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동 사상

大同思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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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동 사상을 더욱 부각시킨 강유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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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동 사상을 더욱 부각시킨 강유위.

평등 · 자유의 세계를 추구하고자 하는 사상의 한 부류로 청나라 말 민국 초의 사상가 강유위(康有爲, 1858~1927)에 의해 더욱 부각된 사상.
〔기원과 전개〕 《예기》(禮記) <예운>(禮運) 편에 의하면, 대도(大道)가 행하여져 차별 없이 평등하고 자유로운 세계를 대동 세계라고 한다. 이러한 사상은 이미 상고(上古) 때부터 상당히 성숙되었던 것으로 보이는데, 이는 <예운> 편에서 대동의 세계가 매우 구체적으로 묘사되고 있는 점으로도 짐작할 수 있다. 그러나 대동 사상의 연원은 공자로부터 비롯한다는 것이 강유위의 지적이다.
이와 같은 중국적 유토피아 사상은 《예기》를 제외한 유교 경전에 많이 나타나고 있다. 예를 들면 《서경》 <요전>(堯典)의 '협화만방' (協和萬邦), <순전>(舜典)의 '만이솔복' (蠻夷率服), <대우모>(大禹謨)의 '만방함령' (萬邦咸寧), <익직>(益稷)의 '만방려헌' (萬邦黎獻) 등에서 대동 세계의 사상을 엿볼 수 있다. 후대로 내려와서는 맹자가 제창하였던 인정(仁政) 속에 포함되는 이상적인 사회 제도와 상통하는 면이 적지 않다. 예를 들어 《맹자》 <양혜왕 하>에서, "늙어서 아내가 없는 사람을 홀아비〔鰥〕라 하고, 늙어서 지아비가 없는 사람을 과부(寡)라 하고, 늙어서 아들이 없는 것을 독(獨)이라 하고, 어려서 부모가 없는 사람을 고아〔孤〕라 부르는데, 이 네 부류는 천하의 곤궁한 백성들로서 모두 갈 곳이 없는 사람들이니, 문왕이 정사를 펴고 인(仁)을 베푸는 데 반드시 이 네 가지를 우선하였다"고 하였다. 이것은 대동설에서 이른바 '노유소종' (老有所終) 및 '유유소장' (幼有所長)과 관련이 있는 대목이다. 요컨대 늙은이들이 안락하게 그 수명을 마칠 수 있도록 하고, 어린이들이 건전하게 자랄수 있도록 하는 관건은 바로 '장유소용' (長有所用), 즉 젊은이들에게 취업을 충분히 보장하는 것이다. 대동설에서 '남유분' (男有分), 즉 남자들이 일정한 직분이 있어서 생활에 궁핍을 느끼지 않는다고 하는 것이 바로 그것이다. 이처럼 취업
률이 높으면 사회가 안정되고 취업률이 낮으면 사회가 혼란해지는 것이다. 또 《맹자》<양혜왕 하>에서 "안으로는 홀몸으로 불만을 갖고 지내는 여자가 없으며, 밖으로는 홀로 사는 지아비가 없어야 한다" (內無怨女 外無曠夫)라 한 것은 <예운> 편에서 '여유귀' (女有歸)라고 한 것과 다름이 없다. 한마디로 유교의 이상은 대동 세계의 실현에 있다고 볼 수 있다. 이 밖의 문헌에도 묵자의 겸애교리(兼愛交利), 노자의 소국과민(小國寡民), 허행(許行)의 군신병경(君臣竝耕) 등에서 볼수 있는 것처럼 단편적이긴 하나 대동 사상이 많이 나타나 있다.
