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목구나 지목구는 전교 지방이나 특수한 사정 때문에 아직 교구로 설정되지 아니한 개별 교회로서(교회법 368조, 371조) 대목구는 대목구장이, 지목구는 지목구장이 교황의 이름으로 통치하는 하느님 백성의 한 부분이다(371조 1항).
대목구와 지목구에서는 대목구장이나 지목구장이 적어도 3명의 선교사들로 선교 평의회(宣敎評議會, consili-um missionis)를 설치하여 중대한 업무는 서신으로라도 이들의 의견을 들어야 한다(495조 2항). 정식 교구에서는 사제 평의회와 교구 참사회의 구성이 의무적인 데 비해서 대목구와 지목구는 교구에 준하는 개별 교회이지만(368조), 사제단을 대표하는 사제 평의회를 구성할 여건이 미비하기 때문에 이를 설치할 의무는 없다. 그러므로 교구 참사회의 임무는 선교 평의회가 대행한다(502조 4항).
〔대목구장과 지목구장〕 대목구장과 지목구장은 교구장 주교에 준하는 개별 교회의 책임자로서 대목구장은 통상적으로 명의 주교이고(교구장 주교 이외의 모든 주교는 명의 주교이다), 지목구장은 통상적으로 주교품을 받지 아니한 고위 성직자 즉 몬시놀이다.
직권 : 교구장 주교의 직권은 고유 직권으로 본인의 이름으로 관할권을 행사한다(134조). 이에 비해 대목구장이나 지목구장의 직권은 대리 직권으로서 교황의 이름으로 관할권을 행사한다. 또한 이들은 교회법상의 직권자(職權者, ordinarius)이며(134조 1항) 교회법상 교구 직권자 (ordinarius loci)이다(134조 2항).
권리와 의무 : 원칙적으로 교구장 주교와 같으며(134조 3항, 381조 2항) 법률상 주교 회의의 회원이다(448조 1항, 450조). 그리고 사도 묘소 참배(교황청 정기 방문) 의무는 교구장 주교가 이 의무를 몸소 수행해야 하는 데 비해 대목구장은 이 의무를 로마에 사는 대리인을 통하여서도 수행할 수 있고 지목구장은 이 의무가 없다(400조)
〔직무 대행〕 정식 교구에서는 교구장좌가 공석이 되면 그 참사회에서 교구장 직무 대행을 선출한다(420조) 그러나 대목구나 지목구에서는 참사회가 없고 아직 교회가 정착되지 못한 상태이므로 선교사들이 단시간 내에 모이기가 어려운 것이 보통이다. 따라서 준교구장좌가 공석이 되는 경우를 대비하여 대목구장이나 지목구장이 취임을 한 직후에 대목구장 직무 대행(pro-vicarius)이나 지목구장 직무 대행(pro-praefectus))을 미리 임명해 두고 대목구장좌나 지목구장좌가 공석이 된 경우에 그 준교구를 통치하게 한다. 다만 성좌가 달리 조처하면 성좌의 지시에 따르고 직무 대행의 권리와 의무는 교구장 직무 대행의 경우에 준한다(1018조 2항)
〔교황 대리 감목구로서의 대목구〕 가톨릭 국가인 스페인과 포르투갈의 국왕들은 신세계에 식민지를 개척하면서 교황으로부터 신세계에서 선교를 전담하는 이른바 보호권을 받았다. 그러나 17세기에 스페인과 포르투갈의 국력이 쇠퇴하고, 그 대신에 프로테스탄트 국가들인 네덜란드와 영국이 재해권을 장악하고 식민지를 빼앗았다. 그 결과 식민지 교회의 주교좌는 심각한 타격을 입었다. 그리하여 그레고리오 15세 교황이 1622년에 교황청에 포교성을 설치하고 교황이 몸소 전교 지방에 교황 대리를 파견하는 제도를 활용하였다. 교황청 포교성은 다음과 같은 지방에 교황 대리 감목구 즉 대목구를 설정하였다.
① 프로테스탄트들이나 이교도들의 지방 : 옛날에는 가톨릭 교도들의 지방이었으나 16세기 종교 개혁 이후 프로테스탄트 교도들이 우세하게 되어 주교좌가 장기간 공석이 된 지방, 예를 들어 북유럽의 여러 나라에 17세기 이후 교황 대리 감목구가 설치되었다. ② 이슬람교도들의 지방 : 초세기에는 가톨릭 교도들의 지방이었으나 7세기 이후 이슬람 교도들의 지배 아래 들어간 근동 지방과 북아프리카 지방에도 17세기 이후에 교황 대리 감목구가 설치되었다. ③ 미신자들의 지방 : 15세기 말에 항해술이 발전하여 유럽인들이 아시아와 아메리카에 진출하게 되었다. 포교지로 불리는 이 지역에도 교황 대리 감목구가 설치되었다.
〔선교 지역의 교계 제도〕 선교 지역에서 복음화의 진행 정도에 따라 성좌에 의하여 단계적으로 설정되는 교계의 순서는 대체로 다음과 같다.
자치 선교구 : 자치 선교구장이 선교사들을 통솔하여 자치적으로 선교하는 구역으로서 아무 교구에도 속하지 아니하는 면속 지역이다.
지목구 : 독립된 개별 교회인 지목구를 교황의 이름으로 통치하는 지목구장은 통상적으로 하급 고위 성직자 즉 주교품을 받지 않은 사제이다. 때문에 자기 소속 성직자의 서품식 거행을 다른 주교에게 부탁하여야 한다. 지목구가 발전하면 대목구로 승격된다.
