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고개
堂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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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권
순교 사적지. 서울 용산구 원효로 2가 8번지 소재. 당 고개는 무악재로부터 아현과 만리재를 지나 지금의 용산 구청에 이르는 산줄기가 끝나는 부분으로 만초천(蔓草 川, 현재 복개된 旭川)과 맞닿는 곳에 위치해 있었는데, 용 산구청 쪽에서 삼각지 방향으로 갈 때 이용되던 고개였 다. 이 지역은 조선 초기에 서부 반석방(盤石坊)에 속하 였다가 18세기에 용산방(龍山坊)으로 변경되었으며, 그 후 용산구 신계동(新溪洞)에 속하였다. 당고개가 한국 천주교회사와 관련을 맺게 된 것은 1839년의 기해박해 (己亥迫害)가 거의 끝나갈 때였다. 당시 조정에서는 갑 자기 서소문 밖에서 당고개로 형장을 바꾸었는데, 그 이 유는 1840년 설날 대목장을 방해하지 않도록 조치해 달 라는 상인들의 요구 때문이었다. 그러나 당고개는 본래 새남터나 서소문 밖과 같이 형장은 아니었다. 이로 인해 1839년 12월 27~28일(음), 이곳에서는 모두 10명이 참수형을 받게 되었다. 우선 27일에는 박 종원(朴宗源, 아우구스티노), 홍병주(洪秉周, 베드로), 권진이(權珍伊, 아가다), 이경이(李璟伊, 아가다), 손소 벽(孫小碧, 막달레나), 이인덕(李仁德, 마리아), 그리고 최양업(崔良業, 토마) 신부의 모친 이성례(李聖禮, 마리 아) 등 7명이 순교하였으며, 다음날에는 홍영주(洪永周, 바오로), 최영이(崔榮伊, 바르바라), 이문우(李文祐, 요 한) 등 3명이 순교하였다. 이 중 어린 자식들 때문에 한 때 마음이 약해져 배교하였던 이성례만을 제외한 나머지 9명은 모두 1984년 5월 6일에 시성되었다. 그 동안 한 국 교회에서는 처형지의 정확한 위치를 알려고 노력하였 으나 여의치 않자 시성식 후 용산구 신계동(新契洞) 157번지에 있는 문배산(文培山) 마루 일대를 매입하여 사적지로 조성하고 순교 기념비를 건립하였는데, 이곳은 1991년 3월까지 용산 본당 신자들이 돌보다가 현재는 삼각지 본당에서 관할하고 있다. (→ 기해박해) ※ 참고문헌 《달레 교회사》 中/《기해일기》 《承政院日記》 《日 省錄》/ 《備邊司謄錄》. 〔편찬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