한대(漢代) 이후로는 소극적이고 현실 도피적인 사상이 그려낸 이상향과 신선계(神仙界)에 투영된 것, 또 정치적인 이상으로서 토지의 겸병(兼井)을 막고 균등하게 분배하기 위해 정전제(井田制)의 실시와 같은 적극적인 정책들이 때때로 제기되기도 하였다. 특히 한 무제(武帝) 때에는 동중서(董仲舒)를 중심으로 하여 대동설에 보이는 이상적 사회주의와 《논어》에 나오는 "가난한 것을 근심하지 않고 균등하지 않은 것을 근심한다" (不患患貧患不均)를 바탕으로 일련의 경제 정책을 제시하기도 하였다. 동중서는 "크게 부자가 되면 교만해지고 너무 가난하면 근심이 많으니, 근심이 많으면 도적이 되고 교만하면 포악해지는 것은 보통 사람들의 감정이다. 성인은 부유하게 되는 것을 귀하게 여기되 교만에 이르지 않도록 하고 가난한 사람들도 인간으로서의 기본적인 생활을 영위하기에 충분하도록 근심이 없게 하여, 제도적으로 고르게 하는 데 그 주된 목표가 있다" 고 말하였다. 이것은 중국 유가들의 전통적인 균산론(均産論)으로서 이후 중국 경제 정책의 기본이 되었다. 그러나 여기에서의 균산론은 개개인 사이에 전혀 차이가 없는 절대 평등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관대한 평면적 균등을 바란다는 의미이다. 따라서 공산 사회의 평등과는 분명히 차이가 있는것이다. 또한 대동적 세계의 실현은 중국 역사상 자주 일어났던 농민 봉기에서도 그 목표가 되기도 하였다. 청나라 말기에 일어난 태평 천국의 난에서는 '토지 공유' 라고 하는 대동 세계가 제기되었다. 이러한 급진론은 매우 공상적이기는 하지만, 그 방향이 종래에 끊임없이 제기되었던 '토지의 균등 분배' 가 아니라, 공유(共有) 또는 공유(公有) 즉 사적(私的) 소유의 폐지로 향한다는 특징이 있다. 청초 이래의 분배론이 사적 소유의 확립을 지향하는 것이었다면, 청말의 토지 공유론은 이전과는 다른 주목해야 할 차이점이라고 하겠다. 이는 그 뒤 강유위의 유토피아적인 공유론(公有論)과 아울러 사회주의적인 토지 국유론으로 이어지게 된다.
그런데 이 <예운> 편의 내용을 묵가(墨家)의 것으로 생각하는 학자들이 많았다. 왜냐하면 대동 세계를 논하는 글과 같은 어구가 《묵자》에 보이기 때문이다. 어떻게해서 그 글이 《예기》에 들어갔는지 알 수는 없으나, 제임스 레그(James Legge), 일본인 학자 나가자와(長澤規矩也)를 비롯한 많은 사람들이 그것을 묵가의 것으로 생각해 왔다. 어쨌든 그것은 대동 사상이 유가의 것만은 아니라고 할 수 있다. 이런 점에서 대동의 이상이 과연 원시유가(原始儒家)의 이상과 일치하느냐 하는 점이 문제가 되지 않을 수 없다. 특히 방법적인 면에서 차별애주의(差別愛主義)의 성격을 지니고 있는 원시 유가의 '인' (仁) 개념이 무차별 평등한 대동의 이상과 합치될 수 있느냐 하는 점, 진화(進化)의 과정상 쟁란(爭亂)의 사회로부터 소강(小康)의 사회를 거치지 않고 바로 대동의 사회로 이행할 수 있느냐 하는 점이 문제가 되었다. 그러므로 대동 · 소강의 설은 공자나 맹자의 원시 유가의 주장과는 다르며 노장 사상(老莊思想)이 섞여 든 것이고, 본시 공자의 말은 아닐 것이라고 보는 견해가 많다. 이것은 대체로 송대 학자들의 견해이다. 주자(朱子)는 대동 · 소강의 설이 노장 사상과 근사(近似)함을 인정하고 성인의 말이 아니라고 하면서, 호명중(胡明仲, 이름은 寅)의 말을 빌려 <예운> 편은 공자의 제자 자유(子游)가 지은 것이라고 주장하였다(《朱子語類》 권87). 그 뒤 원나라때의 학자 진호(陳澔)는 《예기》 연구에 있어 획기적인 업적의 하나로 평가되는 《예기 집설》(禮記集說)에서, <예운> 편은 자유의 문인들이 기록한 것에서 나왔을 가능성을 제기하면서, 대동 · 소강의 설은 공자의 말이 아니라고 단정하였다.
