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교구 소속 본당. 경기도 안산시 대부면 북동 184소재. 1992년 10월 15일에 설립되었으며, 주보는 성녀 가타리나. 관할 구역은 경기도 안산시 대부면 전역과 인천시 옹진군 영흥면 전역. 관할 공소로는 말부흥, 선감, 영흥, 선재 등 4개소가 있다. 신자수는 1,241명이며 1992년 10월 초대 주임으로 부임한 디아즈(Hector Diaz, 원) 헥톨 신부가 재임 중이다.
〔공소 시대〕 1958년 8월 말에 답동 본당 관할 대부도 공소로 시작되었으며, 버크(Jean Burke, 장) 신부의 전교를 시작으로 복음의 씨앗이 심어졌다. 1960년 3월 북리 상동에 초가를 구입하여 몇몇 신자들이 첨례를 보면서 이듬해 3월 도화동 본당 관할 공소로 바뀌었는데, 이때 머피(Jerome Murphy, 민) 신부가 전교를 하였다. 1962년 1월 김정현(요한) 공소 회장을 중심으로 공소 예절을 하면서 전교에 매진하였다. 1968년 3월 덕적 본당 관할 공소로 바뀌면서 츠베버(Benedict Zweber, 최) 신부가 전교하였으며, 1969년에는 현재 본당 위치의 대지 1,170평을 구입, 그 해 4월 건평 60평의 흙벽돌 공소 건물을 짓고 이전하였다. 1971년 2월 전교 회장이 바뀌면서 강성욱(姜聖旭, 마태오) 신부가 깊은 애정으로 대부도 공소를 돌보아 주었고, 1972년 3월 처음으로 인보 성체 수녀회의 수녀 2명이 파견되어 사목을 도왔다. 그때부터 교세가 번창하여 공소가 비좁을 정도였다. 1973년에는 로우어리(Martin Lowery, 나) 신부가 전교를 시작하였으며, 1976년 12월에는 현재 성당 건물에 해당하는 특수 공법에 의한 팔각형 건물(93평)을 짓게 되었다. 1981년 6월 인보 성체 수녀회 본원의 사정으로 수녀가 철수하게 되어 어려움을 겪게 되었지만, 더욱 분발하여 교세는 오히려 번창하였다. 1984년에 박복남(朴福男, 요셉) 신부가 전교를 하기 시작하면서 건평 40평의 수녀원을 짓고, 1987년 2월 인보 성체 수녀회 분원이 설치되어 세 명의 수녀가 파견되었다. 1991년 4월 최상진(崔尙鎭, 야고보) 신부가 전교하면서 본격적으로 본당 설립이 추진되었다.
〔설립과 발전〕 대부도 공소가 본당으로 승격 · 설정된 후 과달루페회의 원 헥톨 신부가 초대 주임으로 부임하여 첫 미사를 봉헌하였으며, 활발한 전교 활동을 전개하였다. 1993년 3월 15일 사제관을 착공한 데 이어 6월 18일에는 조립식 건물로 사무실을 완공하였다. 8월 17일 영흥 공소 강당 축성식을 거행하였으며, 이듬해 12월 13일에는 신감 공소 축성식을 거행하였다. 또한 1995년 7월 이후 새 성당 건립을 추진하기 시작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1993년 3월 5일 첫 꾸리아가 발족되었으며, 그 밖의 단체로는 성모회, 대건회, 자모회, 학생회, 명도회(초등부 주일학교), 연령회, 레지오 마리애 6개 쁘레시디움이 있다. 대부도 본당은 복음 나누기를 통하여 복음의 힘으로 가치관 · 생활 양식 · 환경 등을 바로잡는 데 함께 참여하여 본당 공동체와 일치하는 복음화된 소공동체를 건설하고, 그 안에서 부활한 그리스도를 체험하고 증거하고자 노력하고 있다. 그 실천 방안으로 가정 성화를 위하여 가족들의 복음 나누기 실천, 성서 읽기 운동, 쓰레기 분리수거 운동 등을 적극 권장하고 있으며, 또한 구역 · 반 모임을 통해 복음 나누기를 실시하고 있다. 오랫동안 공소로 있었던 대부도 본당은, 정식 본당으로 설정된 지 얼마 안되어서 무엇보다도 신자 배가를 위한 선교에 열심히 매진하고 있다. (→ 인천교구)
※ 참고문헌 인천교구사 편찬위원회 · 한국교회사연구소, 《인천교구사》, 천주교 인천교구, 1991. 〔편찬실〕
대부도 본당
大阜島本堂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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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권
