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대교구 소속 본당. 대구시 남구 대명9동 936-3소재. 1978년 7월 5일에 설립되었으며, 주보는 티없이 깨끗하신 성모 성심. 관할 구역은 대명1 · 6 · 9~11동. 〔교 세〕 1978년 1,349명, 1980년 2,398명, 1983년 3,361명, 1985년 4,120명, 1987년 4,964명, 1993년 5,796명, 1993년 6,256명. 〔역대 신부〕 초대 김기조(金祺祚 안드레아(1978. 7~1979. 11), 2대 신상조(申相祚 스테파노(1979. 11~1984. 8), 3대 이종흥(李鍾興) 그리산도(1984. 8~1986. 1) , 4대 강찬형(姜贊亨) 파스칼(1986. 1~1989. 6), 5대 이상호(李相浩) 베드로(1989. 6~1993. 10), 6대 이홍근(李洪根) 바오로(1993. 10~현재).
〔설립과 발전〕 대명동 본당 관할 구역이었던 대명동일대는 1970년부터 시작된 대덕 공원의 개발에 따라 순환 도로가 개통되고 구획 정리가 이루어짐으로써 신흥 주택지로 각광을 받게 되었고 신자수도 현저히 늘어나게 되었다. 더구나 대명동 본당이 대명동, 성당동, 송현동을 일원으로 하는 넓은 지역을 관할하고 있었고 본당 소재지도 대명동에 편중되어 있었을 뿐만 아니라 성당도 매우 협소하였다. 이에 교구에서 분가시키기로 함으로써 1978년 7월 본당 설정이 있게 되었고 대덕 본당이라 명명하였다. 이 지역이 대명동에 속해 있지만 대덕산 기슭에 자리하고 있으므로, 모(母) 본당 명칭과의 중복을 피하기 위해 정해진 것이다. 본당으로 설정된 뒤 남구 대명9동 936-1번지에 있는 성모 성심 가르멜 수녀원의 성당과 사제관을 임시로 사용하였으며, 예수 성심 시녀회 수녀들이 1978년 9월부터 파견되었다.
같은 해 11월 성당 건립 추진위원회를 결성하였으며, 1979년 2월에는 가르멜 수녀원으로부터 대지 두 필지를 기증받아 같은 해 3월 성당 · 사제관 · 수녀원 등의 건축공사를 시작하였다. 지상 3층에 연건평 290평의 철근콘크리트 성당과 사제관 및 수녀원을 완공하고 4월 13일 축성식을 가졌다. 그 후 1984년 3월 수녀원을 헐고 그 자리에 교육관을 신축함으로써 지하 1층은 교리실과 강당, 지상 1층은 교리실, 2층은 수녀원을 겸하게 되었다. 1993년 12월 18일에는 본당 경로당 건립 축하식 및 경로 잔치를 가졌는데, 소일거리가 없는 관내 노인들뿐 아니라 인근 지역 노인들에게도 유용한 쉼터가 되었다. 한편 1926년 6월 계산동 본당 산하의 성모유치원으로 개원되어 1929년 4월 효성유치원으로 개명된 유치원은, 1980년에 대덕 본당 내로 이전되었다가 1994년 8월 예수 성심 시녀회로 이전되었다.
〔사목 및 활동〕 초대 김기조 신부는 성당 건립과 신설본당으로서의 공동체 형성에 주력하였는데, 본당 공동체 형성을 위해서 신자 찾기 운동 전개, 성서 묵상회와 피정실시, 꾸르실료 교육 수강자 배출 등이 이루어졌다. 2대 신상조 신부는 매년 설정한 본당 사목 시책을 구현하기위해 노력하였다. 1980년에는 지역 단위 교리반 신설, 학습실 마련, 법률 상담소 설치, 인성회 발족 등으로 일치를 위한 노력을 기울였고, 1981년 전교의 해에는 예비자 입교 서약 카드의 활용과 전입 신자의 소개, 환영, 냉담자 방문의 강화 등 선교에 애썼다. 이듬해 본당 공동체 쇄신의 해를 맞이해서는 전례의 능동적 참여, 피정 기도회와 성지 순례의 확대 실시, 성서 연구 모임의 발족, 본당 체육 대회 개최, 청년 연합회 결성, 본당 주보<메아리> 창간 등으로 쇄신을 지향하였다. 1983년 교구 공동체의 해에는 교구 주최의 '복자의 밤' 과 103일 기도에 참여하고 교구로부터 부여받은 본리동 성당 건립 추진 대표 본당으로서의 임무를 수행하였다. 그리고 1984년 본당 약진의 해에 순교 성인을 본받아 개인과 가정의 성화(聖化)를 도모하고 선교에 힘썼다.
3대 이종흥 신부는 이웃 돕기, 가정 성화, 신자 교육등에 노력하였다. 특히 신자 교육은 교수 11명으로 구성된 아오스딩회가 강의를 담당함으로써 좋은 성과를 거두었다. 4대 강찬형 신부에 이르러서는 1986년 성체와 가정의 해, 1987년 성체와 교회의 해, 1988년 '성체 안에 하나 되어' 의 해 등을 차례로 맞이하면서 신앙의 내실화를 위한 노력을 경주하였다. 집 기둥 바로 세우자' 라는 주제로 가정의 성화를 추진하고 성체 신심 행위, 피정, 성서 공부 등을 강화하였다. 또한 혼인 장애의 해소에도 힘썼고 모범적인 신자 생활로 신앙인의 표양을 보이고자하였다. 그 밖에 추석과 구정의 합동 연미사 집전 때 성당 안에 분향대를 설치하고 가족 대표가 직접 분향하도록 하는 등 전통적인 제사 예절을 수용하기도 하였다. 1988년 8월 본당 설정 10주년을 맞아 《대덕 성당 10년사》를 간행하였고, 5대 이상호 신부는 1993년에 본당공동체의 단결과 선교 활성화를 도모하고자 본당기 및 본당가를 공모하였다. 6대 이홍근 신부는 1994년 5월 29일 남성 신자 모임인 대덕회를 창립하였으며, 7월 30일에는 청년회 연수, 10월 22일에는 청년회 주최의 가을 음악회 개최 등 청년 사목에도 주력하였다. 사목 계획으로서 노인 선교와 주일학교의 혁신적인 교육 체제 운영, 반장 교육을 통한 반 활성화와 신자 재교육을 통한 신앙 쇄신, 가정 성화에 힘쓰고 있다. 특히 냉담자 및 행불자 없는 교회를 만드는 데 본당 전신자가 총력을 모아 노력하고 있다. (⇨ 대구대교구)
※ 참고문헌 《가톨릭 사전》 《대덕 성당 10년사》, 천주교 대덕 교회, 1988. 〔편찬실〕
대덕 본당
大德本堂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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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