕行) 중에 가장 관심을 많이 쏟은 곳이 바로 천주당 방문이었 음이 밝혀져, 천주교와의 관련성을 보여 주고 있다. 이 저술에는 그곳의 천주당, 즉 남당(南堂)에서 만난 예수 회 선교사 할레르스타인(A. von Hallerstein, 劉松齡) 신부 및 고가이슬(A.Gogeisl, 鮑友管) 신부와의 학문적인 대화 가 자세하게 나와 있는데, 그 대화 내용은 당시에 이단 사설(異端邪說)로 배척당하였던 서학(西學)과 관련된 연구에 많은 도움을 주고 있다. 남당에 세 번, 동당에 한 번, 모두 네 차례에 걸쳐 천주당을 방문하고 있는 홍대용 이 그들과 나누었던 대화나 주고받은 편지를 살펴보면, 천주당에 대한 그의 관심은 무엇보다 천문학과 역법 등 의 서양 과학적 열정에서 비롯된 것임을 알 수 있다. 그 들과의 필담을 통해 홍대용은 천주 학문에 대한 대강을 알고 싶다는 의사를 전달하고 나서, 곧 천주란 어떤 존재 인지, 또 천주교 교리에 대한 특징은 어떤 것인지 등의 의문 사항들에 대해 묻고 있다. 그러나 홍대용에게 있어 서 천주학은 다만 천주교 교리와 천문학을 합한 개념으 로 파악되어, 서학의 자연 과학 쪽에 치우쳐 있었다. 《담헌서》에 수록된 홍대용의 저작들은 그의 철학 사상 과 과학적 사유 방식, 역사관과 세계관, 학문론 등을 구 체적으로 제시하고 있어서 그의 사상이나 문학을 이해하 는 데에 매우 중요한 자료라고 할 수 있다. (→ 홍대용) ※ 참고문헌 김태준, 《洪大容評傳》, 민음사, 1987, pp. 141 ~151/ 이상은, <담헌서'해제>, 《국역 담헌서》 1권, 민족문화추진회, 1974. [李裕林]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