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이완 혹은 옛 이름으로는 포르모사(Fomosa, 아름다운)라고 불리는 섬 나라. 중국 복건성(福建省)에서 타이완 해협을 사이에 두고 동쪽으로 약 150km 해상에 위치해 있으며, 면적은 35,961k㎡이고, 인구는 2,092만 6천 명(1993)이며, 수도는 타이베이(臺北). 공식어는 베이징어(北京語)이지만 푸라오어(福語) · 커자어(客家語)등 지방 언어도 사용되고 있으며, 종교는 그리스도교, 불교, 도교, 이슬람교 외에 조상 숭배, 영웅 숭배 등 민간종교의 색채가 강하다. 이 섬의 존재가 중국인들에게 알려진 것은 7세기 초부터였고, 1590년에 포르투갈인들이 상륙하여 '포르모사' 라는 이름을 붙였다. 1683년에 청(淸)나라 군대가 이 섬을 점령하면서 복건성의 일부가 되었으며, 1858년에는 천진 조약(天津條約)으로 안평(安平) 등의 항구를 개항하게 되었고, 1895년의 시모노세키 조약으로 일본의 식민지가 되었다. 1943년 카이로 국제 회의와 1945년 8월 포츠담 국제 회의에서 중국에 반환하기로 결정되면서 일본이 철수한 후, 1949년의 국공 내전(國共內戰)에서 패한 장개석의 국민당 정부가 미군의 도움을 받아 대만으로 이전하였다. 1978년 장개석의 아들 장경국(蔣經國)이 대통령으로 취임하였으나, 그해 12월 카터(J. Carter) 미국 대통령이 중국과의 외교 관계를 추진하기로 선언함에 따라 국제적으로 고립되었다. 그 후 10년이 지난 1988년에 이르러서야 국제적인 기구에 자리를 다시 얻게 되었다.
대만에 최초로 상륙한 가톨릭 선교사는 1626년 당시 스페인 식민지였던 필리핀의 마닐라에서 건너온 스페인 도미니코회 수사 마르티네스(Bartόlome Martinez)와 동료 선교사 5명이었다. 그들 및 그 후임자들은 대만 북부에서 활동하면서 약 4,500명을 영세시켰으나, 1642년에 스페인 수비대가 대만 남부를 장악하고 있던 네덜란드 군대에 패하여 철수하게 되면서 선교사들은 모두 체포되었고, 자바 섬의 바타비아(현 자카르타)로 호송되는 바람에 포교 사업은 일시 중단되었다. 1661년 10월에는 명나라 말기의 무장 정성공(鄭成功)이 네덜란드군을 몰아내고 대만을 점령하였다. 그는 아모이(廈門)의 도미니코회 회원 리치(Victorio Ricci)를 필리핀의 루손 섬에 파견하여 대만 점령을 통보하게 하였다. 리치는 돌아오는 길에 기륭(基隆) 항구에 상륙하여 잠시 포교하다가 아모이로 돌아갔다. 그로부터 4년 후 다시 대만에 건너와서 포교 활동을 재개하였으나 1666년에 마닐라로 전임되었고, 1673년에는 마닐라 도미니코회의 선교사 4명을 파견하여 교세 회복을 도모하였으나 중국 관리의 심한 박해로 7개월 후에 철수하고 말았다. 1694년에도 선교사를 보냈지만 역시 포교에 실패하였다.
그로부터 185년 동안 선교사 파견이 중단되었다가, 천진 조약에 의한 개항으로 1859년 로마 포교성성의 명을 받은 선교사 사인즈(Fernando Sainz)가 남부의 고웅(高雄)에 상륙, 200여 년 전과 조금도 다름없는 박해 속에서 어려운 포교 활동을 벌인 끝에 대남(臺南)에까지 선교 기반을 구축하였다. 또한 1868년에는 북부 지역 선교를 위해 헤르세(Francisco Herce)가 파견되었다. 이듬해 영국 함대가 안평진(安平鎮)을 점령하고 군대를 대남에까지 진격시키자, 청나라 관리의 위신은 땅에 떨어지고 박해의 손도 늦추어져 장래의 포교에 서광이 비쳐졌고, 이 기회를 이용해서 기륭에 성당들이 증설되었다. 그러나 사인즈가 상륙한 지 36년이 지난 1895년의 교세는 겨우 1,300명을 헤아리는 데 그쳤다. 그 해 청일전쟁에서 승리한 일본이 대만을 점령하게 된 이래로 교회는 전에 없었던 평화를 누렸는데, 그 후 약 40년 동안 신자수도 5배로 불어났다. 아모이 대목구 관할 아래 있던 대만교구가 1913년에 독립하여 대만 지목구로 분리되었고, 1947년 1월에는 대만 지목구가 주일(駐日) 교황 사절의 관구하에서 주중(駐中) 교황 공사 관할로 들어갔다. 1949년 12월 대만 지목구가 고웅 지목구로 개칭되는 동시에 타이베이 지목구가 신설되었고, 1950년에는 대중(臺中) 지목구가 고웅 지목구로부터 분리 · 신설되면서 메리놀 외방전교회 선교사들이 포교를 담당하게 되었다. 그 후 1961년에 대남과 고웅은 중국인 주교의 교구가되었으며, 대중과 가의(嘉義)는 1962년에, 화련(花連)은 1963년에 각각 교구가 되었다.
현재 대만 교회는 북경 당국과 협력 관계 설정을 모색하고 있다. 지역 주교들은 중국인을 위한 완전하고 진정한 봉사라는 견지에서 중국 대륙의 교회와 보편 교회 사이의 친교 회복을 모든 중국 가톨릭 신자들의 사명으로 삼고 있다. 2000년대를 향하여 신앙 쇄신 및 선교 촉진9개년 계획을 수립하고 있는 대만 교회는 '청소년의 친교와 복음화' 를 1993년의 사목 과제로 정하였다. 1993년 현재 가톨릭 신자수는 인구의 1.4%인 29만 6천 명으로, 대교구 1, 교구 6, 본당 462, 공소 496개에, 대주교 1, 주교 7, 사제 758(교구 소속 227, 수도회 소속 531), 신학생 105, 수사 113, 수녀 1,177명이 있다. 1994년 현재 한인 교포 신자는 100명 정도이고 한인 공소 1개가 있다. (⇦ 타이완)
※ 참고문헌 J. Krahl, 《NCE》 13, pp. 916~917/ 《EU》 22, pp.11~20/ 《EU》, Les chiffres du Monde, 1994, p. 490/ Petit Robert, Dictiomaire Universal Des Noms Propres 2, 1988/ 1994 Catholic Almanac, Our Sunday Visitor Publishing Division/ 《가톨릭 사전》 《한국 천주교회 연감》, 한국천주교중앙협의회, 1994/ 《동아 원색 세계 대백과 사전》 27, 동아출판사, 1982. 〔梁惠貞〕
대만
臺灣
〔영〕Taiw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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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권

타이베이 주교좌 성당.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