〔강유위의 대동 사상〕 이처럼 <예운> 편은 송대(宋代) 이래로 그다지 중시되지 않고 내려오다가, 청말에 이르러 요평(寥平)과 그의 영향을 받은 강유위가 주목하여 다시금 중요한 논의의 대상에 올랐다. 강유위는 《예운주》(禮運注)를 지어 《예기》 《예운》 편에 보이는 대동의 이상을 근거로 '대동 사상' 의 기본적인 줄거리를 마련하였으며, 나중에 《대동서》(大同書)를 지어 대동 사상을 독특하게 전개하기에 이르렀다. 이는 그의 웅대한 사상규모와 미래 사회에의 전망을 짐작할 수 있는 명저라 할수 있다. 그의 다른 저작인 《논어주》(論語註), 《맹자주》(孟子註), 《중용주》(中庸註), 《춘추필삭 대의미언고》(春秋筆削大義微言考) 등도 모두 대동 사상과 관계가 깊은것들이다. 그는 춘추 공양학(春秋公羊學)을 바탕으로 신학 위경(新學僞經) · 공자 개제(孔子改制)와 같은 설을 주장하면서 청조(淸朝)의 혁신을 위한 실천 이론을 강조하였다. 그는 1888년(光緒 14) 북경에 가서 정치 개혁에 관한 상서(上書)를 하였고, 프로테스탄트 선교사의 번역서 등을 통하여 서양의 학문을 섭취할 만큼 서양학에 깊은 관심을 가졌다. 이처럼 중국의 전통적인 사상에다 서양의 학문까지 수용하고 이를 춘추 공양학과 관련지어 유토피아적 이상 세계의 구상과 그 실현 방법에 관한 방법을 총괄해서 저술로 완성한 것이 바로 《대동서》이다. 그는 《춘추》(春秋)의 '삼세' (三世)로써 <예운>을 해설하였다. 그에 따르면, 승평세(升平世, 태평세보다는 못하지만 자유롭고 평등한 세상)가 소강(小康)이고 태평세(太平世, 완전히 자유롭고 평등한 세상)가 대동(大同)이라고 하였다. 인간의 역사는 거란세(據亂世), 승평세를 지나 태평세로 변하는데, 태평의 세상이라는 것은 곧 대동의 사회이다. 이 대동의 사회에 있어서는 전세계가 하나의 공정부(公政府)에 의하여 통할되어 계급 · 인종 · 남녀의 차별이 없어지고 가족 제도에서 해방되며 산업은 공공으로 운영된다고 한다.
《대동서》에 나타난 주장 가운데 주요한 것은 대략 다음과 같다. ①국가를 없애고 전세계를 하나의 총정부(總政府)로 하되 약간의 구역으로 나눈다. ② 총정부와 구정부(區政府)는 모두 민중의 선출에 의해 구성된다. ③가족을 없애고, 남녀는 1년 이상 동거하지 못하며 시기가 지나면 서로 상대를 바꾼다. ④ 임신부는 태교원(胎敎院)으로 보내고 태어난 어린이는 육영원(育嬰院)으로 보낸다. ⑤어린이는 성장함에 따라 몽양원(蒙養院) 또는 학교에 보낸다. ⑥성년이 된 뒤에는 정부의 지시에 따라 농업 · 공업 등 생산 사업에 종사한다. ⑦병이 들면 양병원(養病院)으로, 늙으면 양로원(養老院)으로 보낸다. ⑧성년이 된 남녀는 일정 기간 각원(各院)에서 의무적으로 복무한다. ⑨공공 숙사(公共宿舍)와 공공 식당을 설립하고, 각각 등급을 두어 사람들의 수입에 맞게 즐기도록 한다. ⑩죽으면 화장하고 화장터 가까이에 비료공장을 세운다. 이렇게 하여 태평의 세계가 이루어진 뒤에는 인간계뿐만 아니라, 전생물계(全生物界)에 자비가 미쳐 극락의 세계, 선 · 불(仙佛)의 경지에 도달하게 된다는 것이다. 이처럼 그가 그리는 대동 세계의 바탕에는 묵가 사상 신선 사상을 비롯한 중국 고대의 여러 전통사상 및 불교 사상 등이 잡다하게 섞여 있으며, 특히 자유 · 평등 · 독립 · 천부 인권 등의 용어도 나타나고 있다. 이는 그가 그리스도교적 평등관과 루소(J.J. Rousseau)의 천부 인권설을 도입하여 중국의 전통 사상에다 서양 사상을 접목시키려 했던 의욕을 분명히 읽을 수 있다. 이《대동서》는 그의 생전에 발표되지 못하였다. 그는 자신이 발명한 새로운 이상이 지극히 선하고 좋은〔至善至美〕 것이라고 인정하면서도, 당시의 세상은 거란(據亂)의 세상이므로 '소강' 만을 말할 수 있을 뿐 '대동' 은 말할 수 없다고 하였으며, 만약 말한다면 세상을 홍수(洪水)나 맹수(猛獸)의 해독에 빠지게 하는 것과 같다고 하였다. 그는 시종 소강의(小康義)로 현실을 구해야 한다고 주장하면서, 정치나 사회 · 도덕 문제도 옛 상태를 그대로 유지해야 한다고 하였다. 여기서 그의 급진 개혁적 성향과 함께 보수성을 아울러 볼수 있는 것이다. 이 《대동서》는 시인적(詩人的)인 공상력을 결부시켜 유토피아 사상의 극치를 그린 것으로 이채를 띠고 있긴 하지만, 결국 이상에 그치고 말았던 데서 그 근본적인 한계성을 찾을 수 있다. 그리하여 그의 《대동서》를 사상의 관념성 내지 반동성(反動性)으로써 비난하는 일이 많다.
