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방동 본당

大方洞本堂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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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대교구 소속 본당. 서울시 영등포구 신길7동 890소재. 1954년 11월 20일 도림동 본당 관할 공소에서 본당으로 승격 · 설립되었으며, 주보는 성 요셉. 관할 구역은 대방동, 신대방2동, 신길1 · 2 · 4 · 6 · 7동, 상도3동. 〔교 세〕 1965년 4,494명, 1972년 7,750명, 1975년 6,852명, 1980년 7,905명, 1985년 11,075명, 1989년 12,984명, 1993년 11,162명. 1994년 11,898명. 〔역대 신부〕 초대 임응승(林應承) 요한(1954. 11~1955. 5) 2대 임종구(林鍾求) 바오로(1955.5~9), 3대 신인식(申仁植) 바오로(1955. 9~1961. 1), 4대 김진하(金瑨河) 요한(1961. 1~1965. 8), 5대 오기선(吳基先) 요셉(1965. 8~1971.5), 6대 장대익(張大翼) 루도비코(1971. 5~1976. 5), 7대 백일성(白日星) 도미니코(1976. 5~1980. 5), 8대 김병도(金秉濤) 프란치스코(1980. 5~1985. 8), 9대 박순재(朴順宰) 라파엘(1985. 8~1991.9), 10대 이종환(李鍾煥) 미카엘(1991.9~현재).
〔설립과 발전〕 이 본당 지역은 8 · 15 광복 전에는 신자수 5세대로 당시 영등포(현 도림동) 본당의 공소였다. 초대 공소 회장은 최형주(崔亨柱, 토마스)였으며, 광복 이후 신자수가 급증하여 1945년 말에는 60여 세대가 되었다. 공소로서의 모습을 갖추어 가다가 1947년 4월 김재완(金在腕, 바오로) 등이 중심이 되어 청년회 분회를 설치하고 아동 교리, 친목회, 부녀회 등의 활동을 했다. 6 · 25 동란 등 어려움을 겪은 후 1952년부터 국민학교 건물을 공소 강당으로 사용해 오던 중, 1953년 5월 성당 건립 기성회를 조직, 회장에 김재완을 선출하고 활동을 시작하였다. 미군들과 여러 은인들의 물질적인 도움과 교우들의 염원으로 1954년 임응승 신부가 초대 주임으로 부임한 가운데 11월 21일 노기남 대주교 집전으로 성당 축성식이 거행되었다. 이날 축성식에는 장면(張勉)박사와 미군 부대 장병들을 비롯하여 도림동 본당의 김철규 신부와 여러 내빈들이 참석하였다.
1955년 3월에는 본당 사무실과 사제관이 완공되었고, 이듬해에는 성모유치원이 정식 설립 인가를 받았으며, 1957년에는 예비자 지도와 유치원 운영을 위해 성가 소비녀회 분원이 설치되어 3명의 수녀가 부임하였다. 또 1962년에 주일학교 건물을 완공한 데 이어 1966년 성모 성월에는 성모 동굴을 준공하고, 각 단체들의 원활한 회합과 주일학교의 교실 부족을 해결하기 위하여 새 회합실을 건축하였다. 1972년 새 사제관을 건립하였으며, 1973년 10월에는 소성당 겸 회의실을 준공하였다. 신자수가 증가함에 따라, 1971년 9월 17일 시흥 본당을 신설 · 분할하였다. 마침내 1983년 9월 18일에는 나날이 불어나는 신자수에 비해 협소했던 옛 성당을 헐고 새 성당(대지 2,977평, 건평 1,100평)을 신축 · 축성하였으며, 1990년 12월 30일에는 소성당을 낙성하였다.
〔사목 및 활동〕 3대 주임 신인식 신부가 부임하여 본당 구역을 14개 지구로 나누고 지구 회장을 임명함으로써 신자 생활에 활력이 불어넣어지기 시작하였다. 또한 1957년 3월부터 가톨릭 구제회의 원조로 구호 물자와 급식소를 본당에 설치하여 어려운 지역 주민과 교우들에게 도움을 주었고, 이는 1960년 말까지 운영되어 많은 극빈자들에게 도움을 주었다. 1959년 7월 19일에는 평신도들의 신앙심을 고취하기 위한 심신 운동으로 레지오 마리애가 도입되었다. 5대 오기선 신부는 신심 강화에 주력하여 레지오 마리애 활동을 적극 후원하는 한편, 프란치스코 제3회를 발족시켰으며, 1970년에는 반장단이 자발적으로 신자 배가 운동을 전개하기도 하였다. 6대 장대익 신부 부임 이후 대방동 본당은 새로운 번영기에 들어서게 되었다. 신자들의 신앙심 고취와 교세 확충과 더불어 명실공히 대본당으로 도약하기 위한 새로운 사업 계획을 발표하고 적극 추진하기 시작하였다. 또한 1971년 2월에는 반모임과 함께 반미사를 봉헌하며, 신자 서로 알기 운동과 지역 공동체의 중요성을 강조하였다. 이무렵 각 단체들의 활동도 괄목할 만한 발전을 가져왔고, <대방 주보>가 간행되었다. 1979년 평신도 활동이 활기를 띤 가운데, 5월에 공동체 피정, 7월에 행복한 가정 운동, 8월에 사목 협의회가 발족되고, 11월에는 성령 세미나와 M.B.W. 가 시작되었다. 7대 백일성 신부 때부터 성당 신축이라는 사업이 계획되어 전체 교우가 성전 신축에 함께 참여함으로써 외부의 도움 없이 본당 자체의 힘에 의한 성전 건립에 전력하였다.
1984년부터 '만남의 방' 을 운영하기 시작하여 회합뿐만 아니라 신자들로 하여금 친목을 도모하게 하는 등 많은 호응을 받았다. 4월 5일에는 전입자 및 예비자에 대한 교회의 집중적인 사목 대책의 일환으로 성당 내 사무실 맞은편에 선교 상담실' 을 개원하였다. 이곳은 단체 소개, 성당 안내, 구역 모임 소개, 혼인 상담, 교리 교육, 신앙 상담 등 신앙 지도와 업무 일반을 관장하고 있다. 10대 이종환 신부는 1994년 본당 설립 40주년을 맞아 장년 교회로서 보다 성숙한 신앙 생활을 위한 계기로 삼고 희생과 헌신의 삶을 통해 부흥을 준비한다는 의미로 특별 기도와 평일 미사를 강조하였다. 대방동 본당은 오랜 역사를 토대로 삼아 회개와 쇄신의 정신을 고취시키기 위하여 하느님 백성의 사귐과 일치를 위한 수차례의 2일 피정과 미사 때마다 진행되는 복음 나누기 묵상을 실시하고 있다. 또한 시골 본당이나 신설 본당들을 힘껏 돕고 소공동체 정신으로 새 본당을 신설하기 위하여 본당 분할을 준비하고 있으며, 교구 차원의 교육관을 건립함으로써 지역에서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으로 전망된다. (→ 서울대교구)
※ 참고문헌  《가톨릭 사전》 《서울대교구 교구 총람》, 가톨릭출판사, 1984. 〔편찬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