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대교구 소속 본당. 대구시 중구 대봉2동 174-3소재. 1955년 10월 1일 삼덕동 본당에서 분리 · 설립되었으며 주보는 세자 성 요한. 관할 구역은 대봉1 · 2동, 이천1 · 2동. 〔교 세〕 1955년 350명, 1965년 3,113명, 1965년 4,323명, 1970년 5,240명, 1975년 8,424명, 1980년 7,233명, 1985년 7,906명 1990년 8,462명, 1994년 8,433명. 〔역대 신부〕 초대 최병선(崔炳璇) 요한(1955. 10~1967. 12), 2대 김영옥(金榮玉) 요한(1967. 12~1969. 1), 3대 이명우(李明雨) 야고보(1969. 1~1971. 11), 4대 김용찬(金容贊) 시몬(1971.11~1975. 12), 5대 장태식(蔣泰植) 리노(1975. 12~1977. 3), 6대 이문희(李文熙) 바오로(1977. 3~7), 7대 박창수(朴昌壽) 요한(1977. 7~1980. 9), 8대 최시동(崔時東) 요한(1980. 9~1985. 1), 9대 전주원(全主元) 안드레아(1985. 1~1989. 6), 10대 이창호(李昌鎬) 안드레아(1989.ㅜ6~1993. 10), 11대 이성우(李成雨) 아킬로(1993. 10~현재).
〔설립과 발전〕 삼덕동 본당은 대구의 동부 일대 신자들을 다 수용하기에 협소하였을 뿐더러, 삼덕동 본당에서 미사 참례를 하던 이 지역 신자들에게도 거리상으로 너무 멀었다. 그래서 8 · 15 해방 이후, 김소수(니콜라오), 허일선(바오로), 김옥주(프란치스코) 구역장을 중심으로 성당 건립 계획이 추진되었다. 1949년 10월 성당 건립을 목적으로 일본인 소유의 대지 1,000여 평을 매입하고, 그 이후에도 주변 땅을 매입하여 약 1,700평이 되었다. 현재 사제관 땅은 당시 일본인의 사택이 있었던 자리로, 여기서 미사를 봉헌하였다.
6 · 25 동란으로 서울에서 피난 온 수녀들과 군종 신부였던 제찬규(諸燦奎, 시메온) 신부가 대봉동에 머무르며 잠시 사목을 담당하기도 하였으며, 1955년 10월 최병선 신부가 초대 주임으로 부임하면서 삼덕동 본당에서 분리되어 본당으로 설정되었다. 그러나 미사를 지내던 건물에 샬트르 성 바오로 수녀회의 보육원이 있었고, 효성여자중학교가 임시 교사로도 사용하고 있어서 본당 분위기는 매우 어수선하였다. 1956년 11월 26일 효성여자중학교가 남산동 신축 교사로 옮겨 가고 보육원도 서울로 이전되었으나 가난한 재정 형편상 성당 신축은 엄두조차 낼 수 없었다.
그러다가 밀가루, 옥수수 등 가톨릭 구제회(N.C.W.C.)의 원조 물자가 성당에 전달되자 최 신부와 신자들은 이를 판매하여 성당 건립의 주요 재원으로 삼고, 대봉교와 상동교 아래 하천의 모래와 자갈을 직접 모으는 등 피땀 어린 노력으로 현재의 대봉동 성당을 준공하였다. 1958년 2월에 시작된 이 공사는 1960년 4월에 완공되어, 그해 6월 25일 서정길 주교 집전으로 축성하였다. 1961년 8월 30일 성가 소비녀회 대봉 분원이 설치되어 본당 설립 초기의 여러 불편함에도 불구하고 사목 활동에 협력하다가 1963년 9월 철수하였고, 이후 예수 성심 시녀회 분원이 설치되었다. 1968년 5월에는 성당 바닥 개축과 함께 사제관을 신축하였으며, 1978년 12월에는 수녀원을 신축하였다.
〔성장과 변모〕 1973년을 본당 신자 배가의 해로 정하고 단계적으로 기도와 전례, 외부 행사 등을 통하여 신자들에게 전교에 대한 사명감을 고취시켰던 대봉동 본당은, 1979년 11월 신용 협동 조합을 설립하여 신자간의 경제적 협력을 도모하였으며, 이듬해 6월에는 본당 강당을 도서관으로 개방하였다. 또한 1982년 1월에는 본당 예산을 줄여 모은 1억 원을 교구에 헌납, 산격동 성당 대지 매입에 도움을 주었으며, 1983년 3월에는 요한 장학회를 설립, 불우 청소년들을 후원해 오고 있다.
1984년 7월 최시동 신부가 전국에서 처음으로 청년 꾸르실료와 숙녀 꾸르실료를 실시하여 72명의 꾸르실리스타가 탄생하였고, 1985년 4월에는 수녀원이 노후하여 연건평 60평 규모로 신축하였으며, 이어 10월에는 사제관을 신축하였다. 1986년 3월에는 교리실을 현대식으로 말끔히 단장하기도 하였다. 1987년 4월 대봉2동 175-3번지의 2층 집을 매입, 이해 6월 이를 헐고 담 공사를 하였으며, 1991년 4월에는 66평 대지를 교육관 건립 부지로 매입하였다.
그 해 6월 본당 업무 전산화를 위해 컴퓨터 시스템을 구비한 대봉동 본당은, 1993년 1월부터 교구 선교 활동 지침에 의거하여 매월 1회씩 신앙 강좌를 개최, 신앙 재교육에 앞장서고 있다. 1995년 본당 설립 40주년을 맞이하여 1994년 10월에 기도하는 성당으로서의 분위기 쇄신을 위해 성당 내외부 보수 공사에 착수, 벽과 천장 · 제대 · 감실 · 강론대 · 장궤틀 등을 새로 단장하였다. 현재 본당 40년사 편찬을 계획하고 자료를 수집하고 있으며, 그간의 역사를 바탕으로 신앙의 성숙과 재도약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 (→ 대구대교구)
※ 참고문헌 《가톨릭 사전》 천주교 대구대교구, 《천주교 대구대교구 총람》2, 1986. 〔편찬실〕
대봉동 본당
大鳳洞本堂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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