신해혁명(辛亥革命) 후 강유위는 청조의 복구라든가 공자교(孔子敎)를 국교로 하는 운동을 전개하여 무술 변법(戊戌變法) 당시와는 대조적으로 보수 반동의 길을 걸었다. 그리하여 나중에는 그가 주장한 대동 사상조차 반동성을 위장하는 것에 불과하다고 신랄한 비판을 받기에 이르렀다. 그러나 그가 어떻게 평가를 받든지 간에 그의 대동 사상이 그의 주관적이고 자의적인 해석과 증명에 의한, 개제자(改制者) · 창교자(創敎者)로서의 공자의 창출을 통해서 이루어진 것임은 틀림없다. 그러나 그의 주장에는 문제점이나 실현성에 의문이 제기되는 것이 적지 않다. 그는 개인간 또는 국가간의 분쟁의 원인이 사유재산에 있다고 보았다. 이것은 근본적으로 구별 의식에서 비롯된다는 것이다. 그리하여 구별 의식의 근거가 되는 혈족적 이기주의의 파생 요인을 없애기 위하여, 가족의 파괴를 부르짖었고, 또 집과 집 사이의 경계를 없애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가족이 없다면 누가 사유 재산을 소유하겠느냐고 반문하고 있다. 가족이 없어지면 국가는 자연히 소멸하게 된다는 것이다. 이것은 바깥문을 닫지 않고도 안심하고 살수 있는〔外戶而不閉〕 세상에 대한 이상을 급진적으로 강조한 면이 없지 않다. 그는 가족 파괴의 한 방법으로 단기 1개월에서 장기 1년의 계약 결혼제를 통한 이혼의 자유를 주장하기도 하였다. 그러나 이것은 개인간의 구별 의식을 없애고 분쟁을 해소하겠다는 의도에서 나온 것이나, 결과는 그와 반대로 될 소지가 높을 뿐만 아니라, 가족을 국가와 사회의 기본적인 구성 단위로 보는 유교의 이념 체계에 어긋나는 것이기도 하다. 아마 그 역시 메아리 없는 외침으로 제시하였을지도 모른다. 그도 그것이 인성(人性)에 맞는지에 대해서는 말하지 않았다. 또 그가 주장하는 대동의 이상 사회에서는 유교의 예교 질서가 소멸하고 있다고 하였는데, 이는 2천 년을 두고 체제 교학(體制敎學)이었던 유교의 자기붕괴 내지는 자기 소멸을 나타내는 것이다. 따라서 그는 평생토록 유교의 선양에 크게 이바지하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원시 유가 이래로 중국에서 뿌리깊은 영향력을 발휘하였던 가치 체계를 내부적으로 붕괴시켰다고 하는 역설적인 역할을 담당하기도 하였던 것이다. 이러한 점등으로 미루어 볼 때, 그의 대동 사상은 비록 유가 사상의 범주에서 완전히 벗어났다고 단정할 수는 없지만, 아울러 발전적으로 전개하였다고 평가하기는 어려울 듯하다.
〔강유위의 대동 사상 발전과 그 의의〕 강유위의 흐름을 따른 사람들 중에서 가장 급진적 성향을 지녔던 이는 담사동(譚嗣同, 1865~1898)이다. 그는 《인학》(仁學)이라는 명저를 남겼는데, 여기서 청대의 인관(仁觀)을 청말 특유의 대동적(大同的) 공리관(公理觀)으로 승화시킴으로써 절대 평등의 세계를 정립하려고 하였다. 이것은 강유위의 《대동서》에 그려진 유토피아적인 대동 세계와 대체로 같다. 이 대동 사상은 손문(孫文, 1866~1925)의 삼민주의(三民主義)에도 보이고 있는데, 그는 대동 세계를 삼민주의의 궁극적 목표로 지향하였다. 유저(遺著)인 《삼민주의》에서는 "고유한 도덕과 평화를 기초로 하여 세계를 통일하고 하나의 대동지치(大同之治)를 실현하지 않으면 안된다. 이것이야말로 우리 4억 인의 큰 책임이다" 라고 하였다(<民族主義> 第六講). 또 양계초(梁啓超, 1873~1930)는 이 대동 사상에는 민치주의(民治主義)와 국제 연합주의(國際聯合主義) · 아동 공육주의(兒童公育主義) · 노병 보험주의(老病保險主義) · 공산주의(共産主義) · 노동 신성주의 (勞動神聖主義)가 들어 있다고 해석하기도 하였다(《清代學術概論》) .
