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림동 본당

大林洞本堂

글자 크기
3
서울대교구 소속 본당. 서울시 영등포구 대림1동 919-38 소재. 1976년 5월 25일 도림동 본당과 대방동 본당에서 분리 · 설립되었으며 주보는 성 바오로. 관할구역은 대림1~3동, 신길5~6동, 신대방동. 〔교 세〕 1976년 2,405명, 1980년 4,049명, 1985년 8,076명, 1990년 10,141명, 1994년 9,153명. 〔역대 신부〕 초대 김영환(金永煥) 바오로(1976. 1~1980. 5), 2대 박희봉(朴喜奉) 이시도로(1980. 5~1983. 3), 3대 이계광(李啓光) 요한(1983. 3~1988. 8) ,4대 김정직(金正直) 디오니시오(1988.8~1992.9), 5대 김구희(金球熙) 요한(1992. 9~현재).
〔공소 시대〕 현재의 대림동과 대방동(당시 경기도 시흥군 북면), 신길동(당시 시흥군 하북면) 주변의 신자들은 6.25 동란 직후까지도 영등포 지역의 유일한 천주교회이던 영등포(현 도림동) 본당에서 미사 참례를 하였다. 그러다가 살레시오 수도회 서울 관구가 설치되어 이 지역 사목에 참여하게 되었고, 1967년 12월 대림동(당시 신도림동)에 살레시오회 수도원 성당이 신축되자 인근에 거주하던 신자들이 이곳에서 주일 미사를 참례하게 되었다. 참석자들의 수가 날로 증가하자 1971년 1월에는 수도원을 소재지로 한 대림동 공소가 개설되었다. 1971년 4월에는 레지오 마리애 쁘레시디움이 창단되었으며, 매년100여 명의 영세자가 배출됨에 따라 1972년에는 임시교적을 비치하였고, 1974년에는 신자수가 1,000여 명에 달하게 되었다.
〔설립과 발전〕 사목회가 조직되는 등 일개 공소가 본당 규모로 성장하게 됨에 따라 1976년 1월 본당 설립 준비차 김영환 신부가 주임으로 부임하였다. 같은 해 3월 성당 신축 부지 301평을 매입한 교구는, 5월 25일 대림동 공소를 본당으로 승격시키고, 1976년 9월 30일 성당 신축 공사에 착수, 1978년 9월 16일 연건평 360평 규모의 신축 성당을 축성 봉헌하였다. 그러나 신자수의 증가에 따라 성당 확장이 요구되자 1981년 3월 성당 인근 대지 194.8평을 매입한 데 이어 1982년 9월과 1984년 1월에는 45평 규모의 인근 가옥들을 각각 매입하였으며, 1985년 12월 29일 연건평 680평 규모의 증축 성당을 완공하였다.
한편 1979년 3월 31일자로 한국 순교 복자 수녀회 분원이 설치된 대림동 본당은, 수녀원과 전례 분과위원회 주관으로 1987년 3월부터 매월 성시간을 가지며 각 단체별로 성지 순례를 연중 1회씩 실시하고 있다. 1986년부터는 본당 설정 10주년 기념 본당의 날을 시작으로 매년 10월 중 하루를 본당의 날로 정해 체육 대회 등 다양한 행사를 통해 본당 공동체의 친교를 도모하고 있다. 1987년 2월에는 대림 장학회가 발족하여 본당 내 학생은 물론 지방 공소의 학생들에게도 도움을 주고 있으며, 1989년부터 한마음 한 몸 운동의 일환으로 매년 본당에서 헌혈을 실시하고 있다.
본당 관내에 돈보스코 청소년 센터와 살레시오 근로 청소년 기숙사, 살레시오 수녀원 등이 있는데, 이들 단체들과 구체적인 협의 기구는 없으나 상호 보완적인 관계를 형성하고 있다. 최근에는 공장 철거와 아파트 단지 조성으로 상주 인구 증가와 함께 상업과 사무직에 종사하는 신자들이 늘어 본당 사목 방향을 재조정하고 있다. (→ 서울대교구 ; 도림동 본당 ; 살레시오회)
※ 참고문헌  《가톨릭 사전》 천주교 대림동 교회, 《천주교 대림동 교회 안내서》, 1986. 〔편찬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