대목구 : 독립된 개별 교회인 대목구를 교황의 이름으로 통치하는 대목구장은 통상적으로 명의 주교 즉 주교품을 받은 사제이다. 때문에 자기 소속 성직자뿐 아니라 소속이 다른 성직자의 서품식도 그 소속 장상의 허가서가 있으면 거행한다. 대목구가 발전되면 교구로 승격된다.
교구 : 교구는 교구장 주교가 고유한 목자로서 사제단의 협력을 받아 사목하는 개별 교회이다.
〔한국 교회와의 관계〕 남경(南京)교구와 북경(北京)교구 : 1660년에 중국 남경 대목구가 설정되면서 조선은 이 남경 대목구의 관할에 포함되었다. 그러나 1690년에 남경 대목구가 교구로 승격되면서, 북경교구가 분할 신설되자 조선은 이 북경교구의 관할에 포함되었다. 하지만 남경교구와 북경교구는 1856년에 다시 각각 대목구로 격하되었고 그 후 1946년에 다시 각각 관구장좌 대교구로 승격되었지만, 1949년 중국 공산당이 정권을 장악한 후 교회는 심한 박해를 받고 있다.
조선 교회 : 1784년에 이승훈(베드로)은 북경 성당에서 세례를 받고 조선에 돌아와 동료들에게 세례를 주고 신자 공동체를 형성하였다. 이를테면 공소가 설립된 것이다. 1792년에 포교성성은 조선 선교지를 북경교구장 구베아 주교의 개인적 보호와 지도에 위임하였다. 이에 그는 그의 교구 사제 주문모(周文謨) 신부를 조선에 파견하였다. 그때 신자는 약 4천 명이었다.
대목구 : 조선 교회는 마침내 1831년에 대목구로 설정되고 파리 외방전교회에 위임됨으로써 북경교구로부터 독립하였다. 1911년에 조선 대목구가 서울 대목구와 대구 대목구로 분할되고 1920년 이후에 원산 · 평양 · 광주 · 전주 · 춘천 · 부산 · 대전 · 청주 · 인천에 대목구들이 설정되었다. 그중에 평양 · 광주 · 전주 · 춘천은 지목구를 거쳐 대목구로 승격되었고, 원산 대목구는 함흥 대목구와 덕원 수도원구로 분할되었다. 그러므로 한국에는 자치 선교구의 단계를 거친 예가 없다.
정식 교계 제도 : 1962년에 3개의 대목구들이 대교구로 승격되고 8개의 대목구들이 교구로 승격되면서 1개의 수도원구와 함께 3개의 관구로 배속되었고, 그 결과 준교구장 직권을 교황의 이름으로 행사하던 대목구장 주교들이 이제는 본인의 이름으로 교구장 직권을 행사하는 교구장 주교들로 승격되었다. 1963년 이후에 수원 · 원주 · 마산 · 안동에 교구가 새로이 설정되었고, 제주는 지목구로 설정된 후 대목구를 거치지 않고 바로 교구로 승격되었다. 1995년 현재 서울 관구에 (북한의 3개를 포함하여) 9개 교구, 대구 관구에 5개 교구, 광주 관구에 3개 교구가 배속되어 있다.
〔역대 조선 대목구장〕 포교지에는 교회 박해나 풍토병때문에 항상 선교사들의 생명이 위험하였다. 교황청 포교성성은 포교지의 비상 사태를 대비하여 대목구장 계승권을 가지는 부주교를 임명하여 대목구장 생존시에 미리 후임 주교로 서품해 두는 것이 상례였다. 조선 대목구의 역대 교구장은 거의 부주교를 거쳐 대목구장직을 계승하였다.
제1대 대목구장(1831~1835) 브뤼기에르(B. Bruguière, 蘇) 주교는 시암(태국) 대목구의 부주교였다가 조선 대목구장으로 전임 발령되었으며, 제2대 대목구장(1836~1839) 앵베르(L.M. Imbert, 范世亨) 주교는 브뤼기에르 주교에 의해 부주교로 선임되었으나, 그의 사후에 주교로 서품되어 후임자가 되었다. 제3대 대목구장(1843~1853) 페레올 주교(J.J. Ferréol, 高)는 몽고에서 부주교로서 주교 서품을 받았으나, 그때는 앵베르 주교가 순교한 뒤였다. 제4대 대목구장(1854~1866) 베르뇌 주교(S.F. Berneux, 張敬一)는 부주교를 거쳤으며, 제5대 대목구장(1866)인 다블뤼(A. Daveluy, 安敦伊) 주교도 부주교를 거쳤다. 제6대 대목구장(1869~1884) 리델 주교(F. Ridel, 李福明)는 부주교를 거치지 아니하였고, 제7대 대목구장(1884~1890) 블랑(J. Blanc, 白圭三) 주교는 부주교를 거쳤다. 제8대 대목구장(1890~1933) 뮈텔(G. Mutel, 閔德孝) 주교는 부주교를 거치지 않았으며, 재임 중에 조선 대목구가 서울 대목구와 대구 대목구로 분할되었다. (⇦ 대목구장 ; 지목구)
※ 참고문헌 정진석, 《교계 제도사》, ,성바오로출판사, 1974/ → 《교회법 해설》 4, 한국천주교중앙협의회, 1993/ S. Sipos, Enchiridion Iuris Canonici, Orbis Catholicus-Herder, Romae, 1954/ M. Coronata, Institutiones Iuris Canonici, 1-5, Marietti, Romae, 1957/ E.F. Regatillo, Institutiones Iuris Canomici, 1-2, SalTerrae, Santander, 1963. 〔鄭鎮奭〕
대목구와 지목구
代牧區 - 知牧區
(대목구 〔라〕vicariatus apostolicus 〔영〕apostolic vicariate, · 지목구 〔라〕praefectura apostolica 〔영〕apostolic prefectu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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