근세에 들어 마르크스를 신봉하는 중국 공산주의자들 역시 대동 세계를 그들이 이상시하는 사회주의 사회와 연결시켜 논하면서, 유교와 마르크스주의 간의 큰 공통점을 대동 사상에서 찾았다. 그들은 대동 사상이 세계주의 · 사회주의와 부합되는 점이 많다고 생각하였던 것이다. 곽말약(郭沫若, 1892~1978)이 발표한 가상작(假想作) 《마르크스의 공자 방문기)(馬克思進文廟)에서, 공자의 말을 인용하여 "마르크스 당신의 그 이상 세계와 저의 대동 세계와는 서로 의논한 바 없는데 완전히 일치하는군요!"라고 한 것이 단적인 예라고 할 수 있겠다. 또한 이 대동의 세계는 청말 혁명 운동이 진행된 이래 무정부주의자(anachis)들에게 '중국적 무정부주의' 사상의 근거로 활용되기도 하였다.
이처럼 사회주의자나 무정부주의자들은 자기들이 지향하고 있는 이상 사회를 건설하고 시대적 과제를 해결하기 위해 역사를 무시하면서까지 고전을 주관적 · 자의적으로 해석하는 면이 적지 않았다. 그러나 중국의 식자층에서 주지하고 있는 어떠한 이상적인 세계가 혁명의 궁극적 목표로 설정되어, 대중들로 하여금 혁명을 친숙하게 받아들이도록 한 것 바로 그 자체에 이념적 생명력이 깃들여 있는 것이다. 여기서 중국 혁명이 갖는 전통계승, 바꾸어 말하면 유교적 도덕주의(道德主義)의 두터운 층을 살필 수 있게 된다. 위에서 살핀 바와 같이 대동사상은 중국 역대 어느 시대를 막론하고 오래도록 뿌리깊은 영향력을 발휘하기도 하였으며 오늘에도 계승되고있다. 이는 대만의 국가(國歌)에서 '삼민주의, 오당소종, 이건민국, 이진대동' (三民主義, 吾黨所宗, 以建民國, 以進大同)이라고 한 데서도 알수 있다.
〔한국에서의 대동사상〕 대동 사상이 한국 · 일본 · 동남 아시아 등 유교 문화권에 끼친 영향도 역시 적지 않다. 종래 한국의 정통 유학자들은 <예운> 편에 실린 이 대동 사상을 유가의 순수한 사상이라고 보지않았다. 여기에는 주자를 비롯한 송대 유학자들의 영향이 지대하였다. 조선 초기의 학자 양촌(陽村) 권근(權近)은 《예기 천견록》(禮記淺見錄)에서 대동 · 소강(小康)의 내용을 공자의 말이 아니라고 하면서 경(經)이 아닌 전(傳)으로 처리한 바 있다. 경학사적(經學史的)인 진위(眞僞) 문제로 인해 대동 사상은 별로 중시되지 못하였던 것이다. 그러나 대동 사상이 뜻 있는 학자들에게 적지 않은 영향을 끼쳤던 것은 사실이다. 특히 율곡(栗谷) 이이(李珥)는 《성학 집요》(聖學輯要) 제4 위정 하 <위정공효>(爲政功效) 장에서 이를 인용하여, 대동의 세계를 강조하고 있다. 이는 이채를 띤 것으로서 이이가 그리는 이상 세계를 엿볼 수 있는 한 대목이라 하겠다. 한편 이에 앞서 정암 조광조(趙光祖)는 '태화(泰和)의 경지' 와 '융평(隆平)의 세계' 를, 퇴계 이황은 '인수(仁壽)의 경지'를 강조한 바 있었다. 이는 표현만 다를 뿐 모두 '대동의 세계'를 지향하는 것이라고 하겠다.
※ 참고문헌  《禮記集說》/ 《禮記淺見錄》/ 《栗全書》/ 《大同書》/ 《仁學》/ 《三民主義》/ 《清代學術概論》/ 長澤規矩也, 《支那學術文藝史》, 三省堂, 1938/ 侯外廬 主編, 《中國歷代大同思想》, 1959/ 金谷治외, 趙誠乙 역, 《中國思想史》, 이론과 실천, 1994/ 勞思光, 鄭仁在 역, 《中國哲學史》, 探求堂, 1987/ 戶 川芳郎 외, 趙誠乙 역, 《儒教史》 이론과 실천, 1990/ 柳承國 외 , 《儒學原論》, 성균관대학교 출판부, 1978. 〔李東俊〕