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동 본당

大洞本堂

글자 크기
3
대전교구 소속 본당. 대전시 동구 대1동 288 소재. 1966년 9월 19일 대흥동 본당에서 분리 · 설립되었으며, 주보는 루르드의 성모. 관할 구역은 대1 · 2동, 소제동, 신안동, 신흥동, 자양동 전지역과 용운동, 판암동, 인동 일부. 〔교 세〕 1968년 1,267명, 1972년 1,614명, 1978년 2,330명, 1982년 2,122명, 1988년 2,761명, 1992년 4,304명, 1994년 1,632명. 〔역대 신부〕 임시관리 책임자 유봉운(兪鳳雲) 야고보(1966. 9~1968. 1), 초대 변갑선(卞甲善) 치릴로(1968. 1~1969. 12), 2대 조성옥(趙成玉) 요한(1969. 12~1972. 12), 3대 유인성(劉寅成) 프란치스코(1972. 12~1975. 9), 4대 이규남(李圭男) 요셉(1975. 9~1980. 9), 5대 나기순(羅基順) 루도비코(1980.9~1982. 3), 6대 박종우(朴鍾禹) 안드레아(1982. 3~1986.4), 7대 장영식(張英植) 토마(1986. 4~1990. 12), 8대 윤종관(尹鍾寬) 가브리엘(1990. 12~현재).
〔설립과 발전〕 대전교구에서는 대동 지역의 사목적 효율성을 고려하여 본당 설립을 계획하고, 1966년 6월 대지 602평에 건평 54평의 건물을 매입하였다. 이 건물을 그 해 8월 강당으로 개조하여 임시 성당으로 사용하다가, 9월 19일 본당 설립의 기쁨을 맛보았다. 이후 1967년 6월 성당(125평)과 사제관(36평) 공사에 착수 12월에 완공하였고, 이듬해 3월 25일 축성 · 봉헌하였다. 1968년 5월 3일 공식 인가를 받은 본당 부설 장미유치원이 개원되어, 신자 자녀 아동을 비롯한 지역 아동들의 교육 및 선교에 기여하였다. 1970년 7월에는 17평의 수녀원 건물 신축 공사를 시작하였고, 그 해 7월 31일자로 서울성가 소비녀회 분원이 설치되었다.
본당 설립 초기 달 동네로 지칭되던 대동 산 1번지(현자양동 본당 관할 구역)와 용운동 맹인촌을 포함한 광범위한 관할 구역에서 가난한 이들에게 복음을 전하던 대동본당은, 1970년대 후반기에 들어서면서 신자수가 2천명이 넘게 되자 교육관 등 부속 시설의 필요성을 절감하고 1983년 5월 교육관과 유치원, 사제관을 신축하였다.
〔성장과 변모〕 1987년 12월 성남동 본당과 함께 대전교구 최초로 지속적인 성체 조배를 시작하였으며, 1988년 9월 22일에는 교구 첫 노인 대학을 개설하였다. '신뢰받는 생활, 꿈을 갖는 생활, 사랑할 줄 아는 생활' 을 교훈으로 노인들의 여생을 보다 뜻 깊고 유익하게 이끌기 위해 설립한 노인 대학은 노인들에게 배움을 통한 즐거움과 여가 선용을 통한 삶의 의욕을 고취시키고 있다.
1990년대에 들어와서는 전례를 최우선 사목 과제로 정하고 전 신자들에게 미사 참례 때 성서를 지참하도록 권장하고 있으며, 1991년부터 발행한 본당 주보를 통해 성서 교육을 실시하고 있다. 1992년 6월에는 3차례에 걸쳐 "민족 화해 일치" 특강을 실시, 민족 통일에 대한 관심을 고조시키는 등 신자 재교육에도 앞장서고 있다.
한편 1985년 12월에 공소 강당을 신축했던 자양동 공소를 1987년 2월 본당으로 분가시키고, 1993년 8월에는 판암동 본당을 분가시키기도 하였다. 자양동에 이은 판암동 본당 분리는 침체된 지역 현실과 함께 본당 교세 약화를 초래, 성당 노후로 인한 재건축 등 현안이 산적한 본당 현실을 더욱 어렵게 하고 있다. 그러나 이에 좌절하지 않고, 본당 설립 30주년이 되는 1996년에는 《대동천주교회 30년사》를 발간하기로 계획하는 등 공동체 활성화에 최선을 다하고 있다. (→ 대전교구)
※ 참고문헌  《가톨릭 대사전》 / 천주교 대전교구 홍보국, 《대전교구 30년》, 1988. 〔편찬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